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1화
#53 도망자 (1)
차송진은 무엇이든지 느린 아이였다. 남들이 열 마디를 할 때 겨우 한 마디를 더듬거리면서 말했고, 남들이 뛰어다닐 때 겨우 넘어지지 않고 걷는 법을 배웠다.
아이들은 늦된 아이인 차송진을 좋아하지 않았다. 처음 보육원에서 차송진을 맡았던 ‘형’은 툭하면 차송진에게 짜증을 냈다.
‘왜 아직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거지?’
‘내가 널 언제까지 봐줘야 해?’
‘넌 정말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구나.’
매서운 말은 쿡쿡 차송진을 찔렀다. 차송진은 그때마다 입을 닫았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차송진은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은 아이가 되었지만, 그동안 바뀌어 버린 성격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차송진은 모든 일을 담담히 받아들였고, 되도록 입을 열지 않았다. 사람들과는 늘 거리를 유지했다.
내가 말을 걸면, 저 애는 불편해할 거야.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없으니까……. 나 같은 건 그냥 조용히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돼. 그래야 예쁨받을 수 있어.
형은 떠났지만, 차송진은 여전히 그가 심어 놓은 생각대로 살아갔다.
열 살이 되었을 무렵, 차송진과 보육원 아이들은 공장으로 파견을 나갔다.
게이트에서 나온 부산물을 포장하는 공장이었다. 아이들은 고된 일에 불만을 드러냈지만, 차송진은 달랐다.
공장장은 휴식 없이 일하면서도 불만 하나 없이 묵묵하게 일을 처리하는 차송진을 착한 아이라고 말해 주었다.
착한 아이.
생전 처음 듣는 그 칭찬에 차송진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일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가장 일찍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하는 아이인 차송진은 점차 혼자가 되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잘했다.”
그저 제게 주어지는 그 말 한마디가 좋아서.
그렇게 순하게 일만 하는 차송진을, 보육원의 아이들은 별종이라고 불렀다. 때때로 자신을 욕하는 말이 들렸지만, 차송진은 애써 무시했다. 늦된 놈이라고 저를 욕했던 말이 조금 바뀌어 돌아왔을 뿐이니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낫잖아. 적어도 지금은 일을 잘한다고 욕을 먹는 거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차송진은 그때 자신이 왜 욕을 먹어야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공장장님한테 칭찬을 받지 못해서? 다들 착하게 굴면 나처럼 공장장님한테 칭찬을 받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동시에 차송진은 생각했다.
공장장님이 나만 예뻐해 줬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자신의 짧은 생각을 다른 애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너희는 친구도 있고, 서로 잘해 주잖아.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고.’
모두와 멀어져도 상관없다. 자신을 칭찬해 주는 사람 한 명만 있다면.
어차피 다른 애들은 나를 좋아해 주지도 않으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몇 년 동안, 차송진은 그 누구와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식사 시간에도, 일하는 시간에도 언제나 차송진은 혼자였고 그런 그를 챙겨 주는 사람은 공장장밖에 없었다.
가끔씩 그가 자신에게 건네주는 사탕이 너무나도 달아서, 그의 칭찬 한마디가 너무나도 기꺼워서 차송진은 아이들의 날카로운 말과 시선, 따돌림을 무시했다.
그날도 차송진은 가장 늦은 시간에 공장을 나서는 사람이었다. 직접 공장의 문을 닫고 보육원으로 돌아가는 길, 차송진은 빛나는 별을 보며 내일 할 일을 떠올렸다.
아침잠이 많은 공장장님을 위해서 공장 문을 열고, 애들의 출근 카드를 확인하고…….
내일 할 일을 떠올리니 보육원까지의 길은 금방이었다. 보육원 안으로 들어선 차송진은 막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날아든 날카로운 목소리가 아니었더라면, 말이다.
“차송진은 안 돼.”
갑자기 들린 자신의 이름에 차송진은 문고리를 잡은 손을 떼었다. 어떤 반응을 하기도 전, 그 목소리를 이어 아이들의 목소리가 얽히기 시작했다.
“그 녀석은 완전 공장장의 하수인이나 다름없잖아.”
“하긴, 나도 그 녀석은 영 믿음이 안 가. 그놈을 어떻게 믿냐고.”
문 뒤에 숨은 차송진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영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해?”
김영진. 차송진과 달리 이 안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녀석. 모두가 그 이름 앞에 숨을 죽였다.
“그 앤 빼고 진행하는 게 좋겠어.”
무슨 일을 진행하는데? 차송진은 벽 너머에 있을 아이들에게 그렇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은 이 계획에서 제외된 다음이었다. 여기에서 아는 체를 해 봤자 자신들의 계획을 엿들었다며 자신을 두들겨 패기나 하겠지.
‘엿들었다고 혼나기는 싫어.’
차송진은 일부러 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쿵쿵 발을 굴렀다. 문 바깥으로 새어 나오던 불빛이 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차송진은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아이들은 불까지 끄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차송진은 조심스레 제 침대로 들어갔다.
그날 이후 차송진이 늦는 날이면 어김없이 아이들은 저마다 뭉쳐 ‘비밀 이야기’를 해 댔다. 차송진은 그때마다 발을 굴러 자신이 왔음을 알렸지만, 어느 날은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엿듣기도 했다.
그중에는 제법 충격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김민준처럼 죽기 싫으면, 빨리 여길 나가야 한다고.”
김민준이 죽었다고? 차송진은 그 사실에 눈을 깜빡였다. 몇 개월 전부터 김민준이 보이지 않았지만, 차송진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과는 친하지도 않은 데다가, 사석에서는 말 한마디 섞어 본 적이 없는 사이였으니까.
그러니 그 녀석이 사라진 뒤에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김민준이 사라진 게, 그냥 어디로 떠난 게 아니라면?
정말 이 녀석들의 말대로 그 녀석이 죽은 거라면?
다음 날, 차송진은 공장장에게 물었다.
“김민준이라는 애는 어디로 갔어요?”
“아, 그 친구? 몸이 안 좋아졌다고 해서 일하기 편한 곳으로 옮겨 줬지. 그나저나 네가 그 녀석한테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구나.”
그 말에 차송진은 입술을 꿈틀거렸다. 공장장의 눈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나서요.”
“이미 떠난 녀석 생각을 해서 무얼 하니. 그보다 오늘 점심이나 같이 먹지 않으련? 마침 너 주려고 챙겨 온 것도 있고.”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는 공장장의 말을 믿고 싶었지만, 그의 다정한 눈빛 뒤에 서린 냉정한 빛을 본 순간 차송진은 깨달았다.
확실히 이 공장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그날 이후로 차송진은 주변을 살폈다. 아이들의 말대로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동안 차송진이 몰랐던 것은 그렇게 빈 자리가 곧 다시 다른 사람으로 채워졌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특히 많이 ‘사라지는’ 라인은, 이 공장에서도 제일 위험하다고 손꼽히는 라인이었다.
게이트에서 채취된 부산물을 가공 전에 선별하고 세척하는 곳. 게이트에서 막 넘어온 부산물들에는 일반인들에게는 독한 오염 물질이 그대로 묻어 있었고, 그 오염 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세제는 독하디독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아이들의 말을 엿들으면서부터였다.
공장장에게 예쁨받는 차송진은 열 살 이후로 언제나 안전한 포장 라인에 있었으므로.
‘오늘도 토했어.’
‘토한 지 얼마나 됐어?’
‘……일주일.’
‘젠장, 어쩐지 너 얼굴빛이 좋지가 않더라.’
그런 말을 듣게 되면서, 차송진은 아이들이 왜 이 공장을 싫어하는지에 대해 알게 됐다. 왜 자신을 공장장의 하수인이라고 부르며 배신자 취급을 하는지도.
차송진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였다.
벽 너머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계획은 어느새 구체적인 날짜까지 나올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언제 나갈 건데.”
“일주일 뒤.”
“준비는 다 됐지?”
“그래.”
“다들 입조심하고.”
“알겠어.”
그 뒤 일주일 내내 차송진은 아이들의 눈치를 살폈다.
‘차송진은 안 돼, 그 녀석은 공장장의 하수인이니까.’
그런 말을 듣긴 했지만, 혹시나 자신에게도 같이 나가자 묻진 않을까 해서.
하지만 그들이 말한 실행일, 당일이 되고 나서도 차송진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은 없었다. 참다못한 차송진은 탈출 계획을 떠들어 대던 녀석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그, 있잖아…….”
“뭐.”
“오늘…….”
그 말에 대번에 굳기 시작하는 녀석의 얼굴을 보고 나서 차송진은 황급히 말을 바꿨다.
“조금 더 작업 속도를 올려 달라고 그러더라. 아니면 잔업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면서.”
왜 나한테는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아?
진짜 묻고 싶은 질문은 속으로 묻어 둔 채 차송진은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여태까지 차송진은 이들과 그 어떤 교류도 없었으니까. 공장장의 편에 붙어 온갖 혜택을 다 받아 오면서, 편하게 지내 온 그를 보육원의 아이들은 친구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그러니 이곳에서 도망치는 계획에 자신을 데리고 가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차송진은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 한편이 찡하니 아팠지만, 이런 아픔은 이미 익숙한 것이었다.
그날 밤, 차송진은 부러 공장장에게 부탁해 밤새도록 일을 했다. 아이들이 사라졌을 방에 혼자 있고 싶진 않아서.
길길이 날뛰는 공장장을 보며 차송진은 아이들의 탈출이 성공했다고 믿었다.
‘그래, 어딜 가든 행복하게 살아.’
마음속으로 아이들의 행복을 빌어 주며 차송진은 평소와 다름없이 열심히 일했다.
아이들이 돌아온 건, 아니, 잡혀 온 건 그로부터 겨우 하루 뒤였다.
공장의 기둥에 낯익은 얼굴들이 매달려 있었다. 그 얼굴들을 확인한 순간 차송진의 얼굴에서는 핏기가 모두 사라졌다.
“똑똑히 봐라. 자신의 의무를 팽개치고 도망치면 어떻게 되는지!”
그렇게 외친 공장장은 묶인 아이들에게 거침없이 매를 휘둘렀다. 고통에 젖은 비명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동안 잘해 준 것도 소용이 없어! 이렇게 맞아야만 정신을 차리지. 잘해 줘 봤자 사람을 뒤통수치기만 하고!”
그 끔찍한 광경에 아이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
“이대로 묶어 둬라. 아무도 손대지 마!”
공장장의 서슬 퍼런 엄포에 다른 애들은 애써 기둥에 묶인 아이들을 외면했다.
“끄, 흐…….”
그날은 일하는 내내 고통 섞인 신음을 들어야만 했다.
공장장은 바짝 얼어붙은 차송진에게 다가와 다정히 속삭였다.
“저런 놈들을 걱정하지는 마라. 너처럼 일을 잘하는 녀석은 저런 벌을 받을 일도 없으니까.”
그 말에 차송진은 겁에 질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공장장이 역겹고 싫었지만, 감히 싫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날 저녁에도 차송진은 가장 늦게까지 남아 일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보육원에 돌아갔을 때, 차송진을 맞은 것은 단단히 열받아 있는 아이들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차송진은 멱살이 잡힌 채로 내동댕이쳐졌다.
“커헉.”
바닥에 처박힌 차송진에게 곧바로 누군가의 발이 날아들었다. 가슴께를 차이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차송진은 애타게 외쳤다.
“그, 그만둬!”
차송진의 외침에도 발길질은 멈추지 않았다. 한참이나 맞고 나서야, 발이 떨어졌다. 차송진은 쑤시는 몸을 일으켰다. 흉흉하게 눈을 빛내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이 들어왔다.
“왜, 왜 그러는 거야?”
“너지.”
그 말에 차송진은 눈을 깜빡였다.
“뭐?”
“우리들의 계획을 일러바친 거잖아.”
아이들의 의심에 차송진은 거듭 외쳤다.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하지만 차송진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빌어먹을 놈, 지옥에나 떨어져라!”
“네 인생도 처절하게 망하길 기도할게.”
“넌 비겁한 고자질쟁이니까.”
“나는, 난 정말로 아무 말도…….”
차송진은 그렇게 외쳤지만, 이미 그들은 등을 돌린 다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