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1화
#57 라스베이거스 (5)
MJ 호텔&카지노는 Mㅔ이저 말렉과 Jㅓ스틴 밀러의 자금으로 지어진 곳이었다. 정말이지 성의 없는 네이밍이었지만, 이래 봬도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커다란 호텔이었다.
게이트 사건 전에는 세계 최고로 꼽히는 서커스 쇼를 포함해 여러 가지 볼거리를 제공했다고 들었지만,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매일 저녁에 하는 분수 쇼뿐이었다.
그나마 라이브 밴드가 식당에서 공연한다고 하지만 예전의 영광을 생각하면 볼품없는 수준이었다.
‘저도 서커스를 직접 보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전생에서도 본 적이 없다고?
‘그야, 서커스단이 없어졌으니까요.’
서커스단 절반이 재능을 각성했다나. 서커스단은 해체하고 대신 용병대가 생겼다.
‘꽤 유명합니다. 불의 고리 용병대라는 이름으로.’
쩝, 안타깝게 됐지.
어쨌거나 게이트 사건을 겪은 이후 침체한 라스베이거스에서 아직까지도 이 정도의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호텔은 이곳이 유일했다.
‘그래서 다들 수완이 대단하다고 말했던 게 기억이 나네요. 실체를 알고 나니, 여러 가지 더러운 짓으로 호텔을 지탱하고 있던 거였지만.’
━사기도박 말고도 다른 게 있는 거냐?
‘그건 빙산의 일각이죠.’
카지노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화장실에 들러 얼굴을 바꿨다.
━얼굴은 왜 바꾸는 거냐?
‘그야, 오늘 할 짓은 장차 호구가 될 손님과는 맞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이런 카지노에서는 언제나 돈을 따는 손님을 주시하기 마련이니까. 얼굴이 팔려 봤자 좋은 일은 없다.
스위트룸을 흔쾌히 빌릴 수 있는 큰손으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많은 척해야 한다.
작은 판을 전전하며 돈을 쓸어 담는 그림은 절대 좋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일단은 다른 얼굴로 돈을 번 다음에, 그렇게 해서 번 돈을 호구의 얼굴을 하고 잃겠다?
‘뭐, 비슷하네요.’
━네 계획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는데 말이다. 정말로 저 카지노라는 곳에서 도박으로 돈을 벌 자신이 있는 거냐?
‘네.’
내 말에 레이는 여전히 나를 의심하는 기색이었지만, 나는 자신 있었다.
카지노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타주 주변에서 게이트 공략을 마치고 관광과 휴식을 위해서 여기까지 온 헌터들, 이 근처에 사는 주민들, 일확천금을 노리고 먼 곳에서 이곳까지 걸음을 한 도박꾼들.
그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가장 후자에 속하는 무리였다. 후줄근한 옷을 입고, 제대로 씻지도 않은 꼬질한 모습을 한 채 돌아다니고 있는 이른바 ‘라스베이거스의 망령들’.
오로지 도박을 하기 위해 여기까지 기어들어 온 사람들이었다.
‘옛날에는 저런 폐인들은 카지노에 아예 발도 들이지 못했다고 들었는데요.’
관광객의 감소로 카지노의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카지노는 도박에 인생을 건 폐인들까지 모두 안으로 끌어들였다.
꼬질꼬질한 상태로 비틀거리며 카지노 안쪽으로 향하는 이들은 마치 좀비 떼처럼 보였다.
나는 그들을 따라 카지노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카지노의 안쪽으로 발을 디디자마자 나를 맞은 것은 화려한 화면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는 슬롯머신이었다.
슬롯머신이 설치되어 있는 곳은 크게 두 개의 구역으로 나눌 수 있었다.
가운데에 있는 휴게 공간 쪽에 설치되어 있는 슬롯머신과 기둥 뒤에 숨겨져 있듯 설치되어 있는 슬롯머신들.
중간 구역에 있는 슬롯머신에 있는 사람의 수는 적었지만, 기둥 뒤에는 있는 슬롯머신에는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것도 망령들이 잔뜩.
원래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는 수많은 관광객을 상대로 가볍게 도박을 즐길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단다.
배팅할 수 있는 금액의 상한선도 적은 편이었고, 승률 자체도 높게 설정되어 있는 편이라 가볍게 도박을 즐기고 돈을 따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나.
하지만 게이트 이후 카지노는 살아남기 위해 전략을 바꿨다.
복도 가운데에 있는 슬롯머신들은 최대 배팅 액수가 10달러로 정해져 있었지만, 기둥 뒤에 있는 슬롯머신은 그렇지 않았다.
최소 100달러부터 배팅이 가능한 슬롯머신은 몇 번만 돌려도 한 달 치 월급을 날리기에 딱 좋았다.
그 앞에 달라붙어 있는 사람들의 안광은 그리 좋지 않았다. 제대로 씻지도 않고, 오로지 기계처럼 슬롯머신의 버튼을 누르기만 했다.
━저래도 되는 거냐?
레이가 이렇게 말할 정도로 기둥 뒤 슬롯머신에 붙어 있는 사람들의 행색은 좋지 않았다.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사람들이죠.’
화려하게 보이는 불빛에 꼬인 불나방처럼, 자신의 인생이 불타고 있음에도 여전히 불꽃을 향해 날아드는 거다.
슬롯머신 안에서 돈이 쏟아지는 그림을 본 남자가 흥분한 얼굴로 외쳤다. 죽은 눈으로 슬롯을 돌리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남자에게로 향했다.
1,500배. 말도 안 되는 수익이 단번에 터졌다. 남자가 딴 돈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 금액인 100달러만 베팅했더라도 15만 달러라는 말도 안 되는 거금을 게임 한 판에 벌어들인 셈이다.
이게 바로 이 화려한 지옥의 무서운 점이다. 마치 이 안에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처럼 사람들을 속인다는 것.
슬롯머신은 당첨 금액이 적힌 티켓을 뱉어 냈다. 그 티켓을 들고 ATM기로 간다면, 당첨금을 들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그 티켓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그 티켓을 곧바로 기계 안으로 집어넣었다.
━어째서? 기껏 돈을 땄는데 왜 다시 저기에 앉는 거지?
‘딴 돈을 다시 걸 생각입니다.’
━하지만 저렇게 당첨이 되는 건 드문 일일 거 아니냐? 다시 하면, 다 잃게 될 게 뻔한데…….
‘그런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지금 저기서 슬롯머신의 레버를 당기고 있지도 않겠죠.’
━너도 저걸 이용해서 돈을 벌 생각이냐?
‘아니요. 절대로요.’
카지노의 승리를 위해 설계된 기계를 믿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은 없지.
━이 카지노 말이다. 사기도박만이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저걸 다 부숴 버릴 순 없으니까요.’
━그럼 저 멍청이들이 여기에 앉아서 자기들 인생을 전부 불태우는 꼴을 그냥 지켜만 본단 말이냐?
‘저 슬롯머신들이 여기에 있는 한, 무슨 말로 저들을 설득하든 소용없습니다.’
도박이라는 건, 자신의 의지로는 절대로 끊을 수 없는 거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전 저들을 구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수많은 선택 중 도박을 택하고, 이곳에서 자신의 인생을 불태우길 스스로 택한 이들이다.
‘솔직히 저런 인간들을 보면 구역질이 납니다.’
━네가 이런 말을 하다니, 의외인데.
‘뭐가요. 말했잖아요, 저는 꽤 냉혈한이라니까요?’
나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좋다. 어떻게든 자신의 삶을 지키려고 아득바득 최선을 다하는 이들. 아무런 죄도 없이 그저 열심히 사는 이들.
그런 이들을 지키기에도 내 삶은 짧다.
저런 도박 중독자들까지 구원해 줄 생각은 전혀 없다.
물론 저들에게도 변명거리는 많겠지. 그래도 자신의 손으로 인생을 망치는 길을 스스로 택했다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까 저런 인간쓰레기들은 구원받을 가치도 없다?
‘누군가는 간절하게 하루라도 더 살길 바라는데, 저런 사람들은…….’
나는 얼굴을 구겼다.
‘이만하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요.’
나는 슬롯머신 코너를 지나 걸음을 옮겼다.
슬롯머신 코너와는 달리 조금은 더 격식 있는 느낌의 공간이 나타났다. 공간을 가르듯 대기 중이던 직원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카지노잖아요. 당연히 게임을 하려고 왔죠.”
“이 안에서는 게임에 참여하시려면 이 팔찌를 착용하셔야 합니다.”
직원의 말에 나는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직원은 내 손목에 팔찌를 채워 주었다. 손목을 만지작거리는 나에게 남자는 간단한 주의 사항을 말해 주었다.
팔찌 모양으로 된 아티팩트는 능력을 사용하면 가운데에 있는 센서가 그걸 감지해서 빛을 내게 되어 있었다.
테이블 게임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늘 눈에 보이는 곳에 팔을 올려놔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공정한 게임을 주관해야 하는 카지노 입장에서는 당연한 조치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해는 된다.
손님들에게 ‘여기서부터는 눈앞에 있는 인간이 재능을 이용해서 당신을 털어먹을 거라는 걱정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하고 말해 놓고는 이 믿음을 역이용해 사기를 치는 일당이 있다는 게 문제지.
팔찌를 찬 나는 간단히 돈을 충전했다. 가볍게 삼천 달러다.
이 아티팩트는 이 안에서 내 자금을 대신한다. 자금은 이 팔찌로 자유롭게 충전할 수 있으며, 출금 또한 안에 마련된 기계를 통해 자유롭게 가능하다.
슬롯머신에서 출력되는 캐시 티켓을 대신하는 기능이었다. 더는 칩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올인’이라고 외치며 쌓여 있던 칩을 앞으로 좌르륵 쏟는 건 다 과거의 일이 돼 버렸다니까.
‘영화 속에서 본 카지노가 백 배는 근사하다니까요.’
요새는 낭만이 없어, 낭만이.
━꼭 그 시절을 살아 본 사람처럼 말하는구나.
‘게이트가 없는 시절 아닙니까. 뭐든 지금보단 낫겠죠.’
나는 팔찌를 흔들며 앞으로 걸었다.
슬롯머신의 앞에 죽을 치고 앉은 이들과는 달리 테이블에 앉은 이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이곳에서 오고 가는 판돈이 바깥쪽에 있는 슬롯머신의 몇 배라는 걸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지.
‘다들 호기심으로 왔을 테니까요. 도박에 인생을 건 사람도 없고.’
온종일 일도 없이 슬롯머신에 매달려 있는 도박꾼들과는 달리 이곳에 있는 이들은 관광 중에 호기심으로 발을 들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잘나가는 헌터거나, 혹은 시간을 죽이러 여기까지 온 삶에 여유가 있는 부자거나.
블랙잭, 포커, 룰렛, 홀덤.
열 개가 넘는 테이블에서는 여러 가지의 게임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탁 트인 넓은 공간에 보이는 사람만 해도 백 명 가까이 되었지만, 워낙 넓은 공간이라 답답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중간중간 반 벽과 파티션도 적절하게 설치되어 있어 개방된 공간임에도 제법 프라이빗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나는 가장 바깥쪽에 있는 포커 테이블 근처에 섰다.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포커인 텍사스 홀덤이 진행되고 있었다. 텍사스 홀덤은 모두가 공유하는 카드 다섯 장에 개인 패 두 장을 합쳐 족보를 만들어 내는 포커로, 딜러의 앞에 카드가 공유되기에 서로의 패를 추측하기 쉬웠다.
그 말인즉슨, 수 싸움도 중요하지만 서로의 표정을 읽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게임이라는 뜻이다.
게임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게임에 참여한 사람은 총 아홉 명. 여자가 넷, 남자가 다섯 명이었다.
한 길드 소속인 듯, 모두가 친밀해 보였다.
이번 판 중반까지 패를 들고 있는 사람은 총 넷. 다섯이 폴드, 패를 던져 버린 상황에 판을 주도하고 있는 건 검은색 꽁지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여자, 니키였다.
“니키, 정말로 여기에서 하프를 친다고?”
“그래. 좋은 패가 들어왔거든, 아주 좋은 패가 말이야.”
니키의 말에 남자는 얼굴을 구겼다. 이미 판돈은 4천 달러를 돌파했다. 니키가 ‘하프’를 불렀으니, 콜로 받아만 쳐도 2천 달러를 배팅해야 했다. 확실한 패를 들고 있지 않으면 확실히 부담스러운 금액이긴 했다.
“난 여기서 그만두겠어.”
남자는 카드를 아래로 내려놓으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제 남은 사람의 수는 총 셋.
니키의 시선을 받은 여자가 손가락을 위로 치켜들었다.
“나는 콜.”
“나도 콜. 젠장, 여기서 죽을 순 없지. 정말로 그 손에 굉장한 패를 들고 있는지, 아니면 블러핑에 불과한 건지 내 눈으로 꼭 확인해 봐야겠어.”
두 사람의 말에 니키는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좋아.”
나를 힐끔 바라본 니키가 입을 열었다.
“여기 이렇게 새로운 구경꾼도 와 주셨겠다. 멋진 모습을 보여드려야지.”
모두가 올린 판돈에 동의한 상황. 테이블 가운데 홀로그램에 표시되는 판돈의 액수는 어느새 팔천이 되어 있었다. 딜러의 눈이 다시 니키로 향했다.
니키가 외쳤다.
“레이즈, 하프.”
그 말에 앞에 앉은 두 사람의 얼굴이 벌레라도 씹은 것처럼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