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68화 (68/352)

제68화

#24 게이트 치워 드리러 왔습니다 (2)

셔틀이 멈춰 서는 게 느껴졌다. 앞에 선 기사가 말했다.

[셔틀이 운행하지 못할 정도로 손상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셔틀의 장갑은 아직 견고합니다.]

그 말에 셔틀 안에 타고 있던 이들이 모두 욕설을 내뱉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여길 공격한 몬스터가 뭔데?]

[맞아! 뭐가 우리를 쳤냐고, 그걸 먼저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

운전기사한테 달려간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며 기사를 협박했다. 기사는 쩔쩔매는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말했다.

[사각에서의 공격이라 저도 정확히 본 게 없습니다. 다, 다들 일단 앉으시죠!]

심상찮은 분위기에 한서현이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원부대를 불렀으니, 침착히 대기하십시오. 다시 한번 말합니다, 침착하게 대기…….]

“지원을 불렀다니 가만히 있으라는군.”

그렇게 한서현에게 상황을 설명하는데, 또 한 번 셔틀이 강하게 흔들렸다. 이번에는 몸이 앞으로 고꾸라질 정도로 충격의 정도가 강했다.

[난 여기에서 죽기 싫어! 빌어먹을, 이대로 있다가 정체도 모를 몬스터의 밥이 되라고?]

[그래! 통조림처럼 여기에 앉아 죽으란 소리야?]

그리고 또 한 번 충격. 일어서 있던 사람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거대한 무언가가 셔틀을 잡아 누르고 있었다.

기기긱, 기기긱. 끼이이익.

금속이 찢어지고 갈라지며 끔찍한 소리가 귀를 울렸다.

[빌어먹을!]

[끄아악!]

셔틀이 파괴된 틈으로 바깥의 모래바람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우리의 옆으로 다가온 김재호가 날아드는 무언가를 쳐 냈다.

“젠장.”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의 단검이었다. 충격에 튕겨 내게 날아오고 있었던 모양이다.

“고맙다.”

내 인사에 김재호는 콧등만 찡긋거렸다. 김재호는 사방을 경계하는 얼굴로 내 곁에 붙었다.

충격이 잦아들자 사람들은 일제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겁을 집어먹은 사람들, 이 상황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 혹은 담담한 사람들. 반응은 가지각색이었지만, 모두의 얼굴에 떠오른 생각은 동일했다.

X 됐다.

[더는 못 참겠어.]

앞쪽에 있던 헌터 몇이 등에 메고 있던 무기를 꺼냈다.

[무슨 짓이야! 가만히 있으랬잖아!]

[안내 방송을 하던 놈도 뒈졌는지 알 게 뭐야. 지금 그놈 목소리 들려?]

확실히, 이곳의 상황을 알려 주던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까의 충격으로 어떻게 된 것인지.

게다가 주변에서 이곳으로 몰려드는 것으로 추정되는 몬스터의 소리는 사람의 신경 줄을 갉아 먹었다.

나는 한서현의 손에 손을 올렸다. 김재호에게도 눈짓을 보냈다.

우리가 무얼 하기도 전에 저 앞쪽에서 사달이 날 것 같았다.

[난 여길 나가겠어.]

[미친, 개소리야.]

[바깥에 이 셔틀을 부술 수 있는 놈이 있다면 어쩔 건데. 이 안에서 셔틀과 함께 으스러지고 싶어? 적어도 바깥에 나가 상황을 판단해야지.]

[지원군이 온대잖아. 일단은 가만히 있는 게 나아!]

[그놈의 지원군이 언제 오는데? 우리가 다 뒈지고 나면?]

쿠웅! 이 순간에도 셔틀은 흔들리고 있었다. 셔틀을 손상시킨 몬스터가 계속해서 들이박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쯤 되면 확실히 가만히 있는 건 답이 아니겠지.

일촉즉발의 상황, 헌터 한 명이 나섰다.

[다들 꺼져. 나라도 나갈 테니까.]

그는 이미 부서져 있던 부분에 칼을 휘둘렀다. 그곳으로 남자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여기를 뚫고 나가면 어쩌라고!]

[이렇게 된 거 나도 나가겠어.]

[어떻게든 되겠지.]

헌터들은 누군가 말릴 새도 없이 우르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셔틀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했던 이들은 빠져나가는 헌터들을 보며 무어라 말을 걸려고 했으나, 이내 포기한 듯 자기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어쩌죠?”

“바깥에 나가고 싶어?”

“바깥에서 몬스터들이 계속 여길 두드리고 있잖아요. 이대로 있으면 여기서 죽는 거 아니에요?”

“잠시 기다려 봐.”

쿵, 쿵, 쿵.

바깥에서 무언가 거대한 게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샤샤사, 샷사삭, 모래 위에서 무언가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태까지와는 달리 큰 게 오고 있었다.

셔틀에 남은 사람들은 모두 목소리를 낮췄다.

모두가 숨을 참은 그 순간.

무언가가 셔틀을 문자 그대로 잡아 뜯기 시작했다. 도려내듯 셔틀의 지붕이 날아갈 때, 나는 보았다. 셔틀을 잡아 뜯은 게 무엇인지.

“미친.”

내 눈에 비친 건 거대한 게였다. 그래, 그 옆으로 기는 게. 집게발로 셔틀을 갈기갈기 찢고 있는 놈을 마주한 순간 등 뒤로 소름이 쫙 돋았다.

“재호야, 서현아. 내 옆으로 붙어.”

나는 마력을 끌어 올려 우리 주변으로 방어막을 쳤다. 셔틀 조각을 등 뒤로 집어 던진 게가 집게를 내리쳤다.

그 집게는 셔틀을 마치 종이처럼 구겨 버렸다. 자리에 남아 있던 헌터 중 몇 명은 눈앞에서 곤죽이 됐다. 집게 밑으로 번져 나오는 핏자국을 보며 한서현이 신음을 흘렸다.

“끄으으.”

집게는 내가 만든 마력 보호막을 뚫지 못했다. 단 한 번. 내가 버틴 건 그 한 번뿐인데, 마력 소비가 대단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집게가 빠지는 순간이 포인트다.

“김재호.”

내 신호에 맞춰 김재호가 한서현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땅을 박차고 한서현을 이곳에서 빼냈다.

나는 걱정할 필요 없다. 나 또한 실드를 해제함과 동시에 다리에 마력을 모아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집게는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있었던 곳을 부쉈다. 집게 밑에서 셔틀은 가루가 되도록 부서졌다.

말로 하니 길었지만,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건 겨우 5초 정도에 불과했다. 짧은 순간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 헌터의 수는 우리를 포함해도 채 열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우리를 맞는 건 불과 열 걸음 너머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짙은 모래 폭풍이었다.

우리가 출발하기 전에 확인한 날씨는 분명 맑았다. 기상예보 또한 별다른 게 없었으니, 이건 주변에 몬스터가 있다는 신호다.

이런 모래 폭풍을 불러올 정도로 강력한 몬스터가.

“모래 게는 저 모래 폭풍을 불러온 몬스터를 피해서 여기까지 몰려온 걸지도 모르겠는데.”

그러면 왜 이쪽으로 셔틀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몬스터들이 잔뜩 몰렸는지 설명이 된다.

나는 곧바로 한서현에게 말했다.

“서현아, 뭐든 소환해 두고 있어. 지금 우리는 게이트 안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나쁘지.”

한 테마에 맞춰 나온 몬스터만 해결하면 되는 게이트와 달리, 이곳에는 그 게이트에서 뛰쳐나온 몬스터가 수십, 수백, 많게는 수만 마리까지 있을 테니까.

일단은 생존이 우선이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한서현은 하운드를 불러냈다. 좋은 판단이었다. 이런 곳에서는 운신이 편한 하운드가 스켈레톤보다 훨씬 나으니까.

일단 모래 게가 문제다.

못해도 15m의 덩치를 가진 것 같은 모래 게는 셔틀을 집어삼키고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놈이 움직일 때마다 바닥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나는 인상을 썼다.

저 거대한 모래 게를 우리 셋이 처리하는 건 무리다.

“일단 생존자를 찾아서, 합류하든가…….”

아까 바깥으로 나왔던 헌터들 또한 몬스터와 조우했는지, 멀리에서 마력의 진동이 느껴졌다.

그 진동을 느낀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가만히 서 있던 모래 게 또한 그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생존자들과 합류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 나의 곁으로 남자가 하나 다가왔다. 선글라스처럼 시꺼멓게 코팅이 되어 있는 고글을 쓴 금발의 남자였다.

[거기 괜찮나요?]

[네, 괜찮습니다. 당신은요?]

[아, 저도 무사히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남자가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같이 다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흠, 그 남자를 뻔히 바라보고 있는데 한서현이 물었다.

“같이 다니자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한서현의 얼굴에는 떨떠름한 기색이 가득했다. 하지만 남자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이런 때에는 한 명이라도 같이 다니는 게 낫긴 해.”

그렇게 말한 내가 남자에게 말했다.

[저는 아크 용병대의 대장을 맡고 있는 이승준이라고 합니다. 이 옆에 있는 건 제 용병대 친구들이고요.]

[아, 용병대셨군요! 제 이름은 조셉 라미레스입니다. 이번이 초행인데, 이렇게 돼서 당황스럽네요.]

[저도 초행입니다.]

우리 둘 사이에는 묘한 침묵이 맴돌았다. 라미레스도 곤란하다는 표정이었다.

좋아, 이런 비상 상황에 경험 하나 없는 동료라니 환상적이군.

결정했다. 일단 저쪽 모래 게 쪽으로는 절대로 가지 않는 것으로. 저기는 곧 지옥도가 될 테니 일단은 여기에서 벗어나야겠다.

[일단은 여길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가야겠습니다. 가능하다면 본진으로 돌아가는 게 제일 좋겠죠.]

내 말에 라미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 좋아요. 하지만 아까 보니까 GPS가 작동하지 않더라구요. 아무래도 이 모래 폭풍, 일반적인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 주변에 이 모래 폭풍을 발생시킨 거대한 몬스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몬스터가 만들어 낸 모래 폭풍이면 마력이 섞였을 테니 GPS가 먹히지 않는 것도 당연하죠.]

이곳을 뒤덮은 모래 폭풍을 어떻게 하지 않는 한, GPS는 물론이고 다른 전자 기기도 먹통일 거다.

마력이 섞인 기후는 전자 기기를 마비시키니 말이다.

[일단은 모래 폭풍이 잦아들 때까지 이 상황을 피할 곳을 찾아봐야겠죠.]

라미레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두 사람에게 상황을 전했다.

“저 사람이랑 같이 다닐 생각이에요?”

“그래. 당장은 힘을 합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건 사고였다. 상대방을 완전히 신뢰할 이유는 없지만, 적어도 적이라고 생각할 이유도 없었다. 우리에게 이상한 시비를 걸었던 사람 같은 타입도 아니고 말이다.

우리는 일단 모래 폭풍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을 찾아 걷기로 했다.

“일단 하운드로 주변 지형을 좀 정찰해 봐.”

“알겠어요. 근데 조난당했을 때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거야 주변에 몬스터가 없을 때를 말하는 거겠지. 저기엔 시체가 있으니 곧 몬스터들이 몰려들 거다. 그러니 최대한 멀어지는 게 좋아.”

“으으.”

문제는 이 모래 폭풍 때문에 뭐가 도통 보이는 게 없단 거다. 그때 라미레스가 말을 건넸다.

[그러고 보니 앞으로 계속 함께할 것 같은데 서로 재능을 말해 두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제 착각이 아니라면 저 작은 친구는 소환수를 다룰 수 있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라미레스의 말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리고 전 바람을 다룰 수 있죠. 저 친구는 육체 강화계고요. 당신은요?]

[전 단검을 잘 날립니다. 조준 보정이 제 재능이거든요.]

라미레스는 시범을 보이겠다는 듯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단검을 뽑아 주변을 지나가던 곤충을 단번에 맞혔다. 눈을 가리고 선글라스 때문에 동공이 무슨 색으로 변하는지는 볼 수 없었지만, 감탄이 나올 정도로 깔끔한 저격이긴 했다.

하지만 조준 보정이라…….

나는 남자의 거짓말을 넘기기로 했다. 따지자면 이쪽도 떳떳하진 않으니까.

뭐, 순간의 판단으로 그곳에서 빠져나온 것까지 포함해서 남자는 꽤 괜찮은 헌터였다. 그래도 필요하다면 나는 남자의 목을 순식간에 딸 자신이 있었다.

한서현의 말에 나는 자리에 멈춰 섰다.

“앞에 몬스터가 있는 것 같아요.”

침을 꿀꺽 삼킨 한서현이 말을 이었다.

“큰 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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