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125화 (125/352)

제125화

#41 악당의 방법 (2)

손등이 꿰뚫린 고통에 김성득 의원은 요란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악!”

“뭘 그리 억울해서 떠들어 대는지 모르겠어. 다 당신이 한 짓이잖아.”

나는 비명을 내지르는 김성득 의원에게 천천히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과정과 절차를 무시했다고? 당신도 과정과 절차를 무시하는 걸 즐겼잖아. 과정과 절차를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인체 실험 같은 짓도 못 했지.”

나는 김성득 의원이 전화로 떠들어 대던 것을 하나씩 짚기 시작했다.

자기가 저지른 짓은 생각도 안 하고 도채희를 욕하는 게 너무나도 전형적이라고 해야 할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더러 뭐라고 한다더니.”

나는 혀를 쯧쯧 찼다.

“으, 으어, 내, 내 손을.”

김성득 의원은 고작해야 손등이 꿰인 걸로도 벌레처럼 벌벌 떨었다.

그가 저지른 짓을 아는 나로서는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겨우 이 정도에 벌벌 떨면서 그 어린 애들을 갈기갈기 찢어 댔던 건가, 이 인간은.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검은색의 모래와 그림자가 방 안으로 들어온 걸 본 김성득 의원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두려움에 떠는 그 얼굴을 보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김성득은 겨우 이 정도 인간이었다.

“왜, 나한테 왜들 이러는 건가. 으응? 뭐가 필요해서 이러는 건데. 도, 돈이 필요한가?”

김성득은 필사적인 얼굴로 내게 물었다.

“어, 필요하긴 하지.”

내 말에 김성득 의원의 얼굴에 희망이 돋았다.

“하지만 당신 돈이 필요한 건 아니야.”

나는 말 한마디로 김성득의 희망을 잔인하게 짓밟았다.

“딱 당신이 했던 대로 되돌려줄게.”

나는 삐딱하게 서서 말했다.

나는 주먹을 쥐고 있는 김재호를 뒤로 물렸다. 이 인간은 단번에 머리가 터져서 죽기에는 진짜 못된 놈이거든.

“내가 맡을게. 둘은 나가 봐.”

두 사람은 여기에서 나가야 했다.

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일 예정이거든.

애초에 들어오지 말랬는데, 여기까지는 왜 온 건지.

한서현이 내 말에 입을 삐쭉대며 말했다.

“나가기 싫으면요?”

“여기 끼고 싶으면 어른부터 돼서 와.”

“왜 다른 놈들 죽일 때는 괜찮았는데, 저놈은 안 되는 거예요?”

그 질문에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이놈은 그 사람들처럼 깔끔하게 죽이지 않을 거라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끼워 주겠다는 말에 한서현은 투덜거리면서도 순순히 바깥으로 향했다.

한서현이 방에서 나갔음에도 김재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뭐 해, 안 나가고.”

“나는 어른이다.”

응, 아니야.

나는 김재호도 쫓아냈다.

내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섰다.

“죗값을 치를 시간이야, 잘나신 국회의원 씨.”

내 말에 김성득은 덜덜 떨면서 말을 늘어놓았다.

“제, 제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뭐든 원하는 대로 챙, 챙겨 줄 테니! 돈이 필요 없다면 다른 건 어때? 각, 각성자잖나, 자네! 각성자에게 특별히 좋은 게 잔뜩 있다고.”

“그런 말로 몇 사람이나 꼬신 거야? 다 그런 말에 넘어가던가?”

“제발…….”

“아까 하는 말은 잘 들었어. ‘나, 김성득이를 재판장에 세울 수 있는 놈은 이 대한민국에 없다고’랬나?”

나는 고개를 숙이며 놈에게 다가갔다.

확실히 지금 이 대한민국의 재판으로는 이 괴물을 절대로 잡을 수 없다. 그의 말대로 애초에 김성득은 기소 자체가 되지 않을 테니까.

“당신한테는 안타깝게 됐네. 내 재판에는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거든. 증인도, 증거도.”

내 말에 김성득은 몸을 덜덜 떨었다. 이제야 감이 오는 거다. 그가 갖고 있는 그 어떤 것도 나를 막기에는 부질없다는 것을.

“이 재판에서 필요한 건 딱 하나뿐이야.”

김성득 의원의 앞으로 걸어 나간 나는 그의 손등을 짓밟았다.

“끄아아악!”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에게 내가 속삭였다.

“심증. 네놈이 그 모든 일을 저질렀다는 심증 하나.”

나에게는 그에게 유리하게 기울어져 있는 판에서 싸워 줄 이유가 없다. 나에게는 부패한 자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규칙 따위를 지킬 까닭이 없다. 김성득이 쌓아 올린 것 중 무엇도 나를 멈출 수는 없다.

내 재판에 필요한 건 단 하나.

놈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죄인이라는 사실뿐.

“그거 하나면 난 네놈을 재판에 세울 수 있어.”

나는 발을 굴렀다.

땅땅.

판결봉을 잡은 판사처럼.

“그리고 이 재판에서 나는 기꺼이 네놈에게 사형을 선고하지.”

내 웃는 가면을 바라보는 김성득의 눈에 절망이 번지기 시작했다.

* * *

나는 김재호와 한서현에게 김성득의 시체를 보여 주지 않았다.

내가 봐도 꼴이 좀 그렇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모양새가 좀 그랬거든.

김성득에게는 아주 길고 고된 시간이었겠지만, 그 때문에 목숨을 잃은 피해자를 생각하면 섬광처럼 짧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나는 놈을 놔줄 수밖에 없었다.

곧 해가 떠오를 테고, 그러면 우리가 저지른 모든 일이 밝혀질 테니까.

나는 김성득의 시체를 눈에 띄는 빌딩에 걸어 두기로 했다.

주변 CCTV를 해킹할 수도 있었지만,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대신 시체를 옮기는 건 스켈레톤에게 맡겨 두었다.

뚝딱거리는 스켈레톤이 시체를 걸어 놓는 장면은 마치 옛날 호러 영화처럼 보일 테니까.

성한 부분이 없는 몸과는 달리 나는 김성득 의원의 얼굴을 조금도 건드리지 않았다.

보자마자 그게 누구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

혹시나 범인을 찾아 헤맬까 봐 김성득 의원의 몸에는 팻말까지 친절하게 걸어 뒀다.

김성득 의원의 죽음에 세상이 무어라 반응할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도채희는 펄쩍 뛸 것 같긴 하다. 왜 자신의 기회를 앗아 갔냐고, 이런 식으로 ‘해결’해 준다고 기쁠 것 같냐고 방방 뛰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 당신의 방법으로는 이놈을 처리할 수 없는걸.

아주 작은 도움이다.

이 세상에는 악인을 처리할 수많은 방법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의로운 방법, 선인들이 고집할 만한 방법으로는 진정한 악인을 처벌할 수 없다.

그게 더 옳다고 해도, 그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방법이라고 해도. 그 방법으로 악인을 처벌한다는 건 ‘아직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악인의 방법은 다르다.

왜냐.

세상의 규칙 같은 건 X도 신경 안 써도 되거든.

━속이 다 시원하다는 표정이네.

“예. 옛날에도 저 인간은 한 대 치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한 대 친 정도가 아니지 않나?

“저 인간이 저지른 짓에 비하면 이 정도야 그냥 한 대 세게 맞은 정도죠, 뭐.”

여린 아이들의 몸을 찢어 대고 죽여 댄 인간이니, 그 정도는 느끼고 죽어야 하지 않나.

나는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 다시 우리의 자리로 돌아갈 때가 됐다.

악인의 방법에 단점이 하나 있다면, 악인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내 가장 친한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평생 음지에서 정의로운 사람들을 피해 살아가야 했다.

내가 하는 짓에 대한 평가는 늘 최악, 그 누구도 내가 하는 짓을 고마워하지도 않겠지.

후회가 하나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테지.

‘사실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냥 모든 걸 다 포기하고 나 좋을 대로 떠날까.’

━모든 걸 다 버리고 말이냐.

‘예.’

하지만 누군가의 손에 검은 피가 묻어야 한다면, 내 손만큼 잘 어울리는 곳은 없었다.

저번 생에서 내가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 내 몫의 속죄는 해야지.

감상에 젖어 있을 무렵 옆에서 한서현이 말을 걸어왔다.

“이제 다 끝났죠?”

“그래.”

“그럼 아침이나 먹으러 가요.”

그 아무렇지도 않은 말에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상념은 순식간에 흩어졌다.

“집에 가서 먹을까?”

“저기에 있는 국밥집에서 국밥이나 한 그릇 하죠?”

“너는 열여덟밖에 안 된 애가 벌써 입맛이 그렇냐.”

“누구 때문에 한 달 내내 달걀볶음밥만 먹다 보니까 그냥 뜨끈한 국물이 당겨서 그런 거거든요? 진심으로 달걀볶음밥 질리니까 다른 메뉴도 해 주면 안 돼요?”

나는 한서현의 반찬 투정을 뒤로 넘겼다. 나 때는 차려 주는 대로 다 잘 먹었는데, 왜 이렇게 불만이 많은 건지.

“재호는?”

“난 아무거나.”

“아무거나라고 말하는 게 제일 싫은데.”

내 중얼거림에 한서현이 김재호의 옆구리를 툭 치고 김재호에게 속삭였다.

“국밥이라고 해요, 국밥.”

“국밥.”

마치 프린트처럼 김재호는 옆에서 들려준 대답을 그대로 출력했다.

“근데 국밥이 뭐냐?”

참 나,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저 애들이 있는 한 이런 삶도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

김성득 의원의 사망 소식은 곧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처음 시체를 발견한 청소부는 신고 전화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겁에 질렸다. 그만큼 발견된 시체는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보복성 살인.

그 소식을 들은 도채희는 숨을 집어삼켰다.

벽에 막혔다고 생각했을 때 일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해결되었다.

“벨츠머츠.”

김성득 의원의 몸에는 팻말이 하나 걸려 있었다.

「Weltschmerz Maker」

벨츠머츠 메이커라고.

자신들이 말하는 이 비관적이고 우울한 세상을, 마치 김성득 의원이 만들었다는 것처럼.

누가 봐도 김성득 의원, 그리고 현무 제약과 얽힌 일과 관련된 처벌이었다.

온 언론들은 벨츠머츠의 이 살인에 대해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김성득 의원이 생전 필사적으로 묻으려 했던 일들이 속속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인터넷에는 그들이 숨겨 왔던 진실이 연거푸 폭로되었다.

소심했던 언론들은 그제야 눈치를 보듯 기사를 써 내리기 시작했고, 입을 굳게 닫았던 증인들은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비로소 현무 제약은 제대로 된 재판대에 설 수 있게 되었다. 팀장은 물론이고 그 위에 있는 회장까지 소환 요청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간단한 거였나.

이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든 건, 도채희가 그토록 잡고 싶어 하던 벨츠머츠였다.

“생각해 보면 아무도 모르고 묻혀 있던 봄날 보육원을 습격한 것도 벨츠머츠였지.”

그놈들은 분명 악당이었다.

여태까지 수십 명의 사람을 죽인, 악당들.

하지만 그 악당들이 그녀가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지?’

도채희가 허망함을 느끼고 있을 때, 그녀의 앞에 박철완이 나타났다. 며칠 사이 마음고생을 한 듯 박철완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얘기 좀 하자.”

박철완 못지않게 퍼석한 얼굴을 한 도채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한적한 곳에 닿자, 불안한 듯 눈을 굴리던 박철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도 알잖냐. 너희 숙모 몸도 안 좋은 거.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박철완의 이야기는 제법 길게 이어졌다.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은 도채희는 주먹을 꽉 쥔 채로 말했다.

“그래서 타협한 거라고요, 그런 놈들이랑?”

박철완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채희가 어떤 사람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던 만큼,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먹혀들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악은 도망가지 않는다더니, 알고 보니 도망갈 필요도 없던 거였네요.”

도채희의 말에 박철완이 폭발하듯 입을 열었다.

“나도 나쁜 놈들을 잡고 싶어. 그럼, 그걸 위해 경찰관이 되고 각범 팀에 들어갔는데 당연하지. 너도 알잖냐.”

확실히 박철완은 범죄자에게는 늘 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가 잡아들인 범죄자만 해도 수십, 수백 명은 될 거다.

하지만 그는 가장 타협하지 말아야 할 인간들과 타협했다.

“김성득, 그 사람은 나쁘지 않던가요? 불법 게이트를 운영하던 사람은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을 잡을 순 없어.”

“그 사람들은 우리를 바보로 만들었어요.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었죠. 이빨을 뽑고 손톱을 잘랐죠. 타협? 타협이라고 하셨어요?”

도채희가 외쳤다.

“이건 타협 같은 게 아니에요. 굴종이지! 바짝 엎드려 살려 달라고 빈 것과 뭐가 달라요? 뭘 위해서 그랬는데요? 조금 더 윤택한 삶을 위해서?”

“윤택한 삶? 아니, 살아남기 위해서 그랬다!”

박철완이 그녀에게 소리쳤다.

“조금만 눈을 감으면 그뿐이야. 어차피 우리가 상대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내가 그들과 싸웠다면? 그 사건을 파고들었다면? 채희야, 너는 몰라. 내가 어떤 수라장을 걸어왔는지.”

정의를 외치는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결국 남은 건 박철완뿐이었다. 박철완은 도채희에게 말했다.

살아남으려면 이 방법뿐이었다고.

“난 나쁜 짓은 하지 않았어. 범죄를 저지른 적도 없다고. 그냥, 나는 잠시 눈을 감았을 뿐이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비겁하네요. 정말로 비겁해.”

도채희는 박철완을 보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녀는 벨츠머츠를 싫어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들을 과연 욕할 자격이 그녀에게 있을까? 자신의 바로 옆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우리는 타협해선 안 돼요.”

“왜? 우리도 평범한 사람이잖아!”

“우리가 타협하면, 그래서 외면해 버리면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쓸쓸히 죽어갈 테니까요! 우리의 타협이, 우리의 외면에 누군가는 죽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 타협하고 싶으셨으면, 외면하고 싶으셨으면 적어도 경찰이 되셨으면 안 되죠.”

그 말에 박철완은 주먹을 꽉 쥐었다. 박철완이 도채희에게 충고하듯 입을 열었다.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은 법이다. 내가 널 막지 않아도, 다른 이들이 널 막아설 거야.”

“상관없어요.”

도채희가 으르렁거리듯 입을 열었다.

“저는 비겁하게 살아남느니, 차라리 정의로운 죽음을 택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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