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화
#40 정의를 꿈꾼다는 것 (1)
“도 팀장님!”
“아, 용원 씨.”
언제나처럼 힘차 보이는 김용원과 달리, 오늘도 밤을 꼬박 새운 도채희의 낯빛은 좋지 않았다.
최근 들어 사건 해결률이 20퍼센트대에서 오르지 않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몇 달 전부터 도채희가 개인적으로 쫓고 있는 사건들 또한 완전히 막다른 곳에 다다랐고.
김용원은 퍼석퍼석한 도채희의 얼굴을 살펴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잠은 제대로 주무시고 계신 겁니까?”
“잘 자고 있다고 하고는 싶은데……. 영 그러질 못하고 있네요.”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다는 말을 달고 살던 도채희가 이런 말을 할 정도라니. 김용원은 그런 도채희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분위기를 환기할 겸, 김용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 요새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는 보셨습니까?”
“아니요. 뭐든 간에 인터넷에 접속할 시간도 없어서요.”
스트레스에 업무 압박에 잠도 자지 못할 정돈데, 인터넷에 떠도는 헛소리들을 읽을 시간은 없었다.
“그 봄날 보육원에 대한 이야긴데요.”
“봄날 보육원이요?”
“그래요, 보육원을 운영한 사람에 대한 추측이에요. 그곳을 덮친 벨츠머츠도 나쁘지만, 그 보육원을 운영한 사람이야말로 진짜 악당 아니냐고 말이 많더라고요.”
“아.”
그 말에 도채희는 눈을 깜빡였다. 머리를 짚은 도채희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 생각은 못 했네요.”
현장을 알게 되고 그저 학살을 벌인 벨츠머츠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만 한 것 같다.
당장 박철완 부장 또한 그런 지시를 내렸고. 보육원에 대해서는 뭐라고 했지? 내부적인 수사가 있다고 했던가. 아니, 아예 수사를 시작도 안 했던가.
왜 오늘까지 그쪽 생각을 하지 못했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에게 김용원이 말했다.
“미리내당 김성득 의원이 거기 운영자였단 이야기도 있어요.”
그 말에 도채희는 상황도 잊고 웃음을 흘렸다.
“김 의원님이요?”
그도 그럴 게 너무나도 뜬금없는 소리였으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성득 의원이라고?
김성득 의원은 대한민국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인기가 높은 국회의원 중 한 명이었다.
재난이 일어났다 하면 제일 먼저 도착하는 지원 물품, 현무 제약의 포션 세트.
현무 제약의 회장이던 시절 김성득은 정부와의 거래에서 현무 제약의 포션을 파격적인 가격으로 공급하겠다고 말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덕분에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품질을 지닌 포션을 재난 현장에서 아낌없이 뿌릴 수 있는 나라가 되었지.
그 일로 얻은 호감으로 국회의원직에 오른 지 벌써 10여 년. 김성득은 그 긴 세월을 아무런 문제 없이 보내왔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위치는 탄탄해지기만 했다.
현 대통령이 누구보다 신임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늘 김성득 의원의 이름이 오르내릴 정도로 대통령과도 끈끈한 사이에, 그가 발굴한 설록진은 현 대한민국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국회의원이기도 했으니.
아쉬울 게 하나 없는 그가 도대체 그런 일을 저지를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잠깐, 설마 현무 제약하고 엮여서 떠들어 대는 거예요?”
제약과 인체 실험. 딱 맞아떨어지는 키워드 아니던가. 도채희의 말에 김용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던데요.”
“그런 말을 믿어요?”
“어, 그렇지만 거기 글을 보면 꽤나 그럴싸해서…….”
“헛소리 그만하고 이만 퇴근하세요.”
도채희의 말에 김용원은 뒷덜미를 긁적거리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김용원을 바라보며 도채희는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저런 헛소리에 넘어갈 정도로 허술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곳도 아니고 현무 제약을 그런 곳과 엮다니. 인터넷에서 떠도는 음모론들이 질이 나쁘다는 건 알았지만, 이건 너무했다.
딸깍, 문을 열고 자신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 도채희는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낯선 서류 봉투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어라.”
저런 걸 내가 여기에 뒀던가.
도채희는 조심스럽게 책상 주변을 돌며 그 서류 봉투를 눈으로 살펴보았다.
책상 위에 올려 둔 서류 봉투는 심지어 각범부 안에서 쓰이는 것도 아니었다. 명백히 밖에서 온 것.
우편으로 온 건가 했지만, 서류 봉투의 겉면에는 우표도 소인도 없었다.
보낸 이의 정보 없이 자신의 이름만 덜렁 적힌 봉투를 보는 순간 불길함이 샘솟았다.
‘옛날에 서류 봉투에 가루 독약을 담아 테러를 저질렀던 사람도 있었고 말이야.’
하지만 그냥 내버려 두기에는 저 안에 대체 뭐가 들어 있을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으으으!”
짜증에 발을 구른 도채희는 서류 봉투를 집어 들었다. 내가 죽는다면 다 이놈의 호기심 때문일 거야.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도채희는 눈 쪽으로 마나를 끌어 올렸다.
“으음.”
독수리의 눈으로 본 편지는 위험하지 않았다.
“좋아.”
한숨을 내쉰 도채희는 조심스럽게 서류 봉투를 개봉했다.
다행히 독약이 튀어나온다든가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서류 봉투 안에 들어 있는 건 두툼한 서류와 녹음기 하나뿐이었다.
서류 가장 위에는 도채희를 위한 편지까지 있었다.
「안녕하세요. 도채희 팀장님. 제가 이렇게 펜을 든 건 봄날 보육원의 숨겨진 진실에 대해 알려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보다 믿음직한 분이 있다면, 그건 당신이겠지요. 이 안에 있는 내용은 모두 사실입니다.
부디 진실을, 이 세상에 알려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라.”
봉투에 담겨 있던 편지를 읽는 순간 도채희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안에 들어 있는 게 무엇이든, 여태까지 그녀가 알던 세상을 산산조각 낼지도 모르겠다고.
읽다 만 편지를 책상 위에 놓아둔 도채희는 재빨리 종이를 넘겼다.
이 편지를 쓴 사람이 말한 ‘봄날 교육원의 진실’이 들어 있었다. 조작되었다고 믿고 싶을 정도로 잔인한 사실뿐이었다. 하지만 사진에, 정확한 수치와 정보가 기록되어 있는 자료들. 그리고 봉투의 끝에 들어 있던 초소형 녹음기까지.
도채희는 홀린 듯이 그 모든 걸 보고 읽고 들었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생각했지만, 누군가에게 조작되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보의 질이 상당했다.
서류 봉투 안에 있던 걸 전부 다 확인하고 나니 어느새 해가 지고 사방이 깜깜해져 있었다.
‘정말 이게 진짜라고?’
처음에는 이것 또한 헛소문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넘기기에는 그 안에 있는 사진들이며,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도채희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편지 마지막에 쓰인 말이었다.
‘박철완 부장의 지원 없이 이 사건을 직접 해결해 달라는 말.’
그 말에 도채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말에 숨겨진 의미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 서류와 정보를 도채희에게 보낸 사람은 스스로를 N이라고 칭했다. 그 밑으로 적힌 연락처를 보며 도채희는 눈을 가늘게 떴다.
‘연락처까지 남기다니 제법 자신이 있는 모양인데.’
일단 그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이 편지를 보낸 사람, 아무래도 직접 만나 봐야겠다.
* * *
늘 교복처럼 입고 다니던 경찰 제복이 아닌 사복을 챙겨 입은 도채희는 주변의 눈치를 보며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한밤중, 도심도 아닌 경기도 구석진 곳에 있는 공원은 인적 없이 한적했다.
그렇게 인적이 드문 곳, 깜빡거리는 가로등만이 광원의 전부인 공원은 보기만 해도 을씨년스러웠다. 도채희는 그 공원 안에 있는 벤치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다.
N은 도채희가 앉을 자리를 직접 표시까지 해 주었다. 그 벤치에 앉아 있으면 곧 가겠다고.
마약 거래도 이런 곳에서는 안 하겠네.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린 도채희는 저 멀리에서 걸어오는 사람에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저 사람인가?
벤치 옆 가로등 근처에 발을 멈춘 여자가 도채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어, 안녕하세요!”
얼굴을 가려 줄 검은색 반가면, 그리고 반가면 위에 올려진 굵은 뿔테 안경.
‘안경을 쓸 거면 안경을 쓰고, 가면을 쓸 거면 가면만 쓰라고!’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올 뻔했다. 이상한 꼴을 한 건 그 여자뿐이 아니었다. 그 옆에 서 있는 키가 큰 여자는 한밤중에도 눈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두 명이서 올 줄은 몰랐는데요.”
도채희의 말에 반가면을 쓴 여자, 남주현이 입을 열었다.
“제 보디가드요. 제가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어서요.”
그 말에 도채희는 가만히 옆에 서 있는 여자, 이혜원을 바라보았다. 등에 검을 메고 있는 것이 거슬리긴 했지만, 자신 또한 각성자인 데다가 권총을 챙겨 왔으니 할 말은 없었다.
“솔직히 정말로 도채희 팀장님이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어요.”
거짓말. 도채희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제게 보낸 정보가 모두 사실입니까?”
봄날 보육원, 그 뒤에는 김성득 의원이 있다는 거. 그리고 그가 운영하는 현무 제약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임상 실험이라는 이름의 인체 실험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도.
“네, 조금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에요. 어떻게 그 정보를 얻었는지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요.”
의문을 가지고 뒤를 파내려고 했던 건 남주현이지만, 그렇게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 준 사람은 벨츠머츠의 그 남자였다. 그건 진짜 죽어도 말 못 하지.
남주현의 말에 도채희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박철완 부장도 없이 이 건을 저 혼자 수사하라는 건 어떤 의미에서 한 말입니까?”
그 말에 어깨를 으쓱인 남주현이 천천히 고개를 까닥거리며 입을 열었다.
“으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전 박철완 부장을 믿을 수가 없어요. 박철완 부장과 당신이 막역한 사이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그분에게는 이런 일을 해결할 만한 의지가 없죠.”
능력이 아니라, 의지. 그 말에 도채희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편지에서부터 느낀 거지만, 이 여자. 무언가 자신이 모르는 걸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김성득 의원이 어떻게 그 모든 짓을 저질렀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김성득 의원이 잘나서? 아니죠, 모두가 묵인해 온 거죠. 모두의 묵인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거예요.”
“그 ‘모두’에 박철완 부장도 포함된다고 보는 겁니까?”
도채희의 날카로운 말에 남주현은 팔짱을 낀 채로 말을 이었다.
“예. 솔직히 말씀드리죠. 저는 애초에 그런 불의를 보고도 못 본 체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박철완이라는 사람이 ‘부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
도채희는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이 봐 온 박철완은 그런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늘 사건 현장에 제일 먼저 나타나 가장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었다.
경찰이 되어 다시는 빌런이 날뛰는 세상이 오지 않게 막겠다는 도채희의 꿈을 누구보다 응원해 준 사람도 박철완이었다.
그런 사람이 그 모든 일을 알고서도 묵인했다고?
말도 안 되는 모함이다.
“잘 생각해 봐요. 정말로 박철완 부장이 당신이 말한 대로 선한 사람이었다면, 각범부의 부장이 될 수 있었을지. 그가 진심으로 나쁜 놈들을 잡길 원했다면 어째서 그가 부장으로 있는 각범부는 이렇게나 무능한 건지.”
“무능, 이라고 했어? 대체 당신이 뭘 아는데!”
험악한 도채희의 태도에 선글라스를 쓴 여자가 앞으로 나섰다. 검집을 잡은 손을 앞으로 뻗은 여자의 보호에, 도채희는 입술을 깨물며 뒤로 물러섰다.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는지도 모르면서,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무능하다고만 말하면 끝이야?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말을 애써 삼킨 채 부들부들 떠는 도채희를 보며 남주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말로 각범부가 노력했다고 생각해요? 정말로 이 세상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왜 각범부는 이렇게나 무능하다는 평가를 듣는 걸까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닫고 있는 도채희를 보며 남주현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 사건을 캐다 보면 알게 될 거예요.”
남주현의 그 말에 도채희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당신의 말대로 정말로 현무 제약과 김성득 의원이 타락했는지, 그리고 그 타락에 박철완…… 부장이 연관되었는지.”
짧게 숨을 고른 도채희가 말을 이었다.
“제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믿지 않을 겁니다.”
“좋아요.”
기다리던 말이었다는 듯 남주현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때까지 우리는 같은 편이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제게 내민 손을 빤히 바라본 도채희는 그 손을 못 본 체하며 입을 열었다.
“계획은 있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