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66화 (66/352)

제66화

#23 벨츠머츠의 하루 (4)

4억이라.

블러드하운드는 원래 그렇게까지 비싸게 팔리는 놈이 아니었다. 상태가 좋지 않으면 1억 밑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블러드하운드는 상태가 좋아도 너무 좋았다.

게다가 덩치도 다른 녀석들보다 조금은 더 큰 것 같았다. 그 안에서 알파로 군림하기라도 한 놈일까.

내 시선에 주인의 말이 이어졌다.

“그 정도 가격은 해야죠. 가죽을 보세요. 상처 하나 없이 매끄럽지 않습니까? 거기에 내장도 아직 그대로라고요. 엊그제 사냥한 놈이라, 부패도 진행되지 않았고요.”

그렇게 말한 남자가 하운드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박제를 해도 아주 멋질 겁니다.”

“마수로 박제를 만드는 사람도 있어요?”

한서현의 질문에 남자가 말을 이었다.

“모르셨습니까? 요새 상류층에서는 꽤 유행하는 취미인데.”

한서현은 완전히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이 세상에는 마수의 박제를 모으는 취미를 가진 사람도 있었다.

돈 많은 사람들의 취향은 정말로 알다가도 모르겠다. 속으로 혀를 찬 나는 박제사를 소개해 줄까 하는 남자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박제는 필요 없습니다. 이대로 포장해서 가지고 갈 테니, 포장만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큰맘 먹고 사체를 구매했다.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서현에게 내가 말했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건데.”

“정말 이런 걸 받아도 될지.”

“슬슬 제대로 된 사체가 필요했잖아. 언제까지 소동물에 스켈레톤만 다룰 순 없지.”

그렇게 말한 뒤에야 한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한서현이 다루는 언데드라고 해 봤자, 죽은 소동물로 만든 패밀리어나 스켈레톤 정도였다. 전투 능력이 거의 없었지.

좀 더 제대로 된 훈련을 하기 위해서라도 투자가 필요한 시기였다. 게다가 효율이 나쁜 투자도 아니었다. 벨츠머츠의 구성 인원은 겨우 셋이었다. 한 명 한 명의 전투력 증가가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한서현이 강해질수록 우리가 더 안전해질 수 있다는 뜻이니까.

기지에 도착한 한서현은 마수를 끌어안고 곧바로 연구실에 처박혔다. 좋은 재료에 몸이 단 모양이었다.

나는 김재호를 불렀다.

“선물.”

내 선물을 받은 김재호의 표정은 미묘했다. 왜지, 검이 영 마음에 안 드나?

“나도 쟤처럼 인형 받고 싶은데.”

그제야 나는 김재호의 뚱한 표정을 이해했다.

“저거 인형 아니다.”

“아.”

김재호는 그제야 아쉽다는 기색을 지워 냈다. 내가 준 검을 받은 김재호는 가만히 검을 살펴보았다.

“앞으로는 검술도 가르쳐 줄 거다.”

“으.”

훈련이 더 늘어났다는 걸 알아차린 김재호의 얼굴이 구겨졌다.

“언제까지 맨손으로 싸울 수는 없잖아.”

나는 김재호에게 검술과 더불어 투척술 또한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원거리 기술이 하나도 없는 지금 투척술을 배워 두면 언제고 써먹을 수 있겠지.

나는 단검집에 단검을 넣은 채 김재호의 허리춤에 걸어 주었다. 허리춤에 달린 단검집이 영 불편하다는 듯이 김재호가 얼굴을 구겼지만, 그래도 떼어 내지는 않았다.

“앞으로는 걔네들한테 익숙해지도록 해. 이것도 가지고 가고.”

검은 등 뒤로 메 두었다. 원래 검은 허리춤에 매는 게 좋지만, 덜그럭거리는 소리 때문에 적에게 들킬 수 있으니, 등 뒤에 메는 게 좋았다.

평상시에 옷도 제대로 걸치고 다니지 않아서일까. 김재호는 뚝딱거리는 걸음걸이로 내게서 멀어졌다.

나는 가면을 좀 더 다듬기로 했다.

지금도 나쁘진 않았지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에는 확실히 불편한 게 많았다.

━확실히, 검문검색이라도 하면 바로 들킬 테고.

‘예.’

벨츠머츠로서 활동하려면 나는 내 정체를 완전히 숨겨야 했다. 내가 강이신이라는 사실을 들키면, 사람들에게 시달릴 정호산도 걱정이었지만, 그보다는 벨츠머츠의 존속 여부가 걱정이었다.

지금 벨츠머츠를 이루는 소문 대부분은 과평가된 부분이 없잖아 있다. 그리고 내 목표는 그 부푼 소문을 더더욱 부풀리고 부풀리는 거다.

벨츠머츠의 리더가 겨우 B급 정신계 재능을 가진, 바벨 아카데미의 수치였던 강이신이라는 게 알려지면, 그 소문은 단번에 쪼그라들 거다.

뭐야, 뭐라도 되는 줄 알았는데. 별거 없는 놈들이었잖아? 강이신 말을 듣다니 알 만하네.

당장 그런 말이 나올걸.

━자신에 대한 평가가 박하기 짝이 없는데.

‘박한 게 아니라 사실 그대로를 말하는 겁니다. 누구도 저를 두려워하지는 않을 거라고요. 정호산한테는 두렵겠네요. 자기가 알던 친구가 진짜 빌런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어쨌든 내 정체는 되도록 ‘영원히’ 숨겨 둘 필요가 있었다. 그러려면 이 가면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바꿔야 한다.

사실 가장 좋은 건 이 가면을 제작한 금 박사에게 직접 맡기는 거겠지만, 바쁘다니 어쩔 수 없지.

레이가 있으니 가면에서 필요한 마법 아티팩트의 회로를 떼 오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물론 이 안에 담겨 있는 다른 사람들의 데이터 같은 걸 추출하지는 못할 테지만, 본래의 얼굴을 감추고 다른 걸 투사한다는 핵심적 기능은 그대로 추출해 올 수 있었다.

이 안에 새겨진 건 일종의 환영 마법이었다. 나는 일단 실리콘으로 틀을 잡았다. 형태 변환자의 가죽은 흐물흐물해서 제대로 된 틀을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가면의 틀 위에 형태 변환자의 가죽을 붙였다. 얼굴만 가려 주었던 내 원래의 가면과는 달리 목까지 덮을 수 있는 형태로.

“음, 누군가의 얼굴 가죽을 벗긴 것처럼 생겼는데요.”

실리콘으로 된 가면의 착용감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른 가죽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땀도 잘 빠져나가고, 오래 쓰고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걸로.

뒷면에는 마나의 흐름을 감추는 회로를 새겨 두었다. 마나에 예민한 사람이라도 이게 아티팩트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거다.

며칠 동안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나는 소가죽을 무두질해서 틀을 만드는 게 제일 낫다는 걸 깨달았다. 피부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조금 만들고, 이마에서부터 목 끝까지를 덮는 가면을 만든 거다.

형태 변환자의 경우에는 몇 가지 형태를 기억하는 것이 가능했다. 나는 원래 쓰던 가면을 내버려 두고 그 가면에 저장돼 있던 얼굴을 흉내 내도록 했다.

20대 중반의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한 남자였다. 못생기지도 잘생기지도 않은 무난하고 평범한 얼굴.

확실히 한 번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얼굴을 두 번째로 복사한 것이라 그런지 화질이 좀 떨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30cm 정도 거리를 두고 보기에는 괜찮았다.

게다가 특히 마음에 드는 건 목 부분까지 완벽하게 커버가 된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형태 변환자 자체가 본체를 따라 하는 데에 특화가 된 만큼, 가면을 뒤집어쓰고 몇 번 움직이자 제법 움직임에 맞춰 움직이는 신기를 보였다.

하지만 기존 가면에 비해 부족한 것도 있었다.

일단 상황에 따라 얼굴을 척척 바꿀 수가 없다는 것. 이 가면은 한 번 저장해 둔 얼굴을 계속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전의 가면이 원할 때마다 원하는 얼굴을 꺼내 썼던 것에 비하면 아쉬운 성능이다.

그리고 두 번째. 내구도가 별로였다. 확실히 가죽만 이어서 만들어서 그런지, 접어서 휴대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내구도는 그보다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너무 꽉 접으면 주름도 갔고.

결론은 뭐냐.

기존 가면도 들고 다니긴 해야 할 것 같다는 거다. 뭔가 일을 벌일 때에는 첫 번째 가면을 쓰고 이건 평상시에 활동할 때 쓰면 좋을 것 같았다.

가면을 완성한 나는 한서현의 방문을 두드렸다.

며칠 동안 한서현은 내가 만들어 준 연구실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이쪽은 어떻게 되고 있나 궁금했다.

나는 스켈레톤을 만든 것처럼 마수도 뚝딱 언데드로 만들면 그만일 줄 알았지만, 한서현은 그러지 않았다.

며칠 전 이야기를 했을 때 한서현은 마수를 자신의 마력으로 개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근육 사이사이 흑마력을 넣어 근육과 살갗을 강화하고 더 단단하게 만든다던가.

어쨌거나 그냥 되살린 것과 달리, 조금 더 튼튼한 버전의 언데드를 만들 수 있는 거다.

방문을 연 한서현의 얼굴은 핼쑥했다.

“밥은 먹어 가면서 하라니까.”

“나름대로 챙겨 먹는다고 챙겨 먹는 중인데요. 그냥 마력을 쓰는 게 힘들어서 그래요.”

“어느 정도 됐는데?”

내 질문에 한서현은 쓱 자리를 비켜 안을 보여 주었다. 블러드하운드의 시체가 반쯤 공중에 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흑마력에 휩싸인 사체는 하체 부분 일부를 제외하고는 검게 물들어 있었다. 붉은색을 띠었던 처음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양새였다.

“거의 다 됐네?”

“오늘 밤 정도면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힘내라.”

나는 그다음으로 김재호를 찾았다. 김재호의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가득했다.

“단검술 많이 어렵냐?”

내 말에 김재호는 시큰둥한 얼굴로 단검을 던졌다. 김재호가 던진 단검은 정확하게 목표물을 꿰뚫었다.

“오.”

역시 재능이 깡패인 놈이라 금세 깨달은 모양이다.

“좋아, 열심히 하고.”

나는 다시 문을 닫았다.

일단 나는…….

좀 잘까.

나도 아티팩트를 만드느라 며칠 밤을 지새운 참이었다. 피곤이 눈을 짓눌렀다.

* * *

다음 날, 한서현은 마수를 완성했다.

한서현의 손을 거친 블러드하운드의 모습은 신기했다. 꼭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언데드가 아니라 새로운 몬스터 같달까.

입가와 발끝에서 연기처럼 흩어지는 흑마력이 제법 멋졌다.

“어때요?”

“끝내주는데. 한번 움직여 볼래?”

“네.”

나는 블러드하운드가 움직이는 모습을 살폈다.

블러드하운드는 살아 있을 때도 상대하기 쉬운 마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모습은, 적어도 그보다 몇 배는 더 빨랐다.

“얘도 파괴되면 다시 회복되려나?”

“실험해 봤는데, 일정 이상은 마력을 사용하면 수복되더라고요. 하지만 몸의 일부를 잃는 정도는 안 될 것 같아요.”

“얘 이름은? 설마 개돌이는 아니지?”

한서현은 내 말에 질색하는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름 농담한 건데. 너무 정색하니 멋쩍어졌다.

한서현이 말했다.

“그냥 하운드라고 할 거예요. 사냥개라는 뜻이기도 하고.”

“그래, 너도 영어 사대주의에 걸려들었구나.”

“이잇!”

어쨌거나 하운드가 새로 생긴 이상, 새로운 훈련법을 배울 때가 됐다.

“훈련장으로 와.”

“예?”

“하운드와 같이 싸우는 법을 익혀야 할 거 아니야. 스켈레톤이랑도 연계하는 방법을 배워야지.”

무언가 하나가 늘었을 때마다, 자신의 전력을 다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재호도 오라고 해라. 둘이 같이 합동 훈련하면 좋을 것 같으니까.”

내 말에 한서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싫어도 어쩔 수 없다.

“빨리 그 무거운 궁둥짝 안 옮기냐!”

━그 대사에 맛 들렸구나.

흐흐, 나 혼자만 고생할 수는 없지.

* * *

김재호가 낙엽을 아무런 소리도 없이 밟을 수 있게 된 날, 그리고 한서현이 하운드와의 태그 전투에 제법 익숙해진 날.

나는 두 사람을 모아 놓고 말했다.

“이제 훈련은 질렸지? 실전 뛰러 가자.”

“실전이요?”

“게이트 공략이라도 한번 해 봐야지.”

내 말에 한서현이 앉은 자리에서 펄쩍 뛰며 말했다.

“게이트 공략이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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