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4화
#41 악당의 방법 (1)
“이거 어렵겠는데.”
나는 혀를 쯧쯧 찼다.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김성득 의원은 이번에도 유유히 빠져나갈 것 같았다.
“그래도 애썼네요.”
━도채희는 네 적이 아니냐? 묘하게 평가가 좋은데.
나는 도채희를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
남주현의 박한 평가대로 시야는 좁은 데다가 고집은 쓸데없이 세고 벽창호처럼 답답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정의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던져 넣었으니까.
도채희는 무능하다. 그건 도채희가 못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왜냐? 애초에 이 싸움은 도채희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거든.
도채희는 나이트도, 비숍도, 퀸도 없이 상대방과 체스를 두고 있는 셈이었다.
상대방은 이기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지만, 도채희는 아무런 규칙도 어길 수 없는 불공평한 싸움에서 이기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깝다.
“심지어 평생을 그녀와 함께했던 박철완마저 도채희의 편은 아니니까요.”
━박철완이라는 사람, 혹시…….
“설록진에게 세뇌가 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그냥 선택한 거죠. 정의롭게 살다가 시체가 되느냐, 아니면 비겁한 방관자가 되더라도 살아남느냐 중에서 후자를요.”
남주현의 말대로 박철완이 부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그가 문제를 마주하는 대신 도망치길 선택한 겁쟁이였기 때문이다.
“박철완은 안전주의자일 뿐이에요. 본인의 권력을 위해 적극적으로 위와 붙어먹지는 않겠지마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기꺼이 침묵할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악인이라고 하면 보통 설록진 같은 놈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악인에 다수의 방관자가 함께하는 모습이다.
악은 널리 퍼져 있다.
불의를 보고 침묵하는 것도 충분히 악이니까.
━그 녀석도 처리할 거냐?
“아니요.”
안타깝게도 방관자보다 더 나쁜 놈들이 많아서 말이지. 박철완을 죽여 없애면 더 나쁜 놈이 그의 자리를 대신할 뿐이다.
어쨌거나 ‘김성득 의원 처리하기 정의.ver’는 완전히 실패로 끝났다.
나는 남주현을 찾았다.
“이대로라면 김성득 의원은 문제없이 빠져나갈 겁니다.”
내 말에 남주현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 방법밖에는 없을까요?”
“말했잖아요, 이 방법뿐이라고.”
이 나라는 이미 썩을 대로 썩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이 나라에서 정의는 죽은 지 오래다.
“그렇게 증거가 많았는데, 증인들도 한 무더기인데. 그래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요? 겨우 팀장 하나로 끝이라고요?”
“과징금도 내겠죠. 현무 제약의 이득에 비하면 새 발의 피겠지만.”
현무 제약은 여전히 건재할 거다. 김성득 의원도 마찬가지로 전혀 기가 꺾이지 않을 거고.
나는 남주현에게 말했다.
“약속대로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합니다.”
* * *
남주현이 사라지고 내 주위에는 검은 그림자가 짙게 깔렸다. 그 어두컴컴한 어둠 속에서 내가 기다리던 두 사람이 나타났다.
“진짜 기다리느라 지루해 미치는 줄 알았어요.”
모래로 만든 재규어 아래로 내려온 한서현이 코를 찡긋거렸다.
“요새는 그거 잘 타고 다니네.”
“멋있죠?”
아주 얼굴에 자랑스럽다는 기색이 가득하다. 내가 남주현과 있는 동안 모래로 이것저것을 만들어 보더니 꽤나 다루는 데에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앞으로 이동은 모두 한서현에게 맡겨도 되겠는데. 내 시선에 한서현이 잘게 몸을 떨었다.
“뭐, 뭐예요. 그 시선은.”
“그냥 뿌듯해서 보는 건데?”
“그래요? 근데 왜 이렇게 오한이 들지?”
육감도 발달하고 있는 건가.
━육감이라니, 네가 지금 어떤 눈으로 저 녀석을 봤는지 아냐?
‘어떤 눈으로 봤는데요?’
━산 채로 잡아먹기 좋다는 눈이었다!
‘해칠 생각은 전혀 없는데.’
언제나 나에게 박한 레이였다.
나는 한서현에게 물었다.
“재호는?”
내 부름에 재호가 내 그림자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아, 씨, 깜, 깜짝이야.”
하마터면 욕을 내뱉을 뻔했다.
그동안 그림자에 녹아드는 걸 연습해 두라고는 했지만, 이렇게 능숙해졌을 줄이야.
“둘 다 많이 늘었네.”
애들은 안 보는 사이에 쑥쑥 큰다더니. 나는 한서현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 잠깐.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너, 키도 큰 거 같다?”
농담이 아니라 이제는 정말로 제법 나와 눈높이가 비슷해졌는걸. 이러다가 곧 내 키를 따라잡겠다.
━178cm 정도밖에 안 되지 않냐, 너.
‘반올림하면 180cm라고요.’
나는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렸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정말로 따라잡혀 버리겠는걸. 설마하니 이 벨츠머츠에서 가장 작은 게 내가 되는 건 아니겠지?
“많이 컸네.”
“진짜요?”
순간 기뻐 보였던 얼굴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그렇게 몇 달 만에 만나는 친척 같은 말을 하지 말라고요!”
“그래, 친구는 많이 사귀었고? 공부는 잘하고 있냐. 여자 친구는 있고?”
“으! 완전 싫어!”
나는 낄낄 웃었다. 웃는 건 여기까지다. 나는 두 사람을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가 뭘 할지는 알지?”
내 질문에 한서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아요, 나쁜 놈을 잡으러 가는 거잖아요.”
“응, 아주 나쁜 놈.”
나는 김성득 의원이 저지른 죄를 천천히 말해 주었다. 현무 제약에서 일어났던 인체 실험과 그들이 취했던 이득을.
죄 없는 이들의 목숨을 취해 만들어진 금자탑에서 그 어떤 뉘우침도 없이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는 그를 생각하니 속이 메슥거렸다. 그의 죄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리고 그 인간은 봄날 보육원을 만든 사람이기도 해.”
내 말에 한서현은 가만히 김재호를 바라보았다. 막상 이 사건의 당사자인 김재호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얼굴이었지만, 한서현은 김재호가 신경 쓰여 못 견디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래도 그동안 정이 꽤 많이 들었으니까.
나는 한서현에게 말했다.
“그 사람을 정의로운 방법으로 끌어내릴 순 없어.”
“왜요?”
“이 세상이 잘못돼 있으니까.”
도채희로는, 남주현만으로는 김성득을 처리할 수 없다.
정의를 관철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가.
적들은 온갖 편법에, 더러운 방법을 다 동원하는데 정의만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한다.
“정의롭게 이기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야.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으면서, 멋대로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니. 이렇게 불공평한 게임도 없지. 심지어 이 게임을 만든 건 바로 심판을 받아야 할 그놈들이고 말이다.”
국회의원.
김성득은 가장 정의로워야 할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었다.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그는, 대신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에 자신의 권력을 썼다.
“피해를 받는 사람들을 위한 법을 만드는 데는 평균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진짜 사람들을 구할 법이 고안되어도 그 법이 국회를 통과해서 실제 법으로 작용하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는 거야. 하지만 그와는 달리 몇 개의 법들은 늘 빛과 같은 속도로 통과돼.”
국회의원에게 이익이 되는 법들.
“국회의원들의 월급을 올리자든가, 국회의원의 임기가 끝나고 나서 처우를 개선한다든가. 그들의 편의를 봐주는 법들은 언제나 순식간에 통과되었어.”
왜냐? 법을 만드는 게 바로 그들이니까.
그런 법들이 하나일까. 아니, 수십, 수백 개다. 각성자가 등장한 이후 국회의원들은 본인들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수없이 많은 법을 만들었다.
“도채희는 절대로 김성득을 이길 수 없어.”
어떤 짓을 하든 간에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정의는 약점이 너무 많아.”
사람들은 정의가 옳다고 말한다. 그러니 정의가 승리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누구보다 정의의 승리에 깐깐하다.
순백의 정의에 아주 조그마한 검댕이라도 묻으면, 이건 진정한 정의가 아니라고, 정의를 말한 주제에 알고 보니 너도 똑같은 인간이었다고 매도한다.
정의는 완전무결해야만 정의인가?
진짜 검은 것들을 두고 왜 정의에 튄 검댕만이 잘못됐다고 손가락질을 하는 건가.
정의의 승리를 무엇보다 원한다면서, 왜 누구보다 정의에 박한 잣대를 들이대는 걸까.
“그러니 우리가 나서야지.”
* * *
“당연히 기소가 안 되지! 그건 네가 잘나서가 아니야! 나, 김성득이를 재판장에 세울 수 있는 놈은 이 대한민국에 없다고! 문제는 그거야. 감히 나를 노린 놈이 있다는 거, 아니, 년이라고 해야 하나?”
김성득 의원은 휴대폰에 대고 욕설을 쏟아 내고 있었다. 욕심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그의 얼굴은 분노로 인해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그년을 자르든, 없애든. 아니, 너무 노골적이면 곤란하지. 시간을 뒀다 처리해야……. 그년이 각성자든 뭐든 상관없어. 내가 누구냐고, 나 김성득이야! 감히 나를 노렸으니,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지. 과정과 절차가 뭔지도 모르고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꼴을 봐! 아예 싹을 잘라야 해.”
기고만장한 김성득의 말을 들으며 나는 코웃음을 쳤다. 하긴, 저렇게 자신만만할 만도 하지. 아직은 이 세상이 자기 거 같고 그렇겠지.
나는 의자에 기대앉은 채로 놈의 말을 들었다.
아, 공중에 웬 의자냐고?
한서현이 만들어 준 모래 의자다. 벽에 딱 달라붙어 나를 편하게 받쳐 주는 게 아주 착석감이 최고다.
나는 그곳에 앉아 김성득 의원의 헛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김성득 의원이 목소리를 높여 떠드는 중간에도 안에 있는 경비원들은 김재호에게 하나둘씩 쓰러지는 중이었다.
김성득 의원의 사무실에 침입하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쉬웠다.
경호원이 있었지만, 각성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그 몇 안 되는 각성자도 5성급 미만이었다. 김재호에게는 간식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역시 그런 짓을 저지른 주제에 위기의식이 조금도 없다니까요, 이 인간들은.’
뭐, 오늘 이후로는 좀 달라질 수도 있지만.
나는 귀에 꽂힌 무전기를 누르고 김재호에게 말을 걸었다.
“죽이지는 마, 재호야.”
[……알겠다.]
경호원들은 모두 기절시키기로 했다. 일단 범죄에 얽히진 않았으니까. 돈을 받고 경호원 일을 뛴 죄밖에 없지 않은가.
뭐, 다른 범죄라도 얽혀 있다면 당장 목을 댕강댕강 썰어 줄 테지만.
━다른 범죄에 얽혀 있지 않다는 건 어떻게 안 거냐?
‘남주현 씨한테 물어봤죠. 뭔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저 경호원들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여기에 있는 인원들은 죄다 아무런 죄도 없는 경비업체의 사람들이었다. 음, 이번 일이 터지고 나면 경비업체의 주가가 대폭 내려갈지도 모르겠지만, 그거까지는 내 알 바가 아니고.
주변에 있던 자신의 방패가 하나둘씩 사라지는 중임에도 김성득은 그 무엇 하나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건물 바깥에서 경호원들의 제압이 모두 끝날 때까지 대기하는 동안 김성득은 지치지도 않고 여기저기에 전화를 걸어 댔다.
그중에 설록진은 없었다.
과거 설록진과 김성득은 제법 가까운 사이였다.
20대 초반의 설록진을 미리내당에 들이고, 그의 정치 인생을 열어 준 게 김성득이었으니, 가까울 수밖에.
‘부인도 김성득 의원의 소개로 만났지.’
내 중얼거림에 레이가 놀란 듯 물었다.
━뭐야, 그놈. 결혼도 했었냐?
‘예, 철저한 쇼윈도 부부였지만요. 심지어 자기 부인을 세뇌까지 했다고요.’
그 여자도 참 지금 생각하면 불쌍하다. 설록진을 진심으로 사랑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설록진은 그녀의 감정을 눈치채자마자 그녀를 꼭두각시로 만들어 버렸다.
옆에서 보는 내가 다 안타까워질 정도였다.
‘애초에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았지만, 자기 부인한테까지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 애초에 정략결혼이기는 했지만요.’
그래도 결혼까지 했으면 감정이 좀 달라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어렸을 때부터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던 나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었던 나는 가족이 있었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게이트 사고에 부모님이 말려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알 뿐이었다. 그런 만큼 가족에 대한 환상이 많았다.
여우 같은 마누라랑 결혼해서 토끼 같은 자식들을 키우고 사는 게 꿈이었다고.
설록진 때문에 결혼을 하겠다는 다짐은 싹 사라져 버렸지만.
━하긴, 나라도 저런 식으로 제 부인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인간이 있다면 결혼 생각이 싹 사라지긴 하겠다.
‘뭐, 딱히 그 때문은 아닙니다. 다른 일이 있었거든요.’
━무슨 일?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죠.’
━사람 궁금해지게 왜 말을 하다 마는 거야! 왜 맨날 나중에 말해 준다는 건데!
‘그야, 우리 애들이 준비를 다 끝낸 것 같으니까요.’
어느새 내 옆에 앉은 까마귀가 날갯짓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아래로 내렸다. 모래 의자는 내 뜻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부드럽게 움직였다.
창문 틈으로 들어간 모래가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슬쩍 창틀에 발을 올린 나는 조심스레 창문을 열었다.
여전히 김성득 의원은 누군가를 향해 욕설을 쏟아 내는 중이었다.
뒤에서 들이닥친 차가운 공기에 고개를 돌린 김성득 의원은 나를 보며 입을 벌렸다.
그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 전, 나는 허벅지에 꽂아 두었던 단검을 던져 그대로 김성득 의원의 손등을 찍었다. 휴대폰과 손등이 꼬치처럼 하나로 꿰였다.
“안녕하신가.”
내 가면을 바라본 김성득 의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