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2화
#55 시련, 시련, 시련 (13)
나는 테이카에게 긴 이야기를 모두 설명했다.
김재호가 에드워드와 만난 일, 그리고 에드워드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불발됐던 일. 전부 솔직하게.
[미안합니다. 전부 조직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하하, 션이 미안할 게 뭐가 있어요. 일이 더럽게 꼬인 것뿐인데.]
이게 세계 최강의 품격? 솔직히 나한테 화를 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인데 말이다. 나 때문에 칼빵까지 맞아 놓고도, 이렇게 쿨하게 나를 용서해 주다니!
[고의가 아니었다니. 이해가 되네요. 나도 마침 이상하다고는 생각하던 참이었거든요. 날 먼저 공격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울 것 같은 얼굴이라서…….]
그 말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본론을 이야기할 때다.
[사실 우리는 상관없지만, 이 일에 애꿎은 피해자가 하나 더 늘어서 말이죠. 그 친구에 대해서는, 어떻게 선처가 어려울까요?]
에드워드 시헬리스. 그 녀석의 이름을 꺼내자 테이카가 내게 미안하다는 듯 덧붙였다.
[그래도 미스터 오를 설득하긴 어려울 거예요. 이미 언론에 그런 식으로 말을 해 놓기도 했고, 워낙 그 친구가 나를 덮칠 때의 사진이 확실해서. 알잖아요.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강력한 거.]
오해는 풀었지만, 테이카로서도 어쩔 방법은 없단다.
[미스터 오의 전략은 미스터 오가 선택해요. 언론플레이는 모두 그쪽에 맡겨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게다가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말을 하기도 애매하죠.]
이 모든 일을 해결할 방법은 하나다. 오승우를 설득하는 것.
‘그건 못하죠.’
나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겉으로 보면 순한 인상이지만, 그 쉽지 않은 업계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으로 알 수 있듯 오승우는 순한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단번에 에드워드를 언론에 던져 놓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과거에 인연이 있었던 이의 인생을 그토록 가차 없이 짓밟을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말로 그를 설득하든, 오승우는 자신의 전략을 바꾸지 않을 거다.
나는 소파에 불쌍하게 몸을 웅크리고 자는 에드워드를 힐끗 바라보았다.
“하아…….”
혹시나 했지만, 답은 역시나였다.
전화를 끊은 내게 한서현이 물었다.
“그래서 저 사람은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한서현의 질문에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쎄, 일단 저대로 둘 수는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하지.”
가면을 씌워 김재호로 위장시켜 두긴 했다만, 이렇게 계속 지낼 수는 없다. 김재호도 언제까지 그림자에 숨겨 둘 수만은 없는 노릇이고. 뭐, 본인이야 아주 편안해하는 것 같지만 말이지.
게다가 우리의 일정도 문제다.
‘이미 시간을 너무 많이 끌어 버렸으니 말이죠.’
원래 내 계획대로라면 늦어도 보름 안에 게이트 사건을 정리하고 라스베이거스로 떠난다는 계획이었는데 말이다.
해외에서 ‘벨츠머츠’의 이름으로 일을 하나 쳐서 한국에 있을 쑤어하오주를 유인하고 다시 한국으로 가서 밀린 일을 처리한다.
이 아름다운 계획은 생각지도 못했던 게이트 하나로 모두 틀어졌다.
여러모로 우리 조직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 좋게 생각하자고 해도 웬 짐 덩어리를 하나 떠맡게 생겼으니 이 또한 문제였다.
슬며시 김재호가 그림자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김재호는 기가 팍 죽었다. 우리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로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했어.”
“뭘.”
“모르겠지만, 그래도…….”
“재호야.”
나는 김재호를 불러 눈을 맞췄다.
“네가 이번에 잘못한 건, 모르는데도, 확실하지 않은데도 움직였다는 거 하나밖에 없어.”
“하지만 분명히 저 녀석이…….”
“확실했어?”
내 질문에 김재호는 눈을 굴렸다. 확실하다고는 대답하지 못할 거다. 이제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알게 됐으니까.
“확실하지 않았어.”
그렇게 대답하는 김재호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알았으면 됐어. 이번에는 그거 하나 배운 거야. 계속 이렇게 배우면 돼. 이번에 몰랐던 거 다 가르쳐 줄게. 그래서 다시는 이런 잘못을 하지 않게. 그러면 된 거야.”
“된 거야?”
“그래.”
김재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 가면은 언제…….”
“그건 조금 더 저 친구한테 빌려 주자.”
“쟨 내 친구 아닌데.”
“……재호 때문에 자기 얼굴로는 바깥에 그냥 돌아다닐 수도 없게 돼서 그래.”
내 설명에 김재호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만 참아 주겠다는 듯이.
우리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한서현이 말했다.
“그래서 저 녀석은 어쩔 생각이에요?”
“일단은 본인 생각부터 들어봐야지.”
나는 에드워드를 깨웠다.
[일어나 봐.]
곤히 자는 것 같아서 깨우기 좀 그랬지만, 확실하게 이야기를 들어 놔야 내 쪽에서도 계획을 짤 수 있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끄으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에드워드의 눈은, 그 잠깐 사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자라더니, 왜 벌써 깨워.]
[일단 테이카와 오해를 푸는 건 성공했는데…….]
내 말에 에드워드는 자세를 바로 앉았다. 눈을 비빈 에드워드가 내게 물었다.
[그쪽에서 정정 기사를 내 준대요?]
정중해진 그 말투에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이었다.
[그건 어렵게 됐습니다. 애초에 이미 잘못된 정보가 죄다 퍼진 상황이라 정정하기도 어렵고. 그냥 새로운 신분을 구해 줄 테니, 다른 곳에서 새 인생을 찾는 건 어떻습니까?]
[다른 곳? 나더러 어디로 가라고요.]
[미국만 아니면 어디든…….]
[하, 그쪽 때문에 내가 내 인생의 터전을 버리고 가야 한다고? 결국 도망자나 되라는 소리 아닙니까?]
그렇게 말한 에드워드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테이카 쿠퍼보다 성공한 용병이 돼서, 나를 차 버린 걸 후회하게 만들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고요.]
━이번 일이 아니었더라도 그 녀석보다 성공한 헌터가 되는 건 불가능했을 것 같은데.
‘쓰읍, 지금 그런 얘기를 할 땝니까?’
그나저나 에드워드가 바라는 게 테이카 쿠퍼보다 멋진 헌터가 되는 거라면…….
아무래도 그건 어렵겠는데.
━너도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야! 비교 대상이 그 테이카 쿠퍼잖아요!’
말이 되는 목표냐! 우리가 아니더라도, 그냥 그거는 원래부터가 무리잖냐! 하지만 죄를 지은 입장에서는 이런 말을 할 수 없는 법이다.
[으음.]
그래도 이걸, 뭐, 어떻게 잘, 말을 할 수가 없는데……. 끙끙 앓기만 하는 날 본 에드워드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알아, 당신도 그 꿈을 이루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그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거야. 그래도 그게 내 꿈이었다고. 적어도 꿈을 위해 노력할 수는 있었어. 당신들이 내 인생을 망쳐 버리기 전까진.]
그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에드워드의 말이 맞았다. 이룰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꿈이라고 하더라도 그 꿈을 꾸는 건 에드워드의 몫이었다. 그리고 우린 그 꿈을 짓밟아 버렸고.
[하아…….]
[자꾸 그렇게 한숨만 쉴 거야? 진짜 한숨 쉬고 싶은 사람이 누군지 알아?]
다시 에드워드의 말투는 껄렁하게 돌아와 있었다. 예의를 차려 봤자 얻을 게 하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까.
나는 에드워드를 보며 생각했다.
그래, 지르자.
백 번 고민해도 소용없다. 저 인간이 어떻게 살지는 내가 정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러니까 일단 우리의 일정이나 말하는 거다.
[당신은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우리는 여기를 뜰 계획입니다.]
[잠깐만, 여기에 나를 혼자 두고 가겠다고요? 내 인생을 이렇게 망쳐 놓고?]
나는 잔뜩 흥분해 몸을 떨어 대는 에드워드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러니까 하나 묻죠.]
내가 답을 들어야 할 질문은 애초부터 하나였다.
[우리를 따라올래요? 아니면 여기에 남을래요?]
에드워드가 무어라 입을 열기 전, 내가 빠르게 덧붙였다.
[여기에 남는다면, 최대한 당신을 도울 방법을 찾겠습니다. 그게 금전적인 지원이 됐든 뭐든. 일단 지금 쓰고 있는 가면을 넘겨주도록 하죠. 그것만 있다면 ‘에드워드 시헬리스’로서 체포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당장 오승우를 설득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방법을 찾아 그쪽에게 씌워진 오명을 치울 방법을 찾아 줄게요.]
[그쪽을 따라가면?]
에드워드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같이 가면, 뭐가 달라지는데. 테이카 쿠퍼만큼 대단한 용병대라도 될 수 있어?]
내가 대답할 새도 주지 않고 에드워드가 흥분한 얼굴로 외쳤다.
[그래, 그 테이카 쿠퍼를 알고 있는 것도 그렇고! S급 게이트를 공략한 것도 그렇고. 당신들 솔직히 말해. 정체를 숨기고 온 동양의 특급 용병대라도 되는 거냐?]
[아아, 그거. 정체를 숨긴 빌런 집단 쪽이 정답인데.]
[뭐어어어?]
그 말에 에드워드가 바짝 굳었다.
[비, 빌런 집단이라고?]
에드워드의 반응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미안하게 됐네, 당신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게 대답이어서.]
그때 한서현이 우리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잠깐, 지금 빌런 어쩌고 하는 말이 들린 것 같은데. 설마 우리 정체를 저놈에게 털어놓은 거예요?”
쳇! 역시 빌런이라는 단어는 알아차리는군. 나는 한서현에게 말했다.
“말했잖아. 저쪽은 피해자라고.”
“그렇다고 우리 정체를 까발릴 필요는 없었잖아요.”
“있었어. 대화가 끝나면 말해 줄게.”
한서현을 뒤로 물러 놓은 나는 에드워드에게 말했다.
[그래, 우리는 범죄 집단이야. 그러니 우리를 따라오겠다면 명심해.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방해할 생각은 접어. 우리를 어떻게 해 보겠다는 영웅 심리 때문이라면 깔끔하게 포기하라는 소리야. 우리 쪽 친구가 실수해서 그쪽을 봐주고 있다만, 우리의 적이 된다면 가차 없이 그쪽을 처리할 테니까.]
나는 에드워드의 눈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내 말에 대한 반응은…….
[……멋진데?]
[뭐?]
그 얼빠진 대답에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을 구겼다. 뭐라고 한 거야, 지금?
[멋지다고! 그래! 헌터가 돼서 이름을 떨치는 게 실패했다고, 다 때려치울 필요까지는 없지! 반대쪽의 길이 남아 있었잖아. 그래, 악명도 명성이지.]
[아, 아니. 잠깐만! 우리를 따라오라고 한 거지, 우리 조직에 그쪽을 받아 준다고 한 얘기는 아니거든?]
[왜!]
[그, 그야!]
나는 재빨리 변명거리를 생각해 냈다.
[우리 조직은 인성 봐.]
[뭐?]
━……범죄 조직인 주제에 인성을 본다고?
‘예! 인성을 보잖습니까! 차송진을 봐요! 그 여리여리한 심성으로 초반에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그러니 빌런에 걸맞은 인성을 가졌는지 봐야죠.’
━아, 그쪽.
그래, 말하고 보니 괜찮은 조직원 선별 방법이다. 차송진처럼 적응하는 데에 오래 걸리거나, 적응을 못 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니 철저히 검사하는 편이 좋겠다.
검사지도 만들까? 질문을 주고 대답하게 하는 거지.
━어떻게 말이냐?
‘사람을 죽여 본 적이 있나요? 죽여도 싼 놈은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나요? 뭐, 대충 이런 걸 물으면 되지 않을까요?’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들이고 싶은 게 아니라면, 그 질문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음, 그렇군. 하긴, 이건 너무 나갔지. 어쨌거나 인성을 보긴 봐야 한다.
내 인성 드립에 굳어 있던 에드워드가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다.
[어느 빌런 조직이 인성을 따져!]
[우리는 그래!]
[맞춰 줄게!]
[맞춰 준다고 되는 게 아니야! 타고 태어난 인성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내가 어디가 어때서!]
그렇게 외쳤던 에드워드가 씩씩 숨을 몰아 내쉬며 말했다.
[그래! 좋아. 그쪽을 따라가지. 하지만 착각하지 마. 나는 그쪽 조직에 들어가려고 따라가는 거니까! 절대로 들어가 주겠어, 당신네 조직!]
‘어째 안 좋은 방향으로 불을 붙여 버린 것 같은데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뭘 상상하는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그런 멋진 빌런 조직 같은 게 아니라…….]
[헌터로 성공하지 못할 바에야, 그래, 세계 최고의 빌런으로 성공하는 거지. 뭐든, 대단한 사람이 되면 되는 거 아니냐.]
[전혀 안 듣고 있잖아!]
온몸에 소름이 돋을 것 같았다.
[그쪽은 그냥 임시…….]
임시 조직원이라는 말도 하면 안 되지. 그건 차송진의 몫이니까. 임시를 떼면 조직원이 돼 버린다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나는 고민 끝에 에드워드의 역할을 정했다.
[일단 우리 팀의 임시 원어민 교사로 들어오도록 해.]
[그게 뭔데, 전혀 멋지지 않잖아!]
[그러니까 당신은 우리 조직원이 되는 게 아니라니까?]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기만자라는 놈의 시련을 통과하니, 재호가 사라졌고. 그 재호를 찾으니, 웬 답도 없는 녀석 하나를 떠맡게 됐다.
그야말로 시련에, 시련, 그리고 또 시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