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화
#50 새로운 갈림길 (3)
나는 공방으로 향했다. 박상편의 마검을 녹이기 시작한 지 벌써 며칠이 지났다. 아무리 지독한 아티팩트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면 됐겠지. 과연 내 예상대로 용광로 속 마검은 그 형태도 남기지 않고 모두 녹아 없어졌다.
긴 막대를 꺼내 휘휘, 금속을 휘젓는 나를 보며 레이가 괴상한 소리를 냈다.
━으어어.
“그 이상한 소리는 뭡니까.”
━널 향한 원한이 들리지 않나?
“하하, 원한이라뇨. 그 빌어먹을 놈의 검에 죽은 죄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놈이 원한을 품더라도 희생자들의 영혼이 저를 보호해 줄 겁니다.”
암, 나쁜 놈을 죽인 건데 원한은 무슨.
내 논리정연한 말에 반박할 힘을 잃은 듯 레이는 침묵했다. 나는 용광로에 담긴 금속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용광로 속에 있는 금속을 거푸집에 넣어 단검으로 만들 생각이다.
━또 거푸집 공법이냐?
“예.”
인터넷에서 철을 다루는 방법을 찾아보기는 했는데, 내가 직접 따라 하기에는 뭐랄까 너무 전문적이어서…….
“도저히 못 따라 하겠더라고요.”
━쫄?
“그런 말은 도대체 어디에서 배워 온 겁니까?”
━여기저기서 주워들었지.
“이상한 것 좀 그만 봐요.”
애초에 평생 금속을 다뤄 온 장인들의 스킬을 하루아침에 내가 따라 하려는 게 건방진 생각인 거다.
━뭔가 괜찮아 보이는데, 그 거푸집 말이다.
당연하지. 팔찌를 만들었을 때는 내가 직접 거푸집을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금 박사의 도움을 받아 장인에게서 구입했다.
━너도 성장이라는 걸 하는구나.
“젠장.”
얄밉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내 손재주는 영 형편이 없었다. 내가 정성을 쏟으면 쏟을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결과는 좋지 않았으니까.
애초에 내가 그 정도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시스템이 날 그렇게 놀리는 일도 없었겠지.
거푸집으로 만드는 것보다 장인이 직접 때려 만든 검이 훨씬 좋겠지마는,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나중에 제대로 된 장인을 고용하게 되면, 그때 다시 녹여서 제대로 된 아티팩트를 만들어야겠다.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단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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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단검 / B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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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ㆍ단검
저주받은 아티팩트를 녹여 거푸집에 찍어 낸 단검.
사용자의 마력을 녹여내어 검기로 방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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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이 닿은 부분이 거의 없어선지 내 손재주를 놀리는 문구도 없었다. 젠장, 정성을 그렇게 쏟은 의자는 못된 말로 저주했으면서 말이다.
막상 이름은 이쪽이 ‘저주받은’ 단검인데, 설명을 보면 아무래도 그 의자가 저주받았다고 말해야 맞는 것 같단 말이지.
커다란 검은, 손바닥만 한 단검 여섯 개로 만들어졌다.
재료에 비해 만들어진 아티팩트의 등급이 낮은 편이었지만, 특수한 기능이 붙었다.
사용자의 마력을 녹여내어 검기로 방출한다는 부분.
그게 어떤 뜻인지는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나는 단검을 꺼내 마력을 불어 넣었다. 그리고 곧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단검이 마력을 방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단검끼리 공명하잖아?”
하나였던 것을 여섯 개로 쪼갰기 때문일까. 여섯 개의 단검은 마치 하나처럼 서로 공명했다. 하나의 단검에만 마력을 불어 넣어도, 곧 여섯 개의 단검에 마나가 전달된다는 뜻이었다.
“이래서야 여섯 개를 세트처럼 써야겠네.”
내가 원래 쓰던 단검을 저번에 잃어버린 터라, 슬쩍 하나만 빼돌릴 생각이었는데……. 이래서야 완전히 한 세트로만 써야겠다.
━그러고 보니 네 단검을 그날 잃어버렸지.
“예.”
가면을 챙긴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꽤나 아쉬웠다. 그거 무려 삼천만 원이나 주고 산 건데. 아직 2천 990만 원어치는 더 써먹어야 한단 말이다.
━그동안 쓴 게 10만 원어치밖에 안 되는 거냐. 그런 거치고는 되게 야무지게 많이 썼던 거 같은데.
“그만큼 앞으로 더 많이 쓸 수 있었다는 거죠.”
하지만 이미 없어진 물건, 이렇게 한탄을 해서 무얼 하나. 조만간 나도 무기를 새롭게 구해 봐야겠다. 그동안 단검 하나로 너무 오래 버틴 감이 없잖아 있지.
금 박사한테 부탁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루트를 알아봐야겠다.
일단은 이 단검부터 확실히 테스트해 보고 말이지.
악착같이 사용자의 마력을 빨아먹던 아티팩트의 의지는 사라졌지만, 마나를 탐하던 성질만은 그대로 금속에 녹아 있었다.
제아무리 마나를 받아들이는 회로를 새겨도 반쯤은 뱉어 내는 게 일반적인 아티팩트인데, 이놈은 달랐다.
그 어떤 마나 회로도 새겨져 있지 않았음에도 단검은 어떤 아티팩트보다 마나를 탐욕스럽게 빨아들였다. 심지어 내 몸에 흐르고 있는 마나까지 탈취해 갔다.
“이거야, 원. 이래서야 다른 아티팩트는 사용하지도 못하겠는데.”
문제는, 다른 아티팩트에 사용될 마나까지 자기가 다 빨아들인다는 거였다.
“질투심이 굉장하네.”
질투, 이 표현은 귀여운 편이다. 이걸 사용하는 동안 다른 아티팩트를 전혀 사용하지 못하게 되다니. 엄청난 페널티였다.
지금도 내 몸에 걸쳐진 다른 아티팩트가 차례대로 무력화되는 게 느껴질 정도니까.
흠, 이 속성을 어떻게 없앨 수 있나. 마나 회로도 깔려 있지 않은 검을 상대로 어떻게?
모래가 발밑에 깔렸다. 어라. 내가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공방의 문이 벌컥 열렸다.
“무슨 일이에요!”
한서현이었다.
“너야말로 무슨 일이냐!”
내 외침에 한서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 갑자기 반지의 신호가 사라져서…….”
그 말에 나는 내 손가락을 봤다. 아, 반지. 그러고 보니 전에 한서현이 나한테 웬 반지를 하나 줬었지.
이 단검 때문에 그 반지의 신호도 끊긴 건가.
나는 한서현에게 차분히 상황을 설명했다. 내 설명을 들은 한서현이 서늘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그 단검. 당장 가져다 버려요.”
아무리 그래도 단검을 가져다 버리라니. 나는 단검을 꼭 끌어안고 말했다.
“안 돼!”
“그거 쓰면 다른 아티팩트를 전부 못 쓴다면서요! 완전 쓰레기잖아요!”
“그래도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놈이야. 자, 봐라.”
나는 다섯 개의 단검을 바닥에 깔아 놓은 채 하나의 단검을 쥐었다. 그 단검에 마력을 불어 넣자 바닥에 깔린 단검에까지 내 마력이 연결됐다.
내 손짓에 따라 바닥에 깔려 있던 단검이 일제히 나에게로 날아들었다.
“어라.”
“미친!”
한서현이 급하게 마력을 끌어올려 내 앞에 스켈레톤을 소환했다.
내게 날아들던 단검은 스켈레톤에 막혀 튕겨 나갔다. 개중에 몇 개는 스켈레톤의 뼈에 깊숙이 박힌 것도 있었다. 그대로 내 몸으로 날아들었다간, 음, 몸에 구멍이 숭숭 뚫렸겠는걸.
“제정신이에요?”
“와, 대단해! 소환 속도가 엄청 늘었네. 이야, 언제 이렇게 훈련했대.”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해 봤자 하나도 안 기쁘거든요! 얼렁뚱땅 칭찬으로 넘길 생각 하지 말아요.”
“큼, 큼. 어쨌거나 연습만 좀 하면 꽤 괜찮게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몸에 닿은 단검뿐만 아니라, 아예 손을 대지 않은 다른 단검까지 조종할 수 있다니!
게다가 워낙 마력을 받아들이는 성질이 좋아서 그런지, 마력의 소모도 적었다.
“당장 갖다 버려요.”
한서현은 여전히 단호하게 말했다.
젠장, 너무 어수룩하게 쓰는 모습을 보여 줘선가. 영 못 믿겠다는 얼굴이었다.
“쳇, 재호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았는데.”
“……보스가 쓸 게 아니에요?”
“이런 단검은, 나보다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쓸 수 있는 재호에게 잘 어울리겠지. 게다가 여차하면 그림자 속으로 숨으면 되니까, 위험하게 날아드는 것도 재호한테는 별로 페널티가 아닐 거 아니냐.”
“흠.”
한서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보스가 쓸 게 아니라는 거죠…….”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곧 한서현이 다시 빙긋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 그 단검. 무척이나 유용할 것 같아요.”
“조금 전까지는 갖다 버리라며?”
“……버리기엔 아까운 것 같긴 하네요. 꼭 재호 형 줘요, 보스는 쓰지 말고.”
“내가 그렇게 못 미덥나?”
“보스라면 필살 동귀어진! 이러면서 자기 몸이 뚫리든 말든 써 버릴 것 같으니까 말이죠.”
━맞는 소리로군.
도대체 나를 뭘로 생각하는 건지.
━뭘로 생각하기는, 툭하면 자기 몸 아까운 줄도 모르고 제 몸 갈기를 즐기는 마조히스트로 보지.
“끄응.”
오늘따라 양심의 상태가 까칠하다. 아니, 근래는 매일 이랬던 거 같은데? 레이에게 투덜거렸다가는 죄다 네 잘못이라는 말이 돌아올 테니, 모르는 척해야겠다.
어쨌거나 한서현의 허락까지 받았으니, 다행이다.
각각의 단검에 얼마만큼의 마력을 들여야 움직이는지. 방향은 바꿀 수 있는지. 아직 실험해야 할 부분은 많았지만, 몸과 마력을 다루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김재호이니만큼 맡겨 두면 스스로 깨닫겠지.
━또 자율 학습법이라고 쓰고 방치라고 읽는 학습법을 단행할 생각이구만.
‘크흠, 마음 같아서는 저도 제가 다 사용법을 알아내서 주고 싶지만, 재호와 저는 상황부터가 다르지 않습니까?’
문자 그대로 공간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김재호와 달리 나의 사용법은 이차원적일 수밖에 없다. 내가 뭘 알아내서 알려 주더라도 결국에는 김재호만의 사용법을 알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내가 이 단검을 좀 더 써먹어 보고 싶다고 말하면, 한서현이 나를 죽일 것 같기도 하고…….
나는 후딱 말을 돌렸다.
“요새 연구하고 있는 건 좀 어때? 보여 줄 수 있어?”
내 질문에 한서현은 손가락을 까딱해 구멍이 숭숭 뚫린 스켈레톤을 소환 해제하고 다시 눈앞에 검은 스켈레톤을 불러냈다.
“대충 느낌은 알 것 같아요.”
근래에는 모래만 주로 사용해서 이 녀석이 네크로맨서인 걸 깜빡할 지경이었지만, 한서현이 요즘 가장 힘을 쏟고 있는 건 바로 스켈레톤의 강화였다.
저번에 실험용으로 가지고 간 시체들로 집중적으로 연구한 것도 뼈를 가지고서 할 수 있는 마법의 수를 늘리겠다는 거였으니.
한서현이 부릴 수 있는 스켈레톤의 수는 총 세 구로 늘었다.
처음 계약한 흰색의 스켈레톤, 박상편의 시체로 만든 다크 스켈레톤. 그리고 저번에 거두었던 실험용 중에 추가로 계약한 세 번째 스켈레톤.
한서현은 그 스켈레톤 위에 뼈로 된 방어구를 얹었다.
“본 아머하고 본 소드예요.”
검은 뼈로 된 갑옷과 검을 걸친 스켈레톤은 제법 그럴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뼈의 내구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한서현의 마력이 깃든 뼈들은 달랐다.
뼈처럼 가볍되 강철보다 단단했다.
게다가 움직임들도 재빨랐다. 대충 단검을 들고 스켈레톤과 맞붙어 본 결과 아티팩트와 거의 비슷한 내구도를 가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뼈를 응용해서 이런 것들도 할 수 있더라고요.”
건물 밖으로 나선 한서현은 나에게 새로운 기술을 보여 주었다.
이른바 ‘뼈폭탄’.
자신이 소환한 뼈를 터트리는 기술이다. 마치 수류탄의 파편처럼 터진 뼈들의 조각들이 연쇄적인 피해를 줬다.
그리고 그 폭발은, 꽤나 대단했다. 뼈 폭탄이 터진 곳 주변이 그야말로 초토화됐거든.
“허어…….”
“하지만 뼈를 소모해야 해요.”
“재료가 필요하다는 거구나.”
“예. 스켈레톤을 터트리는 것도 가능하긴 하던데, 스켈레톤도 파괴되더라고요.”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흠, 어차피 다들 나쁜 놈이었으니까. 뼈까지 가루로 만들어 버려도 괜찮을 거야, 으응…….
“동물의 뼈는 어때?”
“저번에 닭 뼈로도 해 보긴 했는데, 파괴력이 턱없이 낮던걸요.”
마수의 뼈는 아직 시도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동물의 뼈로는 저런 파괴력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뼈 중에 가장 파괴력이 강한 건 인간이라고 했다. 그중에서도 각성자의 뼈.
사람의 신체 부위를 소모품으로 쓴다는 생각 자체가 영 비인륜적이긴 해도 확실히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마수의 뼈가 더 효과가 좋을 것 같은데, 아직 확실하게는 모르겠어요.”
네크로맨서의 마력은 마수의 사체와 특히 궁합이 좋으니, 확실히 그쪽도 파괴력이 괜찮을지도.
‘흠, 다음에 게이트에 들르면 몬스터 사체를 잔뜩 주워 와야겠네.’
암시장에서 파는 건 전부 다 바가지가 심해서 말이지. 역시 뭐든 산지 직송이 최고인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