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5화
#38 생일 축하합니다 (2)
나는 이때쯤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루의 절반은 ‘살아야지, 살아야 무엇이든 하지’ 하고 나 자신의 삶을 정당화했지만, 나머지 절반에는 ‘왜 죽지 않고 살아 있냐’고 스스로를 탓했다.
겨울이 오고 밤이 길어지는 것처럼 나 자신을 깎아내리는 시간도 점점 길어졌다.
생일이 가까워질수록 더더욱 밤은 깊어지고 어두워졌다.
고아원에서 정호산을 만난 이래로, 나는 내 모든 생일을 그 녀석과 함께 보냈다. 그 녀석이 헌터가 된 뒤에도 그건 바뀌지 않았다.
생일을 축하해 줄 다른 가족들이 없는 만큼, 우리는 서로의 생일을 늘 챙겨 주었다.
케이크를 살 돈도, 선물을 살 돈도 없어 과자 하나로 때운 적도 있었지만, 생일 축하를 빼먹은 적은 없었다.
일 년에 단 하루 생일만큼은,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어도 즐겁게 보내자는 게 우리의 약속이었으니까.
나 때문에 정호산이 죽었음에도, 나는 꾸역꾸역 살아서 맞은 생일.
나는 설록진의 명령도 거부하고 집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설록진은 그런 나를 굳이 굳이 끄집어내어 생일상 앞에 앉혀 놓았다.
넓은 회의실 한가운데에 놓인 생일 케이크를 본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설록진을 바라보았다.
“뭡니까.”
“그래도 내가 아끼는 네 생일인데. 이렇게 넘길 수야 있나.”
나를 놀려도 유분수지.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 반질한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두려웠으니까.
그 일 이후 어느 정도 나를 봐주고는 있지만, 선을 넘으면 곧바로 돌변할 설록진을 알기에 나는 몸을 사렸다.
“됐어요, 축하 같은 건.”
그래도 이렇게 말이 나가는 걸 막을 순 없었지만. 나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앉아 있어.”
하지만 내 어깨를 잡아 누르는 설록진의 명령에 도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또 무슨 X랄을 하려고. 나는 초조함에 입술을 짓씹었다. 설록진이 다정한 미소를 짓는다는 건 불길한 징조다.
“다들 들어오세요.”
설록진의 명령에 문을 열고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회의실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들 나만큼이나 당황한 얼굴이었다.
“자, 차례대로 자기 자리에 앉아요.”
회의실 탁자 주변으로 앉아 있는 사람은 정확히 스무 명. 나는 찬찬히 그들의 얼굴을 훑었다. 대부분 아는 얼굴이었다. 나만 보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던 사람들도 몇 있었다. 다들 이 웃기지도 않는 일에 끌려왔군.
“오늘은 내가 사랑하는 강이신 씨의 생일입니다. 다들 축하!”
그 말에 내 볼이 달아올랐다. 무슨 짓을 하나 했더니. 나를 창피하게 할 생각인가.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잔뜩 데리고 무슨 생일 파티라고.
안 그래도 구겨져 있던 얼굴들이 이젠 죄다 똥 씹은 표정이 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설록진의 말을 감히 무시할 수는 없었는지, 회의실을 채운 사람들은 열심히 손뼉을 치며 내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와아아아.”
무려 환호성까지 나왔다. 박수가 잦아들고 설록진이 빙긋 웃는 얼굴로 말했다.
“자, 이제 노래를 불러 볼까요?”
“진심입니까?”
내 질렸다는 반응에도 설록진은 아랑곳없었다.
“그래, 명색이 생일 파티인데 노래 정도는 있어야지.”
저 사람들이 불러 주는 노래 같은 건 별로 듣고 싶지도 않은데. 여느 때처럼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설록진의 지휘 아래 세상에서 제일 형편없는 생일 축하 노래가 시작되었다.
“생,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 사랑하는 강이신 씨의 생일 축하합니다…….”
그렇게 우습지도 않은 노래가 끝이 났을 때 설록진이 말했다.
“자, 축하도 끝났겠다. 생일 선물을 줄 차례지. 다행히 이 중에서 딱 한 명만 우리 이신이한테 선물을 주면 돼요.”
내 어깨에 설록진의 손이 얹혔다.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는 거지. 내 어깨가 긴장으로 굳었다.
“뭘 선물해 줘야 할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내가 정해 줄 테니까. 내가 말했듯 여기 이 강이신은 내가 가장 아끼는 친구잖아요? 그만큼 가장 귀한 걸 선물로 줘야겠어요.”
설록진은 미소를 짓고 말했다.
“이번 생일 선물로 줘야 할 건, 그래! 목숨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목숨보다 귀한 건 없더라고요.”
그 말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눈앞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누구도 설록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목숨이라니.”
내 중얼거림을 무시한 채로 설록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나와 가장 가까이에 앉은 남자의 뒤에 섰다.
“이 과장. 이신이더러 뭣도 없는 개X끼라고 욕했지? 그리고 나더러는 뭐라더라, 사람 보는 눈도 없다고 했던가? 왜 그딴 자식을 제 옆에 두냐고 설록진도 노망이 났냐고 했던가?”
그 말에 이 과장은 앉은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설록진은 손가락 하나로 그를 앉혔다. 옆으로 걸음을 옮긴 설록진이 가볍게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김 부장은 뭐랬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알랑방귀밖에 못 뀌는 새끼랬고. 아, 이 말도 했다지. 강이신이 나한테 뭐라도 대 준 거 아니냐고.”
설록진의 말에 앞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어느새 설록진의 동공은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그제야 눈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말을 하지 못하는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새 설록진은 여기에 있는 모두를 조종하고 있었다.
그 어떤 변명도, 그 어떤 사과도 할 수 없다.
설록진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이곳에 온 사람들의 공통점. 이들은 모두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 바로 나를, 아니, 정확히는 나를 선택한 설록진을 욕했다는 잘못.
겨우 누군가를 뒷담화한 걸로 이 난리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 분위기에서는 도저히 입이 열리지 않았다.
설록진은 담담하게 사람들이 했던 뒷담화를 읊어 주었다. 개중에는 입에 담기도 어려울 만큼 상스러운 말들도 있었다. 새삼 상처를 받진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틀린 소리가 아니기도 했고…….
다만 충격이었던 건, 그 뒷담화를 한 사람 중에 김필준이 있다는 거겠지. 그나마 이곳에 들어와서 정을 붙인 녀석이었는데. 뒤로는 저런 말을 하고 다녔다니.
나와 눈이 마주친 김필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한 명씩 모두의 뒤에서 그들이 읊었다던 욕을 말해 준 설록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실망이에요. 내가 분명히 여기에 있는 이신이를 꼭 나 대하듯이 대하라고 하지 않았나?”
회의실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 어떤 변명도 할 수 없게 해 놓고서는 저렇게 묻는 건 무슨 심보지.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는데, 설록진의 손이 다시 내 어깨에 닿았다.
고개를 낮춘 설록진이 내게 속삭였다.
“누굴 죽여 줄까?”
그제야 실감이 났다.
설록진이 날 위해 준비한 생일 선물은 저 사람들의 목숨.
나는 저기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했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입술을 깨물었다. 먹었던 게 올라올 것 같았다.
정말 이딴 걸 생일 선물이랍시고 주겠다고?
“필요 없습니다.”
“그래?”
설록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내 등판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사람이 죽는 건 싫다. 정말로, 싫다. 내 말 한마디에 누군가가 죽는다는 건 끔찍하기만 했다.
“어른이 주는 걸 거절하면 안 되지.”
“정말로 괜찮습니다. 별로 기분 나쁘지도 않던데요.”
내 말에 눈앞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에 안도가 스쳤다. 솔직히 저 인간들, 나도 싫긴 하다. 뒤에서 그런 말들을 했는데 좋다면 사람이 좋은 정도가 아니라 호구지, 호구. 그래도 그렇지. 겨우 뒷담화를 했다고 사람을 죽여 달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
“이런 거 말고 백화점에서 한턱 쏘시면 안 됩니까?”
나는 애써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이런 생일 선물은 받고 싶지 않다고 아양이라도 부리면, 여기에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아, 역시 이신아. 너는 너무 착하다니까.”
나는 그 말에 눈을 찌푸렸다. 설록진의 입을 통해서 나온 말은 뭐든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착한 사람에게는 상을 줘야지. 아, 그래. 은도끼 금도끼 모르는 사람은 없지?”
설록진은 미소를 지었다.
노랗게 물든 동공이 불길하게 빛났다.
“착한 아이에게는 전부 줘야지.”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사람들이 서랍을 열어 칼을 꺼내 들었다. 내가 말릴 새도 없었다. 그 칼을 집어 들자마자 사람들은 그 칼로 자신의 목을 찔러 댔으니까.
사방에서 피가 튀었다.
“으, 으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나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깨끗했던 사무실은 순식간에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곳에 있던 스무 명, 그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
차라리 한 명을 골랐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 혼란의 한가운데에서 설록진은 태연히 가운데로 걸어가 피가 튄 케이크를 잘라 가지고 왔다.
피로 벌겋게 물든 생크림 케이크를 내게 내밀며 설록진이 빙긋 웃었다.
“Happy Birthday.”
* * *
내 기억을 엿본 레이는 기겁하며 말했다.
━미, 미친…….
‘말이 생일 파티지, 정말로 제 생일을 축하하는 그런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감히 설록진의 결정에 말을 얹은 사람들을 향한 경고였지.’
그 일 이후로도 설록진은 매년 내 생일을 챙겨 주었다.
내 생일 파티는 일 년 동안 설록진의 마음에 차지 않은 사람을 정리하는 숙청일로 변해 버렸다.
나는 매년 내 손으로 직접 ‘죽어야 하는 사람’을 골랐다. 고르지 않으면 저렇게 전부 다 죽여 버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답이 없었다.
내 손가락질 한 번에 누군가의 목숨이 사라진다.
나는 늘 내가 누군가를 죽인 것 같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달콤한 케이크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되었지.
됐다, 과거를 생각하면 머리만 더 아플 뿐이다.
━대체 저런 놈을 대체 왜 따르기로 한 거냐? 네 친구를 죽인 데다가, 저런 짓을 시도 때도 없이 벌이는 놈인데.
‘그건 나중에 말해 주도록 하죠.’
오늘은 이미 저 생일 파티를 떠올린 것만으로도 정신력에 한계가 와서 말이다.
어쨌거나 나에게 ‘생일’은 전혀 반갑지 않은 날이었다.
생각만으로도 치가 떨리는 날이 되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는 눈앞에 있는 과자 더미를 봤다. 나름 열심히 꾸며 본다고 꾸며 본 모양이지만, 아무래도 돌무지무덤으로밖에 안 보였다.
누굴 닮아 손재주가 이렇게 파멸적인 것인지.
그래도, 뭐. 케이크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고맙다.”
덕분에 나는 진심을 담아 웃을 수 있었다.
“아, 맞다! 생일 선물도 있어요.”
“생일 선물이라고?”
“네, 생일 파티에는 생일 선물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한서현이 주섬주섬 등 뒤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이건…….”
검은색 뼈로 만들어진 반지였다. 어찌나 반질반질하게 가공했는지 내 얼굴이 다 비쳐 보일 정도였다. 그나저나 나한테 반지를?
얼굴이 빨개진 한서현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목걸이는 너무 거추장스럽고, 귀걸이는 귀를 뚫어야 하니까. 그래서 반지인 거예요. 나름 추적 기능도 있고요, 보스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바로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듣다 보니 그냥 반지가 아니었다.
아이템 정보 창을 확인한 나는 입을 떡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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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골 반지 / B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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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세서리ㆍ보조
자질이 뛰어난 네크로맨서가 소환물의 뼈를 깎아 직접 만든 반지.
착용자의 위치와 상태를 창작자에게 전달한다.
이거, 뭐냐. 완전히 사생활 침해 아니냐, 이거.
“꼭 끼고 다녀요.”
하지만 싫다고 말할 수가 없네, 이거. 한서현의 뒤로 검은 아우라가 넘실거렸다.
“어, 어. 그래.”
나는 반지를 잠자코 왼손 새끼손가락에 꼈다. 어쨌거나 날 생각해서 이런 것도 만들어 줬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이게 바로 애를 키우는 부모님의 마음인가?
그때 옆에서 김재호도 손을 들었다.
“나도 준비했다.”
김재호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뭘 준비했다는 거지? 어디론가 사라졌던 김재호는 품 안 가득 나무 더미를 들고 왔다.
“그게 뭐냐?”
“너 이거 좋아하던데.”
최근 가구를 만들겠다고 애를 쓰던 나를 봤기 때문인가. 김재호가 준비한 선물은 잘 손질된 나무였다.
“바깥에 더 있다. 많이 있다.”
자랑하듯이 그렇게 말하는 놈의 얼굴에 웃음이 터졌다.
“푸흐흐.”
왜 이리 가슴이 울렁거리는 건지.
“이 녀석들.”
나는 한서현과 김재호의 머리를 마구 헤집어 주었다.
“아, 뭐 하는 거예요!”
기분이 좋았다.
“고맙다.”
정말로 오랜만에 나는 생일을 기분 좋게 보낼 수 있었다.
* * *
“살아는 있냐.”
케이크 위에 꽂힌 촛불에 불을 붙이며 정호산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 일 이후로 정호산도 나름 강이신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아보고 있었지만, 흔적은 전혀 없었다.
완벽하게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때 그렇게 강이신을 놔주는 게 아니었다고 정호산은 뒤늦게 후회했다. 차라리 붙잡아서 자세한 사정을 들어야 했다고, 그랬다면 이렇게 마음을 졸이는 일은 없었을 텐데 하고.
정호산은 아직까지도 강이신을 믿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을 죽이고 도망칠 애는 아니라고, 분명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사람들은 정호산의 믿음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떠들어 댔지만, 정호산의 믿음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다만, 사무치게 걱정되고 두려울 뿐이다.
다시는 그 녀석을 만날 수 없을까 봐.
“생일 축하한다, 이신아.”
들을 사람 없는 생일 축하를 날리며 정호산은 쓰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