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화
#40 정의를 꿈꾼다는 것 (3)
도채희의 말에 김용원은 팀원 전부를 끌고 와 현장을 쓸었다.
현장에 온 각범부 팀은 도채희를 포함해서도 겨우 다섯.
당연히 현장을 통제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도채희의 서슬 퍼런 눈빛에 졸아붙은 사람들은 잠자코 도채희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증거는 차곡차곡 수집했고, 피해자들을 구출했다.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구급차까지 불러들였다.
조용했던 연구소 근처는 순식간에 몰려든 인파로 시끌벅적해졌다.
김용원은 그곳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분! 통제에 따라 주세요! 천천히 나오시고요! 아, 조심해 주세요!”
현무 제약의 지하에 갇혀 있던 사람의 수만도 수십 명이었다. 그중에는 확실히 N이 말한 대로 ‘각성자’ 또한 있었다.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기는커녕, 본인이 여기에서 박박 굴려진 듯 피폐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지만 각성자 특별법을 들이밀 여지는 남은 셈이다.
파리하게 질린 박철완이 도착한 건, 도채희가 모든 증거를 차곡차곡 수집하고 피해자들을 모두 격리한 직후였다.
“너, 도대체 무슨 사고를 친 거냐.”
“사고를 친 게 아니라, 해결한 거죠.”
박철완의 추궁에도 도채희는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이것도 사고라면 대형 사고라지만, 그래도 좋은 사고 아닌가. 칭찬받아야 마땅한 일 아니냐고.
아직도 속은 복잡했다. N에게서 들었던 말이 머릿속을 뒤흔들고 있었다. 정말로 박철완이 그쪽의 사람일까.
안에서부터 드는 의문을 애써 억누른 채 도채희가 박철완에게 말했다.
“여기는 어떻게 오셨어요? 나중에 보고서로 올리려고 했는데.”
“이런 일이 있다는데, 안 오고 어떻게 배기냐. 이런 일을 어떻게 보고도 없이…….”
“혼자여야만 가능한 작전이었어요.”
박철완의 말대로 보고를 올렸다면 이들이 대비할 시간을 줬겠지. 사람들과 같이 왔어도 마찬가지고.
이들이 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홀로 이곳을 헤집어 놨기에 이런 성과가 가능했던 거다.
“결과가 좋으면 된 거 아니겠어요?”
“결과가 좋아? 네가 진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어? 무턱대고 네가 여길 들쑤신 거, 그냥 징계로 끝날 일이 아니야. 대체 각성자 특별법이라는 말은 왜 꺼낸 거냐? 애초에 각범부가 여기에는 왜 출동한 건데.”
엄밀히 말해 각성자 특별법은 가해자가 각성자일 때 적용되는 법이었다. 이곳에서 가해자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들은 전부 비각성자였다. 연구원들이나, 이곳의 운영자 같은 사람들.
“음, 전 밑에서 사람들을 착취하고 괴롭히는 게 각성자인 줄 알았거든요. 게다가 현장에 각성자가 있긴 했으니 완전히 거짓말도 아니었고.”
도채희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늘어놨다.
“그래도 덕분에 현무 제약의 실체를 알게 되었잖아요.”
지하에 갇혀 있던 사람들의 상태는 확실히 좋지 않았다. 마나 중독 증상을 보이는 사람도 여럿이었고, 몇몇에게서는 실험을 당한 흔적까지 발견되었다.
자세한 건 더 조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N이 말했던 대로 이 현무 제약에서 일어나는 일은 확실히 비인도적이었다. 법도 수십 개는 어겼겠지.
대한민국 최고의 제약 회사가 사실 알고 보니 뒤로는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을 만한 사건이었지만, 박철완의 얼굴에는 이런 일을 밝혀냈다는 뿌듯함보다는 초조함만이 보일 뿐이었다.
“기쁘지 않으세요?”
“뭐?”
“나쁜 놈들을 잡았는데, 기쁘지 않으시냐고요.”
도채희의 말에 박철완의 표정은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그제야 도채희는 인정했다.
박철완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부장님.”
“왜.”
“이 일은 제대로 터트려요, 우리.”
“터트리다니, 뭘.”
“덮기엔 늦었잖아요.”
“하.”
“덮으시게 두지도 않을 거고요.”
“뭐?”
도채희의 말에서 느껴지는 적대감에 박철완의 얼굴이 굳었다.
이미 목격자가 많았다. 도채희가 이끌던 1팀, 그리고 관계자들. 박철완은 모르고 있겠지만 도채희가 그곳을 덮치던 장면은 N에게로 생중계되었다. 도채희가 묻는대도 그쪽에서 터트릴 거다. 이미 이 사건은 덮을 수 없다.
정확히는 그 누구도 이 사건을 덮게 두지 않을 거다.
“저번에 보육원에서 일어난 일을 세상에 발표하지 않은 건, 정말로 사람들을 위해서였나요?”
이런 일이 흘러 들어가면 모두가 혼란에 빠질 거라고. 그러니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
박철완은 그 사건이 터졌을 때 도채희에게 그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보육원에 대해서 아는 건, 그 보육원에서 실종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뿐이었다.
그 안에서 일어나던 인체 개조며, 납치 사건에 대해서는 모든 게 비밀이었다. 아는 사람만 알 뿐, 그 정보는 철저히 대중들에게는 비밀이었다.
시민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정보를 통제한다고 말한 그 말을 도채희는 믿었다.
그때에는,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정보를 숨긴 건 그 뒤에 숨은 진짜 범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고.
“강이신 사건 때도 그랬죠. 불법적으로 채굴을 주도한 사람들이 있음에도 그들의 뒤를 쫓진 않았잖아요. 현장에서 사람들이 죽었다고 하더라도, 그건 하수인들일 뿐. 그 게이트를 개발하고자 한 사람들은 따로 있었을 텐데도.”
그들의 뒤를 쫓자는 말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자극적인 사진과 보도에 곧이어 이어진 한조희의 살인 사건. 그리고 물 흐르듯 이어진 공개 수배까지.
몰려드는 제보를 상대하다 보니 어느새 뒷일은 잊게 되었다.
눈앞에 있는 트럭을 따라 달리는 강아지처럼. 진짜 중요한 걸 쫓지 못했다.
눈이 가려진 경주마처럼 오로지 자신의 앞에 놓인 길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뛰고 있었다.
N이 한 말이 맞다.
박철완은 그녀의 생각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었고 도채희는 멍청했다.
“어째서 모든 걸 덮으려고만 하는 거예요? 대체 누굴 위해서?”
도채희는 참담한 심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박철완은 가족을 모두 잃었던 그녀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게 해 준 버팀목이었다. 누구보다 든든한 보호자이자, 누구보다 믿음직했던 그녀의 상관이었다.
오늘따라 그의 얼굴이 너무나도 다르게 보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봤던 얼굴인데,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낯설었다.
“일단 진정해. 너 지금 흥분했어. 흥분해서 아무 말이나 막 하고 있다고.”
얼굴을 쓸어내린 박철완은 도채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일단은 도채희를 달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좋지, 좋아. 여기에 갇혀 있던 사람들 다 안타깝지. 잘했다, 잘한 일이야. 하지만 세상일에는 과정과 절차라는 게 있잖냐. 그런 걸 다 때려치우고 이렇게 나오면 어떡해. 그리고 그 말들도 그래. 그건 다 종결된 사건이고…….”
하지만 박철완의 그 말은 도채희를 다시 한번 자극했다.
“종결된 사건이요? 과정과 절차요? 애초에 그 과정과 절차가 누굴 위한 건데요? 피해자들은 여기에 갇혀 있는 동안 그 과정과 절차를 말하는 건 누군데요. 여길 운영하던 건 김성득 의원이죠. 법을 만들고 지켜야 하는 국회의원이 이런 짓을 저질렀어요. 법은 그들의 편이고…….”
“도채희!”
박철완이 소리를 질렀다.
“그만해.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어.”
도채희의 시선을 느낀 박철완은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일단은 나중에 얘기하자.”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뒤로 하고 나아가는 박철완을 도채희는 붙잡았다. 그의 손목을 단단히 틀어쥔 채, 도채희가 말했다.
“약속해요, 이 일만큼은 확실히 처리하겠다고.”
제발.
마지막으로 당신을 한 번만 더 믿어 볼 테니, 제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말아 달라고.
그래도 그동안 함께한 세월이 있으니, 당신을 저버리게 하지 말아 달라고.
도채희는 자신의 모든 마음을 담아 그에게 부탁했다.
“부장님이 하지 않으시면, 제가 어떻게든 할 거예요. 나쁜 놈이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고요. 그러니까 부디, 이번 일만큼은 제대로 해결해요.”
복잡한 표정으로 도채희를 바라보던 박철완은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 * *
도채희는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사실 수사부터가 난항이었다. 도채희의 부탁에도 박철완은 그녀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녀를 방해하지 않는 것만 해도 고맙다고 해야 할까.
도채희는 입술을 짓씹었다.
현장을 급습해 가지고 온 증거들로 현무 제약을 궁지로 모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김성득 의원을 엮어 내는 데는 실패했다.
애초에 현무 제약의 회장직에서도 물러난 지 오래인데, 자신이 무슨 상관이냐는 말이었다. 거기에 이 모든 건 현장직들의 지나친 애사심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꼬리를 자르는 것까지.
애초에 현직 국회의원인 그를 끌고 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불체포 특권.
국회의 동의 없이는 김성득 의원을 체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니까.
참고인 조사 또한 김성득 의원이 불응하면 그만이었다.
“이 모든 행위 뒤에는 김성득 의원이 있는 게 분명한데!”
N이 ‘불법적으로’ 수집한 증거는 제출할 수 없다.
도채희가 사용할 수 있는 패는 너무나도 한정적이었다.
봄날 보육원 일도 끼워 넣고 싶었지만, 애초에 그쪽은 증거 불충분으로 받아 주지도 않았다.
국민들의 여론은 각범부에 호의적이었지만, 이 사건을 맡은 담당자는 도채희와 각범부의 편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수사도 없이 다짜고짜 쳐들어가 쓸어 담은 증거는 제대로 된 증거라고 볼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이 사건을 물고 온 도채희를 공격했다.
그나마 도채희가 기소당하지 않은 건 각성자 특별법 덕분이었다.
그래도 도채희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야 제대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게 되었는데 겨우 장애물 몇 개를 마주했다고 뒤로 물러서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이번 일을 직접 증언해 줄 증인이 있었으니까. 그 증인 중 몇 명만 제대로 입을 열어도 현무 제약을 제대로 뒤집어 놓을 수 있겠지.
김성득 의원이 엮여 있다는 명확한 증거가 나오면 국회 또한 김성득 의원을 변호하는 걸 멈출 수밖에 없을 거다.
하지만 증인들은 도통 협조적이지 않았다.
“아, 이거요? 이거는 제가 실수해서 난 상처예요.”
“실험 같은 건 없었어요.”
“아무런 일도 없었대도요!”
며칠 전만 해도 이런 태도가 아니었는데.
대체 그 짧은 시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들 완전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보복이 두려우셔서 그러는 거예요?”
도채희의 질문에 사람들은 아무런 답도 주지 않았다.
예전의 그녀였더라면, 자신이 보호해 줄 테니 입을 열라고 말했을 거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섣불리 이들을 보호하겠다고 말할 자격 같은 건 그녀에게 없다는 걸.
이미 그녀는 증인을 잃은 적이 있었다.
‘한조희…….’
그를 살인한 것이 강이신이든, 아니면 제3자든. 도채희는 그를 지켜 내지 못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제약 업체가 엮인 일임에도 언론은 이상할 정도로 잠잠했다.
N의 말대로였다. 이미 언론과 자본은 한 몸이 되어 있다.
SNS에서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현무 제약의 책임자를 찾아 엄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떠돌았지만, TV나 포털 사이트에서는 현무 제약의 ‘ㅎ’ 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를 대신해 언론이 다룬 건 마약, 불륜, 연애설 같은 가십거리들이었다. 대중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누군가의 의도가 가득 담긴 스캔들이 연달아 펑펑 터졌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자극적인 기사에 현무 제약의 일은 서서히 대중들의 관심에서 벗어났다.
대중의 관심이 식자마자 그들이 본색을 드러냈다. 이 사건에서 김성득 의원은 기소조차 되지 않고 유유히 빠져나갔다. 이 일의 책임자로 거론된 사람은 겨우 ‘연구소 팀장’직에 올라 있는 연구원 하나뿐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꼬리가 잘렸다.
이 모든 일을 주도한 게 겨우 팀장급의 사람이라니! 도채희는 그 뒤가 있을 거라고 외쳐 댔지만, 모두가 같은 말을 했다.
‘증거가 없다.’
도채희가 수집한 수많은 증거는 전부 모종의 이유로 채택되지 못했다. 증거 수집 과정에서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커서, 서류에서 가리키는 대상이 명확하지 않아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수 없어서.
이유는 많았지만, 결과는 하나다.
이 일에 얽힌 진짜 나쁜 놈들을 처벌할 수 없다는 거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진짜 나쁜 놈들을 잡아 처넣을 수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도채희는 입술을 물어뜯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