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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118화 (118/352)

제118화

#39 진실의 대가 (3)

세레나의 빙궁 공략 이후, 시리우스는 몸을 사렸다. 성공적인 공략이라기에는 워낙 시리우스가 입은 피해가 너무 큰 탓이었을까. 어떤 전리품을 얻었는지에 대한 발표도 없이 시리우스는 조용히 숨을 죽였다.

빙궁에 대한 정보도 차후 지면으로 발표하겠다는 말뿐, 공략 이후 으레 있었던 거대한 행사도 없이 시리우스는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기자들이 아무리 캐물어도 정보를 푸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몸을 웅크리고 있던 시리우스도 피할 수 없는 행사가 왔다.

각성자 협회가 연 자선 교류회. 새해를 맞이하는 이 신년회에는 이 대한민국에서 날고뛴다고 하는 헌터들이 전부 모여들었다.

시리우스에서도 몇 명의 헌터를 보냈다. 세레나의 빙궁 공략 이후 워낙 조용하게 숨을 죽였던 곳이기에 시선이 단번에 쏠렸다.

특히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 곳은 유선제였다. 하지만 쉬이 유선제에게 다가가는 사람은 없었다. 유선제는 그 능력보다도 성질머리로 더 유명했으니까.

“안녕.”

정호산은 벽에 서 있는 유선제에게 다가갔다.

아카데미에 있었을 때도 친하게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죽을 뻔했다는 말을 듣고도 모를 척을 할 만큼 정호산은 매정하지 못했으니까.

“네가 고생했다는 건 들었어. 살아남아서 다행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유선제에게 무언가를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 가려던 차였다.

“그럼 잘 지내라.”

“너 강이신하고 친구였던가.”

유선제가 날린 말에 정호산은 고개를 돌렸다.

“뭐?”

“그래, 생각났어. 너는 그놈을 감싸고돌기로 유명했지.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다고 했던가.”

이 녀석이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설마 강이신이 살인 용의자로 수배되었다고 자신을 긁을 생각인 걸까? 정호산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나워졌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친구를 만났거든.”

그 말에 정호산은 멈칫거렸다. 성큼 유선제에게로 다가간 정호산이 매섭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신이를 만났다니? 언제? 어디에서?”

유선제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잠깐 조용한 데에 가서 이야기나 나눌까?”

정호산은 유선제를 따라 조용히 발을 옮겼다.

“똑바로 말해. 네가 이신이를 대체 언제 어디에서 만난 건데.”

“글쎄, 어디에서 만났을까.”

그 의뭉스러운 대답에 정호산은 주먹을 쥐었다.

“장난을 칠 생각이라면, 집어치우는 게 좋을 거다.”

강이신은 정호산의 역린이었다. 아무리 사람 좋은 정호산이라고 하더라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 선이 있었다.

유선제는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로 정호산을 바라보았다.

“정말이냐, 그 녀석을 만났다는 거.”

“그래. 얼마 전에 만났지.”

“그렇다면 말해 줘라. 그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

“왜?”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그 녀석을 찾아서 데리고 와야지. 지금 이신이가 어떤 처지인 줄 알아? 살인 용의자라고 공개 수배를 당하고 있다고.”

그 말에 유선제는 가만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놈은 네 생각처럼 나약하지 않아. 누군가의 도움은 필요 없다고. 애초에 겁을 집어먹고 숨어든 게 아니거든.”

유선제가 본 강이신에게는 무언가 목표가 있었다. 목표를 위해 숨어있을 뿐, 수배당한 것이 두려워 숨어든 패배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녀석이 네게 오지 않았다는 건, 그 계획에 네놈이 필요 없기 때문이겠지.”

“하, 그럼 넌? 널 만난 건 그 애의 계획에 네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그 말에 유선제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

“그래.”

몸을 던져서 나를 구해 낼 정도로 말이다.

* * *

“에취!”

갑자기 코가 미친 듯이 간지러웠다. 내 재채기에 남주현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아, 미안, 미안. 계속해서 말해.”

내가 아는 건 남주현이 봄날 보육원 일을 파다가 여기에 왔다는 것뿐이다.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듣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부터 차근차근 들어 볼 생각이었다.

“처, 처음에는 강이신 사건부터 파 봤어요.”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 내 이름에 나는 눈을 찌푸렸다.

“그 사건은 왜?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야! 아무래도 이상하잖아요. 그 사람이 불법 게이트에서 살인을 저지른 건 맞지만, 일단은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풀어 준 거 아닙니까? 진짜 나쁜 놈들은 그런 불법 게이트를 운영하던 사람들 아니냐는 거죠.”

그 말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야…… 그건 그런데.

“게다가 그런 불법 게이트가 하나일 리 없잖아요. 그런데 아무도 그걸 조사하지 않더라고요. 언론에서도 각성들끼리의 범죄라고 또 각성자 몰이만 시작했고요. 하지만 이상하잖아요. 그런 업종에서는 각성자보다는, 비각성자가 얽혀 있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

남주현의 말대로 불법 게이트 채굴을 운영하는 건 비각성자인 경우가 많았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그 정도의 자본과 권력을 쥔 쪽이 비각성자인 경우가 많아서 말이지.

본인이 고위급 각성자면, 그런 것으로 돈을 벌려고 하기보다는 고위급 게이트를 공략하는 일이나 몬스터 부산물을 처리하는 일에 더 나설 테니까.

“원래는 그쪽 일을 더 헤집어 보려고 했어요. 근데 문제는 그 불법 게이트가 이미 사라져 버렸다는 거죠. 그 안에 있었던 증거랑 같이 슈르륵! 게다가 그거 알아요? 그 게이트로 사람들을 알선했던 임현수라던 사람도 귀신같이 감옥 안에서 죽어 버린 거?”

남주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동안 남주현은 홀로 이 모든 일을 캐고 다닌 모양이었다.

“그때 딱 감이 왔죠. 강이신은 미끼에 불과하구나. 그 뒤에 일어난 한조희 살인 사건의 범인도 어쩌면 강이신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 보니 이상하더라고요. 기껏 구해 놓은 사람을 자신이 죽인다는 게. 다들 자극적인 메시지에 속은 거죠.”

━그래도 네 억울함을 아는 사람이 있긴 있구나.

남주현은 나에 대한 두려움도 잊은 채 열정적인 태도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사건을 더 파내지는 못했지만 찾아보니 이런 식으로 언론에 의해 뒤가 묻힌 사건이 하나 더 나오더라고요. 봄날 보육원 일이요.”

“하.”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남주현은 정확하게 두 사건을 엮었다.

“불법 게이트야 일회성이 짙어서 더 증거를 찾지 못했지만, 보육원은 그 자리에서 제법 오래 운영되었더라고요. 못해도 15년 정도? 그래서 정보를 찾을 수 있었죠.”

그렇게 김성득에 대해 알게 된 거군.

이제야 이해가 된다.

남주현이 과거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눈에 띄게 된 건 나 때문이다.

내가 저지른 일로 인해 불법 게이트 사건과 봄날 보육원 사건이 드러났고, 특별한 감을 지닌 남주현이 그걸 파게 되면서 문제가 된 거지.

“봄날 보육원은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기부금은 김성득 의원의 사람에게서 나왔죠. 그 사람은 봄날 보육원뿐 아니라 다른 곳에도 기부했다고 둘러댔지만, 보여 주기식으로 일회성 기부만 남발한 다른 곳과 달리 봄날 보육원에는 무려 15년 동안이나 기부를 했더라고요.”

“그래서 김성득 의원의 뒤를 쫓은 건가?”

내 질문에 남주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이 당신을 죽이려 한 것도 당연하네.”

내 말에 남주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과거 남주현은 설록진의 비밀에 가장 가까이에 닿은 사람이었다. 각성도 하지 못한 일반인이면서 말이다.

지금은 어설프기만 하지만, 나중에는 저 짐승 같은 감으로 설록진 의원이 꽁꽁 숨겨 놓은 비밀까지 파헤친다.

문제는 남주현에게 자신의 몸을 지킬 만한 능력이 없다는 거지.

과거에도 결국 설록진의 눈에 띄어 죽게 되었고.

“그, 그러는 그쪽은 왜 이 일에 끼어든 건데요? 나, 나는 대체 왜 구해 준 거고요.”

남주현의 질문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육원에서 빼돌린 아, 아이들은 어디로 간 건데요!”

“그건 댁이 알 바가 아니야.”

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인터뷰를 이어 나가려는 용기는 가상하다만 나는 선을 그었다.

“진실을 알려 준다면서요.”

“그래, 김성득 의원에 대해서만. 나에 대해 캐낼 생각은 접어.”

나는 남주현에게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협조하는 건, 나 또한 김성득 의원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야. 그러니 선을 넘지는 마.”

그러면서 슬쩍 살기를 드러내자 남주현의 얼굴은 다시 하얗게 질렸다.

저렇게 겁이 많으면서도 자신의 목숨을 버릴 일에는 거침없이 뛰어들다니, 여러모로 이상한 여자였다.

나는 남주현에게 그동안 내가 꼭꼭 삼켜 두었던 ‘진실’ 몇 가지를 알려 주기로 했다.

“치유계 각성자들의 수가 희귀하다는 건 그쪽도 알지?”

“예, 예.”

“그래서 포션을 사용한다는 것도.”

외상을 즉각적으로 치유하는 포션은 헌터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물론 마나를 사용하는 것이라, 일반인들에게는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지만 적정량을 쓰면 몇 달은 고생해야 할 외상도 단번에 치유할 수 있는 치료제를 거부할 사람은 몇 없었다.

“당신 생각대로 그 보육원을 운영한 건 김성득 의원이야. 그 보육원의 목적은 각성자를 만들어 내는 거였지. 인위적으로 각성자를, 그리고 인간 병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그들은 각종 실험을 계속했어. 그리고 그 실험을 하는 데에는 의학 지식과 장비가 필요했겠지.”

어깨를 으쓱인 내가 덧붙였다.

“그리고 김성득 의원이 무슨 기업 출신인지는 당신도 아주 잘 알 거라고 생각해.”

“혀, 현무 제약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무 제약은 대한민국 1위 제약업체였다. 김성득 의원의 아들이 그곳 회장이지. 아들이 회장직을 맡고 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김성득 의원의 것이나 다름없다.

“인체 실험의 원조는 그쪽이야. 봄날 보육원은 현무 제약의 조금 더 하드한 버전이랄까. 애초부터 현무 제약 자체가 사람들을 실험하던 곳이라는 뜻이야.”

“예?”

“현무 제약의 치유제가 처음에 나왔을 때부터 ‘지나치게’ 완벽하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

외국에서 만들어진 치유제는 툭하면 부작용 건이 터지는데, 현무 제약에서 내놓은 포션에서는 그런 일이 적었다.

“설마…….”

“그게 전부 인체 실험 덕분이지.”

현무 제약에서 저지른 죄는 인체 실험뿐만이 아니다.

포션을 만드는 환경은 유독하다.

타 차원의 물질을 이용할 때도 있어 제조 공정에 각성자를 투입해야 했지만, 현무 제약에서 일하는 사람은 대부분 일반인이었다.

마나 중독에 갈려 나가기 딱이라는 거다. 마치 옛날 반도체 업체에서 수많은 이가 암으로 죽어 나갔듯, 이곳에서는 마나 중독이라는 새로운 병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바깥으로는 그 소식이 흘러 나가지 않은 이유는 하나야. 그 작업에 들어간 사람들은 바깥에 나올 수 없었거든.”

현무 제약에서도 이미 인신매매, 인체 실험은 이루어지고 있었다. 봄날 보육원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로.

“봄날 보육원은 현무 제약에 비하면 우스운 수준이지. 사실 거기가 만들어진 것도 김성득 의원의 소원, 각성자가 되고 싶다는 걸 위한 거니까. 거의 취미 수준으로 운영한 거지.”

“다, 당신은 이걸 전부 알고 있었다고요?”

“그래.”

이 세상에 다시 눈을 떴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

“왜 알면서 가만히 있었던 거예요?”

“알면? 거기에 테러라도 하라는 건가?”

테러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현무 제약 관계자가 나서서 피해자 코스프레나 하겠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바뀌는 건 없었을 거야. 경비만 삼엄해질 뿐이지.”

남주현은 굳은 얼굴로 내 말을 들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다.

사람들은 흔히 착각한다.

문명이 발전한 만큼 이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인간성까지 나아졌다는 기대다. 하지만 문명의 발전 속도와는 별개로 인간이라는 족속은 여전히 미개하다.

이 세상에는 여전히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도 이걸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면…….”

“당신처럼 되겠지.”

웬만한 언론사는 전부 미리내당, 아니, 미리내당이 아니더라도 고위급 인사들과 엮여 있다.

이런 기사를 터트릴 수 있을 리 없다. 기자가 기사를 써서 가도 위에서 막는다. 개인적으로 터트리면, 곧바로 삭제될 거고. 아니, 그 전에 이렇게 뒤를 캐다가 알게 모르게 사라지는 거지.

만에 하나 기사가 터지고, 혹여 대중들에게 그게 먹혀든다고 하더라도 실사가 오기 전에 전부 증거를 치워 놓겠지.

결국 인터넷을 떠도는 음모론에 그치게 될 거다.

“그, 그럼 어떡하죠?”

“모르지, 나야.”

언론을 다루는 건 내 전문 분야가 아니다.

“답은 당신이 생각해야지. 어떻게 하면 이 사건을 잘 터트릴 수 있을지 생각해 봐.”

뭐, 이렇게 말은 해도 당장은 힘들겠지. 내가 무어라 입을 열려 할 때였다.

눈을 번뜩인 남주현이 외쳤다.

“조, 좋아요! 일단 노트북 하나만 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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