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25 모래 폭풍을 잠재우는 법 (3)
나는 여전히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는 테이카에게 천천히 설명하듯 말을 이었다.
[테이카 씨가 만들어 낸 중심점에는 엄청난 질량을 가진 무언가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점이 주변에 있는 물체를 끌어당기는 거죠.]
나 또한 간단한 방법밖에는 모른다. 애초에 과학자도 아니었고. 그냥 예전에 염동력과 중력의 차이에 대해서 궁금한 게 생겨서 알아본 것뿐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두 재능에는 ‘중심점’의 존재 여부라는 큰 차이가 있다.
염동력은 그런 거 없이 물체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지만, 중력에는 중심점이 필요하니까. 여러 가지 활용성은 염동력의 압승이지만, 파괴력 하나만큼은 중력을 이길 수 있는 게 없다.
어떤 물체 ‘안에’ 중심점을 만들어 버리면, 중력은 그 무엇보다 사기적인 재능이 돼 버리기 때문이다.
그게 끝이 아니다.
중력이라는 재능으로는 일종의 블랙홀도 만들어 낼 수 있다.
블랙홀은 극도로 질량이 커서 빛마저 빨아들일 만큼 중력이 강해진 천체를 일컫는 말이니까.
실제로 10년 뒤의 테이카는 손짓 한 번으로 수만의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는 괴물이 되어 있었지만, 아직은 확실히 애송이였다.
하긴 지금은 7성급의 애송이니까. 사실 7성급만 돼도 1군 길드의 에이스다. 당장 ‘그’ 대단한 김명철도 7성급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테이카 쿠퍼는 전 인류에 한둘 나올까 말까 한 9성급의 헌터가 되는 괴물이었다. 저 블랙홀을 만드는 방법을 깨닫고 9성에 올라 버리지.
내 말에 테이카는 끄응끄응 앓는 소리만 냈다.
내가 한 말이 아직은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뭐, 시간은 많다.
애초에 이 사실을 깨닫고 실제로 이용하는 것은 몇 년이 지난 다음의 일이니까. 그 시간이 조금이나마 짧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나선 거다.
“대체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랫동안 해요? 밥 다 됐으니까 어서 와요.”
“응.”
“설마 저 사람한테 뭘 가르쳐 주거나 한 건 아니죠?”
“으음? 그럼 안 되나?”
한서현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우리랑 적이 될 사이 아니에요?”
“적까지는 아니야.”
“저쪽은 멋진 영웅이고, 우리의 운명은 악당이잖아요. 그러니까 지금은 아니더라도 미래에는 적이 될 사이 아닌가?”
한서현의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가 말했잖아. 애초에 저쪽은 국가적인 영웅이 될 사람이라고. 우리 같은 잔챙이랑 엮일 일 같은 건 없을걸.”
내가 생각하는 벨츠머츠의 활동 범위는 한국, 기껏해야 동아시아 쪽 정도다. 전 세계 단위로 놀게 될 테이카가 우리의 적이 될 확률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내 말에도 한서현의 눈초리는 여전히 날카로웠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아서 그래요.”
하지만 나는 그 걱정을 무시했다.
“저놈이랑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일은 없을 거라니까 그러네.”
테이카가 강해진다고 우리한테 손해일 일이 뭐가 있겠어! 나는 그렇게 가볍게 한서현의 걱정을 넘겼다.
* * *
그날 저녁부터 모래 폭풍이 거세졌다. 전에 불던 모래 폭풍이 산들바람으로 느껴질 정도로 거센 바람이었다. 이 상태에서는 제대로 시야 확보를 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폭풍의 눈에 가까워질수록 모래 폭풍이 강해질 모양이었다.
맨얼굴로 이런 모래 폭풍 속을 거니는 건 자살행위다.
나는 가면을 꺼내 한서현에게 건넸다. 가면이라면 질색을 하던 한서현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가면을 썼다.
다만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이는 건 좀 그래서 그냥 웃는 얼굴 모드로 해 뒀다. 한서현은 질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김재호는 테이카의 고글 여분을 받았다. 사실 가면을 주고 싶은 쪽은 김재호였는데, 고글을 낚아채고 도망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한서현에게 건넸다.
다들 그렇게까지 내 가면을 질색하다니, 왠지 상처였다.
나는 바람으로 만든 돔을 눈앞에 씌웠다. 마나 소모가 꽤 있긴 했지만, 마력 보조 팔찌도 있으니 완전히 무리는 아니었다.
폭풍 안으로 걸어갈수록 몬스터의 수도 적어졌다. 솔직히 이 안쪽 반경은 가만히 서 있는 것만 해도 고역이었다.
예브리카를 잡는다는 미친 목표가 아니었더라면, 당장 이곳에서 벗어났을 거다. 물론, 그것도 쉽지 않았겠지. 이곳은 덫이나 다름없었다. 모래 폭풍 속에 섞인 마력이 모든 감각을 마비시켜 내가 걷고 있는 방향조차 헷갈리게 만든다.
저 위에 띄워 놓은 한서현의 수리가 아니었더라면 아예 방향 잡는 것조차 불가능했겠다 싶을 정도였다.
우리는 서로의 몸을 밧줄로 감고 움직이기로 했다. 2m 앞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두에 선 건 나다.
나에게는 기본적으로 정신적인 혼란은 전혀 통하지 않는 데다가, 레이라는 만능 내비게이션이 있었으니까.
본인이 모르는 길을 알려 줄 수는 없어도 적어도 내가 걷는 방향이 흐트러질 때마다 경고음을 내뱉어 주는 것 정도는 해 줄 수 있었다.
맨 후열에는 테이카가 섰다. 혹시 모르는 몬스터의 습격을 대비해서다.
모래 폭풍이 너무 심해 식사하는 것도 입을 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가만히 주저앉으면 그대로 모래 기둥이 될 정도로 모래바람이 심해 쉴 수도 없었다.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덕분에 말하는 게 비교적 자유로운 한서현이 말했다.
“으으, 더는, 더는 못 가겠어요.”
그 소리에 나는 줄을 붙잡았다.
모두가 일제히 멈춰 섰다. 나는 조금씩 줄을 당겨 사람들을 모았다. 둥그렇게 돔을 만들고 선 뒤 나는 한서현을 살폈다.
확실히 무리했다는 게 보일 정도였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몸을 바라보던 나는 모두에게 손짓했다.
여기에서 멈추고 휴식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나는 바람으로 땅을 파냈다.
바람으로 파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중간에 대지 자체를 움직였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우리 네 사람이 들어갈 만한 토굴을 판 나는 그 안으로 사람들을 들여보냈다. 그리고 위에는 방수포를 꺼내 덮었다. 모래가 새지 않도록 꼼꼼하게 방수포를 옭아매니 제법 아늑한 토굴이 만들어졌다.
“후아.”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한서현은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김재호도 곧바로 고글을 풀었다. 그러고는 다들 온몸에 묻은 모래를 털어 내기 시작했다.
“조심해. 여기도 모래투성이가 되잖아.”
“으, 죄송.”
그렇게 말한 한서현이 비틀거렸다. 나는 재빨리 한서현을 부축했다.
[저 친구 괜찮은 겁니까?]
[지친 모양입니다. 원래도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그래도 어딘가 다친 곳은 없었다. 그냥 지친 것뿐이니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 정신이 돌아올 거다.
나는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 한서현에게 먹을 걸 건넸다.
“으, 먹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고 굶으면 내일 진짜로 죽는다. 억지로라도 먹어 둬.”
“예에.”
사람들을 앉힌 나는 먹을 걸 건넸다. 좁은 토굴에서 먹을 거라고는 육포 같은 건식량뿐이지만, 먹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 물도 충분히 마셔 둬야 했다. 모래 폭풍이 거세진 바깥쪽에서는 물도, 밥도 제대로 챙길 수 없으니 이럴 때 많이 먹어 둬야 했다.
김재호도 묵묵히 내가 건네는 걸 해치웠다. 식사를 마친 한서현은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김재호도 잔뜩 지쳤는지 얼굴에 묻은 모래를 털어 내고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테이카가 내게 말했다.
[혼자 여길 온 건 자살행위였네요…….]
테이카의 말에 나는 그걸 지금 알았냐는 눈빛만 보내 줬다. 멋쩍은지 테이카는 그대로 입을 닫았다.
토굴에 기대앉으니 생각보다 아늑했다. 머리 위로는 모래가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다들 어떻게 알게 된 사이입니까?]
가벼운 스몰토크 겸 말을 건넨 거겠지만, 만나게 된 계기가 다들 그리 좋지는 않은 이쪽에겐 그 무엇보다 헤비한 토크인 게 문제다.
김재호는 내가 인신매매범에게 돈을 주고 샀고, 한서현은 죽은 형의 복수를 위해 나를 찾아왔지.
음, 새삼 이렇게 생각하니 평범한 만남이 아니다 싶다.
잠시 침묵한 나를 보며 테이카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특히 저 친구는 어려 보이니까 말이죠. 동양인인 걸 감안해도, 아직 학생 같아 보여서.]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굳이 거짓말로 우리 관계를 포장하지는 않기로 했다.
[저기 저 무뚝뚝한 친구는 제가 돈을 주고 고용한 입장이고, 여기에 이 친구는 죽은…… 친구의 동생입니다. 제가 맡아서 돌봐 주고 있죠.]
[아하.]
테이카는 눈을 깜빡이고 나를 봤다.
[하긴, 그쪽처럼 경험이 많아 보이는 헌터와 다니면 경험이 늘 수밖에 없겠어요.]
그러더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음음, 하고 저 혼자 콧노래를 부르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끄으, 혀엉…….”
한서현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예의 악몽을 또 꾸는 모양이다. 그래도 지쳐 쓰러져 있을 때는 저 꿈을 안 꾸는 것 같았는데.
끙끙 앓으며 무어라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테이카가 내게 말했다.
[아파하는 것 같은데 깨워야 하지 않을까요?]
[그냥 악몽을 꾸는 겁니다.]
[악몽이요?]
[아까 말했잖아요. 죽은 친구의 동생이라고. 그 친구의 끝이…… 그리 좋지 않았거든요.]
[악몽을 꾸면 깨워서…….]
[깨워도 악몽은 사라지지 않아요. 다시 찾아올 뿐이지. 어차피 쫓을 수 없는 악몽이라면 몸이라도 쉬게 해 주는 게 낫습니다.]
나도 저런 악몽을 꿔 봐서 안다. 악몽을 꿀 때 잠에서 깨우는 건 그리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몸만 더 무거울 뿐이지. 저렇게 괴로워해도 잠은 잠이다. 몸은 착실히 쉬고 있을 거다. 물론 숙면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말이지.
[꼭 그런 악몽을 꿔 본 적이 있는 사람처럼 말하네요.]
그 질문에 나는 비죽 웃음을 흘렸다.
[이쯤 살아 봤으면 그럴 일이 몇 번은 있기 마련이라서요.]
실제로 내 몸과 테이카는 동갑이지만, 나를 경험 많은 헌터로 오해하고 있으니, 대충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뒤집어쓰고 있는 얼굴도 이십 대 중후반은 되는 얼굴이고. 신분증에는 23살이라고 적혀 있지만, 뭐. 신분증을 깔 사이는 아니니 상관없다.
그나저나 이만 입을 닫고 잠이나 잤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목을 축일 때였다.
[나는 악몽을 꿔 본 적이 없어요. 음, 정확히 말하면 한 번도 그럴 일을 겪어 보질 않았다고 하나. 그래서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딱히 위로가 필요하진 않아요. 그냥 옆에 있어 주면 되는 거겠죠. 그리고 무너지려고 할 때마다 받쳐 주는 겁니다.]
나에게 제일 필요한 것도 그런 거였다. 나의 경우에는 옆에서 받쳐 주는 사람보다는 목줄을 끌어 준 사람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내가 무너지지 않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놈 덕분이다. 참으로 인정하기 더러운 사실이지만.
[그래도 몇 가지는 알겠어요. 당신이라는 리더를 만나서 저 친구들이 참 좋겠다는 거요.]
이런 말을 거의 초면인 사이에 하다니. 역시 미국 애들의 립 서비스는 대단하다. 그래도 퍽 고마운 칭찬이기는 했다.
[하하, 칭찬 고맙네요.]
[아뇨, 이쪽은 진짜 진심인데.]
그렇게 말한 테이카가 볼을 긁적거렸다.
[그나저나 계속 저를 쿠퍼 씨라고 부를 생각입니까?]
[쿠퍼 씨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미스터 쿠퍼’라고 부르면 꼭 우리 아빠를 부르는 것 같아서 소름이 돋는다구요.]
그렇다고 친근하게 테이카라고 부를 생각은 들지 않는다. 너랑은 최대한 멀어지고 싶은 맘이라고, 인마!
[끄응, 알겠어요. 일단은 쿠퍼 씨로 참죠.]
일단이라니, 대체 무슨 생각인 건데. 너와 함께하는 건 여기가 마지막이다.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테이카가 말했다.
[혹시 이번 일이 끝나고 나와 함께 미국에 갈 생각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