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화
#39 진실의 대가 (1)
“남주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부장의 화난 목소리에 남주현은 재빨리 고개부터 숙였다.
“주현아, 너 또 사고 쳤냐?”
파티션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남주현은 파리한 얼굴로 고개를 붕붕 저었다. 하지만 그녀가 사고를 치는 일이 하루 이틀 일이었나.
“나, 나 잠깐 바깥에 좀.”
“남주현, 내뺄 생각 말고 당장 이리로 와.”
부장의 목소리에 남주현은 질끈 두 눈을 감았다. 자신의 모습을 모두 보고 있는 듯 정확하게 콕 집어 말하는 부장의 목소리에 남주현은 결국 질질 끌려 부장실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부장실에 들어간 남주현에게 곧바로 부장의 잔소리가 쏟아졌다.
“남주현, 내가 부탁한 기사가 뭐였지?”
“벨츠머츠 특집 기사요…….”
“네가 준 건 뭐였지?”
부장의 말에 두꺼운 뿔테 안경을 고쳐 쓴 남주현이 입술을 삐죽였다. 말이 없는 그녀를 대신해 부장이 말을 이었다.
“봄날 보육원 사건의 배후는 누구인가?”
“그, 엄밀히 말하면 그것도 벨츠머츠 기사가 맞긴 하잖아요.”
“맞기는! 조금도 벨츠머츠에 관련된 내용이 없잖냐!”
부장의 말에 남주현이 슬쩍 말을 꺼냈다.
“부장님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물론 벨츠머츠가 그곳에서 학살을 저지른 건 맞아요. 하지만 누군가 그 보육원을 운영한 것도 사실이잖아요. 거기에서는 인체 개조며, 실험이며. 아주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고요!”
여태까지 눈치를 보던 모습이 모두 거짓이라는 듯 책상을 쾅 치고 일어난 남주현은 웅변대회라도 나간 사람처럼 열변을 토해 놓기 시작했다.
“온 국민이 벨츠머츠라는 떡밥에 홀려 있지만, 사실 보육원을 운영한 사람이야말로 진짜 악당…….”
“됐다, 됐어.”
그 말은 부장에게 끊겼다. 남주현은 사나운 부장의 태도에 입을 닫았다. 할 말은 많이 남았지만,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는 그냥 혼나는 걸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너 저번에도 이랬지?”
부장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강이신 사건.”
부장의 말에 남주현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 그것도 이상했죠. 그것도 이거랑 똑같아요! 물론 강이신도 살인을 저지르긴 했어도 그 뒤에 불법 게이트를 운영한 사람이 진짜 악당이잖아요. 왜 그런 보도는 하나도 나오지 않느냔 말이죠.”
늘 땅바닥에 시선을 박고 다니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도 잘 하지 않으면서 이럴 때는 아주 청산유수 달변가가 따로 없었다.
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남주현은 뛰어난 기자였다. 아니, 뛰어난 기자가 될 소질이 충분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곤란했다.
“그 건은 취재할 필요가 없다니까. 애초에 내가 너한테 시킨 건 다른 거였잖아.”
“그래서 시키신 거 다 하고 제가 쉬는 날에 취재했어요.”
휴일도 반납하고 기사를 써서 위로 올렸는데. 안타깝게도 그 기사는 채택되지도 못하고 곧바로 폐기 조치되었다.
“지면에 실을 수 있는 기사는 한정되어 있다고 말했지?”
“하지만 인터넷에는…….”
“애초에 그런 돈은 안 되고 논란만 일으킬 기사를 올려서 뭐 하는데? 애초에 벨츠머츠 그 녀석들이 자기들 욕하라고 현장에 증거도 떡하니 남겨 줬잖냐. 다들 벨츠머츠 관련 기사를 원하지, 다른 걸 원하진 않는다고.”
“누군가 기사를 막고 있는 건 아니고요?”
소심한 얼굴로도 남주현은 할 말은 했다. 포식자의 눈치를 보는 작은 동물처럼 눈을 굴리는 주제에 저런 말이라니.
부장은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도 대충 짐작은 할 거 아니냐.”
언론은 이미 장악된 지 오래였다. 게이트의 등장 이후 세상의 규칙은 여러 번 개편되었다.
자본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돈이 부족하면 그야말로 ‘밖’으로 내몰려 목숨이 언제든지 위험해질 수 있는 세계니까.
돈으로 목숨을 산다는 게, 더는 비약이 아니었다. 그런 만큼 언론 또한 자본가에 의해 정복된 지 오래였다.
고이고 고인 것들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돈이 고인 곳에도 그랬다. 모든 자본가를 욕할 생각은 없지만, 이 혼란한 시기를 틈타 누군가의 생명을 돈으로 치환하려는 작자들에게는 치가 떨렸다.
남주현의 숙인 머리 위로 부장의 잔소리가 쏟아졌다.
“너는 인마, 공채 일등으로 들어온 놈이 뭐 그리 불만이 많냔 말이야. 시키는 대로만 하면 성공은 떼 놓은 당상인데.”
부장은 답답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하여튼 들어가 봐라. 시키는 대로 하자, 주현아. 응?”
부장실에서 나온 남주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번에도 자신이 공들여 쓴 기사는 폐기 처리가 되고 말겠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나오는 그녀를 맞은 건, 그녀와 입사 동기인 박희재였다.
“오늘도 깨졌냐?”
박희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남주현이 말했다.
“하, 담배 말린다.”
“아주 표현이 고급지셔?”
많고 많은 직업 중에 기자를 선택한 것은 진실을 파고들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제일가는 대학에 들어가, 언론고시를 보고 그리고 제일가는 신문사에 들어오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이렇다.
아직 연차가 쌓이지 않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애초부터 이 판이 원래 글러 먹은 것인지. 멀리에서 볼 땐 반짝이기만 했던 이곳에선 구린내만 풀풀 났다.
박희재는 썩어 들어가는 남주현의 표정을 보곤 툭툭 그녀의 옆구리를 쳤다.
“안 되겠다, 한 대 피우자.”
두 사람은 흡연실에 나란히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뻐끔, 뻐끔. 연기를 후 내뱉어 낸 남주현이 박희재에게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봄날 보육원을 캐다 보니까, 거물 하나가 걸리긴 하더라.”
“뭔데?”
늘 남주현을 말리면서도 사실은 남주현만큼이나 호기심이 많은 박희재는 그녀의 말에 곧바로 귀를 기울였다.
“그 보육원에 주기적으로 기부를 하던 사람이 있더라고. 국회의원 중 한 사람이다?”
“국회의원들이 보육원을 후원하는 거야,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나?”
“그럴지도. 근데 말이야. 15년간이나 한 곳에만 기부를 계속한 건 확실히 이상하잖아. 심지어 거기에서 인체 개조며, 인체 실험이 터졌는데. 게다가 기부를 떳떳하게 한 것도 아니야.”
매번 봉사 활동을 갈 때마다 기자진을 대동하고 사진을 찍는 쇼를 하던 의원이, 유난히 그 보육원의 기부는 조용히 진행했다.
심지어 자신이 아는 사람의 명의를 이용해서 자신이 하지 않은 짓처럼 속였다.
하지만 남주현은 집요하게 그곳을 파고들어 결국 연결점을 찾아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그 사람을 배후로 봐도 좋지 않아?”
“너 그거 위험하다?”
처음에는 남주현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박희재는 곧 화들짝 놀라 속삭였다.
“나도 알아. 그러니까 부장님도 화들짝 놀라서 그렇게 말한 거겠지. 그래도 이게 시작인 것 같아서 말이야. 그냥 기부가 끝이 아니라, 그 보육원을 만들고 운영한 게 그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눈앞에서 이상한 게 보이는데 그냥 무시하기에는 기자로서 가진 소명 의식이 찔리는 것 같달까.
“이 사건 말고도 이상한 사건이 한둘이 아니야. 매번 뉴스를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니까. 다들 숲이 아니라 나무만 보고 있는 것 같아. 범인이랍시고 잡은 놈들은 다 잔챙이에 불과하잖아. 아무도 대가리를 칠 생각을 안 해.”
“으음, 그래도 그건 우리 일이 아니잖아.”
“그럼, 뭐. 무능하기 짝이 없는 각범부에 맡겨?”
남주현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박철완 부장은 좋은 사람이지만, 한 부서의 장을 맡을 만한 사람은 아니야. 그냥 적당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데에는 딱이지만.”
“그래도 도채희 경위는…….”
“그 사람? 그 사람은 현장 타입이지 사무실 타입이 아니잖아. 애초에 현장에 있어야 가장 빛이 나는 사람을 도대체 누가 팀장 자리에 앉힌 거냐고.”
각범부가 무능한 것도 당연하지! 남주현은 입에서 불을 뿜었다. 그녀의 눈에는 이 모든 일의 공통점이 보였다.
“누군가 막고 있는 거야. 정보든, 수사든, 뭐든.”
“야, 그거 음모론이야.”
“근거가 있으면 음모가 아니게 되지. 좋았어. 일단 증거부터 찾자.”
반짝이는 남주현의 눈빛을 본 박희재가 말했다.
“야, 그거 아니야.”
“나 잠깐 외근 좀 나갔다 올게.”
“어떤 외근! 야, 돌아와!”
박희재는 뒤늦게 그렇게 외쳤지만, 이미 잔뜩 신이 난 강아지처럼 뛰어가 버린 남주현을 잡기에는 늦었다.
* * *
“흑, 흐어엉.”
남주현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일이 어떻게 하다 이렇게 됐더라.
봄날 보육원의 관계자라던 사람을 찾아서 인터뷰를 따고, 그 인터뷰를 토대로 국회의원을 특정해 관련 정보를 캐던 중이었지. 그 와중에 그 국회의원을 모시던 전 보좌관이었다던 사람에게 접촉해 제법 괜찮아 보이는 정보를 들었고.
이대로 터트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순간, 누군가 자신의 머리를 쳤다. 그 순간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떠 보니 이 꼴이었다.
손목과 발목은 빳빳한 밧줄로 묶여 있었고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었다. 축축하고 눅눅한 데다가, 비릿한 피비린내가 나는 창고 한가운데에 갇힌 남주현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여기에서 나는 죽는 거야? 진실을 제대로 캐내지도 못하고? 이렇게 그냥 중간에 쓱싹당하는 거냐고!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조심할걸.
주변의 충고도 함부로 여기지 않고 소중하게 생각할걸.
엄마, 보고 싶어.
그렇게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고 있을 때였다.
“끄아악!”
주변에서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 밖에서 들리는 소란에 남주현은 파드득 떨었다. 무언가가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심상찮은 소리에 남주현은 눈을 꾹 감으며 덜덜 떨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고.
“그러게 왜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녔어.”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남주현은 비명을 질렀다.
“으워엉억!”
재갈 때문에 꼭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났다. 남주현은 눈물로 퉁퉁 부어 버린 눈을 치켜떴다. 역광이라 남자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제 눈앞에 드리운 그림자에 남주현은 몸을 뒤틀었다.
“으어엉!”
뒤에 있는 남자에게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묶여 버린 몸뚱어리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애벌레처럼 꾸물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웃기기라도 한 건지 남자는 낮게 웃음을 흘렸다.
“으어어헝엉!”
남주현은 바닥을 기며 애원했다. 제발 살려 주세요, 진짜 저 여기서 죽고 싶진 않거든요?
하지만 그녀의 입 밖으로 나오는 건 말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울부짖음뿐이었다.
그때 창살로 달빛이 스며들었다. 남주현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림자 속에 가려졌던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잔뜩 더러워진 안경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안경 너머로 흐릿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아니, 잠깐.
웃는 얼굴이 그려진 가면을 보는 순간, 남주현은 경악했다.
“브츰므츠!”
벨츠머츠?! 그 외마디를 외친 남주현은 그대로 기절했다.
* * *
나는 기절한 남주현을 보며 혀를 찼다.
“심약하기는.”
그때 뒤에서 상황에 맞지 않게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스! 바깥은 다 정리했어요!”
“어, 그래. 재호는?”
“재호 형은 지금 시체들 한곳으로 모으는 중. 아! 그중에서 몇 개는 제가 가져도 돼요?”
수줍게 웃는 한서현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안의 인간성이 바짝 마르는 기분이구나.
‘네크로맨서잖아요. 게다가 다 나쁜 놈들이고.’
나쁜 놈들의 시체야,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이람.
흠흠, 속으로 헛기침을 내뱉은 나는 시선을 남주현에게로 돌렸다.
쯧, 어쩌다 일이 이렇게 꼬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