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7화
#54 기만의 시련 (4)
한서현은 옛날의 기억을 돌아보고 있었다.
‘꿈인가.’
꿈이겠지. 형이 그렇게 되고 나서부터 한서현의 꿈은 늘 과거를 되짚고 있었으니까.
막 한서현이 각성을 끝마쳤을 때였다. 동생이 능력을 각성했다는 말에 한조희는 들뜬 얼굴로 물었다.
“서현아, 네 능력은 뭐야?”
“죽은 동물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인데…….”
그렇게 말한 한서현은 저도 모르게 한조희의 눈치를 봤다. 어렸을 때부터 곤충과 짐승의 사체에 관심이 많던 자신을 한조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조희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런 한조희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진 건, 한서현의 등급을 듣고 나서였다.
그 다음부터도 한조희는 툭툭 한서현의 재능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사체를 움직이는 능력을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한서현의 능력 때문인가, 한조희는 TV에서 범죄 관련된 것만 나와도 학을 떼며 너는 절대로 저런 나쁜 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기피하는 능력에 흑마력을 지녔지만, 너는 좋은 녀석이라고. 착한 녀석이라고. 중요한 건 그거라고.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야. 그 능력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 거지.”
그렇게 말한 한조희가 한서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곤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헌터 아카데미에 가자.”
가슴이 두근거릴 만한 말이었지만, 한서현은 곧바로 고개부터 저었다.
“나 안 받아 준다잖아, 아카데미가.”
“아카데미가 바벨 하나뿐이냐?”
한서현이 무려 잠재력이 A등급인 재능을 각성했다는 걸 알게 된 뒤 한조희는 곧바로 한서현과 함께 바벨 아카데미에 향했다. 당연히 입학이 가능할 줄 알았지만, 답은 거절이었다. 위험한 흑마력을 사용하는 각성자를 들일 수 없다나, 어쩌나. 그 말에 한서현은 크게 실망했지만, 이내 툭툭 미련을 털어 냈다.
하지만 한조희는 그럴 수 없었던 모양이다.
“형도 알잖아, 사립 헌터 아카데미가 얼마나 비싼지.”
사립 헌터 아카데미의 학비는 이제 겨우 성인이 된 한조희가 감당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비쌌다.
“그냥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할게.”
“잠재력이 A등급인 재능을 그대로 놀릴 생각이야? 남들은 다 헌터가 돼서 길드에 들어갈 때, 나처럼 막노동이나 하고 싶어?”
“형처럼 일하는 게 뭐가 어때서.”
“넌! 넌 나처럼 되면 안 돼.”
늘 한서현에게 다정했던 한조희였지만, 그날 한조희는 한서현의 말에 무척이나 화를 냈다. 한서현이 울면서 헌터 아카데미에 다니겠다고 말할 때까지.
그렇게 한서현은 헌터 아카데미에 다니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한조희가 무엇을 어떻게 노력하고 희생했는지, 어린 한서현은 알지 못했다. 그때 한서현은 겨우 열네 살이었을 뿐이니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때부터 한조희의 얼굴에 피곤이 달라붙어 사라지지 않았다는 거다.
곰팡이가 여기저기 피고,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처럼 낡아 빠진 좁은 단칸방. 한서현과 한조희는 그 좁은 방 안에서 같은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서현아, 내일 아카데미 가서는 잘해야 한다.”
“잘한다니까, 왜 자꾸 그래.”
한서현은 한조희의 걱정에 눈을 찌푸렸다. 한조희는 뾰로통해진 한서현을 보며 키득키득 웃음을 흘렸다.
“너야 잘할 거 알지. 그냥 형이 걱정이 많아서 그래.”
“참나. 걱정도 팔자다.”
한서현의 말에 한조희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맞아, 형은 걱정이 팔자야. 원래 걱정이 많다 그랬어.”
“누가?”
“엄마가. 옛날에 내 사주를 봤는데 거기 그렇게 쓰여 있더래. 평생 걱정을 많이 할 팔자라고.”
오랜만에 듣는 엄마라는 단어에 속이 울렁거렸지만, 한서현은 괜히 퉁명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참나, 돌팔이 아니야? 무슨 그런 사주풀이를 해 준대? 좋은 말만 해 줘도 모자랄 판에.”
한서현의 말에 한조희가 말했다.
“그래도 아주 나쁜 얘기는 아니잖아. 누구는 이혼을 다섯 번은 할 거란 소리도 듣는데.”
“이혼을 다섯 번 한 거면, 결혼도 다섯 번 한 거잖아. 능력 좋은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도대체!”
한조희가 기겁하는 소리에 한서현은 킥킥 웃음을 터트렸다. 이상한 데서 순진한 형은 이런 농담에 늘 기겁했다.
“내 걱정은 하지 마. 형이 걱정하지 않게 내가 잘할 테니까.”
한서현은 한조희에게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형이 나를 걱정할 일 없게 아주 잘할 거라고.
이때의 한서현은 자신의 미래를 전혀 몰랐다. 흑마력을 타고 태어난 데다가 사령술이라는 재능을 가진 자신이 헌터 아카데미에서 어떤 취급을 받게 될지.
“형은 그냥 나 성공할 일만 믿고 편하게 기다리면 돼.”
그래서 이런 철없는 말도 했다. 정말로 자신이 성공할 줄 알았으니까.
“하하, 내가 동생 덕 좀 보는 건가?”
“그래. 그러니까 너무 일만 많이 하지 말고. 형도 뭐냐, 그, 좋아하는 사람이랑 데이트도 하고 인생 좀 즐기고 그래.”
“아이고, 우리 서현이 생각이 이렇게 깊었나. 정말 눈물이 날 것 같네.”
“아, 좀! 사람이 진지하게 말하면 진지하게 들어야지.”
좁은 이불 안에서 한서현과 한조희는 서로 몸을 부딪치며 밤새도록 떠들어 댔다. 시계를 본 한조희가 엄한 얼굴로 ‘이제는 정말 잘 때다’라고 말할 때까지.
그리고 어느새 한서현은 그날의 병실로 돌아가 있었다.
살아 있는 한조희를 보았던 마지막 날이었다.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는 도채희 경위를 돌려보낸 뒤 한서현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파리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는 형을 보며 한서현은 짙은 피로감을 느꼈다.
며칠 동안 찾아 헤맸던 형이 이 꼴이 됐다는 것도 그렇고, 괜한 의심을 하는 경찰도. 모든 게 피곤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한서현을 제일 힘들게 하는 건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한조희였다.
“당장 퇴원하자. 여기 병원비가 얼만지나 알아?”
“알지, 아는데 여기서 나가면 얼마나 버틸 수 있는데? 하루? 이틀?”
한서현은 아직 한조희를 놓아 줄 용기가 없었다. 한조희 없는 삶은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형이 없으면 내가 왜 살아야 하는데? 나더러 남은 삶을 어떻게 살라고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하는 거야?
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날카로운 말을 애써 억누른 채 한서현은 한조희의 질문에 말을 이었다.
“붉은개 길드에서 보상금 조로 얼마간 챙겨 줬어. 일단은 몸을 회복하는 것만 생각해.”
거짓말이 대부분이었지만, 양심의 가책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한조희를 살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럴 돈이 있으면 너한테 써야지. 아카데미에…….”
그 말에 한서현은 터져 버렸다.
“애초에 그 빌어먹을 놈의 아카데미 실습비만 아니었으면 형이 이 지경이 될 일도 없었을 거 아니야.”
그때 당시에는 몰랐다. 그냥 화가 났을 뿐이다. 상황이 이렇게 됐음에도 겨우 아카데미에 목을 매는 형이 이해되지 않아서. 자신의 목숨은 아무렇지도 않게 포기할 수 있다면서, 자신에게는 아카데미를 강요하는 형이 미워서.
그래서 한서현은 그때 한조희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주저 없이 병실을 떠나는 과거의 자신을 보며 한서현은 말했다.
“그러지 마. 형의 곁에 붙어 있으라고.”
하지만 과거의 자신에게 그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한서현은 주저 없이 병실 바깥으로 나가 버렸다.
한서현은 무심히 형을 떠나 버린 과거의 자신과 달리 천천히 한조희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침대에 누운 한조희는 코앞에 있는 한서현을 알아보지 못하고 멍하니 이미 떠난 과거의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조희의 얼굴을 살핀 한서현은 크게 놀랐다.
한조희는 울고 있었다. 한서현의 뒷모습을 보며 차마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왜 그러고 울어.”
형이 대체 뭘 잘못했다고 우는 건데. 형을 울린 내가 나쁜 거잖아. 내가 형을 속상하게 만든 거잖아. 기껏 키워 놨더니 이딴 말이나 하는 거냐고. 화라도 내지 그랬어.
차마 내뱉지 못하는 말이 차곡차곡 쌓였다.
한서현이 그를 위로하기도 전에, 눈앞의 한조희는 환상처럼 사라져 버렸다.
“아.”
대신 이미 죽어 버린 한조희가 눈앞에 나타났다.
“형…….”
뒤틀린 팔다리에, 고통으로 구겨진 얼굴, 넝마가 되어 버린 몸. 영안실에서 자신이 확인했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누군가는 비명을 지를 정도로 엉망인 모습이었지만, 한서현은 그런 한조희를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미안해.”
그러고는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내뱉었다.
“형이 걱정했던 건, 내 미래였지? ‘나처럼 밑바닥 인생을 살면 안 돼.’ 형은 늘 그렇게 말했잖아.”
죽어 가면서도 한서현에게 아카데미 이야기를 꺼낸 것도 그 때문이겠지.
그날 병실에서 한조희가 마지막까지 걱정했던 건 한서현의 미래였다. 한서현이 자신처럼 밑바닥 인생을 살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에, 자신과는 달리 한서현이 멋진 삶을 살았으면 했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동생을 사랑했기 때문에.
“난 몰랐어. 그때에는……. 그냥 형이 미웠어.”
그게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그런 얘기는 하지 않았을 거다.
대신 말했겠지.
고마웠어, 형.
그리고 미안해. 형의 마음을 몰라줘서. 그날,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사과해야 할 건 그게 끝이 아니었다.
“미안한 거 또 있어.”
결국 형이 바라는 인생을 살지 못하고, 결국 복수를 택해서. 결국 나 자신만을 위한 복수를 하겠다고 형이 그토록 되지 말라던 악당이 되어 버려서.
매일 밤, 한서현은 형에게 닿을 리 없는 사과를 전했다.
“그래도 말이야. 형이 바라는 대로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멋진 헌터가 되는 건 도저히 못 하겠더라.”
엉망으로 돌아온, 멀쩡한 곳이라고는 단 한 군데도 없는 한조희를 마주한 순간 어리석은 동생은 형의 마지막 소망마저 저버렸다. 형이 몇 년 동안 했던 희생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어 버렸다.
“형은 이런 능력을 갖고 태어났어도 착하게만 살면 된다고 했지만, 나 사실 그리 좋은 놈이 아니야.”
애초부터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어. 그냥 형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좋은 사람인 척했던 거야.
한서현은 그동안 형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토해 냈다.
“그래서 미안해.”
눈가가 뜨거워졌다. 한서현은 고개를 숙였다. 발등에 자신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형에게는 미안한 게 너무 많았다.
형의 희생을 무시해서, 미안.
형의 바람을 무시하고 복수나 하겠다고 해서, 미안.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회하지 않아서 미안해.”
형이 하지 말라는 짓은 다 해 놓고, 그런 주제에……. 감히 후회조차 하지 않아서. 그날로 돌아가도 백 번 같은 선택을 할 거라서, 그래서 미안.
그때 눈앞에 흰색의 스켈레톤이 나타났다.
“형?”
한서현이 처음으로 소환했던, 바로 그 스켈레톤이었다.
자신이 어떤 명령을 하지도 않았는데, 그 스켈레톤은 저벅저벅 자신에게로 걸어왔다. 그러더니 삐딱하게 서서 자신을 노려보았다. 한서현의 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뭔데.”
한서현은 눈을 찌푸렸다.
“넌 형이 아니잖아.”
다시 형이 보고 싶었다. 어차피 꿈이라면, 다시는 볼 수 없을 형을 보고 싶었다. 그게 하다못해 보기만 해도 가슴이 시려지는 마지막 모습이라고 해도.
이런 뼈다귀보다는 훨씬 나았다.
“사라져.”
하지만 아무리 속으로 명령해도 스켈레톤은 사라지지 않았다.
저벅저벅 자신의 앞에 다가온 스켈레톤은 그대로 손을 들어 올렸다.
“뭐 하는 거야.”
한서현은 스켈레톤을 조종해 보려고 했지만, 스켈레톤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퍽. 스켈레톤이 자신의 머리를 내리치는 감각에 한서현은 눈을 떴다.
“허억, 허억…….”
한서현은 눈을 깜빡였다. 흐릿했던 시야가 점차 선명해졌다. 제 눈앞에 들어온 것은 흰색의 스켈레톤이었다.
“뭔데…….”
꿈에서 깬 게 아니었나?
아니, 이건 꿈이 아니다. 한서현은 숨을 들이켰다. 자신의 몸을 단단히 구속하고 있던 모래는, 한서현이 정신을 차리는 순간 흩어졌다. 그리고 한서현은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윽!”
쓰러진 한서현을 뒤로 하고 스켈레톤은 걸음을 옮겼다. 한서현은 스켈레톤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어디로 가는…….”
‘꿈’에서처럼 스켈레톤은 한서현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스켈레톤은 자신의 왼팔 뼈를 거침없이 떼어 냈다. 그 모습에 한서현은 입을 쩍 벌렸다.
스켈레톤은 떼어 낸 왼팔 뼈를 오른손에 쥐고 흔들었다. 뭉툭했던 뼈는 순식간에 날카로운 검이 되었다.
검을 든 스켈레톤이 그대로 바닥에 흐느적거리는 무언가를 내리찍었다. 그 어떠한 감정도 들어가 있지 않은 기계적인 동작이 몇 번이나 이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기만자’의 시련을 통과하셨습니다.」
눈앞에 쉴 새 없이 안내창이 떠올랐다. 그로 인해 깨달았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저 스켈레톤이 자신을 구했다.
스켈레톤은 천천히 걸어왔다. 툭, 자신의 머리를 두들긴 스켈레톤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손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강이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