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7화
#57 라스베이거스 (1)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가지고 있다. 세계라는 놈이 그 계획을 쳐부수기 전까지는 말이지.
‘아무래도 이 세상이 저를 미워하는 게 분명하다니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C급 게이트 몇 개를 돌면서 재료 수급을 하고 뜬다는 내 깔끔하고 아름다웠던 계획이 이렇게 꼬일 수 있느냔 말이다.
S급 게이트를 공략한 일로 온갖 어그로를 다 끈 덕분에 당장 병원 밖으로도 나갈 수가 없을 정도요, 세계 최강의 스토커, 아니, 헌터가 붙었으며,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우리 막둥이는 길에서 웬 이상한 사람을 주워 오기까지 했다.
일이 꼬여도 이렇게까지 꼬일 수 있다니.
‘나중에 한가해지면 꽈배기 가게나 낼까 봐요. 지금 이 상황을 보니 그냥 반죽만 해 두면 알아서 꼬일 것 같은데.’
━뭐냐, 그 묘하게 부정적이면서도 희망찬 상상은?
‘뭐든 음과 양의 조화가 중요하다잖아요. 대충 부정적인 생각은 희망적인 생각 하나를 붙여서 비비면 중화가 되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되는 거냐?
‘예에.’
어쨌거나 웬 불청객까지 떠맡게 된 지금, 라스베이거스로 간다는 게 좋은 생각일지 모르겠는데 말이다.
━그 라스베이거스라는 데에는 뭐가 있는데?
‘아, 거기 아주 유명한 카지노가 있거든요.’
━잠깐, 카지노? 도박? 지금 상황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됐는데 리더라는 놈이 도박이나 할 생각이냐? 저번에 노름꾼 같은 말을 할 때부터 알아봤다.
레이의 호통에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도박은, 누가 도박을요! 그런 생각으로 가는 거 아니거든요?’
━카지노에 간다면서. 그럼 도박하러 가려던 게 아니냐?
‘뭐, 따지자면 도박판에 앉긴 할 건데…….’
━거봐라!
‘하지만 목적이 다르단 말입니다, 목적이!’
라스베이거스에 가려는 이유는 단순히 도박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물론, 도박판만큼이나 내가 내 재능을 잘 써먹을 곳이 없긴 하지. 거짓말만큼이나 도박판에서 사기를 치기에 좋은 능력도 없으니까.
하지만 내게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
‘라스베이거스에는 재능을 이용해 사기도박을 하는 일당이 있습니다. 아니, 일당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카지노 쪽과 협업해서 사기를 치고 있거든요. 사실상 카지노 자체가 거대한 사기판인 셈이죠.’
━……그래서 그놈들을 털어먹겠다고?
‘예! 그놈들도 한 번 자기네들이 하던 짓에 당해 봐야죠.’
돈도 벌고 나쁜 놈들도 응징하고, 이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인가 말이냐.
━그냥 도박을 하겠다는 거랑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는데.
‘못된 놈들 돈을 따는 게 훨씬 재밌거든요.’
━허어, 결국 도박을 하러 가자는 건데.
그럼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지, 뭘 한담? 어쨌거나 목적이 나쁘지 않으니 된 거 아닌가.
문제는 불청객이 끼었다는 거다.
나는 소파에 누워서 자고 있는 에드워드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일단은 임시 원어민 교사로 삼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생각해 보니 저 녀석 그리 좋은 교사는 못될 것 같습니다. 한국어를 배우겠답시고, 욕쟁이 할머니를 고용한 느낌이거든요.’
━그 정도냐?
내가 우리 조직에는 받아 주지 못하겠다고 딱 잘라 말했더니 욕을 어찌나 하던지. 평생 들을 욕은 다 들었다. 생전 처음 듣는 단어도 많아서 반은 알아듣지 못했다.
━이 언어에는 꽤 자신이 있다면서?
‘절 가르쳤던 사람은 전직 아나운서였거든요. 저런 쌍욕은 입에도 안 대는 사람이었죠.’
마지막 순간에도 욕을 하지 않았지. 음, 괜한 생각을 했다.
‘그래도 아주 나쁠 것 같진 않습니다. 실전 영어잖습니까! 어디서 욕을 들어먹고 와서 집에서 뒤늦게 깨닫는 것보다는 낫겠죠.’
━너희 집 애들이 어디에서 욕을 들어먹고 올 것 같진 않은데…….
‘말했잖습니까, 부정적인 생각에는…….’
━희망적인 생각을 하나 섞는다? 오호라, 이제야 알겠다!
레이의 깨달음을 뒤로 하고 나는 결심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라스베이거스 정도는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원래는 그곳에서 깽판도 거나하게 쳐서 벨츠머츠라는 이름을 알릴 생각이었지만, 그 계획은 접어 두자고.
아니, 계획의 ‘ㄱ’자도 꺼내지 말자. 이 세상이 어디에선가 몰래 듣고 또 내 계획을 망치려 들 것 같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죄 없는 이들, 아니, 죄 없는 도박꾼들을 등쳐 먹는 이들을 가만히 둘 수는 없는 거 아니겠는가.
음음.
━어째 영 이상한 문장이다만, 그렇다고 치자고.
* * *
테이카는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툭툭 건드렸다. 여전히 휴대폰에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가 가득했다. 휴대폰을 손에 들고도 볼 생각을 하지 않는 테이카와는 달리, 의자에 앉아 태블릿 PC를 들여다보고 있는 오승우는 당장에라도 그 세상으로 빨려 들어갈 듯 집중하고 있었다.
그가 쓰고 있는 안경에 비치는 불빛을 보며 테이카가 슬쩍 입을 열었다.
“바빠요?”
“바빠요.”
성의 없는 대답에 테이카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왜요?”
“심심해요?”
이번에는 대뜸 그런 질문이 날아들었다. 자기를 찌르지 말고 다른 재미난 걸 찾으라는 완곡한 부탁이다.
“나가지 말라면서요.”
“나가지 않고서도 할 수 있는 게 많잖아요?”
그렇게 말한 오승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테이카의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게임이라도 다운로드해 줄까요?”
“나도 그 정도는 할 줄 알거든요?”
테이카는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오승우를 괴롭혀도 원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을 거다.
차라리 그동안 묻고 싶었던 걸 속 시원하게 묻는 편이 낫겠다. 테이카가 오승우에게 말을 던졌다.
“그 녀석,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었어요?”
주어가 빠진 질문이지만, 오승우는 곧바로 그 질문이 누구에 대한 건지 바로 알아들었다.
그도 그럴 게, 테이카가 지금 이 상황에서 꺼낼 만한 사람은 단 하나뿐이었으니까.
문제는 이 질문이 누구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왜 테이카가 이걸 묻느냐 하는 것이겠지.
오승우는 고개를 들어 테이카의 얼굴을 살폈다. 테이카의 얼굴에 보이는 것이 약간의 지루함과 순수한 호기심이라는 걸 확인한 오승우는 가벼운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거예요?”
“아까부터 질문에 질문으로 답변하는 건 왜 그러는 거예요?”
“알잖습니까, 버릇이에요.”
“여유가 없단 뜻이네요.”
“여러모로 신경 쓸 게 많으니까.”
“그 친구를 몰아세우느라?”
“흠, 질문에 대한 답이 되겠네요. 그 녀석을 몰아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요.”
“내가 다친 게 그렇게나 큰일이에요?”
“큰일이죠.”
오승우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테이카 쿠퍼의 이미지였다. 그가 분명 뛰어난 헌터인 것은 맞지만, 전 세계적으로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건 오승우가 부단히 애를 쓴 덕분이었다.
“그러니 그 누구도 당신이 다친 일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돼요. 그냥, 다른 먹잇감을 던져 주는 게 낫죠.”
“세계 최강이라는 나보다 그런 녀석의 뒤를 캐는 게 뭐가 더 재밌는데요?”
“그야, 내가 그러라고 했으니까요. 닥치고 내가 주는 자료나 풀어 대라고.”
그 말에 테이카는 눈을 깜빡였다. 오승우가 이렇게까지 거칠게 말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일부러 툭툭 건드리는 거예요?”
“그냥, 그 녀석이랑 미스터 오가 옛날에 아는 사이였다는 게 신기해서 말이에요.”
“정확히 말하자면 재밌는 거겠죠, 그게.”
그제야 테이카 쿠퍼는 깨달았다. 늘 여유가 있었던 오승우의 태도가 오늘따라 날카롭다는 걸. 테이카는 완전히 소파에서 일어나 앉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엄청요!”
네 상처를 쿡쿡 찌르는 게 너무나 재밌어 미치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테이카를 보자니,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오승우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게, 미스터 오는 늘 완벽하려고 하잖아요. 물론 내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건 다 계산된 거잖아요? 내가 미스터 오의 미안해하는 얼굴에 약하니까…….”
“……네.”
테이카의 말에 오승우는 눈을 찌푸렸다.
“알고 있었어요?”
“모를 수가 없죠! 내 앞에서만 그러는데.”
“음.”
자신의 이미지 관리법이 다 들켰다니 새삼 충격이었다. 눈을 굴리는 오승우에게 테이카가 말했다.
“그래서 그 친구를 나락으로 보낸 게, 그렇게 신경이 쓰여요?”
“신경이 쓰이진 않아요.”
“쓰이는 것 같은데?”
“하아.”
세계 최강의 헌터는, 세계 최고로 귀찮았다. 태블릿 PC를 내려놓은 오승우가 말했다.
“약간은요?”
“그럼 왜 그렇게 했어요?”
“말했듯, 거래였어요. 저 파파라치들에게 가장 필요한 걸 줬을 뿐이에요.”
“나 대신 물어뜯을 개껌?”
“그렇죠. 그것도 아주 맛있는 개껌.”
언론이 원하는 건 결국 하나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화젯거리. 조회 수를 올려 줄 먹음직스러운 이야깃거리.
테이카의 부상보다 재미있는 걸 던져 주면, 기꺼이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겠지. 그래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개껌으로 취급하기엔, 그 녀석한테 꽤나 관심이 있어 보였는데.”
“내가 그 녀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거래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지.”
“덕분에 나도 모르던 미스터 오의 과거에 대해서 잘 알게 된 건 고맙긴 하네요. 그 녀석이 어렸을 때, 그러니까 무려 7년 전에 알던 사이라고 들었는데요.”
“그냥 몇 번 오며 가며 만난 사이도 무슨 의미가 있다면, 예, 알던 사이가 맞긴 맞죠.”
“선을 긋는 거예요, 아니면 정말로 아무 사이도 아니었던 거예요?”
“그 녀석이 자길 거둬 달라고 하긴 했죠.”
“음, 그런데 거절했다면서요?”
“예.”
“왜요?”
테이카의 질문에 오승우는 과거를 떠올렸다.
에드워드의 능력은 날아오는 마력 에너지를 분해, 흡수, 방출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에너지가 없다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단독 행동을 할 수 없는 에드워드의 가치는 그 당시 그리 높지 않았다. 각성자 센터에 가서도 잠재력만 B급인 D급이라는 모멸적인 평가를 받았지.
하지만 오승우는 에드워드의 잠재력을 알아차렸다. 팀 플레이어로서의 가치를.
그럼에도 그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내 첫 번째 포트폴리오로는 부족했으니까.”
오승우라는 전설적인 에이전시의 시작으로는, 영 부족했으니까.
그 말에 테이카는 눈을 깜빡였다.
“오우, 그거 그 친구가 들으면 좀 아프겠는데요.”
“예, 그러니까 다행이죠. 그 친구가 들을 일이 없으니까.”
“내 앞에서는 이미지 관리 같은 거 안 해요?”
“이미 텄잖아요.”
오승우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테이카는 이미 알고 있었다. 뭐, 그렇지. 이 업계에 있으며 서로의 바닥까지 본 사이였다.
테이카도, 오승우도.
하지만 그럼에도 둘 사이에는 끈끈한 동지애가 있었다.
오승우의 영 인간성 없는 말에도 정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그러면 미스터 오는 나 발견하고 좋았겠다. 세계 최고의 원석을 갈고 닦은 심정이 어때요?”
테이카의 말에 오승우가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고죠.”
그래서 오승우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짓밟으며 온 것들을.
지금 그가 쥐고 있는 것들은 후회를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들뿐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