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45 친구 (2)
사람한테 끌어안긴 게 아니라 무슨 덤프트럭에라도 치인 것 같다.
“강이신, 진짜 너냐?”
정호산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 그래. 그러니까 좀 놔주면 안 되겠냐.”
덩치도 큰 놈이 이러니까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나, 네가 죽었다고 생각했어. 그럴 리가 없는데, 네가 하도 연락이 안 되니까. 그런 생각까지 다 들었다고…….”
“그래, 그래. 다행이지, 잘못되지 않았으니까.”
“그래, 다행이지. 살아 있었다니 정말 다행…….”
정호산의 목소리가 점점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너 살아 있으면서 여태까지 나한테 연락 한 번도 안 하고, 너 진짜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
나를 끌어안고 있던 팔에도 점차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야, 잠깐! 잠깐만!”
나는 놈의 등을 퍽퍽 쳤다. 발버둥을 치니 정호산은 나를 잠자코 놔주었다. 정말이지, 갈비뼈가 으스러져서 죽는 줄 알았다.
정호산은 내 어깨를 다시 붙잡았다. 정호산은 여전히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화는 잠시다. 정호산의 얼굴은 곧 무너져 내렸다.
“대체, 뭐야. 뭐냐고.”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말문이 막힌 적은 처음이다. 이 녀석의 얼굴을 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녀석에게 할 문장이 수백 개는 됐던 것 같은데, 이렇게 구겨진 놈의 얼굴을 보니 쏙 들어가고 말았다.
뒷덜미를 긁적거린 내가 놈에게 한 말은…….
“그간 미안하게 됐다.”
이렇게도 형편없는 말 한마디뿐이었다.
“그간 미안하게 됐다?”
두 손으로 내 어깨를 꽉 움켜쥔 정호산이 살벌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런 말이 전부냐? 나한테 할 말이 그게 전부냐고.”
나도 내가 내뱉은 말이 형편없다는 건 안다.
다른 놈들에게는 잘도 입을 놀려 댔으면서, 왜 정호산에게는 이런 글러 먹은 말만 나오는지 모르겠다.
“대체 그동안 뭘 했는데, 어디서 뭘 하면서 지냈는지. 대체 그동안 나한테는 왜 연락 한 번 없었는지! 그런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도대체 날 뭘로 생각했으면, 단 한 마디 말도 없이 사라져?”
그 질문에 그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네 친구이기는 해? 야, 이신아. 말해 봐라, 우리가 친구가 맞긴 한 건지.”
녀석과 나는 더는 친구일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나면서, 이런 말을 들으니 새삼 열이 받았다.
“그러는 너는 친구도 아닌 놈을 찾겠다고 그 대단한 길드를 뛰쳐나왔냐?”
내 말에 정호산의 눈동자가 커졌다.
“너, 그건 어떻게 알았어?”
아, 또 실수했군. 내 말에 정호산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그래서군? 그래서 나타난 거야? 고작해야 내가 길드를 나와서 드디어 그 귀한 얼굴을 보여 주는 거였어.”
“야, 얌마.”
이 녀석 앞에 서면 꼭 어릴 때로 돌아간 것만 같다. 녀석과 나의 마지막이 딱 이맘때쯤이어서 그런지. 그때보다 십 년은 더 나이를 먹어 놓고도, 여전히 어린애처럼 굴게 된다.
“너 진짜 사람을 뭘로 아는 거냐.”
이렇게까지 화가 난 정호산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야, 정호산은 무슨 일이 있어도 늘 웃는 얼굴로 날 달래는 쪽이었으니까.
늘 싸움을 일으키고, 말썽을 부리는 쪽은 나였고 저 녀석은 내 잘못을 수습해 주는 쪽이었다.
이렇게 불같이 화를 내는 녀석을 달래는 방법 같은 건 모른다.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를 보며 정호산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멀뚱히 있지만 말고 말해 봐, 얘기하자고 날 부른 건 너잖아. 할 말이 있어서 여기에 나온 거 아니야?”
“그래, 그랬지.”
나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일단 미안하다.”
“뭐가. 대체 뭐가 미안한데.”
한서현이나, 이놈이나. 왜 전부 다 내가 사과만 하면 이렇게 말꼬리를 잡아대는지 모르겠다.
━그거야, 그만큼 네놈이 사과하는 태도가 사람을 열받게 하는 구석이 있으니 그렇지.
‘그래요?’
━그래, 대충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는 것처럼 들리잖냐.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이상하네, 말발이 나쁘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는데 어째 정호산에게도 한서현에게도 전혀 통하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전부 다 미안하고. 내가 다 잘못했고…….”
내 형편없는 사과에 정호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과는 됐어. 대체 그동안 어디에서 뭘 했는지나 말해.”
정호산의 말에 나는 눈을 굴리며 말했다.
“그냥, 잘 있었어.”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다. 내 대답에 정호산이 무어라 화를 내기 전에 나는 재빨리 물었다.
“너는?”
“나도 잘 지냈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잘 지냈다니 다행…….
“장난하냐? 잘 지냈다는 놈이 길드도 관두고 뛰쳐나와?”
“그러는 너야말로 장난하냐? 뭐? 잘 있었어? 그런 말로 끝이야? 사과도 그따위로 할 거면 어떻게 지냈는지라도 잘 말해야 할 거 아니야! 그래야 내가 널 이해를 해주든, 혼을 내든 하지!”
다시 우리 둘은 어린애들처럼 달라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네가 잘못했네, 아니, 네가 더 잘못했네! 한참 그렇게 씩씩거리고 나니 기운이 다 빠졌다.
“이제 제대로 말해 줘. 대체 그동안 어디에서 뭘 했는지. 대체 왜 갑자기 사라진 건지. 그리고 지금은 대체 뭘 하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
그 말에 나는 입술을 벙긋거렸다. 사실대로 말할 수 있을 리가.
내가 여기에 온 건, 그동안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실은 말이야…….”
나는 눈에 마력을 끌어올렸다. 친구에게 능력을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말뿐인 설득보다 이쪽이 확실하겠지. 이런 식으로라도 녀석을 안전하게 지킬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 일에서 손만 떼게 하면…….
“너, 그거 하지 마.”
그 말에 몸이 멈칫 떨렸다.
“뭐?”
“나한테 지금 ‘거짓말’하려고 했잖아.”
거짓말을 할 때 내 동공은 검게 물든다. 화염처럼 일렁이는 한서현의 동공과는 달리 내 동공은 여전히 검다. 그래서 설록진조차 내가 언제 능력을 썼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이 녀석은 늘 내 능력을 꿰뚫어 보았다.
“말하기 불가능한 거라면, 차라리 말하지 마. 그냥 설명할 수 없다고 해도 받아들일 테니까. 하지만 거짓말은 싫어.”
이렇게 말하는 놈한테 어떻게 ‘거짓말’ 같은 걸 하냐. 나는 마나를 흐트러트렸다.
“젠장.”
내 욕설에 정호산이 쓰게 웃었다.
“적당히 거짓말로 뭉개면, 내가 네 뜻대로 될 줄 알았어?”
“도대체 내가 뭐라고 길드까지 때려치우냐?”
“너니까.”
정호산이 말했다.
“우리 약속했잖아.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 전부가 우리를 버리더라도, 우리만큼은 그러지 말자고.”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는 우리뿐이니까. 기꺼이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 주기로.
그렇게 약속했었지.
“그래서 찾았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난 내 친구 강이신을 포기할 수가 없었으니까. 죽었다면 그 시체라도 찾으려고 했어. 근데 웬걸. 잘 살아 있네.”
“어, 음.”
또 한 번 원망의 눈초리다. 그래, 내가 개자식이다. 이렇게 날 생각해 주는 친구를 몇 달 동안 무시하고, 속 태웠으니. 게다가 기껏 찾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이딴 거라니.
조금은 설명다운 설명을 해 줘야 하나.
“자세한 건 설명 못 해. 그냥 내 나름대로 못된 놈들을 쫓고 있다는 말밖에는…….”
“못된 놈들?”
“그래.”
“그게 전부야? 구체적인 이름도 설명도 없이 그냥 ‘못된 놈들?’ 동화책 속에서도 악당을 그런 식으로 묘사하진 않겠다.”
설명이 이따위인 건 정호산에게 그 어떤 힌트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 녀석, 은근히 집요한 데가 있어서 힌트라도 흘렸다간 또 그걸로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니까.
“불법 게이트 사건에서부터 시작한 거지?”
“뭐?”
“도채희 경위님이 그러시더라. 너는 그때부터 어쩌면 그 일과 얽힌 조직을 쫓고 있었던 것 같다고.”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생각보다 제법 예리한데. 하지만 거기까지다. 불법 게이트 하나만으로는 설록진에게 닿을 수 없을 거다.
나는 되레 안심했다. 정호산이 찾은 힌트가 겨우 그것뿐이라서.
“어쨌거나 이건 내 일이야. 너는 이만 빠져.”
나는 정호산을 밀어냈다.
“오늘 봐서 알잖아. 난 멀쩡해. 그동안 아주 잘 지냈고.”
돌아가서 제발 네 인생을 살아. 나는 뒷덜미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앞으로도 가끔씩 연락할 테니까.”
내가 원하는 건 여기에서 완전히 연을 끊어 내는 거지만, 그런 말로는 정호산을 설득할 수 없으리란 것쯤은 알겠다.
가끔 생존 신고 정도는 해 둘까. 녀석이 내 걱정을 하지 않도록, 아니, 덜 하도록.
“그러니까 넌 길드로 돌아가.”
“길드를 관둔 거…….”
한숨을 내쉰 정호산이 말을 이었다.
“네가 계기는 됐지만, 너 때문만은 아니야. 길드에서 사람을 구하는 길뿐만 아니라, 다른 쪽으로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지.”
“뭐?”
“대체 왜 네가 그런 짓을 저지른 걸까. 처음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어.”
정호산은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도채희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나를 이해할 수 있었단다. 그리고 자신도 결심했단다.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싶다고.
“내가 아는 넌, 절대로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네가 그런 식의 방법을 택한 데에도 다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거지?”
이래서 정호산을 만나기 싫었다. 놈이 아는 나는, 때 하나 묻지 않은 강이신이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으니까. 뭐가 어쩔 수 없는 이유냐. 나는 그저 그 개자식들의 멱을 따고 싶었을 뿐이다.
조금 더 온건한 방법을 찾자면, 충분히 다른 방법을 쓸 수도 있었다.
“진짜 나쁜 놈들을 잡을 생각이든 뭐든, 앞으로는 나랑 같이해. 네 계획이 뭐든, 그 계획에 나도 넣으라고.”
그렇게 말하는 정호산의 얼굴은 진지했다. 작은 의심 한 점 없이 나를 믿는 그 눈동자를, 나는 차마 마주 볼 수 없었다.
━그냥 네 편에 넣으면 안 되냐?
그것만은 안 된다. 나는 딱 잘라 정호산의 제안을 거절했다.
“안 돼.”
“아니면 다 때려치우고 오든가. 그럼 나도 네가 말하는 대로 원래대로 돌아갈 테니까.”
정호산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너 내가 살인 용의자로 쫓기고 있다는 건 알고 있는 거냐?”
“그 누명은 앞으로 차차 벗기면 되고…….”
“아서라. 완전히 누명도 아니야. 한조희가 아니더라도 나 사람 죽였어, 그것도 아주 많이.”
나는 툭툭 내 목을 두드렸다.
“봐, 이것도 떼 버렸다고. 난 이미 범죄자야. 알지? 이걸 뗀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중범죄자라는 거. 난 이미 선을 넘었어.”
내 말에 정호산의 얼굴이 구겨졌다. 저 녀석이 나를 얼마나 좋게 봐주든 상관없다. 이미 이 세상에서 나는 범죄자였으니까.
“나랑 엮이는 순간 너도 범죄자가 되는 거야.”
“상관없어.”
“내가 상관있어. 다시 붉은개 길드로 돌아가. 나 같은 범죄자랑 엮이는 짓은 하지 말라고.”
“내가 여태까지 했던 말은 뭘로 들은 거야. 말했잖아! 나도 내 나름의 생각이 있어서 길드를 나온 거라고.”
“그래, 날 이해해 보겠다고 길드까지 나온 거 감동이긴 한데. 그래서 앞으로 뭘 어쩌게. 범죄자랑 엮여서 네 인생 망칠 일 있냐? 아니, 애초에 각범부에 들어가는 거면 나랑은 적이 되는 거야. 안 그래?”
“뭐?”
“다음에 우리가 만난다면, 넌 날 체포해야 한다고. 다시는 이렇게 얼굴 마주할 수도 없다는 소리야.”
“그게 무슨 소리야.”
“문자 그대로야. 네가 각범부에 들어가면, 나 다시는 너 안 봐, 아니 못 봐. 하지만 네가 길드로 돌아가면 가끔 이렇게 얼굴을 볼 수는 있겠지.”
그 말에 정호산이 나를 노려봤다.
“너는 나한테 뭘 하는지 제대로 말해 주지도 않고, 나더러는 다시 붉은개 길드로 돌아가라고?”
“어.”
“지금 너 나 협박하냐? 그것도 널 보는 문제로? 막말로 내가 너를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또 멋대로 사라지면? 그럼 난 또 너를 계속 기다리고? 네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뭘 하는지, 걱정만 계속하면서…….”
답답했다. 이 정도로 설명하면 알아들을 줄 알았는데.
“역시 너 이대로 못 보내겠다.”
정호산은 내 손목을 붙잡았다.
“뭐야?”
“저번에 널 그렇게 보내고 얼마나 후회한 줄 아냐? 다시는 너 그대로 안 보내.”
근처에 있는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그저 작은 일렁임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보였다.
저건 김재호다. 근래 그림자에 숨어 나를 놀라게 하는 데에 재미를 붙였던 놈이라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시달렸는데. 하지만 지금은 진짜 안 된다.
‘그만! 그만둬.’
나는 필사적으로 그림자를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내 손짓에 정호산의 눈이 가늘어졌다.
“잠깐, 너 지금 누구한테 신호 보내는 거야?”
“아니, 전↗혀 아닌데?”
급하게 답하느라 목소리가 튀었다. 정호산의 눈에 더더욱 의심이 가득해졌다.
“근처에 누가 있는 건데.”
“아니, 그냥 날파리가 좀 날려서 그런 거야.”
“2월인데 날파리?”
“뭐냐, 지구 온난화가 심해져서 말이다. 날파리가 있을 수도 있지.”
뒤늦게 그렇게 덧붙이기는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허접한 변명이다. 당장에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김재호를 말리느라 정신이 다른 쪽으로 쏠렸다.
그나저나 절대로 끼어들지 말라고 했는데 언제 다들 와서는! 도움은커녕 방해만 되잖냐!
“솔직하게 말해. 너, 설마 누구한테 협박이라도 당하고 있는 거냐?”
내가 잠시 침묵하는 사이 정호산의 사고 회로는 급발진했다.
“어쩐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네가 아무리 똑똑해도 혼자서 그렇게 아무런 흔적도 없이 활동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내 손을 붙잡은 정호산의 눈동자가 이글이글했다.
“누구야. 대체 누구랑 같이 있는 건데.”
아니, 그게 말을 또 그렇게 하면 내가 엄청난 악당한테 잡혀서 억지로 일하는 것처럼 들리잖냐.
사실 따지고 보자면 그 나쁜 놈은 바로 나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애들을 꼬셔서 악당으로 만들어 버린 그 개자식이 바로 난데?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난 혼자서 움직여.”
일단 발을 빼고 봤다. 여기서 내가 벨츠머츠라는 걸 들키면 그냥 갈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거짓말. 대체 뭔데 이렇게 말도 못 하고 떠는 건데. 말해, 전부. 뭐든 내가 다 들어줄 테니까.”
그때 그림자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김재호였다.
“김…… 너어!”
하마터면 이름을 부를 뻔했다. 나는 재빨리 입을 닫았다. 김재호는 그대로 정호산의 손을 떼어 내고 내 허리춤을 잡았다.
“으윽!”
워낙 순간적인 일이었기에, 정호산은 반응도 하지 못하고 내 손을 놓쳤다.
정호산의 표정이 구겨지는 걸 본 내가 재빨리 외쳤다.
“호산아,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다!”
제대로 사정을 설명할 시간도 주지 않고 김재호는 땅을 박찼다. 그것도 모자라 김재호와 정호산의 내 사이로 검은 모래가 끼어들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라니까!”
나는 필사적으로 그렇게 외쳤지만, 정호산에게 먹혀들었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녀석의 동공은 푸르게 불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