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5화
#44 떨쳐 낼 수 없는 과거 (3)
그다음 날 예의 ‘취조실’ 안에 있는 사람을 보며 나는 바짝 굳을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서 있는 건 어린애였기 때문이다. 겨우 열 살이나 됐을까 싶을 정도로 어린아이를 본 순간,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어린애잖아.”
방 너머에서 덜덜 떨고 있는 어린애를 본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내 말에도 개의치 않고 설록진은 태연히 말을 이었다.
“네가 저 아이에게 저 양파를 먹게 하면, 저 애는 살려 주지. 다만 양파를 먹어야 살 수 있다고 아이에게 직접 말하는 건 금지야. 오로지 아이가 스스로의 의지로 양파를 먹게 하면 돼.”
어제와는 달리 설록진은 확실한 규칙을 세워 왔다. 하지만 난 도저히 저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왜 어린애인데?”
설록진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어른들은 상황을 눈치채고 미리 생각을 하지만, 어린애들은 순진하지.”
그러니 더욱 거짓말이 잘 통할 거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내가 실패한다면?
“설마 저 애를 죽일 생각은 아니겠지?”
“네가 실패한다면 그렇게 되겠지. 아직 시작도 하기 전인데, 벌써부터 실패할 걸 생각하는 거야?”
내게 필요한 게 간절함이라고 말하더니, 이런 식으로 날 간절하게 만들 생각이었나.
“제발…….”
“나에게 부탁할 필요 없어, 이신아. 네가 잘하면 저 애가 죽을 일도 없어. 겨우 열 살짜리 어린애를 속이는 일이잖아.”
재능이 없어도 속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설록진은 내게 그렇게 말했고 나는 안으로 들이밀어졌다.
그리고 난 필사적으로 아이를 속이려 했지만, 아이는 쉽게 속지 않았다.
“이걸 먹으라고요? 이건 양파잖아요.”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그건 아주 맛있는 사과야. 먹어 봐, 아주 맛있을 거라고.”
제발, 얘야, 제발. 그걸 먹지 않으면 넌 죽는다고.
나는 몸의 마력을 끌어올려 필사적으로 아이를 속이려 했지만, 내 거짓말은 먹히지 않았다. 내 울먹거리는 얼굴을 본 애는 그대로 겁에 질려 버렸다.
“싫어!”
나는 나를 피해 도망치는 아이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 이래서는. 이래서는 안 된다. 그렇게 나는 끙끙거리며 어떻게든 아이의 신뢰를 사 보려고 했다.
하지만 소득 없이 시간은 흘렀고, 문이 열렸다.
“제발, 제발…….”
“타임 오버야. 벌써 2시간이나 지났다고.”
설록진은 사람을 부려 나를 끌어냈다. 갑작스러운 사람들의 난입에 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테이블 아래 숨어들었다.
그 가여운 모습에 동정심이 들 만도 하건만.
그리고 총성이 들려왔다.
그 소리가 들린 순간 나는 울부짖으며 설록진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내 발악은 간단하게 막혔다.
“어째서, 애잖아. 애, 아무것도 모르는 앤데. 아무런 죄도 없는 애를 왜…….”
내 정신 나간 중얼거림에 설록진이 속삭였다.
“그러게. 저 애를 살리고 싶었으면 잘했어야지, 이신아. 나는 기회를 몇 번이고 줬는데 실패해 놓고 내 탓을 하면 곤란해.”
아이가 죽은 건 모두 내 잘못, 내 탓이라고 설록진은 말했다.
‘자신도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이게 가장 효과가 좋을 것 같았다’고.
계속해서 내가 능력을 쓰지 않고, 외면하고, 숨어들면 더 나쁜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고.
다음 날, 설록진은 나를 또 다른 아이의 앞으로 들이밀었다.
그리고 나는 실패했다.
또다시.
* * *
그 후로도 설록진은 애들을 데리고 왔다. 애들만큼은 살리고 싶었던 나는 부단히도 노력했다.
하지만 나는 번번이 실패했고 그때마다 총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거나 피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 광경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 아이가 죽은 건, 모두 내 잘못이니까.
구석에 틀어박힌 내게 설록진이 말했다.
“넌 너무 겁을 집어먹고 있다니까. 너조차 네 말을 믿질 않고 있는데, 네 말에 누가 귀를 기울이겠어?”
설록진의 말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았지만, 일리가 있었다. 나는 너무 실패에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덜덜 떨면서 말을 해 대니, 내 말을 믿을 리가.
“나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그만 털고 일어나야지, 안 그래? 그렇게 축 처져 있다고 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다고.”
차라리 욕을 해라, 욕을. 나는 그 같잖은 충고에 몸을 일으켰다. 설록진의 말대로 이대로 몸을 웅크리고 있어 봤자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날, 나는 겨우 성공할 수 있었다.
다섯 명의 희생자를 내고 나서야, 나는 그 빌어먹을 놈의 거짓말에 성공했다.
양파를 아삭아삭한 사과처럼 먹고 있는 아이를 본 순간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잘했어.”
설록진의 칭찬이 귀에 꽂혔다. 내 재능을 가지고서는 처음으로 들은 칭찬이지만, 기쁘지는 않았다.
“내 말을 잘 들으니 얼마나 좋아. 너도 살고, 저 꼬맹이도 살고.”
그 말에 얼굴을 구긴 내가 설록진에게 물었다.
“저 애는 어떻게 되는 거야.”
“글쎄.”
“글쎄라니. 설마 또 여기에 데려올 생각은 아니지?”
“어디 좋은 데로 보내 줄까나?”
“당연히 그래야지!”
내 난리에 설록진은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어, 좋은 곳으로 보내 줄게. 저 녀석의 인생에도 봄날은 필요하겠지.”
그때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나는 그저 아이가 이 지옥에서 벗어났다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아이가 더한 지옥으로 가게 됐다는 걸 모르고.
* * *
그 뒤로도 나는 설록진의 실험에 놀아나야 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양파를 사과로 속여 먹이는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다른 거짓말도 해야만 했다. 내가 간절히 빌고 빌어 몇 번은 성인들이 내 실험체로 끌려왔지만, 실패가 이어지면 곧바로 어린애들이 끌려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아이들을 속여야만 했다.
실험이 이어질수록 실패보다는 성공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 성공 때마다 설록진은 나를 아낌없이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그 칭찬은 내 마음을 영 이상하게 만들었다.
나는 설록진에게 갖은 짜증을 다 부렸다. 애초에 이 상황을 만든 게 저 녀석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놈은 내 적이었다. 내 철천지원수요, 내가 꼭 멱을 따야 할 악당이다.
하지만 내 짜증을 설록진은 모두 받아 주었다. 이상할 정도로 놈은 내게 다정했고 나는 그 다정에 어쩔 줄을 몰랐다.
다음 날 나는 또 한 번 설록진의 앞에 섰고, 설록진은 내게 또 다른 실험을 제안했다.
“저기에 있는 남자를 어떻게든 죽게 만들어. 그럼 저 아이는 살려 주지.”
설록진이 가리킨 곳에 있던 아이는, 덜덜 떨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쟤는 어제 풀어 준 거 아니었어?”
“어제 그 자리에서는 풀어줬잖아.”
빌어먹을 놈.
“안심해. 네가 처음으로 구해 낸 아이는 확실하게 보냈으니까.”
개자식.
나는 속으로 설록진의 욕을 연달아 내뱉으며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속으로라도 욕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감히 설록진에게 반항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설록진은 그동안 아주 확실히 학습시켰다. 자신의 말을 어기면 대가가 있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말을 들으면 아주 달콤한 보상이 있으리라는 것도.
나는 취조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나는 그날 별 어려움 없이 그 남자를 죽음으로 밀어 넣었다.
여기에서 살아남아도 더 끔찍한 일이 당신을 덮칠 거라는 협박은, 그리 ‘거짓말’ 같지도 않았다. 남자는 내 말에 겁을 집어먹고 눈앞에 놓인 권총으로 제 머리를 날렸다.
그 권총을 들어 나를 쏜다거나, 설록진을 쏜다는 선택지도 있었음에도 내 거짓말에 속은 남자는 바보처럼 ‘죽어야겠다’는 한 가지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세 치 혀를 놀려 나는 한 사람의 목숨을 날려 버렸다.
아아, 나는 완벽히 괴물이 되어 버린 거다.
눈앞에 떠오른 흐릿한 자물쇠를 바라보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토록 원했던 재능의 시각화를 해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내 재능은 결국 사람을 죽이는 끔찍한 도구가 되었으니까.
내가 가장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한 내 재능이, 끔찍하게만 느껴졌다.
이걸로 난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불행에 떨어트리게 될까.
내가 죽인 남자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됐어?”
잔뜩 흥분한 얼굴로 뛰어 들어온 설록진이 내 어깨를 잡아챘다.
“봐, 아무것도 느끼는 게 없어?”
아무것도 느끼는 게 없긴.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슬픔을. 하지만 이런 감정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겠지. 나는 얼굴을 구긴 채로 설록진을 노려보았다. 설록진은 여전히 흥분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네 명령에 따라서 뭐든 하잖아. 심지어 제 목숨을 집어던지는 것까지. 응? 어떤 느낌이 들어?”
그렇게 말한 설록진은 내 얼굴을 살폈다. 마치 내게서 어떤 깨달음을 찾기라도 하듯이.
설록진은 늘 내게 사람들을 향한 동정심을 버리라고 말했다.
저것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처음에는 설록진이 각성자 우월주의인 줄 알았다. 각성자 우월주의인 놈들이 해 대는 소리가 주로 그거니까. 하지만 설록진은 각성자에게도 가차 없었다.
나는 깨달았다.
이놈은 그냥 미친놈이고, 아마도 나를, 왠지는 모르겠지만 자신과 같은 미친놈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나한테 도대체 뭘 기대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절대로 당신처럼 될 수 없어.”
그 말에 설록진은 미소를 지었다.
“너는 이상한 놈이지. 내가 뭘 해 주든, 어떤 권력을 주든 조금도 기껍지 않다는 얼굴을 하면서 어린애들을 죽이겠다고 하면 발발 떨잖아.”
“너…….”
“너 때문에 이미 수십 명이 죽어 나갔는데도 넌 여전히 아파하지.”
고개를 기울인 설록진이 덧붙였다.
“하지만 지금의 네 아픔은 처음과 같을까?”
그 말에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처음 아이가 죽었을 때, 너는 제대로 식사조차 못 했어. 일주일간 제대로 잠도 못 잤지. 하지만 지금은?”
지금 나는 아주 잘 먹고 잘 잔다. 악몽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잠시뿐이다. 설록진의 말에 온몸이 떨렸다. 내 반응에 미소를 지은 설록진이 말했다.
“시간문제일 뿐이야.”
모든 자극은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누군가의 죽음도 그러하다고 설록진은 말했다. 결국 나는 자신이 가르쳐 주려던 것을 깨닫게 될 거라고.
“아니, 난 단지 속으로 삭이는 법을 배웠을 뿐이야. 아파한다고 달라지는 게 없으니까. 네놈이 알려 줬잖아? 네놈을 죽이기 위해서라도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말이지.”
여전히 뻣뻣하게 구는 나를 보며 설록진은 한숨을 쉬었다. 그의 한숨에 순간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어느새 나는 설록진의 실망을 진심으로 두려워하게 되었으니까.
설록진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이신아. 네가 더없이 모자라고 멍청하고 덜떨어져도, 난 너를 거두기로 했으니까.”
마치 개를 쓰다듬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은 설록진이 말했다.
“그리고 사람은 쉬이 용서받을 수 없지만, 개는 몇 번이고 용서받을 수 있거든.”
그 말에 나는 얼굴을 구겼다.
“개?”
“사람 취급을 하기엔 네가 아무래도 너무 멍청해서 말이지. 게다가 말했잖아. 사람은 쉬이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하지만 멍청한 짓을 하더라도 개라면, 그래. 개라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놈의 말에 나는 깨달았다. 설록진은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걸. 특별하다고 말했지만, 놈과 나는 대등한 관계도 아니었던 거다.
“개로 사는 편이 네게도 나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설록진에게 나는 감히 묻지 못했다.
네 놈에게 사람 취급을 받으려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냐고.
* * *
아무리 죽고 싶어져도 복수할 대상이 생기면 살 수 있다. 어떻게든.
나는 그걸 설록진에게 배웠다.
━쑤어하오주에게 말했던 건, 경험담이었나?
“그렇죠.”
분명 처음에는 설록진에게 복수할 생각이었다. 내 친구를 그렇게 만들고 내 인생을 망친 그놈에게, 정말로 대단한 복수를 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결심은 흐려졌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도저히 복수를 실행시킬 만한 능력이 되지 않아서, 설록진이 너무 강해서, 기회가 오지 않아서.
나중에는…….
“그냥, 그놈과 사는 삶에 적응해 버렸어요.”
설록진과 보내는 9년이라는 시간 동안, 늘 괴롭기만 한 건 아니었다.
설록진을 죽도록 증오하고 미워했지만, 동시에 나는 놈에게 제법 익숙해져 버렸다. 여전히 놈이 싫었지만,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설록진에 대해 잘 알게 되면서 놈을 향한 증오심과 복수심은 애매하게 흐려져 버렸다.
그제야 설록진이 왜 나를 살려 뒀는지 알겠더라.
“나를 설득할 자신이 있었던 거죠.”
설록진은 내 목에 보이지 않는 목줄을 걸었다. 그 줄을 끊어내 도망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줄을 쥐고 있는 주인의 발을 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나는 그놈의 애완견으로 살아갔다.
━네가 원해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니잖냐.
그건 중요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그놈과 붙어먹으며 이 나라의 멸망에 일조한 건 사실이니까.
나중에는 꽤나 즐기기도 하지 않았나.
설록진이 내게 선사한 소위 말해 ‘성공한 삶’을.
“웃기지 않습니까? 그렇게 복수를 바랐는데, 어느새 호산이의 원수인 그놈과 그렇게 잘 지냈다는 게요.”
설록진의 말이 맞다. 나는 설록진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전 애초부터 안 되는 놈이었던 겁니다. 원래부터 쓰레기였던 거죠. 그런 주제에 대체 뭘 해 보겠다고.”
━그렇다고 여기에 처박혀서 아무것도 안 할 셈이냐?
“대체 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뭔가를 하면 할수록 모든 게 다 망가질 뿐이라고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상황도 오지 않았을지 모르고…….”
그때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이 열렸다.
아니, 이건 뜯겼다는 말이 맞겠다. 경첩째로 뜯긴 문 사이로 잔뜩 열이 받아 보이는 김재호와 한서현이 튀어나왔다.
“나와요.”
“뭐, 뭐냐?”
잔뜩 화가 난 얼굴로 한서현이 내게 말했다.
“얘기 좀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