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49 내가 뿌린 씨 (2)
쑤어하오주는 자신의 앞에 앉은 남자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사호주? 그게 네 이름이지?”
그렇게 말한 남자의 이름은 송천길 팀장. 각범부 소속의 경찰관이었다. 그의 옆에는 둘 사이의 모든 대화를 통역할 통역가가 와 있었다.
송천길 팀장의 말을 전달받은 쑤어하오주는 눈을 찌푸리며 남자의 말을 정정했다.
[쑤어하오주. 내 이름은 ‘사호주’라고 부르지 않아.]
쑤어하오주는 제 이름을 말하고 다시 입을 닫았다. 왜 여기까지 끌려왔는지 모르겠다.
그냥 날 내버려 두면 좋겠는데.
그녀의 옆에 붙어 있는 통역가는 그녀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래, 쑤어하오주 양. 여기에는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왔다고 했는데. 그 대상이 벨츠머츠라는 게 맞나?”
그 말에 쑤어하오주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걸 왜 네가 묻느냐는 듯이.
[제대로 답변하는 편이 좋아요.]
통역가의 말에 쑤어하오주는 눈을 찌푸렸다. 대체 왜 다들 이 난리인지를 모르겠다.
“벨츠머츠는 지금 대한민국의 현역 국회의원을 살해한 혐의로 공개 수배된 범죄자들이야.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말해야 해. 아니면 한국에서 추방당할 수도 있어요오?”
송천길 팀장의 말은 한국어를 모르는 쑤어하오주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제대로 털어놓지 않으면 쫓아내겠다는 거군.
더럽게 생긴 인상만큼이나 더러운 성질머리를 가졌네.
팔짱을 낀 쑤어하오주가 말했다.
[다 말했잖아. 벨츠머츠의 션은 내 아버지를 죽였어. 나는 그 원수를 갚으러 한국에 온 거고. 그것뿐이야.]
[션이요? 그게 그의 이름인가요? 션?]
통역가의 흥분한 얼굴에 쑤어하오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 뭐야, 이 사람들.
[그 사람 이름도 몰랐던 거야?]
생각보다 아는 게 전혀 없잖아, 이놈들? 쑤어하오주의 얼굴에 황당함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자신만만하게 이름을 알려 주기에 여기저기 퍼진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나한테만 알려 준 거야?’
쑤어하오주는 알 수 없는 간질거림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션이라니, 어떤 한자를 쓰죠?]
통역가의 말에 쑤어하오주는 눈을 치켜떴다.
[걔는 내 거야.]
쑤어하오주의 말에 통역가의 표정이 굳었다. 예의 없는 말투는 그렇다 치고 그 내용이 이상해서. 겨우 정신을 가다듬은 통역가가 쑤어하오주의 말을 정리했다.
[……그건 그 사람을 직접 잡고 싶다는 뜻인가요?]
[응, 직접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거야.]
그 살벌한 말투에 통역관은 흠칫 놀랐다. 열네 살 여자애라고 들었는데. 도대체 이 기백은 뭐란 말인가. 놀란 통역가가 말을 잇기 전, 쑤어하오주가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어쨌거나 그러니까 걔에 대해서는 알려 줄 수 없어. 걘 내 거고 내 손으로 죽일 생각이니까.]
통역가는 잠시 고민했다. 이 말을 그대로 송천길 팀장에게 전해도 될까 하고. 하지만 오늘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는 정확한 통역을 위해서였다. 내용을 감추거나 숨길 순 없었다.
그 말을 들은 송천길 팀장은 헛웃음을 지었다.
“허, 혼자서 한국까지 왔다는 데서 알았지만. 이 아가씨, 장난이 아닐세. 그래도 말이야, 현실이란 게 그리 녹록하지 않아요.”
뒤로 이어진 송천길의 말을 통역가가 전달했다.
[하오주 양, 당신은 겨우 열네 살이에요.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현실적으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여기에 계신 송천길 팀장님께서는 오랜 시간 동안 벨츠머츠를 쫓아온 분이세요. 알고 있는 정보를 넘겨주면, 벨츠머츠를 잡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그 말에 쑤어하오주의 입술이 들썩거렸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할 수 있는 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누굴 어린애로 알아!’
자신의 외관에 맞는 신분을 구해다 준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을 뿐인데, 졸지에 열네 살 꼬맹이가 된 상황에 짜증만 났다.
이 덜 자란 몸을 가지고 성인이라고 우길 수는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열네 살이라니.
게다가 현실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니. 마음만 먹으면 눈앞에 있는 남자나 자신의 옆에서 자신의 성질을 긁어 대는 통역가를 짓이겨 죽일 수도 있었다.
그러지 않는 이유는 오직 하나.
일을 키웠다가는 그 여우 같은 놈이 겁을 집어먹고 어디론가 도망갈까 봐서였다. 그놈은 내 거야. 내 파파를 죽였으니, 내 손으로 그놈의 목숨을 거둬 주는 게 당연하잖아?
쑤어하오주는 눈앞에 있는 험상궂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저딴 놈에게 션을 넘기라고?
절대 사양이다.
송천길 팀장의 눈치를 본 통역가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협조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추방당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쑤어하오주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하라고 해, 추방.]
[입국 심사장에서 벨츠머츠의 범죄에 대해 털어놓은 건 대한민국 정부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통역가의 질문에 쑤어하오주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야 왜 한국에 왔는지를 물어보니까. 입국 심사대에서는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고 그랬단 말이야.]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죽어도 벨츠머츠에 대해 말하지 않았을 텐데.
션을 저놈에게 빼앗기느니, 차라리 추방당하는 편이 나았다. 다른 방법으로 한국에 들어오면 그만이지, 뭐. 이번에는 바보처럼 모든 걸 털어놨다가 걸렸지만, 다음에는 조금 더 신중할 거다.
‘이래서 다들 거짓말을 하는 건가.’
그동안은 거짓말을 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던 쑤어하오주지만, 지금 배웠다. 너무 솔직하게 모든 걸 다 털어놓으면 안 된다는 걸.
통역가는 고집을 부리는 쑤어하오주를 보며 곤란한 얼굴로 물었다.
[정말 추방당하는 길을 택하겠다고요?]
[그래!]
[추방당하고 나서는 다신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데도요?]
[어떻게든 방법은 찾으면 그만이지.]
[하오주 양, 당신의 생각보다 밀입국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에요. 게다가 대한민국 정부를 적으로 돌리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에요.]
통역가의 말에 쑤어하오주는 팔짱을 낀 채로 발을 흔들었다.
당당하게 말했지만, 쑤어하오주도 사실 이곳에서 쫓겨나고 싶은 건 아니었다. 한국으로 오기 위해 전 재산을 전부 털었으니까.
적사회가 무너진 뒤, 어린 여자애로 보이는 그녀가 돈을 버는 건 쉽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쑤어하오주는 주변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야 했고, 그건 그리 좋은 경험이 아니었다.
그래도…….
[난 절대 션에 대해 말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자신의 손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손에 션이 쓰러지는 꼴은 못 보겠다.
그놈을 잡는 것도, 그 목숨을 끊는 것도. 모두 자신의 몫이었다.
그걸 위해 살아남았으니까, 그걸 위해 버티고 버텨 여기까지 왔으니까.
나한테 기다리라고도 했고, 찾아오라고도 했으니까. 너 같은 놈이 끼어들 일이 아니라고.
배 째라는 듯 의자에 등을 묻어 버린 쑤어하오주를 보며 송천길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송천길 팀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좋아, 오늘은 더 얘기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 같군.”
송천길 팀장은 어깨를 으쓱이며 통역가에게 말했다.
“적당히 밥 주고 오늘은 일찍 재워. 내일 또 이야기를 나눠야 할 테니까.”
통역가는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송천길 팀장은 얼굴을 잔뜩 구겼다.
머릿속에 담배 생각뿐이었다.
“이거 좀 쉽게 가나 했더니, 씨X.”
그 누구도 정체를 알지 못하는 벨츠머츠에 대해 언급하는 중국인 여자애가 있다는 소식에, 그 얼마나 기뻐했던가.
그 어떤 이도 모르는 벨츠머츠의 과거를 캐낼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건만, 쉽게 설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증인은 입을 굳게 닫아 버리고 말았다.
송천길 팀장은 인상을 쓰며 혀를 찼다.
그래 봤자 열넷 여자애.
“어디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보자고.”
* * *
그 이야기는 고스란히 설록진에게 전달되었다.
“벨츠머츠의 정체를 아는 여자애라.”
단 일 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제일 인지도 높은 빌런으로 성장한 벨츠머츠지만, 그 누구도 그들의 과거는 알지 못했다. 심지어 탑의 빌런들 또한 그의 과거는 모른다고 말할 정도니.
그래서 그들의 뒤에 어쩌면 거대 길드가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던 설록진이었다.
그런데 그의 과거를 알고 있는 ‘중국’ 여자애라.
“중국인이었나?”
중국에서 온 열네 살짜리 여자애. 그리고 션이라는 이름. 풀리지 않았던 퍼즐이 풀리는 것 같았다.
애초에 벨츠머츠의 리더가 ‘한국인’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한국에서 그들의 정보를 찾는 것이 불가능했던 거라면. 모든 게 다 말이 된다.
쑤어하오주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알아낸 건 션이라는 이름뿐이었지만, 그것 또한 큰 수확이었다.
“이름 말고도 알고 있는 게 많을지도 모르지.”
문제는 순순히 입을 열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거지만…….
설록진에게는 그건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한번 만나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설록진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 * *
다크웹은 아주 신이 났다.
「제목 : 벨츠머츠 사실은 중국인?
알고 보니 중국인이었냐고 ㅋㅋㅋ 중국에서 범죄 저지르고 한국 와서 한다는 짓 : 국회의원 암살?
대체 뭐 하는 놈이냐」
댓글 반응도 난리가 났다. 단 한 명도 나를 한국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죄다 중국인에, 조선족이라는 말에, 아주 나를 잡아먹질 못해 안달이 났다.
억울하다. 난 나름 애국잔데.
「제목 : 벨츠머츠 ㄹㅇ 10새끼인 이유
(공항에서_찍힌_피해자_사진).jpg
이런 애를 조실부모하게 만듦; 역시 피도 눈물도 없는 중국인;」
쑤어하오주가 댄 신분증의 나이가 14살이었다는 이유로 나는 인터넷상에서 개같이 까이고 있었다. 하도 내가 그동안 저지른 일이 많다 보니, 그동안의 일까지 끌려 나와 저잣거리에 매달렸다.
분명 좋은 일을 한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샌가 나의 선행은 싹 다 묻혀 버렸다.
아니, 다른 건 다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중국인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 뭐람.
「제목 : 벨츠머츠 당연 한국인 아니냐?
완전 애국자임 한국말도 잘함 한국에서 주로 활동함
나쁜 국회의원 일부러 잡아 죽인 거 보셈
진짜 애국자 아님?」
나는 다크웹에 접속해 내 변호를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넘버원 타이완과 천안문 이야기로 도배되기 시작한 댓글을 확인한 나는 창을 닫았다.
젠장. 이래서야 내 국적이 중국인으로 아예 박제될 판이다.
아닌 게 아니라, 벌써부터 범죄 위키에는 벨츠머츠의 리더가 중국인일 수도 있다는 말이 올라가 있었다.
허위 사실을 이렇게 당당하게 유포해도 되는 건가.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뭐, 내 국적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아무래도 쑤어하오주가 각범부에 인계된 건 큰일인데.’
쑤어하오주는 내 얼굴을 안다. 그녀가 협조한다면 이 대한민국에 내 몽타주가 뿌려지는 건 시간문제다.
━여태까지 여러 가지 변명을 하면서 가면 속 익명성을 지켜 왔는데, 다 헛것이 돼 버렸군.
‘아직은 몽타주가 안 뿌려졌잖습니까! 아직은 괜찮은 겁니다, 아직은.’
안절부절못하는 날 본 한서현이 툭 하고 입을 열었다.
“그래도 그 사람,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비협조적인가 봐요. 겉모습은 어린애니까 다들 겁을 집어먹고 입을 다물었다고 생각하는 중이지만, 그런 게 아니겠죠.”
“나에 대해서 불어 버렸다가 각범부에서 나를 잡아가면 큰일이니까. 하오주가 원하는 건 나를 직접 잡아 죽이는 거잖아?”
“그런 말을 태연하게 잘도!”
한서현의 말에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어쨌거나 이거 큰일인데.”
각범부의 사람들은 나에 대해 집요하게 캐물을 거다. 국회의원을 살해한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니까. 지금은 쑤어하오주가 굳게 입을 닫고 있다지만, 그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녀의 입을 열 수 있는 사람을 난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 이게 문제다.
나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설록진이 쑤어하오주를 노릴 수도 있어.”
내 말에 한서현이 얼굴을 구겼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