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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191화 (191/352)

제191화

#55 시련, 시련, 시련 (12)

에드워드는 우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인간은 또 한 번 그놈을 택했어.]

그 인간이라는 게 누군지는 뻔하다. 미디어에서 하도 떠들어 대서 모르는 척을 할 수도 없다. 오승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에드워드의 치부를 까발렸고, 그건 제삼자인 내가 봐도 참으로 못된 짓이었다.

[하, 원래 그런 인간이었어. 나도 알고 있었다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를 이렇게까지 쓰레기로 만들 필요까지는 없었잖아.]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어라 말해도 저 녀석의 부서진 마음을 붙여 줄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아무리 나를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해도 그렇지, 그래도…….]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라는 말인가! 오승우 씨,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무슨 말도 통할 것 같지 않다고요.

도대체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에드워드가 내 멱살을 잡았다. 한서현과 김재호가 달려드는 걸 나는 한 손을 들어 막았다.

[내 인생이 이렇게 된 건 다 그쪽 잘못이라고! 그러니까 책임져.]

[책임지라고 해도 말이지…….]

테이카 쿠퍼한테 연락해서 이 모든 일이 오해였다고 말하는 것까지는 가능하지만, 그 이상을 수습하는 건 내 능력을 벗어난 일이다. 나는 내 멱살을 잡은 에드워드의 손을 끌어내렸다.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하나야. 테이카 쿠퍼와 이야기해서 오해를 푸는 것.]

[오해를 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이미 세상 사람들은 나를 전부…….]

[세계 최강 헌터한테 열등감을 느끼다 미쳐 버린, 찌질한 용병 헌터. 그래, 그렇게 보겠지.]

아까 에드워드가 직접 했던 말이다. 무슨 짓을 하든 대중에게 박혀 버린 이미지를 전부 지워 내지는 못할 거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말해 나도 어떻게 이 일을 수습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장은 에드워드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고. 불행히도 어찌 되었든 이 일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나는 에드워드에게 말했다.

[그래서 언제까지 그렇게 질질 짤 생각인데?]

[뭐?]

[언제까지 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생각이냐고.]

내 말에 에드워드의 얼굴이 분노로 구겨졌다.

[너…….]

[그래, 우리 쪽 실수로 그쪽 인생이 진창에 빠졌지. 그래서 뭘 어떻게 해 줄까?]

[당연히, 모든 걸 예전으로…….]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당신도 알고 있지?]

내 말에 에드워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도 아주 잘 알고 있는 일일 테니까.

나는 에드워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은 여기부터 벗어나도록 하지.]

[뭐?]

[저 쓰레기통 냄새가 아주 고약하거든.]

상황이 이래서 말은 못 했지만, 아까부터 코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고.

내 말에 에드워드는 벌컥 화를 냈다.

[나라고 좋아서 여기에 있는 줄 알아? 사방에 눈이 있다고! 지금 바깥에 나가면 당장 신고당할걸?]

어깨를 으쓱인 나는 손짓으로 김재호를 불렀다.

“왜?”

“가면 좀 빌려 줘라.”

이럴 때만 눈치가 빠른 김재호가 슬쩍 뒤로 물러섰다.

“……내 거잖아.”

“잠깐만 쓰고 줄게. 넌 그림자에 숨으면 되지만, 우리는 답이 없잖냐.”

“싫은데…….”

“너 때문에 저 친구가 전국 수배가 됐잖아. 이 정도는 양보해.”

나는 꿍얼거리는 김재호의 가면을 직접 벗겼다. 그렇게 가면을 벗겨 내고 있는데 뒤에서 비명이 들렸다.

[으아아악!]

뭐야?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에드워드가 입을 딱 벌린 채 나를 향해 삿대질하고 있었다.

[아,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사람 얼굴 가죽을 뜯으면 어떡해! 그렇게까지 심한 처벌을 바란 게 아니라고!]

[허.]

어이가 없었다.

나는 손에 가면을 든 채로 에드워드에게 걸어갔다.

[아니, 이건…….]

[끄아악! 그거 치워!]

에드워드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내게 소리쳤다. 손까지 바들바들 떠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잘 봐. 이게 뭔지.]

[뭐?]

나는 툭툭 가면을 건드렸다. 까맣게 물든 가면을 본 에드워드의 눈동자가 커졌다.

곧 벌겋게 얼굴을 물들인 에드워드가 말했다.

[그런, 그런 게 왜…….]

[일단 이거나 써.]

나는 에드워드에게 가면을 건넸다. 한서현이 입을 딱 벌렸다.

“뭐예요, 설마 저놈을 데리고 갈 생각이에요?”

“그래, 여기에 버리고 갈 수도 없잖아.”

“버리고 가도 될 것 같은데…….”

“재호 때문에 인생이 망했는데, 어떻게 버리고 갈 수가 있어…….”

내 말에 한서현이 황급히 말했다.

“농담이죠, 농담. 저도 당연히 데리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버리자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떻게 사람을 버려요?”

아주 잘 버렸을 것이다.

“그럼요, 재호 형 잘못이니까 우리 책임이나 다름없죠.”

아니, 알 바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 때문에?”

김재호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앗차차, 이런. 애가 듣는 데서 무슨 말을 한 거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뭐냐, 그냥 작은 오해가 있었던 거야.”

나는 에드워드의 가면을 툭툭 두들겼다. 김재호가 쓰던 얼굴을 띄운 나는 에드워드에게 눈짓했다.

[자, 그럼 일단 움직이죠.]

[어, 어디로요?]

[병원.]

아직 차송진이 병원에서 회복 중이거든.

* * *

창문을 통해 병실에 들어온 에드워드는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왜요?]

[아니, 그동안 내가 여길 들어오려고 했던 고생이 생각나서 새삼 어이가 없어졌달까.]

[일단 좀 쉬어요. 여기서라면 그쪽을 위협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에디는 구석 소파에 몸을 뉘었다. 많이 피곤했는지, 소파에 머리를 기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가면 틈 사이로 눈물이 흐르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혀를 찼다.

━일단 저 녀석을 데리고 오긴 했다만…….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 생각이냐?

‘일단은 테이카의 오해를 푸는 게 우선이겠죠.’

지금 에드워드가 수배된 이유도, 무려 그 테이카 쿠퍼를 노렸다는 죄 때문이니까. 그게 오해였다는 걸 말해 둬야지.

나는 한서현의 도움을 받아 선불폰 하나를 테이카에게 보냈다. 이 일을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서였다.

테이카의 행적은 대중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기밀 사항이었지만, 한서현은 금세 테이카를 찾아냈다.

“재호 형이 그림자에 들어가서 쏙 숨지만 않았어도 금방 찾았을 거라고요.”

그렇게 투덜대는 걸 보니 김재호의 행적을 놓쳤다는 게 계속해서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테이카가 휴대폰을 받았다는 소리에 나는 곧바로 테이카를 향해 전화를 걸었다.

[누구세요?]

[접니다.]

[이런 식으로 휴대폰을 갖다 줄 만한 사람이 그쪽뿐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진짜네요!]

[몸은 좀 어때요?]

[와, 내 걱정을 해 주는 거예요?]

[예.]

가해자 측이라 그런지 심장이 쫄깃쫄깃하거든. 내 질문에 테이카는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흉터 하나 없이 나았어요. 애초에 이렇게 입원할 일도 아니라고요.]

다행히 테이카의 상태는 괜찮은 모양이었다. 확실히 테이카 정도 되는 각성자라면 회복도 일반인에 비해서는 빠른 편이지.

[뉴스에서 말하는 건 믿지 말아요. 당장 나가도 될 정도로 건강하니까. 그냥, 미스터 오가 나를 괴롭히는 것뿐이에요.]

[괴롭혀요?]

[예, 사방이 막힌 벽에. 어제만 해도 숙소를 두 번이나 옮겼어요. 그 친구가 보복을 하러 올 수도 있다나.]

확실히 과민 반응이라고 할 정도의 대응이긴 했다. 내 침묵에 테이카가 가벼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미스터 오는 원래 저래요. 나한테 조금이라도 해가 될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난리를 친다니까.]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 것 같네요.]

[하하, 내가 어렸을 때 몇 번 문제가 생겼던 적이 있거든요. 어, 혹시 IMS라는 단체에 대해 들어 본 적 있어요?]

━IMS?

‘International Mercenary Society. 국제 용병 모집회라는 곳이에요. 말이 용병 모집이지, 주로 각성자를 인신매매하는 일을 하죠.’

그놈들이 재능 있는 각성자에 미쳐 있다는 건 알지만, 설마하니 잠재력이 SS급이 뜬 테이카마저 노렸다고?

[설마 그놈들이 당신을 노렸다는 겁니까?]

[예, 그 설마가 맞아요. 열여섯 살 때 IMS에 납치당할 뻔했죠.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일이 있었어요.]

테이카의 말이 이어졌다.

[어쨌거나 그 일을 겪은 다음부터는 아주 과보호예요. 어른이 되고 나서야 겨우 그 과보호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말짱 꽝이 됐네요.]

오승우의 과보호라. 테이카는 열다섯에 재능을 각성한 뒤로 바로 오승우와 계약했다. 그 뒤로 그의 케어를 받으며 세계 최강 헌터의 반열에 올라섰다.

테이카가 내게 보였던 이상스러울 정도의 호감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또 온실 속 화초 이론을 꺼내려고?

‘예, 완벽하게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오승우의 철통같은 바리케이드를 피해서 접근할 수 있었던 게 우리뿐이었다는 거지.

그동안 테이카가 만났던 사람들 모두가 오승우의 감시 아래에 있을 거다. IMS까지 접근해서 테이카를 납치하려 했다니, 오승우의 과보호도 이해가 간다.

‘테이카 쿠퍼는 오승우에게 가장 귀중한 계약자잖아요. 그 소중한 보물에 흠집이 생길 만한 일을 아예 차단하고 싶었겠죠.’

거기에 테이카의 말을 따르자면 주변에 있는 헌터들의 질도 그다지 좋지 못한 것 같았고.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뉴스에서 헌터들이 연 파티에서 약물 중독으로 게스트 몇이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그런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표현도 있었죠.’

각성자의 몸에 흐르는 마력이 많을수록, 기본적으로 독성 물질에 대한 저항성과 해독 능력이 올라가는 편이다. 사실 마나 또한 엄밀히 말해 인체에는 유독한 성질을 갖고 있으니까.

각성자의 육체가 마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마나가 들어옴과 동시에 독성을 중화시키기 때문이지 마나에 적응해서가 아니다.

그래서 마력이 약한 각성자들이 마나 중독 현상을 겪는 거고.

이와 비슷하게 지구상의 다른 독성 물질도 각성자는 쉬이 해독할 수 있다. 각성자에게 독살이 통하지 않는 건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마약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헌터들의 파티에 놀러 오는, 혹은, 초대받은 일반인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는 거지.

각성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합성 마약은 그 독성이 말도 못 하게 높다. 웬만한 물질을 바로 해독해 버리는 이들을 위해 마나석을 섞어 만드는 예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직접적으로 몸에 닿지 않고 근처에만 있어도 쇼크 증상을 일으킬 정도다.

━네가 중국에서 들여오려는 것도 그런 거냐?

‘아니요. 마나석을 섞은 건 마약 중에서도 정말 독한 거거든요.’

애초에 각성자가 아니면 제대로 건드릴 수 없는 걸, 시중에 풀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여기에서는 풀렸다. 그것도 많이, 아주 자주. 그것도. 이름 있는 헌터들의 사교 파티라는 곳에서.

테이카가 말하지 않았는가. 문제가 생겨도 힘이 있는 헌터들은 쉬이 처벌받지 않는다고.

‘테이카가 괜히 그런 말을 한 거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내가 오승우라도 테이카를 그런 헌터들과 가까이 지내게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특히 테이카는 각성 다음 해, 열여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활동을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테이카는 더는 어린애가 아니었고, 그의 세상은 조금 더 넓어질 필요가 있었다.

━저 녀석이 처음으로 관심을 가진 게 네 녀석이라는 게 마음에 걸리는데.

‘……저런 마약 파티를 하는 놈보다는 제가 조금은 괜찮은 친구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건 테이카의 불우한 청소년기가 아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은 소식이라면 더는 에드워드 시헬리스가 그쪽을 덮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뭐, 다시 와도 내가 당하지는 않았을 것 같긴 한데…….]

자신감이 대단했다. 하긴, 애초에 테이카가 진심으로 에드워드를 상대했다면 에드워드는 테이카의 눈에 들어오는 순간 중력에 짓이겨졌을 것이다.

[근데 그건 어떻게 안 건데요?]

테이카의 말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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