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5화
#51 미국, 기회의 땅 (4)
게이트에서 헌터는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도 포식자가 아닌 피식자의 입장이 된다. 게이트 안의 모든 요소는 몬스터에 유리하게 맞춰져 있고, 헌터는 그곳에 침투한 불청객이니까.
헌터들이 가장 위험한 때는 게이트에 진입하고 첫 하루. 제대로 된 지식도 없이, 내던져진 세상에서 적응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사정은 달랐다.
이 게이트 안에 있는 정보를 모두 긁어모을 수 있는 한서현이 있는 이상, 우리는 절대로 사냥당하지 않으니까.
“서쪽에서 세 마리 접근하고 있어요. 개로 보이는 몬스터랑 같이 있는데요.”
“정찰병이네.”
나는 한서현이 묘사하는 몬스터를 머릿속에 그렸다.
갈색 갈기를 길게 기른 사자의 얼굴에, 인간의 몸, 거기에 뱀의 발톱을 가진 채 이족 보행을 하는 몬스터라.
머릿속에 떠오른 게 하나 있었다.
일단,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내 눈으로 그놈들을 담아야겠다.
나는 김재호 쪽으로 눈짓했다.
“우리 둘이 간다. 둘은 여기에 있어.”
“알겠어요.”
웬일로 한서현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을 남겨 둔 채, 김재호와 나는 나무 위로 몸을 옮겼다. 이 숲을 빽빽하게 채우며 자라 있는 나무들은 모두 가지와 줄기가 두꺼웠다.
키도 30m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나무들 사이를 우리는 손쉽게 오갔다. 허공을 박차는 기분이 들어 상쾌할 정도였다. 줄기와 줄기 사이를 이동하는 동안 한서현은 나에게 계속 정보를 알려 주었다.
[보스 위치에서 11시 방향이에요.]
한서현이 말해 준 방향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사자와 인간의 혼혈처럼 보이는 몬스터 셋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광택이 도는 검은 개 한 마리를 이끌고 우리 쪽으로 천천히 전진하고 있는 놈들을 나는 나뭇가지 위에서 천천히 살폈다.
2m가 넘는 큰 신장에, 우람한 팔뚝. 거기에 조악하나마 몸을 보호하기 위해 덧대어 입은 청동 감옥까지.
내 예상대로 라이언 헤드였다.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우리의 체취를 느낀 듯, 개가 우리를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개가 컹컹 짖기 전, 김재호의 단검이 먼저 공중을 가르고 날았다.
김재호가 던진 단검이 개의 목에 연달아 꽂히는 걸 확인한 나는 허공에 얼음 창을 만들어 냈다.
얼음 창이 만들어지는 것과 놈들에게 내리꽂히기까지 걸린 시간은 찰나.
호흡을 뺏은 완벽한 기습 타이밍은 몬스터가 반응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퍽, 퍽. 땅을 파고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라이언 헤드의 몸이 그대로 얼음 창에 꿰뚫렸다.
두 마리의 라이언 헤드가 어떤 소리도 내지 못하고 절명했다.
팅━!
하지만 라이언 헤드 하나는 내 얼음 창을 비껴 쳐내는 데 성공했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놀라운 반사 신경이었다.
손에 들고 있던 검으로 얼음 창을 쳐낸 라이언 헤드는 동료와 개의 죽음에 분노의 포효를 내질렀다.
크어엉!
녀석의 시선은 곧바로 나무 사이에 숨어 있던 나에게로 향했다.
“좋아, 네 녀석이 리더였군.”
하지만 불행히도 놈은 혼자 남았고, 놈의 검은 공중에 떠 있는 나에게 닿을 수 없다.
나는 공중에 연달아 다섯 개의 얼음 창을 동시에 띄웠다.
“상대가 너무 나쁘다고.”
놈은 공중에 나타난 얼음 창에 시선이 끌렸지만, 사실 진짜 위험한 건 내가 아니다.
어느새 놈의 뒤로 돌아간 김재호가 손을 휘젓자, 개의 목덜미에 꽂혀 있던 단검이 움직였다.
공중을 날아간 단검은 순식간에 라이언 헤드의 몸을 꿰뚫었다. 하지만 단검은 놈의 두꺼운 가죽에 박혔을 뿐이다. 급소를 비껴 나간 단검으로는 녀석을 죽일 수 없다.
고로 고통에 몸부림치는 놈을 마무리하는 건 내 몫이었다.
공중에 떠 있던 얼음 창 다섯 개가 동시에 놈의 몸에 꽂혔고 놈의 발악은 멎었다.
뚝뚝, 얼음 창에 꿰뚫린 몬스터에서 흐른 피가 땅을 적시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좋아, 끝이네.”
순식간에 라이언 헤드 세 마리와 정찰견 한 마리가 정리됐다.
나는 훌쩍 나무 아래로 몸을 던졌다. 그림자 속에 스며 들어가 있던 김재호도 몸을 일으켰다.
얼음 창을 소환 해제하자 뻣뻣하게 땅에 꽂혀 있던 몬스터들의 사체가 바닥에 처박혔다. 몬스터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얼마 뒤, 한서현이 도착했다.
“빨리 끝났네요.”
“네 덕분이지, 뭐.”
정면으로 맞부딪치면 꽤나 까다로운 상대지만, 거리를 벌린 상태에서 기습까지 했으니 완벽한 우리의 승리였다.
“이 몬스터의 이름은 라이언 헤드. 근접으로 맞붙으면 까다롭지만, 마법 저항력이 낮은 편이니 먼 거리에서 마법으로 상대하는 게 제일 좋아.”
“그나저나 조금 더 깔끔하게 잡을 순 없었어요?”
한서현의 말에 나는 라이언 헤드의 사체로 눈을 돌렸다. 두꺼운 얼음 창에 꿰뚫린 라이언 헤드의 사체는, 글쎄, 솔직히 말해 한 덩어리로 붙어 있는 게 기적에 가까울 정도였다.
“아.”
그러고 보니 한서현에게 필요한 건 되도록 깨끗한 사체였지. 나는 뒷덜미를 긁적거렸다.
“다음번에 조금 더 깔끔하게 처리할게.”
“신경 써 주세요. 사체가 지저분하면 할 수 있는 게 줄어든다고요.”
“알았어.”
“재호 형은 잘했어, 이 개 몬스터는 꽤 쓸 만해.”
“엉.”
와중에 김재호가 처리한 몬스터를 알아보고 칭찬까지 하다니.
젠장! 다음에 칭찬을 받는 건 내가 될 테야.
━누가 보스인지 모르겠구먼.
큼큼, 나는 다시 본론으로 들어왔다.
“어쨌거나 라이언 헤드가 있다는 건, 이 게이트의 클리어 포인트가 거점 점령이 될 확률이 높다는 뜻이기도 해. 이놈들은 무리 생활을 하거든.”
보통은 라이언 헤드의 서식지를 파괴하면 게이트가 클리어되는 식이었다.
숨겨진 요소가 있나 찾아보고는 싶지만, 간단한 미션이라 숨겨진 요소랄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이런 게이트는 수십, 수백 개씩 발견되고는 하니까.
문제는 그 라이언 헤드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는 거다.
“C급 용병대가 처리하기엔 조금 벅찬 편이지.”
라이언 헤드의 서식지에는 보통 스물에서 서른 마리 정도가 사는 편이었다. 라이언 헤드는 지능이 낮은 편이지만, 협동력이 좋아 뭉칠수록 강해진다는 특징이 있었다.
특히 자신들의 튼튼한 몸을 방패 삼아 동료에게 공격의 기회를 만들어 주는, 그들의 방식은 처절하지만 늘 효과가 좋았다.
정신을 차려 보면 라이언 헤드의 사체에 갇혀 어느새 그놈들에게 둘러싸이기 일쑤였으니까.
보통 C급의 용병대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라이언 헤드의 수는 다섯 정도가 한계였고, 그래서 라이언 헤드의 기지를 직접적으로 치는 대신 야금야금 라이언 헤드의 전력을 깎아 먹는 식으로 공략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아까처럼 정찰을 나온 놈들을 처리하고, 함정을 파서 녀석들을 서식지에서 끌어내는 식으로.
하지만 우리의 선택은 달랐다.
“굳이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지.”
우리가 세 마리를 죽이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일 분도 되지 않았다. 수가 많다고 해도 라이언 헤드가 우리를 위협할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놈들의 서식지를 바로 덮치기로 했다.
한서현이 필요한 정보를 모두 수집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불과 한 시간.
정보 수집이 끝난 직후, 우리는 바로 그 서식지를 습격했다.
되도록 깨끗하게 녀석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나는 마법을 사용하는 대신, 단검을 들었다.
경동맥을 끊으면, 재생 능력이 있는 트롤이면 몰라도 생명체 대부분은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니까. 당장 죽을 상처가 아니라도, 동맥이 끊긴 녀석들은 금세 힘을 잃고 쓰러졌다.
베고, 베고, 또 베었다.
내가 그렇게 라이언 헤드를 하나씩 쓰러트리는 동안, 김재호는 날아다녔다. 여섯 개의 단검을 비처럼 뿌린 뒤, 김재호는 그림자에 숨어 위치를 바꾸었다. 적의 뒤에서 나타난 후에는 장검을 휘두르며 단검을 회수. 눈앞에서 휘둘러지는 검에 시선을 빼앗기면 바로 뒤통수에서 날아온 단검에 찔린다.
그렇다고 단검에 신경을 쓰면, 앞에서 날아드는 검을 막을 방법이 없다.
혼자 싸우면서도, 적의 양각을 모두 지배하는 거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음에도 김재호는 저 까다로운 단검을 완벽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정말 천부적인 재능이라는 말밖에 안 나올 정도로 대단한 재능이다.
던지고, 받고. 공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뛰어넘으며 단검을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나중에는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뭐랄까…….
‘믹서기 같은데요.’
━가끔은 네 저렴한 표현력에 할 말을 잃는다.
‘그치만 완전 믹서기 같지 않습니까? 저 공간 안에 들어가면 뭐든지 갈려 버린다고요.’
하지만 그 화려한 퍼포먼스 뒤에는…….
“아! 재호 형! 보스가 정신을 차리니까, 왜 재호 형이 난리야! 이렇게 조각조각이 난 걸 얻다 쓰라고!”
한서현의 잔소리가 따라붙었다. 김재호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봐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수준이다.
그야, 김재호가 처리한 라이언 헤드의 사체에는 멀쩡한 부분이 하나도 없었거든.
“이게, 뭐냐. 이쁘게 처리하자니까.”
우리는 그 끔찍한 참상에도 태연했지만, 차송진은 달랐다.
“우욱, 욱.”
차송진은 피투성이가 된 우리를 보며 헛구역질을 날렸다. 김재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 잘못 먹었어?”
“뭘 잘못 보긴 했지, 저 친구가.”
나는 혀를 쯧 찼다.
━저렇게 심약해서 탑 애들이랑은 어떻게 다녔다냐.
‘그러니까 적응을 못 했겠죠.’
어떻게든 적응해 줬으면 좋겠는데. 앞으로도 수도 없이 봐야 할 장면이니 말이다.
숨이 붙어 있던 마지막 라이언 헤드의 숨통을 끊자 바로 우리 눈앞에 탈출 게이트가 생겼다.
나는 미리 설치해 두었던 게이트 유지 장치의 전원을 켰다.
그렇게 우리의 첫 번째 게이트 공략에는, 만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바깥으로 나온 나는 곧바로 노먼에게 연락했다.
우리의 연락에 노먼은 놀랐다.
[……벌써 처리하셨단 말이에요?]
[뭐, 저희가 이래 봬도 경험이 꽤 돼서…….]
이런 대화는 아무래도 좋았다.
[언제 올 수 있습니까?]
샤워가 간절했다.
* * *
그날 저녁 컨테이너로 간 우리는 죽은 듯이 잤다. 바로 다음 날 공략할 게이트를 원한다는 내 말에 노먼은 당황했지만, 우리는 곧바로 두 번째 게이트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첫째 날을 교훈 삼아, 이번에는 특별히 아티팩트까지 추가로 챙겨 왔다.
━정말 답지 않게 깔끔한 체를 한다니까.
‘답지 않다뇨! 제가 뭐, 더럽게 생기기라도 했단 뜻입니까?’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게이트 안에 와서도 샤워를 고집하는 게 대단해 보여서 말이다.
‘으, 하루만 샤워를 걸러도 온몸이 끈적끈적해져서 견딜 수가 없단 말입니다.’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참겠지만, 미리 아티팩트를 챙겨 오기만 하면 할 수 있지 않나.
━그래도 물을 소환해서 씻는 짓을 안 해서 다행이구나.
‘그건 아무래도 효율이 많이 떨어지니까요.’
이동식 샤워기가 훨씬 낫단 말이지. 그렇게 짐을 바리바리 들고 온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C급 몬스터 땅개를 만났다.
나는 땅개를 확인하자마자 눈을 구겼다. 왜냐? 저 녀석들하고는 아주 안 좋은 추억이 있었으니까.
멸망의 순간, 나를 방해했던 녀석들이었다.
녀석들이 내게 달려들 때 나는 고개를 숙여 놈들을 피한 뒤 단검을 뽑았다.
갈비뼈 사이로 정확히 내 검이 꽂혀 들어간다. 얼굴에 뜨거운 피가 튀었다. 김재호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단검이 날아가 놈들의 머리에 꽂혔다.
땅개 한 무리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오늘은 제가 해 보고 싶던 걸 해 봐도 돼요?”
한서현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죽인 마수는 곧바로 한서현의 마력에 뼈만 남기고 언데드화되었다. 검은 마력이 스며든 스켈레톤의 뼈는 검게 물들었고, 한서현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검은 뼈는 차곡차곡 한서현의 주먹에 쌓였다.
“스켈레톤을 만드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좋지만, 뼈 폭탄을 시험해 보고 싶었거든요.”
“마수의 뼈로 만든 건 처음인가?”
내 말에 한서현은 수줍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번 해 봐.”
한서현은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뼈를 앞에 던졌다. 그리고 동시에 한서현의 흑마력이 꿈틀거렸다.
한서현의 마력을 받은 뼈는 그대로 폭발해 주변을 완전히 날려 버렸다.
“큿!”
폭발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순간 내 몸이 두어 걸음 뒤로 밀릴 정도였다. 주변으로 튀는 파편에 나는 황급히 마력을 끌어내 보호막을 만들었다.
그렇게 눈을 떴을 때, 눈앞에 보인 건 거대한 구덩이였다.
“와우.”
파괴력이 생각보다 대단했다. 겨우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작은 사이즈를 터트렸는데 이 정도라고?
“이거 쓸 때 조심해야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