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128화 (128/352)

제128화

#42 기지 채우기 대작전 (1)

설록진을 비롯한 국회의원들은 벨츠머츠, 우리를 국가의 적으로 공언했다.

특히 평상시 자신이 반각성자 진영에 있다는 걸 공공연히 밝혀 왔던 설록진 의원은 자신의 분노를 감추지 않고 토해 냈다.

“김성득 의원님을 살해한 이번 범인은 아주 오만하고 간악한 인간들입니다.”

벨츠머츠. 설록진은 그들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비난을 이어 나갔다.

“김성득 의원님을 두고 많은 말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아버지처럼 저를 이끌어 주셨던 김성득 의원님께서 그러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걸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주먹을 쥔 설록진의 눈가는 붉게 물들었다. 그 모습에 많은 이들의 입에서 탄식이 터졌다.

“이런 식으로 김성득 의원을 살해하는 게 ‘옳은 일’입니까?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언제서부터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누군가를 고문하고 살해하는 일이 옳은 일이 되었는지.”

설록진 의원의 발언은 그 즉시 수십 개의 기사가, 아니, 수천 개의 기사가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건 끔찍한 범죄입니다. 김성득 의원이 정말 죄를 지었다면, 입에 담을 수도 없는 그 의혹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재판을 받고 정의의 심판을 받았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이번 일에는 제대로 된 조사도, 재판도 없었습니다. 왜냐, 그들은 적절한 법으로는 김성득 의원에게 죄를 물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설록진은 사방에 깔린 카메라를 보며 외쳤다.

“그저 그들은 보여 주고 싶었던 겁니다. 이 나라조차, 법조차 자신들의 발아래에 있다고.”

설록진의 발언에 모두가 신음을 삼켰다.

확실히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범죄자 하나에 놀아나고 있는 셈이 아닌가.

“김성득 의원이 피살당한 일은, 단순히 개인의 죽음으로 볼 게 아닙니다. 법치주의 국가의 몰락으로 봐도 되는 일이죠.”

참담한 심정입니다, 하고 중얼거린 설록진은 목이 메는 듯 잠시 말을 멈췄다. 붉어진 눈가에 눈물이 맺힌 그의 모습은 전파를 타고 대한민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겨우 감정을 추스른 설록진이 말을 이었다.

“지금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하죠. 결국 그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지 않았겠느냐고. 한 가지만 말씀드리죠.”

다시 한번 정면을 바라본 설록진이 말했다.

“힘이 있는 자들이 그 힘을 사적으로 휘두르기 시작한다면, 언젠가 힘이 있으니 옳게 되는 세상이 오고야 말 테니까요.”

설록진의 말은 모두를 흔들어 놓았다. 특히 비각성자들을. 설록진은 교묘하게 벨츠머츠, 그 범죄자들이 저지른 일을 ‘각성자’가 저지른 일로 확대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걱정을 건드렸다.

그래, 힘이 있는 자들이 자신의 힘을 마음대로 휘두르게 된다면?

지금은 법을 지키며 숨을 죽이고 있는 각성자들이 제멋대로 굴게 되면? 나는, 정부는 그걸 막을 수 있나?

그러니 더욱더 강력한 법이, 더 강력한 제재가, 더 완벽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순식간에 설록진은 벨츠머츠의 일을 정리했다. 은근슬쩍 튀어나왔던 벨츠머츠 옹호론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뉴스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참, 여전히 말 하나는 끝내주게 잘한다니까.”

역시 한 번으로 안 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분위기를 뒤엎을 줄이야.

이제 내 편을 들었다가는 아주 국가 전복을 원하는 사람으로 몰아가겠네.

━이제 뭘 할 거냐.

레이가 잔뜩 기대하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저쪽이 저렇게 한 방 쳤는데 너도 가만있을 수는 없지 않냐?

참, 그렇게 안 봤는데 생각보다 호전적이란 말이지.

“뭘 하기는요. 아무것도 안 할 겁니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하든 저렇게 굴 쪽한테 뭘.

“오히려 대비해야죠.”

━뭘?

“분명 얼마 안 있어서 큰 걸 터트리려고 할 거거든요.”

이렇게 말로만 끝낼 사람이 아니다. 이 분위기를 굳힐 만한 일을 만들고 말 거다.

“그럼 그동안 의자나 만들러 가 볼까요.”

괜히 다른 일을 벌였다가 그쪽을 수습하지 못하면 큰일이지.

━대체 그놈의 의자에 왜 그리 집착하는 건데.

“좀만, 좀만 더 하면 될 것 같아서 그래요.”

━뭔데 그 노름판에 빠진 노름꾼 같은 말은!

“딱 한 번만, 한 번만 더 손대 본다니까.”

이번엔 될 거다, 이번에는.

* * *

“드디어!”

눈앞에 떠오른 창에 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드디어 의자를 완성했다.

그동안 내가 의자를 만드는 데 실패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난 무언가를 직선으로 만드는 걸 참 못했다.

벽돌이야 그냥 거푸집을 만들어서 찍어내면 됐지만, 의자는 내가 직접 네 개의 다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다리 하나를 붙일 때마다 마치 예전에 한서현의 앞머리를 잘랐을 때와 같은 일이 재현되었다.

이번엔 이쪽 다리가 이상하네. 이번엔 이쪽 다리가. 그렇게 자르다 보니 어느새 좌식형 의자만 남아 있었지.

결국 난 일반적인 방법으로 의자를 만드는 걸 포기했다. 그리고 방향을 아티팩트로 틀었다. 물이 없는 곳에서도 물이 솟게 만들고,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청결해지는 화장실과 욕조에 비하면 잘 서 있기만 하는 의자 따위는 별거 아닐 게 아닌가!

재료로는 벼락 맞은 고목 다섯 개를 사용했다. 참고로 벼락 맞은 고목은 핸드메이드다. 출력 50퍼센트로 때려 부었지. 그날 내 등짝에는 한서현의 스매시가 내리꽂혔지만, 아티팩트를 만들려면 마나가 흐르는 재료를 사용해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완성된 마법 의자는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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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 맞은 의자 / E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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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ㆍ의자

형편없는 실력을 가진 목공이 좋은 재료를 낭비해 가며 만든 의자.

앉는 순간 엉덩이가 저릿해지고 온몸이 피곤해진다.

이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잖아!

“엉덩이가 좀 배기고 등이 아파 죽겠는 걸 빼고는 괜찮은 의잔데.”

내 중얼거림에 한서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우린 그걸 형편없는 의자라고 말하기로 했어요.”

“쿠션을 좀 얹어 놓으면 괜찮을 것 같지 않냐?”

내 말에 한서현은 고개를 돌렸다. 아니라는 뜻이었다.

쩝.

어쩔 수 없이 나머지 가구는 대충 에케아에서 사기로 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나머지 가구를 다 만드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이제 금 박사도 합류했으니, 더는 되도 않는 생산직에 종사하지 않기로 했다.

음, 세상 사람들에게는 나름의 역할이 있기 마련이고 아무래도 난 이런 일에 최악의 솜씨를 가진 모양이니까.

그래도 실망이 크긴 했다. 마법 아티팩트가 아니고서는 아예 제 기능을 하는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없다니.

그래도 나름 집도 지어 봤으니, 가구 정도는 껌이라고 생각했는데!

━애초에 그 집도 마법의 힘으로 유지되고 있는 거잖냐. 벽돌에 새겨 넣은 마나 회로가 아니었더라면 네놈의 집은 형태를 유지하지도 못하고 무너졌을 거다. 네놈의 머릿속엔 건축학에 대한 기본이 전혀 없으니까.

크흑, 이번 의자 일로 레이의 말을 반박할 수도 없게 됐다는 게 너무 뼈아프군.

말발 하면 자신 있었는데, 너무 압도적인 똥손 앞에서는 그 어떤 미사여구도 빛을 잃을 뿐이다.

어쨌거나 에케아에 도착한 나는 죽은 눈빛으로 가구들을 바라보았다.

젠장, 내가 만든 거랑은 그 만듦새에서부터 차이가 나니 기가 확 죽었다. 나는 슬쩍 진열대에 다가갔다.

“뭐야, 이 굉장히 엄청나 보이는 의자가 9만 원밖에 안 한다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접어놓을 수 있는 데다가 쿠션까지 끼워 주는데? 심지어 균형도 엄청나게 잘 맞았다.

젠장. 패배다. 이런 공산품에 패배하다니.

“그래도 내 의자만큼 정성이 들어간 건 없을 겁니다.”

━솜씨 없는 사람이나 정성 얘기를 하는 법이다.

“젠장.”

나는 가구 코너를 돌며 질투심에 입술을 물어뜯었다. 공장에서 찍어낸 가구들이 전부 다 내가 만든 것보다 낫다니.

아, 이게 모차르트를 보는 살리에르의 심정일까.

━그놈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 알맞지 않은 비유라는 생각이 팍팍 드는데.

알지도 못하는데 끼어들다니. 완전 중증 꼰대 증후군이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반항심을 억누르며 카트를 밀었다.

아니, 밀려고 했다.

카트가 전혀 밀리지 않았다. 가만 보니 카트를 잡고 있는 김재호가 우뚝 멈춰 서 있었다.

김재호의 등을 본 나는 치솟아 오르는 불안함에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인형 판매대였다.

비상, 비상이다.

“재호야, 내가 여기에 오기 전에 뭐랬지?”

“말 잘 들으랬어.”

“그래, 자 앞으로 가자.”

내 말에도 김재호는 그 자리에 콕 하고 박혀 있었다.

“싫어.”

“내가 뭐랬지?”

“잘 듣고 있잖아.”

김재호는 자신의 귀를 가리켰다. 확실히 김재호는 내 말을 잘 ‘듣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고, 인마! 내가 말하는 대로 하라는 뜻이라고.”

“그렇게 말 안 했잖아.”

맙소사! 함정에 걸려들었다.

오늘은 이것저것 살 게 잔뜩이라고! 저런 커다란 인형까지 실을 자리는 없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 새 인형을 사 줬잖은가!

“집에 인형 있잖아.”

“저렇게 생긴 건 없어.”

김재호는 돌고래 인형을 가리켰다. 그래, 여태까지 생선을 사 준 적은 없지.

━돌고래는 생선이 아니라 포유류…….

‘아저씨, 불 난 집에 기름 부으러 오셨어요?’

머릿속에 멋대로 자리를 잡아 버린 꼰대 영혼에 무턱대고 떼를 쓰는 김재호까지. 아주 정신이 없었다.

그래, 좋아. 이번 기회에 제대로 버릇을 들여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나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인형이 그렇게 좋으면 재호는 여기 살아, 나는 집에 갈 거야.”

내 말에 김재호는 정색했다.

“여기서 살라고?”

농담이 전혀 통하지 않는 놈이라 더 힘들었다.

“아니, 아니지. 우리 재호 내가 데리고 가지.”

“근데 왜 그렇게 말해?”

“아니, 난 그냥 농담으로.”

“이게 웃겨?”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중년의 위기 전략가냐?

‘그, 그래야 할지도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 안 웃기지. 어, 그래도 이게 말이다. 안 웃겨도 사회적인 농담이라는 게 있거든.”

“날 버리려고 했잖아.”

“아니, 그게 진심이 아니라니까.”

그렇게 떠들어 대는데 사람들이 어느새 우리를 힐끗거리고 있었다. 젠장, 시선을 끌어 버리다니. 아앗, 공개 수배당한 범죄자답지 못한 행동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반성하며 입을 닫아걸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춰 옆에서 질린 표정으로 나와 김재호를 바라보고 있던 한서현에게 속삭였다.

“서현아, 너라도 자리를 벗어나라.”

“갑자기 그게 무슨 헛소리예요?”

“우리는 너무 노출됐다.”

“참 나.”

한서현은 혀를 차면서도 내 말에 따라 슬쩍 자리를 옮겨 주었다.

이제 내 앞에는 인형 코너에서 발을 떼지 않는 김재호만이 남았다.

나는 큰맘 먹고 말했다.

“사과의 의미로 인형 사 줄게. 하나만 골라.”

“둘.”

“하나…….”

“둘.”

김재호는 협상 불가능한 파락호였다! 이런 나쁜 놈을 봤나. 원래는 하나도 안 사 줄 생각이었는데, 하나만으로 만족할 것이지!

“으아앙, 사 줘! 사 줘!”

세상에 김재호의 속마음이 튀어나온 줄 알았다. 나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웬 꼬맹이가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고 있었다.

“여기서 이러면 안 돼!”

장난감 코너에 드러누운 아이에 쩔쩔매는 여성분이 보였다.

아이고, 저런. 저쪽에 있는 애도 장난 아니게 떼쟁이인 모양이로군. 안타깝게 그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쪽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모든 걸 다 이해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엄마는…….

꼴불견을 본다는 표정으로 아이를 끌어안고 사라졌다.

━푸하하! 여전히 네 웃는 얼굴은 파괴력이 대단하구나.

‘하.’

떼를 쓰던 아이를 번쩍 들고 간 아이 엄마와는 달리 김재호는 번쩍 들려줄 것 같지 않았다. 마나를 쓰면 가능은 하겠지만, 김재호가 몸부림을 치면…….

됐다. 답은 하나뿐이다.

“알았어, 두 개 골라.”

이러다가 재호의 방에는 인형만 가득 찰 것 같은데. 내 허락에 김재호는 실실 웃으면서 커다란 돌고래 인형을 두 개 샀다. 똑같이 생겼는데 왜 두 개를 사냐는 내 질문에 김재호가 말했다.

“똑같지 않아. 얘네 둘은 다른 캐릭터다.”

“그, 그래?”

“응, 얘네는 친구라서 꼭 붙여 줘야 한다고.”

나름의 근거가 있는 거였군. 별로 존중하고 싶진 않지만.

쇼핑은 무사히 끝냈다.

슬쩍 김재호와 내 쪽의 카트를 본 한서현이 얼굴을 구긴 것만 빼고는 괜찮았다.

“영 쓸데없는 것만 샀잖아요!”

“다 필요해서 산 건데.”

“방향제를 왜 다섯 종류나 샀어요?”

“그게 우리 기지가 좀 칙칙하잖냐. 좋은 향이라도 나면 좀 좋을 것 같아서.”

“이건 또 뭐예요?”

“아, 그거 말이다. 문에 다는 장식인데. 누구 방인지 밖에서도 보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애초에 사는 사람이 우리뿐인데, 이런 게 무슨 소용이냐고요!”

나는 한참이나 한서현의 잔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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