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화
#36 배신 (3)
나는 가면을 건드려 대충 다른 젊은 사람의 얼굴을 만들어 냈다. 유선제의 말대로 이혜원 팀장은 감옥 안에 갇혀 있었다.
━끔찍한 꼴이구나.
레이의 말대로 그녀의 상태는 좋지 않아 보였다. 상처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듯 상처도 그대로였고 그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로 인해 옷가지며, 얼굴이며 모두가 피투성이였다.
그녀의 상처를 살피던 나는 혀를 찼다. 유선제의 말에 따르면 이혜원 팀장을 이 지경으로 만든 건 한서현이라고 했지.
아무리 그래도 저 사람을 저 정도로 몰아치다니.
아니, 오히려 칭찬해야 하는 건가.
━칭찬이라니?
‘알고 있던 사람을 상대로도 가차 없이 공격하다니, 대단한 거잖아요? 보통은 이렇게 못 하거든요.’
━그 말을 그 꼬맹이한테 해 주면 참으로 좋아하겠구나.
음, 비꼬는 거라는 건 알겠다.
나는 철창 가까이에 다가가 이혜원 팀장에게 말을 걸었다.
“팀장님, 제 말 들립니까?”
철창 안에 있는 이혜원 팀장은 유선제의 말대로 조금의 말도 통하지 않는 상태였다.
여전히 노랗게 빛나고 있는 이혜원 팀장의 동공을 살펴보며 나는 혀를 찼다.
━멀리에 떨어져 있는 놈이 어떻게 명령한 거냐.
‘미리 알고리즘을 입력해 놓은 거죠. 클리어가 가까워지면, 유선제의 빈틈을 노렸다가 찌르라고요.’
일차적으로는 탑의 빌런들을 이용해서 이곳에 있던 헌터들을 다 죽이고 클리어 가능성을 낮춘다. 탈출로를 빼앗아 탈출해 기를 죽이는 건 덤이다. 그런데도 어찌어찌 게이트를 클리어하려 하면 이혜원을 이용해 유선제를 노린다.
완벽한 플랜이었다.
이 계획을 위해 이혜원 팀장에게 입력된 명령은 아마도, ‘유선제 사살’.
‘유선제를 죽이기 전까지는 계속 저 상태일 겁니다.’
설록진의 세뇌가 무서운 건 한번 트리거가 눌리면, 작동이 끝날 때까지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린다는 거였다.
설록진의 꼭두각시 그 자체가 되는 거지.
“일단 한번 가까이 가 보죠.”
━괜찮겠냐?
“이혜원 팀장이 노리는 건 유선제니까요. 오히려 유선제만 노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안전할 겁니다.”
설록진이 자기 보호라도 명령해 두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럴 리 없겠지.
예상대로 이혜원 팀장은 내가 철창 안으로 들어서는 걸 보고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 철창 밖으로 벗어나 유선제를 노린다는 생각도 못 할 정도라니.
상태가 점차 안 좋아지고 있군. 설록진의 세뇌에서 풀려난다고 해도 많은 사람이 백치가 되어 버린다.
메인 타깃으로 하는 경우에는 조금 괜찮은 편이라고 듣긴 했지만, 이렇게 트리거가 눌린 경우에도 멀쩡할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그렇게 해서 이혜원 팀장에게 다가간 나는 그녀의 꼴을 보며 얼굴을 구겼다.
아직까지 지혈이 되지 않은 상처에서 피가 뚝뚝 흐르는 것이 보였다.
“이런.”
나는 주머니에서 포션을 꺼내 그녀의 상처에 뿌렸다. 다행히 그녀는 내 접근에도 여전히 아무런 반응 없이 서 있기만 했다.
━죽여야 할 수도 있다면서 상처를 치료해 주는 거냐?
세뇌를 풀 수 없다면 죽여야 한다. 여기에서 본 것을, 들은 것을 설록진에게 들킬 순 없으니까.
여태까지 내가 그래 왔던 것처럼, 이 사람 또한 죽여야 할지도. 하지만 그때와 달리 나에게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다.
‘어때요. 보입니까?’
━으음, 지독하군. 그 녀석의 마력이 이 사람의 뇌를 옭아매고 있어. 마치 기생충 같구만. 그래도 말이야, 음, 아주 불가능하진 않겠어.
‘없앨 수 있을 것 같다고요?’
━그래.
그 말에 심장이 뛰었다.
“정말로요?”
━쉽지는 않아. 하지만 가능해. 이곳에서는 그 녀석의 지배력이 약해진 것 같거든.
천천히 내 마나가 이혜원 팀장의 몸으로 타고 들어갔다. 레이는 섬세하게 이혜원 팀장의 몸을 살폈다. 남의 몸속에 다른 사람이 심어 놓은 마나를 찾아내 그 마력만 태워 버린다니.
나로서는 흉내도 못 낼 만큼 섬세한 마나 운용이었다. 그동안 마나 운용에 제법 도가 텄다고 생각했는데. 레이 앞에서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설록진의 황금빛 마나를 태워 버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이혜원 팀장은 천천히 눈을 떴다. 맑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봤다.
“이, 이게 무슨…….”
“일어나셨습니까?”
나는 정신이 없어 보이는 이혜원 팀장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게이트를 클리어한 것, 그리고 그 순간 이혜원 팀장이 미쳐 날뛰었다는 이야기까지. 누군가에 의해 세뇌당했었다는 내 말에 이혜원 팀장은 무척이나 놀랐다.
“제가, 제가 그런 짓을 저질렀단 말입니까? 세뇌라니. 대체 누가…….”
아예 기억도 없는 건가. 하긴, 설록진의 세뇌는 순식간에 끝나 버리니까. 언제 어디선가 그를 마주쳤던 거겠지.
“저도 모릅니다.”
나는 태연히 거짓말을 이었다. 유선제는 물론이고 이혜원까지. 나는 설록진의 정체에 대해 말해 줄 생각이 없었다.
말했듯, 어설프게 적으로 삼았다가는 좋은 꼴을 못 볼 사람이라. 아예 모르고 있는 편이 낫다.
“그래서 말인데, 이혜원 팀장님은 당분간 죽어 있는 편이 낫겠습니다.”
“예?”
설록진의 세뇌는 여태까지 전능했다. 유물급 아티팩트로 튕겨 내지 않는 한, 세뇌에 걸린 인간을 풀어낸 경우는 전무했다.
‘게이트 안에서’라는 조건이 붙어 있긴 하지만, 이혜원의 세뇌를 풀어낸 건 엄청난 일이었다.
그리고 난 이걸 절대로 들킬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히든카드를 바로 까 버리는 건 멍청이나 할 짓이다. 그러니 되도록 이혜원 팀장은 죽은 사람이 되어서 안전한 곳에 숨겨 두는 게…….
“하긴 제가 저지른 잘못이, 크긴 하니까…….”
“네?”
내 의도를 어떻게 이해한 것인지 이혜원 팀장은 가만히 내게 목을 들이댔다.
“아프지 않게 부탁드립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닙니다!”
나는 황급히 손발을 휘저었다.
천천히 나는 다시 한번 내 계획을 설명했다. 파랗게 질렸던 이혜원 팀장의 얼굴은 그제야 제 색을 찾기 시작했다.
“죽은 체하라는 거로군요.”
“예, 그렇죠.”
“하지만 여기에서 나가서 어디에 있어야 할지…….”
“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밖에만 나가면 모든 걸 다 처리해 주겠다는 내 말에 이혜원 팀장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혜원 팀장을 적당한 곳에 숨겨 둔 나는 곧장 서포터 팀을 찾아갔다.
내 얼굴을 본 사람들을 모두 죽일 순 없으니, 적당히 거짓말을 해 두어야 했다.
“안녕하세요.”
내 인사에 이재은은 놀란 얼굴로 나를 반겼다.
“어, 어! 깨어나셨어요? 어? 어.”
“전에 봤던 얼굴이랑은 또 다르네요.”
오효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게 제 ‘진짜’ 얼굴입니다.”
내 말에 이재은이 호들갑을 떨며 물었다.
“얼굴을 그렇게 바꿔 댈 수 있는 거예요?”
“그, 그것도 능력인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보인 강이신의 얼굴을 완전히 잊게 하기는 어렵다. ‘살인 용의자’ 강이신을 알고 있다면 더더욱. 하지만 몇 달 전에 공개 수배가 된 범죄자의 얼굴을 똑바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를 이미 알고 있었던 유선제 정도나 나를 바로 알아봤지, 이 사람들은 아마 내 얼굴을 주의 깊게 보지 않았을 거다.
그러니 그 기억을 다른 사람의 얼굴로 대체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문제가 되는 건 하나가 더 있었다. 한서현의 목소리. 이것에 대한 거짓말도 나는 어렵지 않게 늘어놓았다.
유명 축구 선수 데이비X 베컴처럼. 콤플렉스를 가질 만한 목소리라 이야기를 삼갔다 정도로.
유명인을 들먹여 가며 설명을 잇자, 사람들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해야 할 건 하나 더 있었다.
“이혜원 팀장님은…….”
나는 슬픈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이혜원 팀장은 이곳에 있던 저주에 당한 것으로 해 두었다. 독기를 빼내려고 노력했지만, 힐러도 제대로 된 큐어 포션도 없는 지금은 어려웠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고.
내 설명에 서포터 팀은 충격을 받았지만, 다른 그 어떤 거짓말보다도 지금의 거짓말을 잘 믿었다. 그만큼 그들이 마지막에 본 이혜원 팀장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뜻이다.
마지막 거짓말까지 마친 나는 숨을 돌렸다.
수습은 대충 성공했다.
혹시 몰라 몇 번이나 ‘거짓말’을 추가로 더 해 뒀으니, 이쪽에서 정보가 샐 일은 없을 거다. 만약 샌다고 쳐도 내가 해 둔 거짓말 안에서 뱅글뱅글 돌겠지.
이제 게이트 밖으로 나갈 차례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게이트의 탈출구 앞에 선 나에게 유선제가 찾아왔다.
“그러고 보니 묻지 않았군. 네 능력이 도대체 뭔지. 대체 그 능력은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유선제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냥 어쩌다 보니. 이래저래 잡다한 것들뿐이니 네가 신경을 쓸 바는 못 된다.”
유선제는 나에게 쓸데없이 관심이 많아진 모양이었지만, 나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놈을 물렸다.
“우리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렇게 묻는 유선제에게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래, 대충 살다 보면 언제든 만나지 않겠냐.”
사실 대답만 이렇게 했을 뿐, 놈과 만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내가 아는 유선제의 운명은 여기까지니까. 한 번 살려 줬으면 그만이지, 앞으로도 저 재수 없는 놈의 뒤치다꺼리를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게이트 앞에 선 나는 유선제에게 말했다.
“몸조심해라.”
두 번 다시는 안 구해 줄 생각이니까. 내 퉁명스러운 말에 유선제가 입을 열었다.
“너도.”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나는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게이트가 유선제를 집어삼켰다.
“참 나.”
━방금 저 녀석 웃고 있지 않았나?
‘그게 무슨 소름 끼치는 말입니까. 잘못 본 걸 겁니다.’
웃는 유선제라니, 꿈에 나올까 무섭다.
나는 뒤로 고개를 돌렸다. 그동안 잘 숨어 있던 한서현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우리도 나가자.”
* * *
공략 소식을 기다리는 기자들은 오늘도 게이트 앞에서 진을 치고 앉아 있었다. 짬이 덜 찬 수습기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젠장, 오늘로 삼 주째지?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건데.”
“설마하니 실패하는 건 아니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시리우스 공략대가 게이트 공략에 실패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유례없이 길어지는 공략에 의문이 들 뿐.
“어쩌면 게이트 안의 풍경이 너무 좋아서 공략은 천천히 하고 즐기고 나오는 거 아닐까. 저번에 뭇별 길드의 누가 그랬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실없는 소리를 하며 시간을 때울 때였다. 눈앞에 있던 게이트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기자들이 일제히 게이트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는 그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시리우스의 헌터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우와아아!”
“공략대다!”
하지만 사진을 채 제대로 찍기도 전에 검은 모래 폭풍이 주변을 집어삼켰다.
“무, 무슨 일이야!”
특종을 위해 자리에 죽치고 앉아 있었던 기자들은 모두 비명을 내질렀다. 그렇게 몰아친 모래 폭풍이 끝나고 나자 눈앞에서 게이트가 닫혔다.
“잠, 잠깐만!”
달마저 구름 뒤로 숨은 밤, 기자들은 황급히 주변에 뒀던 조명을 켰다.
그리고 들어갈 때의 채 반의반의 반도 되지 않는 규모의 공략대를 발견했다.
“이, 이럴 수가!”
“나머지 사람들은요?”
“고, 공략에는 성공한 겁니까?”
“게이트가 닫혔으니 성공했겠지!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한 건 어디의 누구야?”
혼란스러웠다.
그 질문에 답변해야 할 유선제는 잔뜩 지친 얼굴로 말했다.
“내일 기자회견이 있을 겁니다. 비켜 주시죠.”
“저기, 한마디만!”
“내일, 기자회견이 있을 겁니다.”
유선제의 동공이 일그러지는 걸 확인한 사람들은 황급히 그와 거리를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