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148화 (148/352)

제148화

#48 벨츠머츠로 사는 법 (3)

“보스는, 재호 형은 나를 그냥 다른 사람이랑 똑같이 생각해 줘요. 괴물이나, 괴짜나, 사이코패스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나라는 사람으로 봐주잖아요.”

네크로맨서라는 재능을 각성하기 전에도 한서현은 주변 아이들에게 인기가 끔찍하게 없었다고 했다. 곤충의 사체를 모으고, 해체하는 아이 같은 건 소름 끼치기 때문이겠지.

“형은 좋은 사람이었지만, 나를 이해하진 못했어요. 그냥, 모르는 체했을 뿐이죠. 내 착한 동생은 그런 짓을 할 리 없어. 형의 말을 들은 날, 나는 내가 모아 왔던 곤충을 다 버렸어요.”

한서현은 한조희의 앞에서 누구보다 정상인 척했다. 사랑하는 형이 자신을 싫어하게 되는 것만큼은 누구보다 보기 싫었으니까.

“보스가 나타나기 전까지, 나는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여 줄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나도 너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해.”

“그래도 보스는 나를 나로 봐주잖아요.”

내 얼굴을 들여다본 한서현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보스는 나를 그냥 나로 봐요. 그래서 보스 앞에서는 마음이 편해요. 나를 어떻게 판단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내가 ‘실험체’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내가 끔찍한 사이코패스라 그걸 원한다고 생각하죠.”

그렇게 말한 한서현이 나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하지만 보스는 그냥 ‘아, 너한테 그게 필요하구나.’ 그러고 끝이잖아요.”

“그야…….”

“보스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얼마나 위안이 됐는지 몰라요.”

나는 너보다 백 배는 더 끔찍한 사람을 알고 있으니까. 아니, 나부터가 너보다 백 배는 끔찍한 사람이었으니까.

말할 수 없는 진실이 입을 틀어막았다.

“보스는, 그리고 재호 형은 나를 유일하게 받아 준 사람들이에요.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대신, 나를 무서워하는 대신. 그냥 내가 나라고 받아 준 사람이요.”

한서현의 말에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한서현이 말하는 게 무엇인지 나는 안다. 나 또한 거짓말이라는 재능 때문에, 내 못난 성격 때문에 늘 외톨이로 지냈으니까.

정호산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친구 하나 없었고, 그 녀석이 죽은 다음에는…….

혼자였다.

누구한테도 나는 내 속에 담겨 있던 말을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냥 형을 죽인 놈들한테 복수해야겠다, 그 생각뿐이었는데……. 보스 덕분에 살아간다는 게 제법 괜찮아졌어요.”

“어, 어. 그러냐.”

나는 한서현의 눈을 피해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한서현을 끌어들인 건, 이런 뭔가 멋진 일 때문이 아닌데. 나는 너를 그냥 이용해 먹을 생각이었는데.

그때, 한서현의 말이 나를 쿡 찔렀다.

“하지만 그 사람은 달라요.”

“아.”

확실히 차송진은 다르지. 차송진은 평범하게 산 소시민이다. 차송진에게 우리는 끔찍한 빌런이다. 제법 우리를 ‘덜’ 무서워하게 됐다고 해도, 우리를 받아들이는 건 다른 문제지.

“그러니까 싫어요.”

한서현의 말에 나는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래서야, 친하게 지내라는 말을 도저히 꺼낼 수가 없네. 그냥 싫어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겠다.

내 얼굴을 살핀 한서현이 시무룩한 얼굴로 덧붙였다.

“보스가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싫은 건 싫은 거예요.”

기가 죽은 녀석을 보니 양심이 쿡쿡 찔렸다.

그래, 차송진이 뭐가 중요하냐. 결국 내게 중요한 건 우리 벨츠머츠가 아니겠는가. 어쨌거나 한서현은 내 소중한 부하다. 언제나 믿을 수 있는 네크로맨서, 집안일도 잘하고, 가끔은 사고를 친대도 늘 든든한 우리 첫째.

그 첫째가 차송진이 싫단다.

“나도 우리 싫단 사람 싫어.”

우리가 친구가 없지, 가오가 없냐.

“말만 그렇게 하고 은근슬쩍 벨츠머츠에 넣으려는 거 아니고요?”

“네가 싫다며.”

“그…….”

“네가 싫다는데 뭐가 더 중요하냐.”

“죄송해요. 저 때문에.”

“미안해할 필요 없어. 말했잖냐, 나도 우리 싫단 사람 싫다고. 그리고 애초에 억지로 붙잡아 둔다고 뭐가 되겠어.”

차송진을 이대로 붙잡아 둔다고 차송진이 진짜 ‘우리’가 될 수 있을까.

애초에 벨츠머츠를 만들었을 때, 나는 벨츠머츠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겨우 열일곱 어린애, 그리고 엉망진창인 삶을 살아온 개조 인간 하나.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우리의 관계는 부실했고,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래 위에 쌓은 성이래도, 누군가에게는 집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이 관계가 소중해졌다면 더는 모래 위의 성이라고 말할 수가 없지.

적어도 저 녀석이, 나를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나 또한 한서현을 제대로 생각해 줘야 하는 게 맞는 거다.

━뭔가 달라졌구나.

‘예.’

정호산과의 일을 겪으며 깨달았다.

어느새 난 이 녀석들에게 꽤 정이 들어 버린 걸지도 모르겠다고. 감히 내 주제에, 책임지고 싶은 게 생겨 버렸다고.

괜한 부끄러움에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다.

결론은 이거다.

“대충 상황이 정리되면 내보낼 테니까 걱정하지 마.”

“좋아요. 믿을게요.”

잠시 숨을 고른 한서현이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이대로 내보낼 수는 없잖아요. 아는 게 너무 많아졌는데…….”

그 말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확실히 그 문제가 있지.

처음 내가 차송진에게 모든 걸 다 보여준 이유는 차송진을 벨츠머츠에 넣겠다는 생각이 있어서였다.

그 생각도 너무너무 안일했지.

조건만 따졌지, 아이들의 생각도 차송진의 생각도 묻지 않았으니.

그러니 이런 일이 생긴 거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내 능력으로 기억을 왜곡시킬 수 있거든. 적당한 공포 분위기 조성과 협박이 필요하지만……. 어쨌거나 내보내기 전에 적당히 기억을 건드려 놓으면 될 거야. 우리에 대해서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할걸.”

이 방법 을 가르쳐준 설록진에게 새삼 감사…… 는, 무슨. 엿이나 먹으라지. 어쨌거나 기껏 익힌 기술을 써먹지 않을 순 없지.

원래 ‘내 편’이 될 사람에게는 쓰지 않으려고 한 기술이지만, 차송진은 이제 ‘우리’가 아니니까.

“적당히 제 앞가림은 할 수 있게 됐다 싶으면 내보낼 테니 걱정하지 마.”

“근데 대체 그 앞가림한다 싶을 때가 언제 오는데요?”

나는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차송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꼴을 보니 아직 먼 것 같긴 하구나.”

“젠장.”

나는 낮게 욕을 중얼거리는 한서현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 * *

그날 이후 나는 차송진의 처우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기억이야 왜곡하면 그만이라고 해도 보낼 데가 마땅찮았다.

벨츠머츠에 속하지 못할 바에야 시리우스로 돌려보내는 편이 낫겠지마는, 그랬다간 설록진의 손에 또다시 넘어갈 가능성이 큰데, 그랬다간 또 백화점 테러 사건 같은 게 일어날 테고…….

‘역시 답은 해외인가.’

국내에 있는 한 설록진의 눈을 피하기 어렵다.

웬만해서는 우리랑 함께 움직여 줬으면 싶지만, 그게 안 된다면 외국으로 보내는 게 낫겠지.

체력을 기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외국어라도 가르쳐야겠다.

“혹시 외국어 뭐 할 줄 아는 거 있어?”

내 질문에 차송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외, 외국어는 왜?”

“대답이나 해.”

“저, 저는 한국말도 겨우 하는뎁쇼…….”

확실히 겨우 하는 것 같긴 하네. 바들바들 떨면서 내게 그렇게 대답하는 차송진을 보며 나는 혀를 찼다. 그래도 영어 정도는 대충 할 수 있지 않을까. 생활 영어 교재 몇 개를 사 온 나는 그대로 차송진에게 교재를 건넸다.

“크흑!”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준 교재를 울먹이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공부가 싫은가?’

차송진, 이 녀석. 몸뿐만 아니라 정신 상태까지 글러 먹었군.

“이따가 저녁에 검사할 테니까 그 전에 내가 표시해 둔 데까지 확실히 공부해 놔.”

나는 단단히 경고를 남기고 왔다.

차송진 다음으로는 김재호의 차례다. 나와 눈이 마주친 김재호는 입술을 삐쭉거리고 있었다.

“뭔데.”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긴. 뭐 때문에 그러는 건데?”

툭툭 옆구리를 치자 그제야 슬쩍 입을 연다.

“왜 쟤만 책 줘.”

“아아, 그게 서운한 거냐?”

하긴, 김재호에게도 교육이 필요할지도. 하지만 영어 전에 한글부터 정확히 가르쳐야지. 그러고 보니, 한 번도 김재호의 한글 실력을 테스트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일단 받아쓰기부터 해 볼까.”

“받아쓰기?”

“그래, 내가 불러 주는 대로 받아 적으면 되는 거야.”

나는 몇 가지 문장을 불러 주었다. 곧 설날이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다음으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올 법한 문장 몇 개를 생각해내 말해 주었다.

“고양이는 야옹야옹, 병아리는 삐약삐약.”

뭐, 그래도 이 정도는 전부 다 맞히지 않을까?

「세ㅎH 본망니 바두시오」

「거냥이눈 냐냐 볍아리눈 쁴야쁴야」

나는 그 얼마나 낙관적이었던가!

이럴 수가.

단 하나도 맞은 문장이 없었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내 잘못이다.”

그동안 김재호의 교육에 소홀했던 결과다. 사람 죽이는 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글부터 떼어야 했는데! 사람 대가리만 똑똑 딸 줄 알았지, 우리 애가 맞춤법도 모르고 지금!

“왜 그러는 거야?”

종이 앞에 꿇어앉은 나를 바라본 김재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게 그렇게 대단해? 보스를 무릎 꿇릴 정도로?”

“그렇지. 여러모로 파괴력이 대단하다고.”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 우리 재호를 바보로 둘 수는 없다.

“안 되겠다. 너도 차송진 씨랑 같이 공부해야겠다.”

“그렇지만 오늘은 다른 걸 하기로 했잖아. 나 봐준다며.”

“……하긴, 지금 당장은 교재도 없지. 그래, 오늘은 일단 훈련이다.”

나는 툭 김재호의 등을 쳤다. 고개를 끄덕인 김재호의 눈빛이 달라졌다. 우리 재호가 글은 좀 몰라도, 확실히 몸을 움직이는 데에는 천재적이지.

나는 김재호와 함께 집 밖으로 나왔다. 쌀쌀한 바람이 우리의 뺨을 할퀴었다.

뽀득뽀득, 눈을 밟는 소리가 선명하게 나는 내 발소리와는 달리 김재호의 발아래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문득 낙엽 위에서 조용히 움직이라고 김재호에게 윽박을 질렀던 가을이 생각났다.

그때에는 실패했지만, 계절이 한 번 바뀌는 동안 김재호는 자신의 몸을 다루는 데에 성공한 거다.

이제 눈을 감으면, 김재호의 기척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후방 담당 카메라-레이-가 있었고…….

“으윽!”

나는 내 뒤에서 접근하는 김재호를 단번에 잡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치사하구나.

‘보스는 자고로 멋진 모습을 언제나 유지해야 한다고요.’

━서현이한테 요리를 맡길 때는 그리 멋있지 않았는데.

‘달걀볶음밥만 365일 먹을 순 없잖습니까. 그건 생존에 대한 문제라고요.’

게다가 보스의 뒤를 노리다니. 응징을 받아 마땅하지.

장난은 여기까지다.

“검 들어 봐.”

내 말에 김재호는 단검을 꺼냈다. 나 또한 허벅지에 매고 있던 단검을 들었다.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자, 김재호가 달려들었다.

“큿!”

전부터 느낀 거지만, 진짜 신체 능력이 괴물 같은 놈이었다.

앗차 하는 순간 바로 빈틈을 노리고 달려든다. 나는 손목을 꺾어 단검을 쳐 냈다. 하지만 곧 김재호가 따라붙는다.

나는 마력을 끌어올려 대응했다. 3획의 마나 회로로 육체를 강화해도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였다.

내 가르침을 스펀지처럼 흡수한 김재호의 몸놀림은 이미 내가 무언가를 더 가르칠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단검이 공중에서 여러 번 부딪쳤다. 불꽃이 튀고, 단검이 쭉 내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큿.”

가까스로 피했지만, 볼에 상처가 생겼다.

피를 봐도 멈추지 말라고 말했던 만큼, 김재호도 나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 땅을 박차고 김재호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거리가 훅 좁혀졌다. 나는 김재호의 오른팔을 잡고 그대로 꺾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팔이 부러졌겠지만, 김재호의 팔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대로 나를 끌어안아 내 목을 죄었다. 이대로 몇 초만 지나면 난 정신을 잃게 될 거다.

나는 팔꿈치로 김재호의 배를 강하게 쳤다.

“큿!”

마력을 담아 갈긴 만큼, 이번에는 타격감이 있었다. 김재호가 나를 놓는 순간, 나는 다시 거리를 벌렸다.

그렇게 몇 번이고 우리는 맞붙었다. 내 몸에는 작은 상처가 늘어났지만, 김재호의 몸에는 여전히 상처 하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몸을 움직였을까. 추운 날씨였지만 금세 땀범벅이 됐다.

“이제, 그만.”

더 했다간 내가 쓰러지겠다. 나는 손등으로 볼에 묻은 피를 닦아 냈다.

“괜찮아?”

김재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을 끌어올리니, 볼의 상처는 금세 사라졌다. 몸에 생긴 다른 상처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지.

문제는 이렇게 많은 상처를 입는 동안 김재호에게 유효한 타격을 입히는 데에 실패했다는 거다.

‘이제 능력을 쓰지 않고 맞붙는 건 무리겠는데요.’

김재호는 성장했다. 자신의 몸을 쓰는 방법을 제대로 알게 된 이상, 더는 평범한 재능으로는 막을 수 없게 됐다.

‘뭐, 나도 재능을 써서 붙는다면 이길 수 있겠지만.’

━네 녀석이라면 치사한 방법을 잔뜩 알 테니까.

‘치사한 방법이라뇨. 승리하는 방법이라고 해 주시죠.’

숨을 고른 나는 재킷을 주워 입었다.

이제 다른 쪽을 확인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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