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9화
#55 시련, 시련, 시련 (10)
병원 앞에 선 에디는 침을 꿀꺽 삼켰다. 테이카 쿠퍼는 이 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었다. 당연히 테이카 쿠퍼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하지만 요 며칠 병원을 들락날락하는 테이카 쿠퍼 주변은 깨끗했다. 휴가를 편하게 보내고 싶다는 테이카의 의견을 감히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에디가 접근하기도 쉬웠다. 예상하지 못했던 건 테이카 쿠퍼가 혼자가 아니었다는 거다.
[다음에 공략할 게이트 목록을 좀 뽑아 왔는데…….]
[나 아직까지 휴가 아니에요?]
나무 덤불 뒤에 숨은 에디는 테이카 쿠퍼의 옆에 서 있는 오승우를 바라보며 얼굴을 구겼다.
젠장, 저 사람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에디의 그림자에서 손이 튀어나왔다. 에디는 그 손을 툭 쳤다.
[가만히 있어. 이건 계획이랑 다르다고. 젠장, 매일 혼자 다닌다고 알고 있었는데 왜 하필…….]
에디는 고개를 저었다.
[음, 그래. 오늘은 안 되겠어. 내일 다시 오자고. 저 인간이 없을 때, 응, 혼자일 때를 노리는 거야.]
그렇게 중얼거린 에디가 막 뒤로 물러섰을 때였다.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손이 그대로 에디의 멱살을 잡고 덤불 바깥으로 집어 던졌다.
[빌어먹을.]
병원 뒤 산책로 한가운데로 던져진 에디는 몸을 일으켰다.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에디는 두 손을 들어 올렸다.
[헤이.]
두 눈을 찌푸리며 에디의 얼굴을 살핀 오승우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에디? 네가 여긴 왜…….]
에디는 그 말을 곧장 끊었다.
[착각하지 마, 내가 여기에 온 건 그쪽이랑 대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니까.]
이렇게 된 거, 빨리 하려던 얘기나 끝내자 싶었다.
[거기, 테이카 쿠퍼!]
에디는 바로 테이카를 불렀다.
[잠깐 나랑 얘기 좀 하지?]
테이카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 나한테 볼일이 있다고?]
[그래.]
오승우를 살핀 에디가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여기서는 말고. 따로 우리 둘만 얘기할 수 있을까?]
에디의 말에 테이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그건 싫은데. 나한테 할 말이 있으면 여기서 해.]
자기가 들어도 말도 안 되는 제안이긴 했지만, 이렇게 딱 잘라 거절하다니. 얼굴이 달아올랐다. 테이카 쿠퍼의 바로 옆에 오승우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필이면 오승우의 앞에서 이런 얘기를 해야 하다니. 입술을 달싹인 에디가 입을 열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김재호가 움직이기 전에 빨리 대화를 끝내는 거다.
[믿을 수 없겠지만, 난 지금 골든데이 용병대원이랑 같이 있어요.]
[그래? 내 눈엔 아무도 안 보이는데.]
그래,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에디는 자신의 그림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에 있어요.]
[그 그림자 안에?]
[예.]
테이카가 천천히 다가왔다. 고개를 아래로 숙여 에디의 그림자 쪽으로 시선을 돌린 테이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여기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테이카가 에디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할 때였다. 그림자 사이에서 단검이 튀어 나갔다. 그 단검을 보며 에디는 눈을 크게 홉 떴다.
순간 모든 세상이 느려졌다. 어찌나 단검이 날아가는 속도가 빨랐던지, 에디가 능력을 쓸 짬도 없었다.
자신에게로 날아드는 단검을 발견한 테이카의 동공이 노랗게 타올랐다. 검은 점이 허공에 떠올라 단검을 빨아들이려 했지만, 단검의 속도는 너무 빨랐고 힘은 너무 강했다. 에디의 동공이 붉게 타올랐다. 단검에 실린 에너지를 최대한 흡수했지만, 에디도, 테이카도 단검의 궤적을 완전히 바꿔 내지는 못했다.
단검 하나가 기어코 테이카의 볼을 긁고 지나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 에디는 이를 악물었다. 테이카의 서늘한 눈이 자신에게로 향했다.
[지금 나를 공격한 거지?]
테이카의 몸에서 마력이 들끓었다. 순간 머리가 쭈뼛했다. 공중에 떠올랐던 검은 점으로 엄청난 마력이 몰려들었다. 이대로 있다간 저 안에 빨려 들어가서 가루가 될 거다.
[아니, 내가 공격한 게 아니…….]
이거 다 오해라고! 하지만 오해라고 말할 새도 없다. 돌아오던 단검 하나가, 그대로 테이카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윽.]
테이카가 입고 있었던 셔츠가 찢기고 붉은 피가 번졌다. 단검의 궤적이 조금만 안쪽으로 파고들었다면 테이카의 옆구리에 구멍이 뚫릴 뻔했다.
그 모습을 코앞에서 바라본 에디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젠장.]
누가 봐도 완벽하게 에디가 테이카를 향해 공격을 퍼부은 상황.
테이카의 황금빛 동공이 에디에게로 향했다. 테이카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천천히 테이카의 마력이 움직이고 허공에 떠오른 검은 점에 테이카의 마력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답은 하나다.
죽어라 도망가는 것.
울며 겨자 먹기로 에디는 마력을 끌어 올렸다. 붉게 물든 동공이 검은 점을 응시했다. 검은 점을 향해 모여들던 에너지가 순간 모두 증발했다. 주변을 빨아들이던 검은 점은 침묵했고, 테이카는 그 현상에 놀라 눈을 깜빡였다.
힘은 사라진 게 아니었다. 모두 에디에게로 흡수된 것이었다.
하지만 에디의 이 능력도 무적은 아니었다.
[커헉.]
과연, 엄청난 마력이었다. 일부만을 겨우 흡수했음에도 몸이 터질 것만 같았다. 에디의 입가로 피가 줄줄 샜다.
빌어먹을 테이카 쿠퍼. 세계 최강의 헌터라는 건 괜히 붙은 이름이 아니었다.
단 몇 초만, 그의 힘을 흡수했는데도 이 정도라니. 에디는 자신이 흡수한 에너지를 앞으로 뿌렸다.
[큭!]
잘 포장되어 있던 산책로가 뒤집히고 그 파편이 테이카에게로 날아들었다. 테이카는 손을 휘저어 마력으로 공중으로 비산하는 파편들을 모두 붙들어 놓았다.
파편이 가라앉히고 눈앞을 바라봤을 때 에디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테이카는 텅 빈 산책로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싸움을 걸어오기에, 제대로 붙을 준비를 했는데. 바로 도망이나 치다니.
저렇게 도망을 칠 거면 자신에게는 왜 달려든 걸까.
[시시하게 됐네.]
테이카는 마력을 가라앉히고 흉흉하게 주변의 모든 걸 빨아들일 준비를 하던, 검은 점들을 소멸시켰다.
뒤늦게 창백하게 질린 오승우가 테이카에게로 다가왔다.
[괘, 괜찮습니까?]
[살짝 스친 거예요.]
테이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출혈량은 적지 않았다. 테이카의 다리를 타고 흐르는 피에 오승우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이런! 피, 피가 나잖아요.]
[게이트에서 다친 거에 비하면 이건 정말 가벼운 상처라고요. 그나저나 그 녀석 웃기네요. 갑자기 달려들어서 공격하다니.]
테이카의 말에 오승우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아는 녀석입니다.]
[미스터 오가 아는 사람이라고요?]
[아무래도 이건 저 때문일 것 같습니다.]
[예?]
오승우가 착잡한 얼굴로 테이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사방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숨을 죽이며 테이카 주변을 따라다니던 파파라치들이었다. 찰칵찰칵, 이제는 피할 생각도 없이 사진을 찍어대는 그들의 모습에 테이카는 눈을 찌푸렸다.
오승우가 앞으로 나섰다.
[지금부터 상황은 제가 통제합니다. 제 말은, 이제 그 카메라를 내려놓으라는 뜻입니다.]
[평상시라면 미스터 오의 말을 들어 주겠지만 이건 빅 뉴스라고요. 아무리 미스터 오라고 해도 막을 수 없을걸요?]
연달아 셔터를 눌러 대는 파파라치의 말에 오승우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테이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난 왼쪽 얼굴이 예쁘니까, 왼쪽으로 찍어 줘요.]
괴한의 습격, 그리고 테이카의 부상!
내일의 헤드라인이, 아니, 당장 오늘 저녁 속보로 나갈 뉴스의 헤드라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거 귀찮게 됐다.
* * *
테이카 쿠퍼의 습격 소식은 놀랍지 않았다. 세계 최강이라고 너무 경계심 없이 팔랑팔랑 다니긴 했지. 동선이 너무 정직한 것도 문제였을 거다. 테이카에게 악의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었을 테지.
테이카에게서는 따로 연락이 없었지만, 연락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열등감 때문인가. 테이카 쿠퍼를 노린 떠돌이 헌터의 습격.」
「테이카 쿠퍼, 경미한 부상. 최고의 의료팀에게 치료받아. 곧 회복.」
「괴한의 정체는 에드워드 시헬리스로 밝혀져. 몇 년 동안의 이력 확인.」
「떠돌이, 철새, 그리고 괴물이 돼 버린 남자 ‘에드워드 시헬리스’.」
과연 슈퍼스타. 온갖 언론에서 테이카 쿠퍼에 대해 떠들어 대고 있었다.
테이카는 우리가 입원한 병원이 아니라, 개인 팀에 치료를 받으러 갔다.
동선이 빤히 읽혀 습격을 당한 만큼, 이제부터는 머리털 하나 보이지 않게 보호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모습을 완전히 감춰 버린 테이카를 대신해 전면에 나선 건 오승우였다. 이번 일의 목격자이자, 테이카 쿠퍼를 보호하는 에이전시로서 그는 적극적으로 언론을 이용했다.
테이카가 습격당했다는 소식과 동시에 범인이 밝혀진 건 오승우가 이미 범인인 사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테이카 쿠퍼를 습격한 이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눈썹을 꿈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재수 없는 놈이네요.’
나를 보러 와서는 알 수 없는 헛소리나 지껄이고 갔던 놈이었다.
이름, 에드워드 시헬리스. 올해 스물넷. 통칭 철새 자칭 알바트로스. 여태까지 용병대만 수십 개를 갈아치운 B급 용병으로 능력이 꽤나 특이했다.
상대방의 힘을 이용할 수 있다라…….
‘현장에서도 재능을 이용해서 탈출했다고 알려졌다지. 테이카 쿠퍼의 힘을 이용해서.’
확실히 흔치 않은 재능이었다. 단점이 명확하지만,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무궁무진한 힘을 낼 수 있었다.
━어째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말했듯, 흔한 재능은 아니니까요.’
테이카 쿠퍼에게 상처를 입히고 본인은 무사히 도망가다니. 이건 세계 최강의 헌터 테이카 쿠퍼의 자존심에 직격타를 가한 일이었다.
그 때문일까. 오승우는 본격적으로 ‘에드워드 시헬리스’ 흠집 내기에 나섰다.
오승우의 인터뷰는 자극적이었다.
‘자신과 계약하지 못한 일로 앙심을 품고 테이카 쿠퍼를 습격했다라…….’
오승우가 말한 에드워드의 범죄 동기는 그러했고, 언론에서는 오승우의 시나리오대로 극본을 만들어 상영했다.
━정말 에드워드라는 녀석이 원한 때문에 이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냐?
‘정말로 그런 열등감 때문에 테이카 쿠퍼를 건드린 거라면, 제대로 맞붙지도 않고 도망친 게 설명이 안 되죠. 오승우도 알고 있을 겁니다.’
━알고 있으면서 왜 그런 변명을 댄 거지?
‘테이카 쿠퍼를 보호하기 위해서죠.’
━이미 그 녀석은 안전하지 않으냐. 옆구리를 조금 찔린 것뿐이라던데.
‘육체적인 걸 말한 게 아니에요. 테이카 쿠퍼는 거대한 산업이나 다름없어요. 테이카 쿠퍼는 오승우가 쌓아 올린 금자탑입니다. 가장 빛나고 가장 값진. 이번에 그 금자탑에 금이 간 거죠. 그리고 파파라치 수십 명이 그 장면을 찍었어요.’
미국에서 파파라치를 완벽하게 막는 방법은 없다. 헌터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예민한 헌터들이 자신들의 주변을 쫓는 파파라치를 두들겨 패는 일이 종종 가십지에 나올 정도니까.
그나마 테이카 쿠퍼는 성격이 좋은 편이라, 직접적으로 나타나지만 않으면 보통은 봐줬다는 모양이다.
그래서 늘 주변에 파파라치들이 그를 따라다녔고, 그건 습격당한 날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규칙을 어기고 대놓고 나와서 촬영을 이어 나간 모양이지만요.’
━사람이 다쳤는데 사진이나 찍어 댄다고?
‘돈이 되니까요.’
수십 명의 파파라치와 전부 협상해서 이 일을 완전히 비밀로 만드는 방법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릴 것이냐.
둘 중, 오승우는 후자를 택한 것뿐이다.
‘사실 파파라치들과 협상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요.’
한둘 정도라면 타협할 수 있었겠지만, 당시에 현장에 있던 사람의 수가 서른이 넘었다고 하니. 짧은 시간에 그들과 협상하는 것은 무리였을 터.
차라리 자신이 아는 정보를 제공하겠다며 그들을 꼬여 내는 게 더 합리적이었을 거라는 뜻이다.
‘과거에 자신을 거절하고 다른 각성자를 택한 에이전시에게 복수하기 위해, 헌터를 습격한 각성자의 이야기라니.’
확실히 언론이 환장하고 달려들 만한 소재긴 하지 않은가.
그 때문일까, 언론에서 그리는 에드워드는 아주 간악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이번 습격을 몇 주 전부터 준비하고 계획했으며, 일부러 테이카 쿠퍼의 방심을 유도해 그를 덮친 범죄자였다.
하지만 난 이 일의 진실을 안다.
에드워드 시헬리스는 죄가 없다.
“재호야.”
사진에 찍힌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단검을 본 순간,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