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27 십악(十惡) 도살자 (3)
이어진 소식에 박철완은 머리를 짚었다.
“미친놈들.”
이번에는 벨츠머츠 쪽에서 나섰다. 현장에 출동한 사람들은 끔찍한 모습에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이건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현장을 보다 보니 이상한 점이 많더라.”
처음 소식이 들어왔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박철완은 이번 일로 또 한 번 선량한 사람들이 죽었구나 했다. 그거야, 사건 현장으로 신고된 곳이 영세한 길드 사무실이었기 때문이다.
길드라고 하면 다들 잘나가는 곳만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그렇게 잘나가는 곳보다는 일종의 인력 사무소처럼 조촐하게 운영되는 곳이 훨씬 많다. 그때그때 필요한 인력을 중개하고 소개 수수료를 떼는 그런 곳 말이다.
그런 곳을 벨츠머츠가 털었다는 말엔 그놈들도 별 볼 일 없는 빌런이구나 했다.
하지만 이곳, 털어 보니 수상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사방에 퍼진 자료를 훑어본 도채희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빌런 소굴이었어요, 여기.”
평범한 길드를 가정하여 운영되고는 있었지만, 나오는 자료며 서류며.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숨겨 둔 지하 창고의 존재까지.
심지어 벨츠머츠는 그 사실을 각범부에 친절하게 알려 주듯 숨겨진 공간까지 모두 열어젖히고 이들이 숨겨 두었던 전리품까지 늘어놓았다.
게다가 죽어 있는 이들을 자세히 살피니, 모두 정부에서도 쫓고 있었던 빌런이기까지 했다.
순식간에 이곳은 또 하나의 사건 현장이 됐다.
벨츠머츠가 저지른 살인 사건과는 별개로 이들이 저질러 왔던 범죄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박철완은 피해자들의 이름을 살펴보며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도살자보다는 이놈들이 낫네.”
박철완의 그 중얼거림을 들은 도채희는 펄쩍 그 자리에서 뛰었다.
“이게 더 나빠요. 자기들이 뭐라도 되는 것처럼 굴고 있으니까요. 똑같은 살인이라고요.”
“똑같은 살인이라기엔, 그래도 대상이 차이가 있잖냐.”
“게다가 현장에 남긴 메시지 봤잖아요.”
도채희의 이어진 말에는 박철완도 입을 닫았다.
현장에 벨츠머츠를 향한 메시지를 남겼던 도살자처럼, 벨츠머츠도 도살자를 위한 메시지를 남겼다.
「토끼 백 마리보다는 이리 열이 낫지.」
도살자와는 달리 굳이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모두가 이 메시지를 누가 남겼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벨츠머츠는 이곳의 길드 마스터였던 놈의 가슴팍에 자신들의 이름까지 남겼다.
“사람 목숨을 이렇게 우습게 여기는 놈들이라고요. 알겠어요? 누가 더 낫고, 나쁘고가 없다는 거예요.”
도채희의 말에도 분명 일리는 있었다. 이곳에서는 전혀 생명 존중의 시옷 자도 보이지 않으니까.
하지만 박철완은 도채희처럼 이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읽진 않았다.
“내가 도살자라면 무진장 열받을 거야. 그리고 생각하겠지. 민간인은 아무리 죽여도 이놈들한테 안 되겠다고.”
“예. 그러니까 문제죠, 그 열받은 놈이 뭘 할지 감이 안 오니까. 이러다가 미쳐서 그래, 오냐! 더 비싼 목을 갖다 바치마! 이러면서 국회라도 습격하면 어떡하냐고요!”
“어, 그건 참 곤란하겠는걸.”
그제야 심각성을 느낀 듯 굳어진 박철완의 표정에 도채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지들끼리 만나서 한판 뜨면 좋겠네.”
“그게 제일 낫겠죠. 이런 식으로 애먼 사람들을 잡지 말고요.”
도채희와 박철완의 얼굴에는 시름이 앉았다.
“이 일로 또 언론이 얼마나 떠들어 댈지.”
* * *
두 사람의 예상대로, 아니, 예상보다 훨씬 더 이 일은 화제가 되었다.
하루 만에 소멸해 버린 작은 마을에 대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들려온 살인 사건이다. 그것도 마치 ‘게임’을 하듯이 일어난 살인 사건.
정부는 이 일을 크게 규탄하고 나섰다. 당연했다. 빌런이라는 것들이 이렇게나 날뛰고 있었으니까.
각범부 또한 덩달아 이 일에 욕을 먹고 있었다.
도대체 각범부가 뭘 하고 다니기에 빌런들이 이렇게 자유롭게 날뛸 수 있냐는 거다.
이제 겨우 신설 한 달 차, 제대로 체계도 잡히기 전에 비난부터 쏟아졌다.
각범부의 부장으로서 박철완은 툭하면 기자회견 자리에 끌려가야만 했다.
말이 기자회견 자리지, 그냥 언론의 샌드백이 되어 두들겨 맞는 자리라고 봐야 했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알아보겠습니다.’ 정도밖에는 없는.
“죽겠다.”
그런 자리에 몇 시간이나 시달린 박철완의 얼굴은 도채희가 보기에도 많이 상했다.
“도살자야 그렇다 치고 진짜 벨츠머츠 그 자식들은 어떻게 된 건지 돌아 버리겠다. 호주에서도 아무런 정보가 없대고.”
그 말에 도채희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사실 호주에서 입국 기록을 받아 따로 숨긴 건 그녀가 저지른 일이었으니까. 한서현의 사진이 그 안에 포함된 이상 아직은 그 사진을 공개할 생각이 없었다.
도채희도 알고 있었다.
한서현이 선을 넘었다는 것.
이번 살인 사건에선 흑마력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모든 정보는 차곡차곡 모여 벨츠머츠라는 빌런을 그리는 데에 도움이 되고 있었다.
정부가 말하는 대로 각범부는 정말로 무능한 게 아니었다. 하루에도 각범부의 손에 수십 명의 빌런들이 잡히고, 수백 건의 일들을 처리한다.
문제는 제대로 된 ‘헌터’가 되지 못할 바에야 ‘빌런’이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빌런이 되는 각성자의 수가 너무나도 많다는 거다.
각성자가 나쁘다고 떠들어 댈수록 빌런은 늘어났다. 빌런이 늘어날수록 다시 각성자는 나쁘다는 인식이 사회에 퍼지고 그러면 갈 곳이 없어진 각성자들은 결국 빌런이 된다.
이 악의 순환을 끊을 수 있을까.
그런 미래지향적인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일거리가 밀려 있었다.
이번 일은 애초에 각범부의 컨트롤을 벗어난 재앙이다.
각범부에서 제일 등급이 높은 각성자는 도채희, 박철완 정도다. 그나마 도채희는 ‘팀장’이 된 뒤로 현장을 뛰는 일을 반쯤 금지당했다. 책임자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니 겨우 고만고만한 B급 각성자들만 모여 있는 각범부에서 A급 이상으로 추정되는 빌런들의 범죄를 막는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저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제발 수습 가능한 범위에서 일이 터져 주길 바라는 것밖엔 없었다.
그때, 팀원 중 한 명이 도채희와 박철완에게 달려왔다.
“팀, 팀장님!”
“뭔데, 그럴싸한 소식도 아니면서 그렇게 달려온 거면 엉덩이를 걷어차 준다.”
까칠한 박철완의 말에 아직 어린 낯의 팀원은 바람을 집어삼켰다.
“우리 불쌍한 팀원 겁주지 마요. 그래요, 용원 씨 무슨 일인데?”
도채희의 말에 김용원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 그! 벨츠머츠 쪽에서 도살자 측에게 결투장을 보낸 모양입니다.”
팀원의 말에 도채희의 눈이 커졌다.
“뭐라고요?”
“결투장이라니. 무슨 중세 시대도 아니고 그런 걸 보냈다고?”
“다크웹에 뜬 기사입니다.”
당연히 각범부에서도 다크웹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일정 이상의 인증이 필요한 곳을 뚫어 내지는 못했지만, 일반적인 빌런이 볼 수 있는 곳은 모두 볼 수 있었다.
그 다크웹에 떴단다. 뭐가? 결투장이.
벨츠머츠가 보낸 메시지는 간단했다.
『서로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지.
우리에게 도전하고 싶다면 받아 주마.』
그 밑에 적힌 장소와 일시를 보는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이게 진짜일까?’ 하는 의심이었다. 당연했다. 이렇게 간단하게 정말 ‘뜨자’고 말할 줄은 그 누구도 몰랐으니.
“이거 진짜 벨츠머츠야?”
박철완의 질문에 김용원이 더듬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그게…… 의견이 분분합니다. 아직 정식적으로 인증을 받지 않은 계정으로 올라온 글이거든요.”
다크웹의 계정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아무나 가입해서 받을 수 있는 ‘기본’ 계정과(각범부에서 쓰고 있는 것도 이쪽이었다), 특정 신분 인증을 받고 나서야만 사용할 수 있는 ‘인증’ 계정이.
당연한 말이지만, 인증을 받는 과정은 쉽지 않다.
그리고 이 글은 기본 계정으로 쓰였다.
“에이, 뭐야. 그럼 가짜일 가능성이 크잖아.”
박철완은 김이 샜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아주 가짜로 보기도 좀 그렇습니다.”
“왜?”
“어제 사건 현장 있잖습니까. 사건이 일어나기 전하고 사건이 일어난 직후 사진을 올렸거든요. 범인이 아니면 찍을 수 없잖습니까, 그런 거.”
인증은 받지 않은 계정이지만, 사진으로 인증을 한 것이나 다름없단 뜻이었다.
“그럼 진짜잖아!”
도채희는 박철완의 목소리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우리도 그곳으로 출동하도록 하죠.”
“함정이면요?”
“함정이든 뭐든 상관없어요. 어중이떠중이들이라도 빌런이면 죄다 이쪽에 몰릴 거 아닙니까?”
벨츠머츠와 도살자를 잡는 데 실패하더라도 일단 이곳에 모인 다른 범죄자들이라도 잡아 넘긴다면 그것만으로 남는 장사였다.
도채희가 하는 말을 이해한 신입 김용원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안타깝게도 도채희가 그곳에서 범죄자를 체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도살자는 남이 만들어 놓은 판에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으므로.
* * *
“일이 재밌게 돌아가네.”
설록진은 다크웹을 보며 눈을 굴렸다.
두 빌런이 날뛰어 주는 덕에 상황은 더없이 좋게 돌아가고 있었다. 각성자들을 위한 탄압은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었다. 워낙 벌여 주는 일들이 흉흉해 많은 도움이 됐다.
각범부를 믿을 수 없다고 떠들어 대는 것도 주효했다. 경찰 하위 조직이었던 팀을 부서로 만든 이유도 이것이었다.
각성자는 자정이 되지 않는 존재다.
철저한 탄압만이 답이다.
결국 각성부는 실패다.
그런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다.
그걸 위해서도 지금 터진 이 사건들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이 벨츠머츠라는 놈들이다. 아무리 뒤져 봐도 놈들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보통은 이럴 수 없다.
빌런이라는 건, 대개 허술한 첫 시도라는 게 있기 마련이니까.
벨츠머츠는 아니었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듯 나타났다.
그리고 저지른 일이 무려 옥션 강탈이다.
처음부터 대도로 시작할 수는 없는 법이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빌런은 탄생하기도 하지만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벨츠머츠에는 빌런들에게는 흔히 있기 마련인 시작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만들어 낸 것처럼.
설록진이 의심하고 있는 것도 그것이다.
누군가 필요로 의해 이 벨츠머츠라는 조직을 만들어 낸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 뒤에는 누가 있을까. 그 답을 찾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벨츠머츠를 만들 만큼 여력이 되는 건 대한민국 5대 길드 정도일 테니.
문제는 ‘누가’가 아니다, ‘무슨 의도’로 벨츠머츠를 만들었냐는 거지.
옥션에서만 끝이 났다면 답은 간단하다.
당장 시리우스의 진연화가 자신의 팀을 꾸려 마정석을 빼돌리려 했던 것처럼, 다른 길드에서도 같은 짓을 꾸몄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인체 실험실을 굳이 파괴해 가며 그곳에 있던 아이들을 빼돌리고, 호주로 가서 테이카 쿠퍼와 접촉한 건 분명 이상하다.
테이카 쿠퍼와는 분명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터.
‘모두의 눈을 따돌리고 테이카 쿠퍼와 거래를 한 거야. 마정석은 호의의 표현이겠지. 미국 정부까지 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거래는 확실해.’
만약 이 모든 게 누군가가 계획한 판이라면, 설록진은 이 판을 세운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내야 했다.
체스 판이 엎어지는 경험은 한 번이면 족하다.
“탑도 그놈들을 모른다면, 답은 확실해지겠지.”
설록진의 선은 탑에도 닿아 있었다.
탑의 인물들은 대중들이 생각하는 순수 악과는 거리가 멀었다.
산다는 건 욕망한다는 것.
그리고 빌런은 그 누구보다 욕망하는 자.
그리고 욕망하는 자는 결코 설록진의 유혹을 떨쳐 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