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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182화 (182/352)

제182화

#55 시련, 시련, 시련 (3)

나는 중환자실로 향했다. 그랬다, 차송진은 무려 중환자실에 있었다.

여러 가지 기계를 달고 침대에 누운 차송진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한서현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큰 부상은 없었으니까. 보스가 어찌나 잘 묻어 놨는지, 도굴꾼이 돼서 무덤을 파내는 기분이었어요.”

“다른 비유도 있는데 무덤이 뭐냐, 무덤이.”

네크로맨서라서 그런가, 비유가 영 그랬다. 물론 땅 밑에 사람이 묻혀 있다고 하면 보통은 무덤이 맞긴 맞는데……. 그래도 내가 차송진을 묻을 땐 분명 살아 있는 상태였다고.

━그럼 생매장 아니냐?

레이의 태클을 무시하며 내가 입을 열었다.

“그때는 어떻게든 안전하게 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거든.”

그래서 조금 더 깊게 묻었을지도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모든 건 차송진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덕분에 내가 너덜너덜해지는 동안에도 차송진의 몸에는 상처 하나 나지 않지 않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송진이 중환자실에 머무는 이유는 내상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공간 이동에 대한 반동을 본인이 모두 감당한 덕분에, 차송진의 상태는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몸에 깔린 마나 회로가 전부 상처를 입은 데다가, 그로 인해 넘친 마나가 곧바로 신체를 공격했다. 각성자라면 몸속에 떠돌아다니는 마나에 보통 내성이 있기 마련이지만, 폭주한 마나에 의해 연약한 장기가 상하는 것은 제아무리 각성자라고 해도 막을 수 없다.

그 결과가 이거다.

각종 기계에 연결된 차송진의 모습을 보는 순간, 숨이 턱하고 막혔다.

다행히 잔뜩 굳은 내게 의사는 차송진의 상태가 그리 심각한 건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그럼 왜 저렇게 사람을 인조인간처럼 만들어 놓은 겁니까?]

[마나에 의한 부상의 경우에는, 저희도 데이터가 그리 많지 않아서 말이지요. 특히 저렇게 마나에 의해 내상을 입은 상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의사는 멋쩍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하긴, 게이트의 등장 이후 현대 의학은 커다란 변곡점을 맞았다고 들었다. 마나라는 지금까지는 없었던 ‘독성 물질’이 등장한 셈이니까.

의사의 말대로 마나에 관련된 부상은 현대 의학으로 완벽한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제일 흔한 증상인 마나 중독만 해도 그렇고, 이런 식으로 내상을 입는 경우도 그렇고.

치유의 재능을 가진 이들이 적어 이렇게 헌터 전문 병원이라는 게 세워지긴 했지만, 아직은 현대 의학으로 부상자를 완벽하게 치료할 수 없었다.

[그럼 일단은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겁니까?]

내 질문에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은 마나 중독 증상을 완화하면서, 상태를 지켜보는 게 최선입니다. 그래도 내출혈은 잡았으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아직은 저 기계 속에 차송진을 집어넣고 며칠은 더 상황을 지켜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젠장.’

저 기계를 통째로 들고 갈 방법은 없으니, 차송진이 깨어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이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차송진의 면회가 끝난 뒤 우리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일단 차송진은 됐고, 재호가 문젠데.”

나는 한서현에게 시선을 던졌다.

“컨테이너에 재호가 없는 건 확실하지?”

“네.”

“혹시 컨테이너 안에 뭔가 흔적이 남지는 않았어?”

“어…….”

평소라면 바로 대답이 돌아왔을 질문이지만, 한서현은 내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눈을 굴렸다.

“응?”

“저도 사실 자세한 건 몰라요.”

평소라면 감각을 공유해 컨테이너 안의 상황을 살폈을 테지만, 그날은 단순히 그 안에 김재호가 있냐 없냐만 살폈단다. 그러니까 컨테이너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른다는 뜻이었다.

꼼꼼한 한서현답지 않은 일 처리였다. 그 이유야 뻔하지.

━네가 자기한테 당해서 그러고 있는데 김재호를 챙길 정신이 있었겠냐. 차송진을 무사히 챙겨 온 것만 해도 다행이다.

레이의 말대로다. 그나마 한조희로 보이는 그 스켈레톤이 곁에 있어 줘서 이 정도로 끝난 거지, 정신을 놨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하긴 평상시라면 했을 잔소리도 없었죠.’

평상시라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저질렀냐’거나, ‘또 몸 아낄 줄 모르고 무모하게 군 거냐’며 나를 들들 볶아 댔을 텐데.

“지, 지금이라도 알아볼게요.”

한서현이 부랴부랴 마력을 끌어올리는 걸 느끼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저도 수련을 좀 더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옆구리가 두 번은 뚫려도 멀쩡하게.’

━그게 수련으로 되는 거였냐?

‘기합으로 어떻게든 버티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게 수련으로……. 됐다.

보스가 되어서 자꾸 기절이나 하니까, 전략에 구멍이 생기는 거 아닌가.

하다못해 이럴 경우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행동 강령이라도 만들어 뒀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여러모로 전력을 보충해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곧바로 정신계를 대비한 아티팩트를 구하고 내가 없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작전을 짜 둬야겠다.

이른바 작전명 이신 없는 이신팀이다.

━그 작전명을 듣는 순간 애들이 미쳐 날뛸 것 같단 생각이 든다만.

‘음, 이름을 바꿀까요?’

━포장지를 갈아 끼운다고 통할 것 같으냐?

‘음……. 그래도 아예 작전이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내가 레이와 그런 말을 주고받는 사이, 한서현의 조사가 끝났다.

“말해 봐, 뭘 봤는지.”

갈 데도 없는데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건지. 어쩌면 내가 쪽지를 남겼던 것처럼, 쪽지를 남겼을지도 모르지. 그러라고 글을 가르쳐 준 거니까.

하지만 내 질문에 한서현은 쉽게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 표정에 나도 덩달아 불안함을 느낄 무렵에 한서현의 입이 열렸다.

“……이거 큰일 난 것 같은데요.”

한서현의 말에 내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뭔데.

재호가 또 무슨 짓을 저지른 건데?

* * *

김재호가 깨어난 것은, 강이신이 차송진을 차에 태우고 게이트로 향할 무렵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김재호는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김재호의 앞에 보스가 남긴 쪽지가 팔랑거리며 떨어졌다.

「재호야,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서현이 데리고 올게.

혼자서 어디 가지 말고 기다려.」

그 쪽지를 확인한 김재호는 화가 났다.

왜냐, 또 홀로 남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았다. 조금만 기다리면 온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조금만’이란 시간은 도대체 얼만큼인가.

자리에 주저앉은 김재호는 강이신이 말한 조금만의 의미를 생각했다.

문득 떠오른 건, 한서현이 말한 ‘조금만’이다.

‘밥 다 됐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뭐? 벌써 다 먹었다고? 조금만 기다려 다시 만들어 줄 테니까.’

하루에도 세 번은 들었던 말이라 그런지, 바로 떠올랐다. 한서현이 말한 ‘조금만’에 따르면, 보스가 말한 조금만은 아마도 5분에서 15분 사이일 게 분명하다.

그래, 조금만 기다리자.

15분.

잠자코 자리에 앉아 있던 김재호의 엉덩이가 씰룩이기 시작하기까지는 딱 그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기다려도 안 오잖아!’

김재호는 배신감에 씩씩 숨을 몰아 내쉬었다. 아무리 문을 노려보아도 강이신이 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한서현도, 차송진도 보이지 않으니 미칠 것만 같았다.

끔찍한 꿈을 꾸었던 터라 가뜩이나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그 기분을 풀어 줄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니 미칠 것만 같았다.

꿈에서 자신을 비웃으며 ‘친구’를 갈라 대던 여자의 목소리가 떠올라 김재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여기는 만지면 기분이 좋아지는 인형도 없고, 김재호가 좋아하는 간식도 없다.

‘다들 어디 간 거야.’

컨테이너 안을 빙빙 돌며 김재호는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차라리 여길 나가서 보스를 찾아볼까. 하지만 보스가 어디에 있는 줄 알고?

그리고 보스가 말했잖아. 혼자서는 돌아다니지 말라고.

보스가 한 말을 곱씹은 김재호는 컨테이너의 문 앞에 앉아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동료들을 기다렸다.

누군가 컨테이너의 문을 쿵쿵 두드린 건 김재호가 벨츠머츠 동료들을 기다린 지 무려 이틀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노크 소리에 김재호는 재빨리 문을 열었다. 하지만 밖에 서 있는 건, 김재호가 그토록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었다.

[안녕?]

김재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갈색 피부에 황금빛 눈동자, 붉은색 머리.

혹시 가면을 바꿔 쓴 건가 했지만, 밝게 빛나는 황금빛 눈동자는 김재호가 아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넌 누구야.”

[그쪽도 골든데이 용병대지? 그러니까 이름은 모르겠지만, 어, 부상 때문에 게이트에 들어가지 않고 쉰 건가?]

남자가 한 말을 들은 김재호의 첫 생각은, ‘뭐라는 거야.’였다.

가뜩이나 신경이 예민해진 이때,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로 떠들어대는 남자의 등장은 김재호의 한 톨 남은 인내심을 툭툭 건드려댔다.

“꺼져.”

하지만 김재호의 경고에도 눈앞의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진정해. 그쪽도 당신네 친구가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지 않아? 그러니까, 친구! 친구 말이야. 동료, 용병대원, 뭐든.]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김재호의 태도에 당황한 남자는 초등학생도 알 법한 단어들을 늘어놓았지만, 안타깝게도 김재호는 초등학교에 다닌 적이 없었다.

“뭐라는 거야.”

꺼지지 않으면 꺼지게 만들어 주마. 김재호는 허벅지에 꽂아 두었던 단검을 손에 들었다.

“꺼지라고 했다.”

[워, 진정해! 나는 네 적이 아니라니까. 그러니까 친구! 용병대! 젠장, 이 정도 단어도 못 알아듣는다고?]

자신의 경고에도 여전히 말을 잇는 남자의 모습에, 김재호는 생각했다.

아, 말로 해서는 안 되는 놈이구나?

자신에게 날아드는 단검을 보며 남자, 에드워드 시헬리스는 입을 벌렸다.

[미친!]

에디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단검을 겨우 피했다. 조금 전까지 에디가 서 있던 곳에는 김재호가 날린 다섯 개의 단검이 살벌한 모습으로 꽂혀 있었다.

“가라고 했어.”

김재호도 사고를 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어슬렁거리는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건 경고.

하지만 경고를 무시한다면…….

마침 기분을 풀 데가 필요했는데 잘 됐지.

에디는 자신의 밭 밑에 꽂힌 단검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에디의 동공이 붉게 타올랐다. 그와 동시에 김재호의 단검이 에디에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에디를 향해 날아들던 단검은 운동에너지를 잃고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 모습에 김재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재호는 마력을 끌어올려 단검을 회수하려고 했지만, 그 또한 막혔다.

김재호의 단검에 깃들었던 운동에너지를 흡수한 에디는 그대로 김재호에게 몸을 날렸다.

[뭐가 됐든, 걸어오는 싸움을 거절하는 건 사나이가 할 짓이 못 되지!]

김재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곧바로 에디의 그림자로 스며들었다.

[뭐, 뭐야!]

에디의 주먹은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에디가 헛웃음을 지었다.

[C급은, 빌어먹을.]

못해도 A급, 혹은 그 이상이다. 순식간에 그림자로 녹아들 수 있는 능력이라니!

에디는 제 그림자에서 튀어나오는 김재호의 주먹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주먹이 뺨에 닿기 전 가까스로 운동에너지를 흡수했지만, 채 흡수하지 못한 힘은 그대로 주먹에 실려 에디의 뺨을 갈겼다.

[큭!]

고개가 돌아가고 머리가 뒤흔들렸다.

맞기 직전 운동에너지를 흡수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아래턱뼈가 나갔겠지.

[퉤.]

에디는 피가 섞인 침을 뱉어 냈다.

에디가 반격하기도 전에 김재호의 몸은 다시 그림자로 사라졌다.

[이봐, 이건 치사하잖아!]

하지만 에디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림자가 매개라는 걸 알아챈 다음에는 쉬웠다. 일단 에디는 컨테이너에서 멀어졌다. 컨테이너 쪽의 그림자와 자신의 그림자 사이를 벌려 김재호가 숨어들 수 있는 영역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시도로 끝났다. 그림자 바깥으로 튀어나온 김재호가 에디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컨테이너 안으로 집어 던졌기 때문이다.

“큭!”

시야를 가려 반응할 새도 없었다. 에디를 집어던진 김재호는 다시 한번 에디의 그림자 사이로 몸을 감췄다.

에디는 이를 악물었다.

[젠장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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