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0화
#55 시련, 시련, 시련 (11)
에디는 후미진 골목길, 쓰레기통 뒤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젠장, 나와. 나와서 네가 저지른 일을 보라고.]
에디는 자신의 그림자를 향해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그림자 속의 남자는 얼굴을 빼꼼 내민 채로 입을 삐죽거리고 있었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김재호는 에디가 성을 낼 때마다 그림자에 숨어 버렸다.
[아무래도 좋아. 내 인생은 망했으니까. 골든데이를 찾아서 당신을 돌려주려는 일도 포기할 거야. 나가든가, 말든가. 아니지, 나랑 같이 감옥에 들어가는 건 어때?]
한참을 그렇게 떠들어 대던 에디는 대답이 없는 그림자에 지쳐 입을 닫았다.
언제까지 이 쓰레기통 옆에 있을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에디의 앞에 검은 모래가 퍼졌다.
[큿!]
모래를 본 순간 에디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던 남자가 바로 튀어나왔다.
깜짝 놀란 에디는 그대로 꼴사납게 넘어졌다.
[미친, 무슨, 무슨 일이야.]
적인가 했지만, 아니었다. 모래를 타고 도착한 것은 에드워드가 그토록 만나길 바랐던 골든데이의 멤버들이었다.
“재호 형!”
“보스!”
서로를 얼싸안는 사람들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서야 날 찾아온다고? 퍽이나 고맙군!]
에디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인간들이, 일이 터지자마자 이렇게 단체로 오다니.
조금만 일찍 자신을 찾아왔다면 이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조금만, 조금만 일찍 나를 찾을 순 없었던 거야?]
에디의 말에 골든데이의 리더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게, 우리 애가 그쪽 그림자에 너무 잘 숨어 있어서 말입니다. 도저히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거든요.]
[오, 드디어.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나타나셨군.]
에디의 말에 골든데이의 리더가 눈을 굴리며 말했다.
[우리 애도 말은 할 줄 아는데요. 한국어라고, 세계에서 제일 멋진 나라의 언어죠.]
[아하, 참으로 알고 싶은 정보였어요.]
에디의 말에 나는 곧장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당신 대원 때문에 내 인생은 망했어.]
자리에 주저앉은 에디가 우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 * *
[적어도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그렇지.]
그렇게 말하는 에드워드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에드워드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산산조각이 난 휴대폰이 시야에 들어왔다. 위치추적을 염려해서 깬 것이든, 아니면 너무나도 열이 받아서 깨 먹은 것이든. 저 부서진 휴대폰이 에드워드의 심경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나는 눈앞의 남자를 보며 입술만 달싹였다.
재호를 찾은 건 아주 잘된 일이지만, 이 일을 수습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한다?
계획이 틀어지는 일은 늘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엉망진창이 된 건 또 처음인 것 같았다.
━확실히 상황이 나쁘긴 하지.
하필이면 재호가 건드린 사람은 세계에서 제일 몸값이 비싼 남자인 테이카 쿠퍼였고, 그 주변에는 이 모든 광경을 촬영할 수십 명의 파파라치가 숨어 있었으며, 용의자의 신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목격자, 오승우가 바로 옆에 있었을 게 뭔가.
게다가 오승우는 언론플레이의 천재이기도 했다.
이 모든 조건이 합쳐져 에드워드 시헬리스의 인생을 끝장냈다.
이제 와서 모든 게 오해였다고,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는 말을 해 봤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몇몇이 그 사실을 믿어 준다고 해도 이미 오물을 뒤집어쓴 명예는 회복되지 않을 거고.
그 때문일까.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꽤나 봐 줄 만했던 얼굴이 지금은 반쪽이 되어 있었다.
━너희를 담당하고 있는 에이전시도 그렇고, 어째 너희랑 엮이기만 하면 죄다 저런 꼴이 되는 것 같구나.
‘끄응.’
에드워드가 우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쪽 용병 때문에 지금 내 인생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
안다. 나도 기사를 봤으니까.
에드워드 시헬리스는 구석에 틀어박혀 우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세계 최강 헌터한테 열등감을 느끼다 미쳐 버린, 찌질한 용병 헌터.]
음, 확실히 지금 에드워드 시헬리스는 대중에게 저런 이미지다.
오승우는 테이카를 방어하기 위해서 에드워드를 깎아내리는 선택을 했다. 자극적인 언론들에 자신과 에디의 과거를 살짝 흘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과거의 사실에 살을 붙여 멋대로 떠들어 대는 건 그쪽 전문이었으니까.
단 반나절 만에 에드워드 시헬리스의 과거는 대중에게 모두 까발려졌고, 대중들은 단번에 이 자극적인 기사에 빠져들었다.
평소라면 신경도 쓰지 않을 기사였지만, 문제는, 이 모든 일의 시작이 김재호가 그림자 안에서 던진 단검 하나에서 시작했다는 거다.
[미안하게 됐…….]
내 사과가 끝나기도 전에 에드워드가 소리쳤다.
[미안하게 됐다고 끝이야? 내 인생이 망가졌다고, 완전히!]
에드워드는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쪽 부하가 테이카 쿠퍼한테 단검을 던졌어. 내가 아니었다고.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내가 테이카 쿠퍼를 암살하려고 했다고 생각해. 하, 열등감에 아무리 미쳐도 그렇지 차라리 목을 매달고 죽지, 뭐하러 테이카를 공격했냐고 하더군. 게다가 금세 꼬랑지를 내리고 도망쳤다나! 난, 나는 테이카가 두려워서 자리를 피한 게 아니야! 저놈이 더 사고를 칠까 봐 도망친 거지!]
그 외침에 한서현이 얼굴을 구겼다.
“뭐라는 거예요?”
“피해자로서 정당하게 화내기?”
내게 그렇게 소리를 친 에드워드는 힘이 빠졌다는 얼굴로 다시 벽에 기대앉았다.
“아하.”
[됐어, 내 인생은 다 끝났다고…….]
절망에 빠져 주저앉은 남자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모든 일을 저지른 범인인 김재호는 해맑은 얼굴로 우리에게 물었다.
“우리 언제 돌아가?”
그 질문에 한서현은 이마를 딱 쳤다.
“지금은 못 가.”
“왜?”
“저놈 때문에.”
“왜?”
“형이 저놈한테 엿을 먹였으니까?”
“아니, 난 아무것도 안 먹였는데.”
그 말에 한서현은 속이 터진다는 표정으로 김재호를 바라보다 대뜸 물었다.
“재호 형이 테이카 쿠퍼 옆구리에 구멍을 냈잖아.”
한서현의 질문에 김재호가 답했다.
“저놈이 부탁한 일이야.”
“정말?”
내 말에 김재호가 억울하다는 듯이 거듭 외쳤다.
“그랬다니까, 저놈이 먼저 공격하자고 했어. 테이카 쿠퍼를 처리하자고!”
“……응, 재호는 그렇게 알아들었구나.”
나는 일단 김재호의 말을 긍정해 주었다.
━혼내는 게 아니라?
‘그래도 우리 재호가 하나 잘한 게 있다면, 격차가 날수록 선빵을 쳐서 어떻게든 빈틈을 만들라는 제 가르침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는 거죠. 기습 자체는 아주 완벽한 타이밍이었습니다. 세계 최강이라고 불리는 헌터에게 상처를 입히는 게 어디 쉬운 일이냐고요.’
━지금 그런 말을 할 때냐!
원래 상황이 심각할수록 뭐라도 하나 좋은 점을 찾아야 하는 법이다. 긍정적인 사고방식만큼이나 중요한 건 없다고.
━이건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 문제를 회피하는 거잖냐!
“제대로 끝을 내기도 전에 도망친 건 저놈이야. 그러니까 일을 망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내가 아니라 저놈이라고!”
“그렇구나, 아직도 재호는 테이카 쿠퍼를 잡는 게 이번 일의 목적이었다고 알고 있구나…….”
점차 영혼의 함유량이 적어지는 내 말투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김재호가 가늘게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오늘 밥 안 먹었어? 왜 이렇게 힘이 빠졌어?”
그 말에 힘이 쭉 빠졌다. 여전히 김재호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알지 못했으니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일단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 주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야기해 보는 건 끝났는데!
━당연히 이제부터 김재호가 잘못한 점을 말하면서 김재호를 혼내야지!
‘아니, 얘가 뭘 잘못했다고요! 애초에 말만 잘 통했어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 아닙니까. 이건 의사소통의 문제지, 어, 김재호의 잘못이라고 할 수가 없다고요!’
━의사소통의 문제는 무슨! 말이 안 통하는 상태에서도 바로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저 정신머리가 문제지!
‘진작 영어를 가르쳐 줘야 했어요.’
━받아쓰기도 제대로 못 하는 놈한테?
‘그러니까, 미리미리 해 뒀어야죠.’
역시 교육은 중요한 거다. 그냥 노예 시장에서 김재호를 덜렁 사 온다고 끝이 아니었다고.
‘재호에게 초등학생 정도의 상식만 있었더라도 일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 아닙니까.’
━초등학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다만, 저 녀석의 상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거냐?
‘예.’
저번 받아쓰기 사건 때도 느끼지 않았나. 재능을 다루는 법을 가르칠 때가 아니라, 기초적인 지식부터 쌓아 둬야 한다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미리미리 대비해야겠습니다.’
문제는 내가 누굴 가르쳐 본 적이 별로 없다는 건데.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교육 교재라도 구해서 어떻게든 해 봐야지. 한서현도 있고, 나도 있고, 차송진도 있으니. 세 사람이 어떻게든 머리를 맞대면 김재호 하나 정도는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후회는 거기까지.
이제는 이 일을 해결해야 할 때다.
그동안 김재호가 친 사고라고 해 봤자, 우리가 꿍쳐 놓은 간식을 하루 만에 털어먹는다든가 힘 조절이 잘 안 돼서 비품을 부수는 것 정도였다.
세계 최강 헌터의 얼굴을 뭉개고 온 일은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일이었다.
그 어떤 육아를 다룬 책에서도 이런 경우에 대한 대처법은 없었다고!
‘그래도 테이카 쿠퍼가 우리를 좀 좋아하지 않습니까? 막 같이 게이트 공략도 하러 가자고 그러고 병원비도 대신 내 주고 말이지요.’
━그래서?
‘그 뭐냐, 잘 말하면 우리를 용서해 주지 않을까 하는…….’
━30억 병원비를 대신 내 준 사람의 등에 칼을 꽂았는데?
‘우리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잖습니까.’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그럼 우연히 김재호의 단검이 거기 가서 꽂혔다는 말이냐?
젠장, 할 말이 없다.
나는 여전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김재호에게 말했다.
“그거 아니었어.”
“으응?”
“테이카 쿠퍼를 공격하자는 게 아녔다고.”
내 말에 김재호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하지만 저 녀석이 테이카 쿠퍼를…….”
거기까지 말하던 재호가 아차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었어?”
“아니야.”
“그럼 어떡해? 나 그 녀석 좀 때렸는데.”
━좀 때려? 옆구리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나는 레이의 말을 애써 무시하며 김재호의 어깨를 두들겼다.
“괜찮아, 내가 어떻게든 해결할 테니까. 그리고 뭐, 죽을 만큼 때린 게 아니니까…….”
━아무리 애를 혼내기 싫다고 해도 그렇지,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냐.
이 일의 잘잘못을 따지자면 가장 큰 잘못은 나에게 있었다. 음,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 조직의 리더는 나고, 고로 이 일을 수습해야 하는 것도 나다.
사실 진짜 문제는 김재호가 아니다. 김재호는 이번 일의 용의자로 몰리지도 않았고, 그 어떤 수배도 받지 않았으니까. 우리야 사실 그냥 도망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저 녀석, 에드워드 시헬리스의 사정은 달랐다.
바닥에 우울한 얼굴로 주저앉아 있는 에드워드를 바라보며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저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