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202화 (202/352)

제202화

#57 라스베이거스 (6)

“대체 무슨 패를 들었기에 이렇게 무식하게 올려 대는 건데, 응?”

“그걸 말해 줄 수는 없지.”

니키의 말에 여자의 얼굴이 울 것처럼 구겨졌다.

━정말로 형편없는 패를 들었거나…….

‘아니면, 정말로 뛰어난 연기자거나.’

이 사람들의 성격을 모르니, 무어라 확답할 수는 없다. 울며 겨자 먹기라는 듯 얼굴을 구긴 여자는 욕을 내뱉으며 니키의 배팅을 받았다.

“젠장. 콜.”

그리고 그 옆에 앉아 있던 또 다른 남자는…….

“나는 여기까지 할게.”

곧바로 패를 내던졌다.

“아까는 끝까지 가자며!”

“미안, 리아. 이러다가 이번 배당금을 다 날려 버릴 것 같아서 말이야.”

이제 남은 사람은 단둘뿐이다. 니키와 리아. 니키는 리아를 바라보며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리아는 손톱을 딱딱 부딪쳤다. 누가 봐도 초조한 얼굴이지만, 도박판에서는 상대방의 표정을 다 믿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마지막 카드 공개합니다.”

딜러의 말과 함께 마지막 카드가 바닥에 깔렸다.

딜러의 앞에 공개된 패는 클로버 2, 클로버 J, 다이아 4, 클로버 K, 하트 A였다.

이제 각자의 손에 들린 두 장의 카드로 패를 완성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포커라는 건, 내 손에 들린 패가 깔리기 전까지는 누가 이겼는지 알 수가 없지.

딜러의 시선이 니키에게로 향했다.

“제발, 이제 그만 올려.”

리아의 말에 니키는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하프.”

이번에도 단번에 판돈의 반을 올렸다.

“젠장, 왜 그렇게 강한 척을 하는데?”

리아의 말에 니키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이번에는 진짜 강하다니까?”

“아까는 그렇게 말하고 원 페어였잖아.”

“그러니까 이 게임이 재밌는 거지. 이번에는 진짜 강할 패일까요, 아니면 또 블러핑을 갈긴 걸까요?”

“그래, 씨X! 어디 한 번 가 보자. 콜.”

리아는 니키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모든 베팅이 끝나고, 카드를 오픈할 차례였다.

먼저 카드를 깐 건 리아였다.

하트 3, 다이아 5를 내려놓은 리아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2, 3, 4, 5, A. 스트레이트야.”

완성된 패를 본 리아 옆의 남자가 휘파람을 불며 환호했다.

“워후! 괜히 끌려다닌 게 아니라는 소리네.”

“그, 그럼!”

리아의 눈꼬리가 접혔다.

“이제 니키, 네 패를 까 봐. 얼마나 대단한 패를 들고 있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니까.”

그 말에 니키는 씩 웃으며 제 손에 든 패를 내려놓았다.

“이거 어쩌나.”

그녀가 내려놓은 패는 클로버 3, 클로버 6. 딜러의 앞에 있는 클로버들과 합치면 클로버가 무려 다섯 개! 플러시 완성이다.

“이런, 미친…….”

리아가 든 패도 나쁘진 않았지만, 플러시를 이길 순 없었다. 리아의 허망한 표정을 보며 니키가 말했다.

“미안하게 됐네. 그래서 말했잖아, 이번에는 진짜 강하다고.”

니키가 팔찌를 흔들었다. 테이블 위에 쌓여 있던 칩이 니키의 홀로그램 앞으로 빨려 들어갔다.

판이 끝나고 딜러가 카드를 받아 정리하는 사이, 니키의 시선이 테이블 옆에 멀뚱하게 서 있던 나에게로 향했다.

“그나저나 저 구경꾼은 누구시려나.”

니키의 말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아홉 쌍, 아니, 딜러의 것까지 총 열 쌍. 나는 그들의 눈동자를 보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호기심, 귀찮음, 짜증, 무관심…… 각자 눈에 실린 것은 달랐지만 묻는 건 하나였다.

그래서 넌 여기에 왜 왔냐는 거지.

“이 테이블이 유독 재밌어 보여서요.”

“시끄러운 걸 좋아한다면 그렇겠지. 봐서 알겠지만 우리는 전부 같은 길드거든. 조용히 치는 포커보다는 떠들썩하게 난리를 치는 편이 우리 취향이라.”

니키의 말은 곧 경고나 다름없다.

우리는 다 같은 편인데, 너 같은 외부인이 굳이 이 테이블에 끼어야 할 이유가 있냐고.

“내가 좀 그런 걸 좋아해요.”

나는 비어 있는 의자에 앉으며 덧붙였다.

“악당 역할 같은 거?”

내 말에 니키는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쪽이 악당이 돼 주시겠다?”

“악당이 될지, 호구가 될지는 모르지. 허술하게 보여도 포커가 취미인 인간이 꽤 돼서.”

“블러핑에 재능이 있는 분은 아까 봤죠.”

니키는 눈동자를 반짝 빛냈다.

“원하는 건 하납니다. 재밌게 게임을 하자는 거죠.”

내 말과 동시에 게임이 시작되었다. 판돈은 200달러부터 시작. 카지노가 가지고 가는 커미션의 비율은 8%였다. 총 열 명이 모였으니, 첫 배팅부터 2천 달러가 모이는 셈이다.

확실히 판이 컸다. 이런 큰 판에 커미션이 8%라. 판을 몇 번만 돌려도 카지노가 가지고 가는 돈이 엄청나겠군.

첫판. 나는 적당히 좋은 카드를 받았고, 적당한 곳에서 죽었다. 첫판에서 보인 내 미적지근한 플레이에 니키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악당이 되겠다고 말한 것치곤, 실망스러운 모습인데.”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을 툭툭 두들겼다. 다음 게임이나 하자는 뜻이었다.

게임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총 다섯 판. 그중 니키는 세 판의 승자가 되며 게임을 압도했다. 그리고 나는 그 다섯 판 동안을 내리 졌다.

2천 달러 정도를 잃었지만, 그럴 만한 투자였다.

그 다섯 판으로 이곳에 앉은 이들의 캐릭터를 대충 파악했으니.

이 포커판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건 니키였다. 그리고 그에 잘 휩쓸리는 건 아까도 봤듯 리아. 정말로 좋은 패가 들어오지 않으면 금세 죽어 버리는 남자의 이름은 저드. 그리고 속을 알 수 없는 베팅을 하는 필립. 이 넷 정도가 주목해야 할 상대였다.

나머지는 그저 자리를 채운다는 느낌으로 이곳에 있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베팅에 성의가 없었으니까.

지난 다섯 판을 소심한 배팅으로 내리 진 나에게 니키가 말을 붙였다.

“겁이 좀 많은 편?”

“내가 좀 슬로우 스타터라서 말이죠.”

“슬로우 스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형편없는 포커 플레이어처럼 보이긴 했어.”

“예, 그래야죠.”

이 사람들이 나에게 완전히 질려 버리기 전에 말이다. 나는 딜러에게 카드를 받았다.

클로버 A와 다이아 K. 패는 나쁘지 않다.

딜러가 카드를 까기 전, 첫 번째 배팅이 시작된다. 가장 먼저 배팅을 하게 된 순서인 저드는 가볍게 툭툭 테이블을 두드린 뒤 말했다.

“체크.”

역시 소심한 저드다운 선택이었다.

지난 다섯 판으로 확인한 저드의 성격은 이렇다.

절대로 블러핑을 치지 않는 소심한 인간.

‘절대’라는 단어는 이런 게임에서 위험한 단어지만, 저드에게는 예외였다. 덕분에 저드는 손쉬운 먹잇감 취급을 받고 있었지만, 그걸 알면서도 배팅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냐, 표정에 자기 생각이 너무 뻔히 드러났으니까.

그다음으로 배팅을 하게 된 건 리아였다.

리아를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급발진’ 정도가 적당하려나.

“하프.”

“손에 좋은 패가 들어갔나 봐?”

“글쎄?”

일단은 리아의 레이즈를 받는 것으로 첫 번째 배팅이 끝났다. 다들 들고 있는 패가 별로인지, 아니면 간을 보고 싶은 건지 추가적인 배팅은 없었다.

딜러는 세 개의 패를 공개했다.

하트 10, 다이아 Q, 스페이스 A.

일단은 스페이스 A로 두 페어.

10, A, K, Q. 아무 무늬나 상관없이 J만 떠 준다면 일곱 번째로 높은 패인 마운틴을 노릴 수 있었다.

배팅이 시작되었다. 소심하게 서로의 눈치만 보던 아까와 달리 판에는 제법 활기가 돌았다.

“하프.”

첫 배팅부터가 하프다. 이어서 콜, 그 뒤를 이어서 또다시 쿼터로 판돈이 올라갔다. 그리고 나 또한 이 열기에 불을 붙였다.

“하프.”

내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그야, 지난 다섯 판 동안 내가 한 것은 오로지 콜, 혹은 폴드뿐이었으니까.

“뭐야, 정말 괜찮은 패를 쥔 거야?”

“아니면 다섯 판 동안 겪은 걸로 전략을 바꿨을지도 모르죠.”

“끄응!”

순서는 다시 돌아 처음 하프를 외쳤던 이에게로 돌아갔다. 한 바퀴를 돌았을 뿐이지만, 어느새 판돈은 처음 모였던 것의 스무 배가 되어 있었다.

4만 달러. 순식간에 불어난 판돈에 몇몇이 혀를 내둘렀다.

“나는 이쯤에서 폴드.”

“뭐야, 아까 하프를 부르기에 뭐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리아의 말에 저드는 내 쪽을 힐끔대며 말했다.

“나보다 더 뭐가 있는 것 같은 사람이 보여서 말이지.”

저드의 폴드를 이어서, 이른바 노 성의 삼인방이 연달아 폴드를 선언했다. 그들은 낄낄 웃으며 나와 니키를 곁눈질했다.

니키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일단은 콜이야.”

더 이상의 레이즈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니키를 따라 리아도 콜로 내 도발을 받았다.

“쿼터.”

“이러기야?”

하지만 여태까지 조용하던 남자가 쿼터로 다시 한 번 판돈을 올렸다. 그리고 순서는 다시 내게로 돌아왔고…….

“하프.”

나는 하프를 외쳤다. 니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판돈은 순식간에 6만으로 불어났고, 리아는 슬슬 부담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 판에 모든 걸 불태우고 사라질 생각이야?”

“그것도 나쁘지 않죠.”

“정말 괜찮은 패를 들었나 보네. 아니면, 형편없는 블러핑이거나.”

니키가 그렇게 말하는 사이 또 한 명이 패를 던졌고, 리아는 불편한 표정으로 내 레이즈를 콜로 받았다.

“나도 콜.”

그렇게 배팅이 끝나고, 딜러의 앞에 패가 놓였다.

깔린 카드는 스페이스 J.

마운틴이 완성되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하프를 외쳤고, 그 뒤로는 니키의 방어와 리아의 질질 끌려오는 싸움이 계속되었다. 막상 내 하프에 쿼터로 따라온 남자는 이번 판에 폴드를 선언했다.

판돈을 올려 니키와 리아의 곤란한 얼굴을 보는 게 목적이었다던 여자는 샴페인을 마시며 낄낄 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그 여자의 의도대로 니키와 리아는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리아는 결국 중간에 패를 던졌다.

마지막 차례가 되었을 때 남은 사람은 나와 니키뿐이었다.

“나도 중간에 던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프를 외쳐 대는 당신 속이 뭔지는 파악해야 했거든.”

마지막 순서, 니키는 투 페어를 던지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완성된 패를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

“마운틴이라니!”

“좋은 패긴 하네.”

1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단번에 쓸어 담은 나에게 니키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좋아, 이런 타입이구나?”

그 뒤로도 게임이 이어졌다. 나는 때로는 블러핑으로, 때로는 진짜 패로 승부하며 그 뒤로 연달아 세 판을 이겼다.

“허…….”

“방, 방금은 말도 안 됐던 거잖아.”

무려 네 개의 ‘클로버’가 딜러의 앞에 깔렸던 판. 누구나 클로버 한 장만을 들고 있으면 플러시를 만들 수 있는 그 상황에 중요한 건 눈치 싸움이었고 그 눈치 싸움의 승자는 내가 되었다.

“5년 동안 한솥밥을 먹은 나도 이렇게 헤매는데, 도대체 우리를 어떻게 읽어 낸 거야?”

20만 달러를 쓸어 담은 내게 니키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제가 좀 표정을 읽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어서 말이죠.”

“첫 다섯 판으로 우리를 파악했다고?”

“그냥 운일 수도 있고요.”

“말이 안 돼.”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나와 싸웠던 니키는 그렇게 말하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 뒤로도 내 승리가 계속되었다.

소심쟁이 저드가 달려든 판. 니키는 일찍부터 폴드를 선언했고, 남은 사람은 나와 리아, 그리고 저드였다.

저드는 처음부터 거침없이 하프를 외쳤다. 정말 좋은 패가 들어왔을 때만 보이는 뻔한 패턴.

다른 이들은 모두 그걸 눈치채고 일찍이 판을 빠져나갔다. 리아 또한 딜러의 앞에 네 번째 패가 깔릴 때까지 고민했지만, 다섯 번째 패가 깔리기 전 탈출했다.

저드는 나와 패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나와 단둘이 남은 승부. 저드의 속이 뻔히 읽혔다.

자신의 손에 쥔 패도 좋지만, 흔들림 없이 레이즈를 외치는 내 손에 무슨 패가 들려 있을지를 걱정하는 얼굴이다.

‘이상하다, 다른 사람들은 다 빠졌는데. 그렇게 우리 속을 잘 읽던 녀석이, 내 손에 좋은 패가 들려 있다는 걸 모르지도 않을 텐데? 정말 뭔가가 있는 게 아닌가?’

저드의 속을 읽어 보면 대충 이런 생각들이 오가지 않을까. 저드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눈치를 보다 결국 폴드를 외쳤다.

“제발, 손에 쥔 카드가 뭔지만 보여 주면 안 돼?”

원래 패를 공개하는 건 의무가 아니다. 하지만 저렇게 말하니 한 번쯤은 내 카드를 보여 줄까.

나는 내 카드를 모두가 볼 수 있게 내려놓았다.

“투 페어.”

“겨우 투 페어로 내 스트레이트를 이겼다고?”

“예, 뭐…….”

모두가 한 방을 먹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빌어먹을.”

저드의 외침에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드의 옆에 앉아 있던 니키가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러게 나처럼 끝까지 가 보지 그랬어? 스트레이트를 들고 투 페어에 지다니! 실망이야, 저드.”

“아니, 그래도 쟤 표정이 꼭 뭔가 있는 것 같아서……. 아니, 확실하다고 생각했는데.”

저드는 반쯤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블러핑이었다니.”

안타깝지만, 이미 파악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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