제204화
#57 라스베이거스 (8)
여전히 나를 의심하는 눈빛이었지만, 핫도그를 거부하기에는 너무나도 배가 고팠겠지.
마음 같아서는 핫도그를 먹기 전에 꼬질한 손부터 씻고 오라고 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또 이 꼬맹이한테 어떤 욕을 들어먹을지 모르니, 생략해야겠다.
나는 녀석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녀석의 눈이 먼지 하나 묻지 않은 내 양복바지로 향했다가 제 손에 들린 핫도그로 향했다.
“이런 거 사 줘도 안 따라가요.”
“말했잖아, 이 아저씨가 혼자서는 밥을 못 먹는 병에 걸려서…….”
“그 허접한 거짓말을 믿으라고요?”
“믿는 편이 마음이 편하잖아. 안 그래?”
동정이니, 뭐니. 내 행동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면 본인만 더 비참해질 뿐이니까. 내 말에 아이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아이가 우걱우걱 핫도그를 씹어 넘기는 동안 나도 가만히 그 옆에 주저앉아 핫도그를 맛봤다. 톡톡 씹히는 수제 소시지와 마요네즈 소스, 중간중간 느끼함을 잡아 주는 할라페뇨가 잘 어우러져 기가 막힌 맛이 났다.
‘집에 돌아갈 때 몇 개 더 사서 가야겠는데요.’
━뭔가 거창한 말이라도 할 줄 알았다만.
‘안 합니다.’
그냥 핫도그는 핫도그일 뿐이다. 배가 고픈 아이를 보았고, 핫도그를 하나 사 준 것뿐이다.
이 정도로 끝내고 싶었다. 그 정도로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준 핫도그를 반만 먹고 다시 포장하는 녀석을 보기 전까지.
“하나 더 사 줄 수 있어.”
“오늘은 그렇겠죠.”
그 말에 내 말문이 막혔다. 녀석은 이미 내가 없을 다음을 대비하고 있었다.
“배가 커지면 힘들어요.”
콧잔등을 구기며 그렇게 말하는 녀석에게, 나는 나도 모르게 물었다.
“왜 여기에 있는 거냐?”
내 말에 입가를 손등으로 닦던 아이가 눈을 흘겼다.
“그건 왜 묻는데요.”
“핫도그를 먹어놓고 맨입으로 때울 셈이냐?”
“그건! 그쪽이 혼자 밥을 못 먹는 병이 있어서 내가 도와준 거잖아요.”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어른은 치졸하고 치사하다. 울분에 찬 얼굴로 나를 노려보는 꼬맹이에게 내가 말했다.
“기껏 먹은 거 뱉는 것보다는, 그냥 속사정 얘기하는 편이 너한테도 편할 거야.”
“내 사정은 왜 듣고 싶은데요.”
왜 이렇게 어린 애들은 이유를 중요시하는 걸까. 왜, 왜 나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해? 이런 말은 수십 번도 더 들어본 것 같다.
이유는 늘 한 가지였다.
“내가 오지랖이 좀 넓어.”
내 말에 꼬맹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기에 있는 애들 사연이 다 거기서 거기지.”
겨우 열 살을 갓 넘은 애 입에서 나오기엔 지나치게 씁쓸한 문장이었다.
그래, 이런 데서 앉아 있는 녀석들 사연이 다 거기서 거기지. 나는 녀석에게서 시선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석양이 물든 하늘은, 이 상황에 맞지 않게 더럽게 예뻤다.
“저 안에 있는 게 누군데.”
“아빠.”
“몇 년이나 됐어?”
“몰라,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저 안에서 처박혀서 나오질 않았다네요.”
“그런데도 기다리는 거야?”
“돈이 다 떨어지면 나오거든요.”
무릎으로 고개를 떨군 녀석이 말했다.
“그러니까 금방 나올 거예요.”
그 목소리에 유난히 힘이 없어, 마음이 시렸다. 이 아이는 대체 얼마나 이 앞에서 기다린 걸까.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아까 기둥에 있던 놈 중에 이 아이의 아버지가 있는 거냐.
‘그렇죠.’
아이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아마 알고 있을 거다. 알고 있지만, 신경을 쓰지는 않는 거지.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눈앞에 있을 슬롯머신이니까.
“저 안에 있는 사람이 밉진 않아?”
내 말에 녀석은 콧잔등을 찡그렸다.
“밉지만, 어떡해요. 그래도 나한테는 아빠뿐인데.”
“알잖아, 저기에 있는 사람은 안 바뀌어. 네가 여기에서 그 사람을 아무리 애타게 기다려도, 그 사람이 네게 돌아오는 일은 없을 거라는 뜻이다.”
잔인한 말이었다. 내 말에 아이는 주먹을 꽉 쥐었다. 턱이 떨릴 정도로 이를 앙다문 녀석을 보며 내가 말을 이었다.
“그저 갈 곳이 없어서, 기댈 곳이 없어서 여기에 있는 거라면…….”
“알아요. 아는데, 그래도 내가 좋아서 기다리는 거예요. 아빠가 좋으니까.”
아이의 말에 숨이 턱하고 막혔다. 그렇지, 아이들의 세상은 하나뿐이다.
아이들은 제게 주어진 세상이 어떤 모양이든 그 세상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세상의 이름은 부모다.
꼬맹이의 눈은 어린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지쳐 보였지만, 그 눈 안에는 자신의 아버지를 향한 숨길 수 없는 애정이 담겨 있었다.
“그러니까 안 가요.”
“내가 이상한 짓을 할까 봐?”
“아니, 우리 아빠를 다시는 못 보게 될까 봐.”
그 말에 나는 쑤어하오주를 떠올렸다.
도대체 그 부모라는 게 어떤 거길래, 이렇게 비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걸까.
아주 어렸을 적에 부모라는 존재를 잃고, 단 한 번도 그들을 생각해 본 적 없는 내가 이상한 걸까.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쑤어하오주의 경우에는 결정이 쉬웠다.
나는 그녀를 알고 있었고, 그녀의 미래를 알고 있었으니까. 적당히 끼어들어 악당 역할을 자처하고 그녀를 살리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난 이 꼬맹이를 모르고, 이 꼬맹이의 미래도 모른다.
‘그리고 책임질 자신도 없죠.’
자신을 스스로 지킬 힘이 있었던 쑤어하오주와 달리, 이 녀석은 그냥 꼬맹이일 뿐이니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거다. 나 같은 놈이 아니라 아주 좋은 사람의.
‘차라리 조금은 영악한 아이였다면 편했을 텐데요.’
그냥 적당히 나를 이용하려는 생각을 할 줄 아는 놈이었다면. 그랬다면, 이런 걱정도 하지 않을 텐데.
거칠어 보여도 속은 말랑말랑한 이 녀석을 보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어떻게 할 생각이냐?
레이의 말에 나는 가만히 숨을 골랐다.
‘뭐, 갑자기 나타난 아저씨가 대뜸 네 인생을 구해 주겠다고 말해도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죠.’
━너라면 저 안으로 들어가서, 저 녀석의 아비라는 놈을 끌고 올 수도 있잖으냐.
그랬다. 내 능력이라면, 능히 가능한 일이다.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 이 아이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를 돌려주는 일.
‘그러긴 싫은걸요.’
━뭐?
‘저 아이의 아버지를 구하진 않을 겁니다.’
그게 이 녀석이 가장 바라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나는 절대로 이 녀석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를 돌려주지 않을 거다.
‘저는요, 이 세상에는 없어지는 게 더 나은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 아이의 아버지라는 놈이 그렇죠.’
내 거짓말은 누군가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버릴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기저에 깔린 본성 자체를 바꾸진 못한다.
너는 도박을 싫어한다, 너는 이 카지노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말로 그놈을 속이고, 암시를 걸고 인생을 바꿔 준대도…….
‘쾌락을 찾아서 헤매게 될 겁니다. 도박이, 다른 걸로 바뀌게 될 뿐이에요. 이른바 마약이라든가, 하는 걸로요.’
언젠가 다시 타락하게 될 인간을 갱생시키는 게 의미가 있나?
━저 아이의 소원은 제 아버지가 돌아오는 것뿐이라고 해도?
‘없는 게 나아요.’
그런 인간은.
‘하루라도 빨리 나쁜 놈 곁에서 독립하는 게, 저 아이를 위한 길이에요.’
아직은 깨닫지 못했을 테지만, 곧 이 아이도 깨닫게 되겠지. 아버지를 버리는 길이 자신이 살길이라는 걸.
더럽게 아픈 성장통을 겪게 되더라도, 스스로 깨닫고 강해져야 한다.
그전까지 이 오지랖 넓은 아저씨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다.
“일단 이거.”
“뭔데요.”
“같이 밥 먹어준 값.”
나는 아이에게 100불을 건넸다.
“그걸로 밥이나 사 먹어. 좀 씻고.”
“아까는 나한테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핫도그값은 별도였거든.”
“하.”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한 꼬맹이는 곧 내가 준 돈을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네 아버지한테는 주지 말고.”
“내가 바보인 줄 알아요?”
내가 준 돈을 재빨리 양말 안으로 집어넣는 아이를 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엉덩이에…….”
아이의 눈이 내 엉덩이로 향했다. 깔끔했던 양복바지는 흙이 묻어 얼룩덜룩해졌다. 나는 툭툭 엉덩이를 털어 냈다.
“괜찮아.”
“그, 그래도…….”
“같이 밥 먹어 줘서 고맙다.”
내 말에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잘 있어.”
“어, 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걸음을 옮겼다. 레이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이대로 가겠다고?
‘그러면요. 억지로 저 애를 데리고 가요?’
아이는 아버지를 버리지 않을 거다. 꼬맹이에게 억지로 아버지를 잊게 할 수도, 아버지를 떠나게 할 수도 있었지만…….
‘오지랖이 넓은 아저씨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에요. 그냥 더럽게 맛있는 핫도그를 사 주는 거요.’
아이가 안타깝다고, 냅다 주워 갈 수는 없다.
도와 달라고 하면, 얼마든 도와줄 수 있지만.
아이가 바라는 건 내 도움이 아니다.
진창에 빠진 아버지가 돌아오는 일이지.
그리고 나는 아이에게 아버지를 돌려줄 생각이 없다.
* * *
핫도그를 사 들고 객실로 돌아온 나는 엉망이 된 거실 꼴에 입을 딱 벌려야만 했다.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는 거야 그렇다 치고, 거실이 너무 지저분해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종잇조각에, 웬 수수깡도 밟히고……. 문구점을 턴 다음에 그 문구점을 개박살을 내놓으면 지금 거실 꼴이 설명이 될 것 같았다.
내가 주고 간 건 평범한 공책뿐인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냐.
“대체 여기서 뭘 한 거야?”
내 말에 그제야 한서현과 김재호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차씨랑 에드워드는 어디로 갔는데?”
“여기…….”
드레스룸의 문이 열리고 차송진이 나타났다. 에드워드는 침실 문을 열고 나타났다.
“이게 다 뭔데? 왜 다들 떨어져 있었어?”
“그야, 내 걸 보고 베끼면 안 되니까.”
“베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내 말에 한서현, 김재호, 차송진은 나란히 입을 닫았다. 입에 본드라도 붙여 놓은 건지, 뭔지. 거실을 이 꼴로 만들어 놓은 게 미안해서라기보다는 자존심이 상해 말을 못 하겠다는 것에 가까웠다.
뭐, 세 사람이 말을 할 생각이 없대도 나에게는 외국산 스피커가 하나 더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닌데 집이 이 꼴이 됐어?]
[그냥, 그쪽이 교과서를 만들라고 했다며. 그래서 교과서를 만들려고 했지.]
그렇게 말한 에드워드가 나에게 공책 하나를 던졌다. 여태까지 제가 만든 교과서라고 했다.
나는 에드워드가 건넨 공책을 펼쳤다.
그 짧은 시간에 뭘 한 건지, 공책이 제법 꽉 차 있었다.
너무 꽉 차 있었다.
“뭐야.”
생각보다 훨씬 알차고 훨씬 그럴싸했다!
심지어 글씨체도 엄청 예뻤다.
입에는 걸레를 문 것처럼 말하기에, 글씨체도 개차반일 줄 알았는데. 둥글둥글 귀여운 글씨체에 어이가 없어졌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만들라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내가 말한 건, 그냥 대충 커리큘럼을 적어서 공유하라는 뜻이었다. 이렇게 엄청나게 열심히 진짜 교과서로 쓸 만한 책을 찍어 내는 게 아니라.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에드워드가 뿌듯한 표정으로 코밑을 쓱 훑으며 말했다.
[나, 에드워드 시헬리스는 못하는 게 없는 남자거든.]
[그래서 이 교과서랑 이 난장판이 무슨 관련이 있는데?]
[나도 몰라?]
[몰라?]
모르긴, 무슨.
“내가 설명할게.”
잔뜩 지친 얼굴로 나타난 차송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냐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