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23 벨츠머츠의 하루 (2)
우리는 당분간 기지에 틀어박히기로 했다.
돈도 벌었겠다, 그동안 소홀했던 훈련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한서현이나 김재호의 실력을 늘리는 것도 중요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내 전력을 갈고닦는 거였다.
성장이 막혀 있던 전과는 달리 이제는 훈련할 부분이 많이 남았으니까. 오랜만에 불이 활활 붙는다고 할까.
특히 내게는 목표 하나가 생겼다.
“3획을 쓰게 되는 거죠.”
━쉽지는 않을 텐데.
레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쉽지는 않을 것 같아도, 전에 말했던 것처럼 잘 맞는 속성끼리는 대충 될 것 같아서 말이죠.”
내가 그동안 발견한 찰떡 속성은 몇 가지나 된다. 불과 바람이라든가, 물과 벼락이라든가. 어둠과 중력도 은근히 잘 어울리는 속성이고, 중력과 염동력도 비슷한 계통이라 그런지 잘 섞이더라.
가장 많은 조합식을 갖는 속성은 물이었다.
물은 여러 가지 속성과 다 얼추 비빌 수 있었다. 거기에 파괴력을 늘릴 수 있는 조합도 무궁무진했다.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게 물과 벼락의 조합이라면, 물과 냉기의 조합 또한 같은 마력을 투자해서 곱절은 더 강한 결과물을 낼 수 있달까.
애초에 물과 냉기의 조합은 얼음 속성과 결과물이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두 속성을 사용해서 ‘얼음창’을 만들면, 얼음 속성 하나만을 사용할 때보다 파괴력이 훨씬 강했다. 마력의 소모도 오히려 적어졌고.
빙 속성은 그냥 2의 소모값으로 2의 출력값을 낸다면, 물과 냉기는 각각 1의 출력값을 더해 3의 출력을 내는 것 같달까.
나는 이와 비슷한 조합식을 몇 개나 발견했다.
이런 식의 조합식을 발견하다 보면 훨씬 마력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될 거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내 몸에 있는 마나 회로를 동시에 세 개 쓸 수 있게 하는 거겠지만.
나는 마력 보조 팔찌를 활성화시켰다. 출력은 10퍼센트 정도. 그것만으로 내가 불러온 불덩어리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하지만 모든 건 내 완벽한 통제 아래에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나는 눈을 감고 정신력을 집중했다. 내 몸에 깔린 마나 회로가 똑똑히 보였다.
레이의 보조도 있었지만, 그동안의 노력으로 나는 내 몸에 있는 마나 회로 중에 일부를 시각화하는 데에 성공했다.
중국에 갔을 때도 논 게 아니다. 나는 밤마다 내 몸에 있는 마나 회로를 분석하고 기억했다.
내 몸에 깔린 마나 회로의 수는 말도 안 되게 많았지만, 매일 조금씩 자극하고 분석한 덕분에 대충 그 마나 회로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일종의 계통을 나눌 수 있게 됐달까.
덕분에 내 눈에는 어떤 마나 회로를 건드려야 할지가 명확히 보였다.
지금 활성화된 불 관련 재능의 옆 라인. 마치 나무의 가지처럼 뻗어 나간 부위의 끝에 내가 원하는 바람의 마나 회로가 있다.
이 부분에 내 몸의 마나를 불어 넣으면 된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렇게 나의 마나를 조심스럽게 마나 회로에 불어 넣었지만, 마나 회로는 내 마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갈 곳을 잃은 마나는 그대로 내 몸속을 진탕 헤집었다.
“커억.”
속이 뭉개지는 고통에 제대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울컥하고 피가 식도를 타고 올라왔다. 내상이었다. 피를 게워 낸 나는 곧바로 마나를 끌어 올렸다. 진탕된 속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크윽.”
불과 바람. 상성이 잘 맞는 조합이었음에도 실패했다.
손등으로 피를 닦아 낸 나는 제자리에 앉아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왜 안 되는 거지?”
마나를 마나 회로로 이끄는 것도, 적당량을 주입하는 것도 모두 성공했다. 하지만 마나 회로가 활성화되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성공의 길이 눈에 뻔히 보이니 더 간절해졌다.
━조급하게 해서는 안 된다니까!
레이의 말에 나는 숨을 후 내뱉었다. 저 말도 맞는 소리다. 조급하게 마나를 움직였다가는 지금처럼 내상을 입을 테니까.
그래도 이번에는 가능성이 있었다.
아예 마나 회로 자체를 건드릴 수도 없었던 전과 달리 마나 회로에 실제로 마나를 주입하는 데까지 성공했으니까. 그걸 마나 회로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튕겨서 문제지.
덕분에 내상을 잔뜩 입긴 했지만 그래도 하나의 가능성을 봤다.
그래도 할 때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성공하지 않을까 싶었다.
━정말 무식한 방법이야. 될 때까지 그렇게 부딪쳐 볼 생각이냐?
‘몸이야 회복하면 그만이니까요.’
내 말에 레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다.
‘그래도 조금씩 진전이 있지 않습니까?’
━그게 더 어이가 없는 부분이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복하는 데에는 어차피 시간이 필요했다. 이 시간도 아껴야지.
“재호야, 여기로 와 봐라.”
내 부름에 김재호가 설렁설렁 걸어왔다.
김재호는 엄청난 신체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근육은 탄력적이었고, 관절은 마치 고양이의 것처럼 유연했다. 기본적인 감각도 일반적인 인간보다는 훨씬 우월할 거다.
그래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음에도 그저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파괴적이다.
일전에 실험실에 있었던 연구원들의 머리를 터트려 죽인 것이 그 예다.
하지만 김재호의 진정한 능력은 바로 저 신체 능력을 이용한 잠입, 은신이다. 고양이처럼 유연한 관절은 김재호를 그 누구보다 완벽한 암살자로 만들었다. 지금은 무식하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낙엽이 쌓인 공터로 김재호를 데리고 가 말했다.
“여기에서 소리를 내지 않고 움직이는 거야.”
내 말에 김재호가 눈으로 쌍욕을 내뱉었다.
“음, 너라면 할 수 있어.”
파삭, 파삭.
김재호의 발밑에 깔린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김재호는 힘을 주어 바닥에 깔린 낙엽을 짓밟았다.
“지금 나한테 시위라도 하는 거냐?”
김재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응?”
“어떻게 움직이는데.”
그야 나도 모르지. 과거 김재호는 자연스럽게 해냈던 일이니까.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일단 될 때까지 해 볼까?”
눈빛이 더 더러워졌다.
“좋아, 방법을 찾아보자고.”
김재호는 재미가 없는 일을 싫어한다. 훈련에 따르려는 의지는 있지만, 그 의지가 한없이 가볍다고나 할까. 그런 김재호를 진심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나도 김재호에게 어울려 줘야 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놀이를 하는 거야.”
“놀이라고?”
“그래. 숨바꼭질 같은 거지.”
김재호와 아이들이 놀 때를 떠올렸다. 아이들이 사라진 뒤로 김재호가 우울해하던 것도, 그 아이들과 놀던 게 그리워서겠지.
그 비슷한 걸 해 줄 생각이다.
“너는 내 주변을 뛰어다녀. 나는 소리로만 너를 쫓을게. 내가 네 쪽으로 얼음덩어리를 날리는 것으로 하자. 너는 나에게 들키지 않고 내 등을 때리는 거야.”
아직 내상을 입은 상태지만 손톱만 한 얼음덩어리를 뽑아내는 건 문제 없다.
그렇게 말한 나는 눈을 가렸다. 이렇게 눈을 가려도 사실 김재호의 동선을 쫓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한테 물어보면 저 녀석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뻔히 알 수 있잖아. 이거 좀 치사하지 않냐?
레이는 내게 그렇게 속삭였지만, 나는 떳떳했다.
‘일단 저도 웬만하면 소리로 재호를 쫓을 겁니다. 숨겨 둔 수가 있는 것뿐이죠.’
승부의 세계에 비장의 수를 숨겨 두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말은 이렇게 했지만, 레이에게 부탁해서 김재호를 잡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김재호가 반칙을 저지르지 않는 정도만 체크할 생각이다.
김재호가 움직일 때마다 바삭거리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그쪽으로 얼음덩어리를 날렸다.
퍽.
얼음덩어리를 얻어맞은 김재호는 분한 듯 조금 더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지만, 소용은 없었다.
파삭.
퍽.
파삭. 파삭.
퍽퍽.
파삭.
퍽.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김재호가 으르렁거렸다. 지금까지는 나의 완벽한 승리였다.
하지만 확실히, 조금씩이나마 김재호의 발끝에서 나는 소리는 작아지고 있었다. 나는 한참이나 그 훈련을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 귀에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낙엽을 밟는 소리가 작아졌을 때.
“그만.”
내 등 뒤에 서 있던 김재호가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다음부터는 내일 이어서 하자.”
내상 치료 끝났다.
미안하지만 내 훈련이 먼저다.
* * *
김재호가 그렇게 몸을 움직이는 훈련에 매진 중이라면, 한서현은 스켈레톤을 움직이는 훈련을 계속하는 중이었다.
스켈레톤의 움직임은 제법 괜찮아졌다.
“최근에는 재호 형하고도 몇 번 붙어 봤어요.”
“할 만하디?”
“네, 매번 엉망으로 부서지긴 하지만요.”
그래도 덕분에 대인전은 제법 익은 것 같다고 말했다. 거기에 더해서 한서현은 최근 이런저런 흑마법도 시도 중이었다.
“저는 흑마력을 다룰 수 있잖아요. 제 스켈레톤은 소환이라는 형태로 재구성한 거고요.”
확실히, 지금의 스켈레톤을 이루고 있는 건…… 한조희였지만, 실제 한조희와 눈앞에 있는 스켈레톤은 그 체격부터 달랐다.
“제 마력과 섞여 재구성된 거죠. 파괴되어도 재생되는 것도 제 마력으로 재구성되었기 때문이고요.”
한서현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겠지.
“그래서 뭘 알아냈는데?”
내 질문에 한서현은 마나를 끌어 올렸다. 한서현의 동공이 검게 불타올랐다. 그와 동시에 스켈레톤의 모습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평범했던 해골의 팔뚝에 날카로운 날이 돋아났다. 마치 사마귀의 그것처럼 말이다.
“하아, 하아……. 마나를 사용해서 이런 식으로 스켈레톤을 변형하는 것도 가능하더라구요. 추가 재료가 없으면 무척이나 힘들지만.”
잠깐 사이 힘을 꽤나 쓴 건지 한서현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가득했다.
“재료도 없이 순수하게 마나로 저렇게 만든 거야?”
“네.”
이러나저러나 네크로맨서는 시체가 있어야만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재능이었다. 저렇게 마력으로 스켈레톤의 구성을 바꿨다는 건 분명히 대단하다.
“흠, 확실히. 전투에서 써먹을 수 있겠다.”
“저도 언제까지 후방에만 빠져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요.”
여태까지 계속 정보를 모으는 일만 맡긴 게 한서현의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다.
하긴, 한참 자라나는 청소년을 무시하다니. 나도 참 무심했군.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는 일에 끌어들이는 것도 좀.
‘자꾸 은근슬쩍 그렇게 제 양심이라도 된 듯 속삭이는 거 그만두면 안 됩니까?’
━난 네놈의 양심이 맞아. 이렇게 네가 나쁜 생각을 할 때마다 답을 알려 주잖냐.
레이의 말에 나는 헛기침을 큼큼 내뱉었다.
어쨌거나 이렇게까지 노력해 왔는데, 아예 배제하는 것도 그렇다. 게다가 한서현이 나를 따르게 된 건 결국은 형의 복수를 위한 것.
저렇게 어리다고 해도, 분명한 목표가 있는 이상 어린애 취급은 할 수 없다.
“잘했어.”
나는 한서현의 머리를 헤집어 주었다.
한서현은 내 칭찬이 마음에 든다는 듯 답지 않게 활짝 웃었다.
조만간 한서현을 위해서라도 암시장에 한번 들러야겠다.
네크로맨서에게는 제대로 된 재료가 필요하니 말이다.
‘음, 내가 지금 돈이 얼마나 있더라.’
벌면 버는 대로 나가는 게 돈이라더니. 겨우 입에 풀칠하나 싶었더니, 돈이 또 한 번 왕창 깨지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