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화
#27 십악(十惡) 도살자 (1)
다크웹은 일반적인 커뮤니티가 아니다.
범죄에 손을 담근 각성자, 빌런이라면 누구든지 가입하는 이곳에는 이름 높은 고고하신 빌런까지 모두 가입이 되어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다크웹 쪽에서 그 빌런을 섭외한 거다.
인터넷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 것 같은 ‘도살자’ 박상편이 다크웹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탑에 그의 이름이 오르자마자 다크웹 쪽에서 성대한 축하 선물과 함께 다크웹에 그를 초대했던 것이다.
그 이후로 박상편은 심심할 때마다 그들이 주고 간 디바이스로 툭툭 다크웹을 확인했다.
자신의 이름을 쳐서 나오는 글을 보는 게 일종의 낙이 되기도 했다.
최근 그 다크웹에서 툭하면 오르내리는 루키가 생겼다.
처음 박상편은 그 새로운 이름의 등장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원래 새로운 빌런이 등장하면 달아오르는 게 이 다크웹이라는 커뮤니티였으니까.
자신과 그놈들을 엮은 주제넘은 글들이 있어도 뭐, 아주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날 만난 놈들을 평소보다 두 배 정도 곱게 다져 주긴 했지만, 참을 만은 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 이후로는 선을 넘었다.
“이 새끼들이 탑에 오를 자격이 있다고? 어떤 놈들인지도 모르면서, 뭐? 나 정도는 가뿐히 이길 거라고?”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헌터들이 가득 찬 옥션장을 턴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나 그래 봤자 좀도둑질이었다. 실제로 그곳에서 다치거나 죽은 사람도 없었고.
그다음으로 벨츠머츠가 나타난 곳은 연구 실험실. 개조 인간들을 만들어 내는 실험실의 위치를 특정한 정보력이야 대단하다 할 수 있겠지만, 역시 그곳에서 그들이 상대한 건 민간인이나 다름없는 어중이떠중이들이었다.
그리고 이번 일. 7성급 헌터라는 놈이 엮였다고 해도 결국 그놈과 싸워 이긴 게 아니라, 그놈이 잡은 몬스터의 전리품을 들고 나른 거잖나. 결국 또 좀도둑질이었다.
하지만 다크웹에서는 그놈들이 도살자인 박상편보다 낫다고 말했다.
쿠웅, 박상편의 성질머리를 감당하지 못한 책상이 그대로 부서져 버렸다.
다른 탑의 인원들은 고고한 척 다크웹을 신경 쓰지도 않는 척했지만, 박상편은 달랐다.
그의 유일한 업적이 바로 이 탑에 오른 것이니까.
이 업적을 망치는 이는 그게 누구든 용서할 수 없었다. 이런 자신의 성향조차 비웃음당하는 걸 알지만, 그래도 너무나도 기분이 나빴다.
“그래, 그래. 내가 최근에 좀 사리긴 했어. 도살자라는 이름에 맞지 않게 말이야, 너무 조용했다고.”
도살자라는 이름에 맞지 않게 박상편이 최근 몸을 사린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다른 놈들의 착각처럼 폼이 떨어져서가 아니었다.
“크흐흐.”
박상편은 자신이 들고 있는 검을 보며 불길한 미소를 지었다.
저번에 헌터들을 뒤통수치고 털었던 게이트에서 박상편은 생각지도 못한 아티팩트를 얻었다.
“이 검을 다루는 데에 시간이 걸렸을 뿐이라고.”
검에서는 자체적으로 마나가 흘러나왔다. 손잡이를 쥐면 이 검에서 흐른 마나가 곧장 몸으로 내리꽂혔다. 그리고 그 마나는 엄청난 힘을 주는 대신 정신을 파고들었다.
실제로 이 검을 잡은 애송이 몇 명은 그대로 미쳐 날뛰었다. 검에 잡아먹힌 거였다.
박상편은 그 모습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애송이들에게 검을 잡게 시킨 게 바로 본인이었으니까.
몇 번 박상편도 이 검에 잡아먹힐 뻔했다. 하지만 끝끝내 이 검을 지배해 자신의 아래에 두는 데에 성공했다.
“제발, 제발요.”
박상편은 앞에서 흘러 들어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흥을 깨는 애원이었다.
“이제 돌려보내 주시면 안 됩니까? 여기에서 있었던 일은 누구,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남자의 말에 박상편이 웃음을 흘렸다.
“끄하하, 왜? 왜 말하지 않겠다는 거냐? 내가 그러더냐, 입을 닫으라고?”
“그, 그거야…….”
남자는 필사적으로 눈을 굴렸다.
박상편은 검을 다루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 열다섯 명이 넘는 헌터를 희생시켰다. 다섯은 검을 잡고 미쳐 가는 꼴을 곁에서 지켜보았고, 나머지 열은 검을 잡고 휘둘러 죽였다.
제법 이름이 알려졌던 공략 팀이었지만, 살아남은 것은 이제 자신뿐이었다.
그런 일이 알려지는 걸 싫어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하지만 눈앞의 인물은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자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그, 그렇다면 제가 알리겠습니다! 도살자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신지! 얼, 얼마나 대단하셨는지!”
남자의 말에 박상편의 입가가 올라갔다. 드디어 맞는 답은 찾은 걸까? 비로소 살아날 길이 열린 것 같아 남자의 눈에도 희망이 맴돌기 시작했다.
“좋아, 좋아. 다들 알게 될 거다. 이 도살자가 얼마나 대단해졌는지 말이야. 그 벨츠머츠 개자식들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고!”
박상편은 검을 집어 들었다. 검을 잡은 그의 오른손에 검붉은 핏줄이 돋기 시작했다. 검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불길한 기운을 억지로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박상편이 찾아낸 이 검을 통제하는 방법이었다.
검날에 붉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흐흐.”
검을 쥘수록 기분이 방방 떴다. 자신이 마치 이 세계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아니, 강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게 아니라 진짜 강한 사람이 된 거지.
도살자는 자신의 실력을 믿었다. 도살자라는 말처럼, 그는 여태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을 벴다.
그랬던 그가 엄청난 아티팩트를 얻어 버린 거다.
“이 검은 정말 대단해. 봤지, 작은 상처서부터 불꽃이 번지던 거. 아주 자그마한 상처라도, 베이는 순간 죽음이 확정되는 거지!”
그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봤던 헌터의 얼굴에 공포가 드리워졌다.
“그, 그렇죠.”
박상편이 검을 들었을 때부터 그의 마음 한편에는 불안함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헌터의 몸은 그대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검에서부터 피어오른 불꽃은 그의 몸을 활활 불태우고 사라졌다.
아주 살짝만 베여도 이렇다.
이 불꽃을 막을 사람은 없었다.
“네가 나를 위해 소문낼 필요는 없어. 곧 모두가 나 박상편에 대해서 알게 될 테니까.”
자신을 비웃고 자신을 깔본 놈들.
박상편의 눈이 붉어졌다.
“어디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하러 가 볼까.”
도살자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 * *
도채희는 눈을 감았다.
문득 예전, 막 각성자 범죄 전담 팀으로 들어왔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 도채희는 그야말로 불도저라는 별명이 어울릴 정도로 막무가내로 현장을 뛰어다녔다.
그날도 그랬다.
[◇◎동 은행 습격 사건입니다! 지원, 필요합니다! 적……. 으아악!]
무전 소리를 듣자마자 도채희는 현장으로 출동했다. 현장에 진입한 도채희는 곧바로 특수 총알이 장전된 권총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재능은 사격.
눈에 보이는, 자신의 눈으로 ‘인식’한 것에게는 무조건 자신이 ‘쏘아 보낸’ 것을 명중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재능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무엇이든 꿰뚫어 볼 수 있는 독수리의 눈이라는 재능까지 붙어 있었다.
그녀는 은행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권총을 난사했다. 총구를 맞출 필요도 없었다.
도채희가 쏘아 낸 총알은 절대로 빗나가지 않으니까.
그렇게 은행을 습격했던 빌런 셋은 순식간에 제압되었다.
“감사합니다!”
“으어, 덕분에 살았어요.”
그때 들었던 감사 인사가 그녀를 살아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가, 어느새 그런 인사가 전생에 들었던 것처럼 희미해졌다.
실적이 쌓이고 쌓여, 더 이상 ‘현장’을 뛰지 않게 됐을 때가 언제더라.
원치도 않게 정치판에 뛰어들게 됐을 때가.
상념은 여기까지.
도채희는 다시 눈을 번쩍 떴다.
어쨌거나 지금 그녀에게는 해치워야 할 적이 있지 않은가.
벨츠머츠!
그 이름이 들려온 건 국내가 아니라 웬 호주의 외국 기사였다. 그 기사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윽고 외신이 일제히 벨츠머츠라는 이름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헌터 테이카 쿠퍼에게 엿을 먹였단다.
“하, 외국을 나돌고 있었나.”
그동안 국내에서는 머리털 하나 안 보이더니, 외국에 나가셨단다. 거기서 아주 대단한 업적을 이뤘다. 무려 7성급, 앞으로 무난히 8성급이 될 거라 예상받는 헌터를 털어먹은 거다.
옥션을 털어먹을 때부터 알았지만, 도둑질에는 일가견이 있는 모양이었다.
마정석 두 개라.
“그걸 가지고 대체 뭘 할 생각인 건지.”
어쨌거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 호주에 그놈들의 입국 기록이 남았다는 거지.
그곳에 벨츠머츠가 떴었다는 걸 알아낸 도채희는 호주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접촉해 자세한 정보를 받을 수 있었다.
현장에서 파악된 벨츠머츠 구성원의 수는 총 셋.
그들이 사용했던 신분은 아래와 같았다.
23세, B급 헌터 이승준
25세, B급 헌터 최세진
19세, B급 헌터 오혜성
그곳에서 눈에 익은 얼굴을 발견한 도채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가명을 썼다지만, 얼굴은 그대로였다.
나머지 두 사람의 얼굴은 낯설었지만, 이 오혜성이라는 아이는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한서현.’
전국 공개 수배를 걸어야 하나.
하지만 아직 17살. 어린 나이였다. 게다가 직접적으로 살인에 관여했다는 증거가 없었다. 물론 벨츠머츠와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빼도 박도 못하는 범죄의 증거긴 했지만, 아직 어린아이였다. 그냥 뭘 모르고 벨츠머츠라는 놈에게 끌려다닐 가능성이 가장 컸다.
공개 수배를 때려 버리면 한서현의 인생은 끝나 버린다. 모두가 한서현을 범죄자로 알게 될 거고, 다시는 평범한 삶으로는 돌아올 수 없게 될 거다.
만약 한서현이 외나무다리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면, 그 다리를 부러트려 낭떠러지로 떠미는 식이었다.
가뜩이나 사랑하던 형을 잃은 아이였다.
돌아올 곳 없는 곳으로 그 아이를 떠밀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는, 아직까지는 괜찮아.
돌이킬 여지가 아직은 남아 있었다. 도채희는 그런 생각으로 한서현에 대한 생각을 보류했다.
이렇게 죄를 묻어 주는 건 그녀답지 않은 일이었지만, 한서현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
최세진이라는 사람은 사실 증명사진이라는 게 의미가 있나 싶게 얼굴을 죄다 가려 놔서 확실하지 않았지만, 이승준이라는 남자는 확실히 특정할 만했다.
이게 벨츠머츠의 리더?
아무리 봐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도채희는 그 남자의 얼굴을 눈에 새겨 놓았다.
그 사진을 노려보며 도채희는 속으로 다짐했다.
언젠가는 네놈에게서 한서현을 구해 낼 거라고.
그리고 그 열 명의 아이들까지 어떻게 된 것인지 네 죄를 캐고야 말겠다고.
그렇게 한참 이를 갈며 사진을 노려보고 있을 때였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인가 고개를 빼 든 도채희에게 한 사람이 다가와 말했다.
“비상입니다.”
“무슨 일인데?”
“도살자요.”
생각지도 못했던 그 이름에 도채희는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 도채희의 얼굴엔 살기가 맴돌았다.
“그 미친 새끼가 마을 하나를 몰살했어요.”
벨츠머츠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대형 사고가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