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6화
#35 얼음성의 마녀 (1)
“거기에 있는 해독제만 뿌리면 끝날 거라고요? 확신할 수 있습니까?”
아니라고 하면 나를 당장에라도 찢어 죽일 기세다. 나에게도 확신은 없었다. 해 보지 않은 일인데 어찌 백 퍼센트 장담할 수 있을까.
하지만 괜히 시스템이 이걸 키 아이템이라고 하지 않았겠지. 맨날 설명을 반쯤 떼먹어서 그렇지 시스템은 언제나 ‘진실’만을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대답에 유선제가 말했다.
“그럼 저 첨탑에 가서 당장에라도 저걸 뿌리면 끝나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이곳의 물건을 밖으로 빼내면 바로 얼어 버리거든요.”
문을 제대로 여닫지 않으면 이 안쪽까지 얼음이 침범한다. 마치 ‘오염’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곳도 완전히 안전한 곳은 아니라는 뜻이다.
“해독제는 다를지도 모르지만, 하나뿐인 물건으로 그런 위험한 실험을 할 수는 없죠.”
“그럼 그걸 어떻게 탑의 마녀에게 뿌릴 겁니까?”
탑의 마녀라, 나는 그 명칭에 불편함을 느꼈지만, 굳이 지적하진 않았다. 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간단합니다. 이 방까지, 음, 마녀를 유인해서 데리고 오면 되니까요. 방이 파괴되는 순간 이 안에 있던 게 얼어붙기 시작할 테니, 방과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해독제를 뿌려야겠죠.”
내 설명에 사람들 사이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유선제는 내게 그게 진심이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지간히 비협조적이군.
하지만 이혜원 팀장의 표정도 엇비슷했다.
“그게 가능할까요?”
그야, 이 방과 탑은 더럽게 멀었으니까.
이 방은 성의 왼편에 있었다. 하지만 탑은 오른편 끝, 이 성에서 제일 외진 곳에 있었다.
워낙 거대한 성이라, 같은 성안에 있다 하더라도 거리는 꽤 되었다. 게다가 이 방까지 목표물을 끌고 오는 것도 문제다. 이 방은 성안에서도 꽤 깊숙한 곳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동선은 대충 나왔다.
“이곳에서 위층 복도로 빠져나가면 바로 연회장이죠. 연회장을 나가서 왼편으로 돌면 정원이 나옵니다. 정원에서 성벽을 타고 올라가면 탑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나오고요.”
내 말에 사람들은 대충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유인은 누가…….”
저도 모르게 그렇게 입을 열었던 오효준은 자신에게 몰리는 시선에 헉 하고 놀라 입을 닫았다. 확실히 이번 작전에서 가장 위험한 역할이 바로 유인이니까.
단독으로 보스의 시선을 끌어 정확한 곳까지 데리고 와야 하니 난도도 상당했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개사기 유인책이 있다.
“존 요원의 모래로 유인하도록 하죠.”
여태까지 탑의 아이는 자신을 살피러 온 모래에 반응하지 않았지만, 공격한다고 하면 깨어나지 않을까. 내 설명을 들은 한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저 해독제가 먹혀든다면, 제압은 손쉬울 겁니다.”
지금 날뛰는 것도 이성을 잃은 상태라 그런 거니까. 제압까지는 문제가 아닐 거다. 그리고…….
“만약 해독제가 완전히 먹혀들고, 그녀가 진정된다면 제게 잠시간의 시간을 줬으면 합니다.”
“시간이요?”
“예.”
그녀는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것도 평생 괴롭게 살아왔던 사람. 그녀를 이용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결국 괴물이 되어야만 했지만, 그녀는 누군가를 해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마인을 연구하면서 알았다. 마인들의 능력은 본능에 가까웠다. 위협이 다가오면 자연스레 반응하는 거다. 그녀는 사람을 해치기 싫다는 이유로 자신의 모든 본능을 억눌러 왔다.
스스로 이빨을 뽑아 버리고 그저 사랑받기만을 바랐던 거다.
그 눈물 나는 노력은 약물 하나로 인해 무용지물이 됐지만.
“위협이 된다면 언제든지 공격해도 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이 게이트의 공략이니까요. 하지만 만약 이 해독제를 쓰는 것만으로도 그녀를 제압할 수 있다면 굳이 그녀를 바로 죽일 필요까지는 없겠죠.”
글쎄, 어쩌면 짧은 시간의 대화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보스 몬스터’의 적의가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내 이어진 말에 그제야 이혜원 팀장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정말로 적의가 사라진다면, 확실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 일이겠네요.”
내 개인적인 동정심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연구. 이혜원 팀장을 설득하는 키워드는 그랬다.
서포트조에 있는 이들 또한 내 설득에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서현이야 내 말이라면 따라 줄 거고. 이제 남은 건 한 명뿐이다.
“그쪽이 공격할 것 같으면 바로 반격할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였다. 늘 내 말이라면 어깃장을 놓던 녀석이 이런 일에는 바로 동의하다니. 하긴 대세는 이미 나를 따르는 것이니.
“작전은 내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오늘 푹 쉬시고 내일 뵙도록 하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사람들과 함께 본진으로 돌아갔다. 든든히 저녁을 챙겨 먹은 나는 자리에 누웠다.
━굳이 시간을 달라고 한 건 뭣 때문이냐? 아니, 애초에 말은 통하지 않을 텐데.
‘사념에 남은 목소리라면 이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념?
‘아, 그때 레이는 없었죠. 저 키 아이템을 만졌을 때 전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죠.’
━목소리를 들었다고?
‘예.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빌었죠. 누구든 자신을 멈춰 달라고.’
그 목소리가 어찌나 처절했는지, 아직까지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그래서 그 애를 만나면 뭐라고 할 생각이냐? 어차피 이곳에서 나가려면 그 애를 죽여야 할 텐데.
‘만약 그렇게 되더라도 말해 주고 싶습니다. 이 모든 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나쁜 사람들 때문이라고.’
그녀를 죽이려고 온 공략대에게는 맞지 않는 일이겠지만, 나는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다.
위선이라고 욕을 먹어도 좋았다.
그냥 이대로 그 애를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니까.
‘그냥…… 아무도 그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 건, 너무하잖아요.’
* * *
다음 날 아침, 작전은 시작부터 문제가 생겼다.
“검은 모래로 마녀를 공격할 수가 없다고?”
「네. 보호막이라도 있는지, 아예 공격 자체가 안 돼요.」
한서현이 쓴 메모를 본 이혜원이 말했다.
“트리거를 발동시키기 전까지는 진행이 되지 않는 게이트도 있죠. 어쩌면 탑의 마녀를 깨우는 트리거는 ‘살아 있는 생명체’가 접근하는 게 아닐까요?”
“그거라면 누군가 탑으로 가야 한다는 뜻이네요.”
후,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어쩔 수 없네요. 제가 가도록 하겠습니다.”
애초에 다른 딜러진에서는 유인책을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유선제는 전형적인 유리 대포니 제외. 한서현도 마찬가지로 체력이 변변찮으니 제외. 이혜원은 나머지 사람들을 지휘해야 하니 제외.
그렇다고 서포터들을 밀어 넣을 수도 없으니.
남은 건 나뿐이다.
한서현은 잔뜩 불만 어린 눈으로 나를 노려봤으나, 녀석에게는 다행히 문자 그대로 ‘발언권’이 없었다. 메모장에 무어라 적는 건 봤지만, 그 전에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금방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적던 것도 집어 던진 한서현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고개를 가로젓는 걸 보니 제법 진지한 모양이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존 요원.”
한서현은 답답하다는 듯이 스태프로 바닥을 쿵 하고 찧었다. 저게 얼마짜린데. 아주 누굴 닮아서 그런지 성질머리가 장난이 아니다.
“유인만 하는 겁니다, 유인만. 그리고 걱정이 되면 모래로 날 도와주면 되고.”
한서현이 영 싫어하거나 말거나 이미 답은 결정되어 있었다.
후아.
나는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탑으로 향했다. 탑으로 향하는 도중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미 성을 뒤져 보면서, 그리고 키 아이템의 환상 안에서 겪었던 길이라 나는 헤매지 않고 단번에 탑에 오르는 것에 성공했다.
탑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다른 점은…….
━마나의 농도가 유난히 짙군.
‘그러게 말입니다.’
주변에 최상급의 몬스터가 있기 때문인지 마나의 농도가 말도 안 되게 높다는 것.
탑의 꼭대기 층. 나는 굳게 닫힌 얼음 문 앞에 섰다.
몇 번 숨을 고른 나는 그대로 문을 열었다. 문은 내 손이 닿자마자 자연스럽게 열렸다.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다른 곳의 얼음과 달리 유난히 투명하고 반짝이는 얼음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답게 늘어진 흰색의 커튼과 그 아래에 눈을 감고 있는 여자도.
그 안으로 발을 내딛자,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고요했던 수면에 던져진 파동처럼, 서서히 주변의 마나가 변하기 시작했다.
“하아…….”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순식간에 온도가 낮아졌다. 아름답게만 보였던 얼음에는 순식간에 성에가 끼기 시작했고 침대 위에 있던 여자의 주변으로 마나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눈을 깜빡하는 사이, 여자는 어느새 눈을 뜬 채로 서 있었다.
“미친.”
괴담 속 귀신처럼, 여자는 순식간에 눈을 떴다. 나를 바라본 여자는 그대로 미소를 지었다.
그와 동시에 내 몸을 노리고 사방에서 얼음 창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실드를 둘러 창을 막아 낸 나는 그대로 발에 마력을 모아 창문으로 향했다. 본래는 쇠였을 창살은 얼음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대로 몸을 날려 창문을 깼다. 창문 아래로 내 몸이 곤두박질쳤다. 땅에 떨어지기 직전 나는 바람을 불러 몸의 속도를 늦췄다.
“큭.”
바람을 부르는 게 너무 늦었던지, 몸에 충격이 왔다. 하지만 저 위에서 나를 바라보며 분노를 태우고 있는 마녀가 있는 한 머뭇거릴 수는 없다.
내 곁으로 검은 모래들이 나타났다. 나를 노리고 날아드는 얼음 덩어리들을 쳐 내고 있었다.
“고맙다, 서현아.”
나는 몸을 추스르고 바로 정원을 따라 몸을 날렸다. 몸에 있었던 식물들도 전부 얼음이 되어 있었기에 좋은 길이라고는 못해도 지름길로 가려면 이쪽을 넘어야 했다.
“큭!”
내 앞에 거대한 벽이 생겼다.
따돌렸다고 생각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어느새 하늘에는 이 성을 꽁꽁 얼려 버린 ‘마녀’가 떠 있었다. 마녀의 손짓에 정원에 있던 모든 것들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땅에 박혀 있던 나무와 꽃 따위가 단체로 공중으로 떠올랐다.
여기에서 머뭇거리면 바로 몸이 꿰일 판이다.
이크! 나는 바닥을 걷어차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내 눈앞에 모래로 만든 거대한 독수리가 나타났다. 나는 독수리 위에 몸을 올렸다.
생각보다 단단하게 뭉쳐 있는 모래는 내 몸을 태우고도 흔들리지 않았다.
독수리는 나를 태우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윽!”
독수리가 날아가는 동안에도 뒤에서 무언가가 계속해서 날아왔다.
━기세가 엄청나구나.
깨어난 마녀는 공포 그 자체였다.
독수리의 비행은 위태로웠다. 나를 태우기 위해 덩치를 키웠기에, 잽싸게 몸을 움직이는 게 불가능했다.
나는 몸을 최대한 독수리의 등에 붙인 채로 고개를 뒤로 돌렸다.
등 뒤로 식은땀이 미친 듯이 흘렀다.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운 날씨임에도 긴장감 때문에 손바닥에 땀이 솟았다.
끼야아아악!
고막을 찢어 버릴 듯한 비명을 내지르는 마녀를 보며 나는 실드를 펼쳤다.
그때 뒤에서 거대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린 나는 경악했다.
내 눈앞에 보이는 건 오로지 새하얗게 빛나는, 수많은 창들뿐이었다.
“미친.”
저건 ‘피할 수 없다’.
나는 팔찌의 마나를 끌어왔다. 화력은 30퍼센트. 최대 출력으로 실드를 두르고 또 둘렀다.
그리고 마녀의 손짓을 따라 창이 낙하하기 시작했다.
두드두두득
살벌한 소리와 함께 온 세상에 얼음 창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창은 모든 걸 파괴하기 시작했다. 아름답던 정원은 이내 아무것도 남지 않은 폐허가 됐다.
내 실드에도 마녀의 창은 마치 심판처럼 내리꽂혔다.
“으윽.”
실드를 둘렀지만, 파괴력까지는 그대로 전달되었다. 살이 짓눌리고, 뼈가 떨렸다. 내 실드를 받지 못한 독수리는 창을 그대로 맞았다. 모래가 뚫리고, 또 뚫렸다.
마침내 형태를 이루지 못한 모래는 그대로 흩어져 버렸다.
“크윽!”
독수리가 사라지면서 내 몸은 땅바닥에 처박혔다. 여태까지의 가속도를 가진 채 내 몸은 바닥을 긁듯이 추락했다.
실드를 두른 건 정면뿐. 바닥에 부딪힌 건 맨몸이었다.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힐 정도의 고통이 온몸을 두드렸다. 바닥과 부딪친 머리가 멍했다. 삐이이이, 귀에서는 이명이 울렸다.
━움직여라!
레이의 말에 나는 겨우 왼팔로 바닥을 밀어내며 일어났다. 온몸이 삐그덕거렸지만, 멈출 수는 없다.
고개를 든 내 앞에 연회장의 입구가 보였다.
이제 겨우 반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