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화
#46 테러, 테러, 테러 (2)
━미쳤냐!
‘한번 어떤 느낌인지 감을 잡아야 할 것 같아서 말이죠.’
레이의 만류가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검 손잡이를 꽉 잡았다.
웬만한 아티팩트는 보는 것만으로 분석해내는 레이조차 아예 감을 잡지 못한 상대다. 이보다 더 빠른 확인법은 없겠지.
그리고 검을 잡아 본 감상은…….
“뭐, 이딴 검이 다 있어?”
무지막지 흉포하다는 거다.
검을 잡자마자 내 온몸의 마력을 빨아 먹을 듯이 달려든 흉포한 마력에 나는 신음을 흘려야만 했다. 재빨리 검을 놓기는 했다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감각이었다.
━제정신이 아니로군.
“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 겁니다.”
내게는 정신계 스킬에 완전 면역인 패시브가 있지 않은가.
단순히 설록진의 세뇌를 막는 것뿐 아니라, 이런 아티팩트에도 효과가 있겠거니 생각한 것뿐이다.
확실히 갑자기 저 검에 대한 집착이 생긴다거나, 다른 사람을 썰어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마력을 쪽쪽 빨려 하마터면 미라가 돼서 죽을 뻔했다.
가뜩이나 마력이 많지 않은 나에게는 특히 상성이 좋지 않았다. 3획을 사용하게 됐으니 혹시나 했지만, 역시 이 검을 쓰는 건 무리군.
“아무래도 저걸 그대로 쓴다는 건 안 될 것 같은데요.”
이 아티팩트의 마나 회로를 파악하면 이런 못된 성질을 지우고 좋은 점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마나 회로가 도통 파악이 되지 않는 상황.
그럼, 답은 하나밖에 없는 거 아닌가.
“녹여 버리죠?”
━으응?
“아티팩트로서의 기능은 잃겠지만, 뭐, 그거야 제가 바라는 바니까요. 제대로 써먹을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녹여서 다른 걸로 만들어 버리는 게 낫죠.”
피도 제대로 닦아 주지 않았는데도 녹이 슬기는커녕 여전히 반짝이는 날을 봐라.
“저 정도면 녹인 다음에 쇠만 재활용해도 꽤 괜찮은 검을 만들 수 있겠죠.”
━그냥 녹여 버린다고? 저번에 감이 왔다는 건 뭐냐.
“그 감이 왔다는 게 이겁니다. 쓸 수 없을 바에야 계속 내버려 두느니 녹여서 새로운 검을 만드는 게 낫잖아요?”
내 말에 레이는 할 말을 잃어버린 것처럼 침묵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나는 마검을 집어 용광로에 집어넣었다.
왠지 들릴 리 없는 비명이 귓가에 들려온 것 같았다. 아니, 진짜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끄어어!
“왜 당신이 비명을 지르는 겁니까?”
━그, 그냥 저걸 보니까 왠지 남 일 같지가 않아서 말이지.
아티팩트 출신이어서 그런지, 공감 능력이 쓸데없이 좋았다. 나는 레이의 신음을 무시했다.
아쉽게도 용광로 안에 던져진 검은 쉽사리 녹지 않았다. 1,000℃ 가까이 오른 고열 속에서도 검은 아직 제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달아오를 기색도 없는 검을 보며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도 저렇게 두다 보면 언젠가는 녹겠죠.”
━으으으.
“저게 다 녹으면 우리 재호 무기나 새로 맞춰 줘야겠다.”
요새 안 그러는 척해도 자꾸 한서현 스태프를 보면서 눈치를 준단 말이지.
━그나저나 앞으로 생산직은 때려치우겠다며?
“그래도 저런 마검을 금 박사한테 맡기기는 좀.”
금 박사의 전공은 이런 아티팩트가 아니었다. 전에도 맡겨 보려고 했다가 거절당하지 않았는가. 애초에 각성자가 아닌 이상, 아티팩트를 만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도 하고.
“금 박사가 저런 정통 아티팩트에는 약한 게 사실이니까요.”
내 손재주가 조금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아티팩트를 만드는 건 내가 나을 수도 있다는 소리다. 어떻게든 레이를 이용해서 마나 회로를 새겨 놓으면 그래도 제대로 기능은 하니까.
“제대로 된 명장을 찾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제가 할 수밖에 없죠.”
내가 알고 있는 장인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공방에 소속된 장인을 빼 오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억지로 잡아 두고 일을 시키고 싶지도 않고.
‘흐음, 정말 없나.’
어디 암시장에서 혹사당하고 있는 불쌍한 인간 노예, 그러니까 공방의 사축으로 굴려지고 있는 불쌍한 장인이 있다면 내가 홀라당 집어 올 텐데. 어디 없나, 그런 사람. 개같이 굴려 먹어도 자기를 구해 줘서 고맙다고 나에게 절을 할 만한 그런 사람이…….
━너 왜 그렇게 비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냐?
“비열하다뇨.”
조금 행복한 상상을 한 것뿐인데 저렇게 나를 매도하다니.
“예? 저도 이런 얼굴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란 말입니다! 나도 누구처럼 해사한 미소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얼굴로 태어나고 싶었다고요! 안 그래도 이 얼굴 때문에 그동안 얼마나 서러울 때가 많았는데!”
그날 레이는 삐친 나를 달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 * *
게이트 통제에 성공한 대한민국 서울의 땅값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 서울 중에서도 가장 땅값이 비싼 곳에 지어진 백화점은, 수많은 이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이 백화점이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건 값비싼 땅 위에 지어졌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백화점을 지은 건 무려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라고 손꼽히는 시리우스였으니까.
시리우스가 손을 댄 사업은 한둘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백화점을 지어 올린 것은 처음이었다.
헌터 쪽 일뿐만이 아니라 다른 쪽까지 손을 뻗치겠다는 야욕이었다.
시리우스가 북극성 길드였던 그때부터 진용석은 사업을 확장했지만, 그가 손을 대던 건 어디까지나 헌터 쪽과 연계된 것들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서울 한가운데에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사업을 한 적은 없었다.
재력가들의 눈치를 보며 콩고물만 떼어 먹던 그 길드가, 이제는 직접 그들의 판에 뛰어든 거다. 단순히 헌터 길드로 끝나지 않겠다는 진연화의 포부가 보였다.
근래의 실패는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청성 백화점’은 화려하게 개점했다.
오픈 날에는 진연화를 비롯한 헌터들이 이곳을 빼곡하게 메웠다고 했다.
그날은 인파가 몰려 장난이 아니었다지.
오픈한 지 이 주일이 지난 지금도 백화점은 여전히 수많은 손님으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차 있었다.
한율희는 사람들에게 치이면서도 백화점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게이트에서 직접 채굴한 자재들로 지었다더니, 하다못해 지금 한율희가 딛고 서 있는 돌바닥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촌사람처럼 왜 그래? 백화점에 처음 온 것도 아니면서.”
유난히 버석버석한 감성을 지닌 그녀의 친구는 지루하다는 얼굴이었지만, 한율희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야, 내가 언제 이렇게 게이트에 관련된 걸 많이 볼 수 있겠어.”
각성자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현재지만, 한율희는 각성자들을 동경했다. 특별한 힘을 각성해 인류를 위협하는 게이트를 공략한다니. 마치 옛날 히어로 무비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 아닌가.
“하여간, 너도 참 취향이 독특하다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여기 시설이 좋은 건 사실이잖아.”
“뭐, 그야 그렇지만.”
곧 대학교 입학을 앞둔 두 사람은 오늘 이곳에서 야무지게 쇼핑을 하고 갈 생각이었다.
“10층 식당가에 있는 식당 중에는 몬스터 고기를 파는 데도 있다 그랬어.”
“설마, 갈 거야?”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가 보긴 해야지. 평일 낮인데 오늘도 웨이팅 길려나?”
“사람 바글바글한 걸 봐. 없겠나.”
퉁명스럽게 들리는 친구의 말에도 한율희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대박, 2층부터 5층까지는 헌터 전용관이네. 지하에는 맞춤식 공방까지 있고.”
“네가 거기 가서 뭘 해. 각성자도 아닌데.”
“아, 그래도! 이런 걸 볼 일이 또 언제 있겠어.”
시리우스가 지은 백화점이라서 그런지, 일반인으로서는 쉬이 볼 수 없는 헌터 전용 아티팩트를 취급하는 가게가 많았다. 한율희의 눈은 그 가게를 볼 때마다 팽팽 돌아갔다.
“이야, 저런 아티팩트는 얼마나 할까.”
“아서라, 우리가 평생 일해도 저런 거 하나 못 사.”
과거 명품관의 위치가 현재는 헌터 아머리로 바뀐 지 오래였다. 단순히 명품처럼 브랜드 가치만 높은 게 아니라 실제로 여러 가지 기능까지 포함돼 있으니 돈을 지불하는 쪽도 불만이 없었다.
총알을 막는 방탄 슈트 같은 것도 이제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요새 부자들은 명품이 아니라, 헌터 아머리의 제품을 걸치고 다녔다.
하지만 헌터 아머리는 헌터가 아니면 아예 출입조차 불가능했다.
가게 앞쪽에 대기하고 있는 쇼퍼들은 철저히 일반인의 출입을 막았다.
가게 구경이나 해 볼까 해서 줄을 섰던 한율희는 코앞에서 거절당하고 말았다.
“구경하는 것도 안 돼요?”
“죄송합니다. 장소가 협소하여 실제 구매하실 고객분들께만 안내해 드리고 있습니다.”
결국 한율희는 가게를 구경해 보는 것도 실패했다.
“아, 민망하네. 그래도 구경이라도 해 보고 싶었는데.”
한율희의 말에 친구가 툭툭 한율희의 옆구리를 치며 말했다.
“야, 됐어, 됐어.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가오는 더 없지 않아?”
친구는 그 말에 한율희의 등을 치며 말했다.
“팩트 폭행도 폭행이거든?”
“넌 그냥 폭행이거든?”
그렇게 두 사람이 투닥거리며 걸음을 옮길 때였다.
툭, 누군가 친구의 어깨에 부딪쳤다.
“아, 죄송…….”
친구의 사과는 중간에 끊겼다. 그녀와 부딪친 사람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파아앗━
한율희의 눈앞이 붉게 물들었다.
“무, 무슨…….”
안과 밖이 뒤바뀌어 버린 친구의 모습에 한율희는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한가롭던 쇼핑몰 안에는 곧 비명, 비명만이 가득해졌다.
* * *
“미친 새끼들.”
이때쯤 뭔가 큰일을 벌일 거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시리우스가 이번에 개장한 백화점을 노릴 줄이야.
대형 길드인 시리우스가 지었기에 이 백화점 안에는 다른 데서는 보기 힘든 헌터 아머리, 각종 게이트 부산물들을 이용한 가공품들을 판매하는 업체가 잔뜩 입점해 있었다.
자연히 각성자나 헌터가 있을 확률도 높았다.
“그런데도 거길 노렸단 말이지.”
아니, 그게 오히려 더 탑의 빌런들을 자극했던 모양이지.
헌터들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었으니까.
문제는 그곳을 이용하던 쇼핑객들이 그대로 인질이 되어 잡혔다는 거다. 못해도 오백 명, 천 명이 넘을 수도 있었다.
덕분에 주변에서 몰려든 헌터들은 섣불리 백화점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사건이 발생한 지 30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다행이랄지, 아니면, 불행이랄지. 백화점 안엔 아직 인질들과 함께 빌런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백화점을 틀어막고 인질들을 구속한 빌런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분명히 했다.
‘선’을 넘지 말 것.
그리고 그 선이라는 건 백화점의 안, 전부였다.
그 경고를 무시하고 들어섰던 경비원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을 뛰어다니다가 스스로 불 안에 뛰어들어 재가 되었다.
트릭스터와 제미니의 합작이었다.
나는 김재호와 한서현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트릭스터는 지금 저 안에 환각 결계를 쳐 놨어. 저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놈에게 놀아나게 될 거야.”
마치 셀레나의 빙궁에서처럼, 트릭스터는 각성자들마저 손쉽게 속일 환상을 만들어 냈다.
수백 명이 넘는 인질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겠지.
환상 결계 때문에 헌터들과 대테러 요원들은 저 안으로 진입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쪽에서도 이상할 정도로 시간을 끄는데.”
나는 백화점이 잘 내려다보이는 옥상 위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처음 테러가 일어난 곳이 백화점 안이고, 테러의 주체자가 탑의 빌런이라는 걸 들었을 때부터 나는 탑의 빌런들과 정면으로 맞붙는다는 생각을 버렸다.
내가 노리는 건 하나였다.
저 건물 안에 있을, 빌런들의 탈출로.
내 목표는 바로 그놈을 빼돌리는 거였다.
‘탈출로’가 사라진 빌런들을 제압하는 건 여기에 있는 인원이라면 어렵지 않을 테니까.
“문제는 빌런들과 그놈이 같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거지만.”
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