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화
#21 적사회의 괴물 (6)
쑤어하오주는 미친 듯이 파파의 흔적을 찾았다. 하지만 파파의 흔적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누구지, 누구야.
누가 우리 파파를 데리고 간 거지?
비이성적인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무언가를 부수고, 짓이기고, 파괴하는 데에는 그 누구보다 재능이 있는 쑤어하오주였지만 누군가를 찾는 데에는 젬병이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빨리 찾아야 하는데. 어쩌면 벌써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는데. 그녀의 마음은 걱정과 긴장으로 엉망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때, 까마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 까마귀를 무시하려 했지만, 까마귀는 마치 그녀에게 따라오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녀의 앞에서 날갯짓했다.
쑤어하오주는 홀린 듯이 까마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까마귀를 따라 걸음을 옮긴 지 얼마나 되었을까.
사람의 인적이 뜸해진 폐공장 사이. 자그마한 폐창고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을 보자마자 심장이 미친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깨달았을지도 모르겠다.
저 안에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맨 사람이 있을 거라고.
그녀는 창고에 손가락을 얹었다. 그것만으로 창고의 벽은 순식간에 소멸했다.
“파파!”
그렇게 외치며 안으로 걸음을 옮긴 그녀의 코끝에 이곳에서 맡아져서는 안 되는 냄새가 스쳤다.
피.
지독한 피 냄새가 창고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창고, 그 안에 선 사람을 본 순간 쑤어하오주는 걸음을 멈췄다.
“이제야 오셨네요.”
요 며칠 그녀를 참으로 즐겁게 해 줬던 남자였다. 하지만 전처럼 그를 반갑게 맞을 수는 없었다. 그 남자의 앞에 묶여 있는 남자와 그 남자의 손에 들린 단검을 본 순간 쑤어하오주의 머리는 엉망이 돼 버렸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눈으로 보는 장면을 머릿속에서 거부했다.
분명히 어떤 장면이 눈으로 들어오고는 있는데, 이게 무슨 장면이 도통 해석이 되지 않았다.
그사이 그 여우 같은 남자는 잘도 말을 내뱉었다.
“미안하게 됐어요, 진심으로 이런 상황은 원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손은 붉은 피로 젖어 있었다. 뚝뚝 떨어지는 붉은색 피를 본 쑤어하오주가 멍한 얼굴로 물었다.
“왜…….”
이해할 수 없었다.
쑤어하오주는 남자가 좋았다. 어쩌면 저 남자도 자신을 좋아할 거라고, 아니,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나를 만나러 오고, 그러니 나와 함께 놀아 준 거잖아. 같이 웃고, 떠들며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
그와 보냈던 그 모든 시간은 달콤한 거짓말이었다는 듯이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끔찍했다.
“파파.”
쑤어하오주의 말에도 파파는 아무런 대답도 없다. 파파가 앉은 의자 아래로 붉은 피 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파파, 일어나 봐!”
필사적으로 이 상황을 부정하는 쑤어하오주의 머리 위로 남자의 말이 잔인하게 떨어져 내렸다.
“알고 있었잖아요. 이 사람이 당신에게 얼마나 나쁜지. 없어지는 게 나은 사람이었어요, 이 사람은.”
쑤어하오주는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무어라 입을 열면 파파가 죽은, 파파가 사라진 것이 현실이 될 것만 같아서.
그래서 아무런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이건 끔찍한 악몽이라고, 눈을 감았다가 뜨면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눈을 몇 번이나 감았다가 떠도, 몇 번이나 숨을 내쉬었다가 들이쉬어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죽인 거야?”
마침내 쑤어하오주는 상황을 인정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X랄맞게도, 여전히 그 남자는 쑤어하오주를 퍽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파파가 나한테 나빠서? 그래서 죽였다고?”
“그래요.”
그가 파파를 죽인 이유가, 마치 그녀를 위해서라는 듯 말하는 건 참아 주기가 힘들었다.
쑤어하오주는 주먹을 쥐었다. 이 주먹을 내뻗으면, 그러면 저 남자는 순식간에 지워 버릴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파파 또한 지워질 거다. 그 사실을 알듯이 남자는 파파의 곁에 꼭 붙어 있었다.
“파파한테서 떨어져.”
쑤어하오주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서 한 발자국만 옆으로 가도 저를 날려 버릴 생각이잖아요.”
“그래.”
파파를 확인하고, 저 남자를 날려 버릴 생각이다.
남자가 말을 이었다.
“당신한테 좋지 않은 사람이었는데도, 당신을 이용하기만 하고, 당신의 인생을 좀먹던 사람인데도.”
“그래도 내 파파야. 내 파파라고.”
쑤어하오주의 단답에 남자는 웃었다. 시원하게. 그 웃음이 견딜 수 없이 미웠다.
“그러니까 비켜.”
쑤어하오주의 말에 남자가 뜬금없이 말했다.
“제 이름 알려 주지 않았죠?”
며칠 전 저 남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냥 알려 주는 것도 재미없으니 몇 번 더 만난 다음에 알려 주도록 할까요?’
그때에는 저 말을 듣고 마음이 설레기만 했다. 언젠가 꼭 남자의 이름을 들어 주겠다고도 생각했던 거 같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저 남자의 이름 같은 건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네 이름 같은 거 하나도 안 궁금해.”
“파파를 죽인 원수의 이름이잖아요. 잘 알아 둬야죠.”
그 말에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쑤어하오주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른 채 남자를 노려보았다.
“벨츠머츠의 션(神)이라고 해요.”
션. 신(神)이라는 말도 안 되는 건방진 이름을 가진 남자.
늘 그녀에게서 기억을 앗아갔던 이와 똑같은 이름.
왜 하필 네놈의 이름은 신(神)인 거지?
“꼭 기억해요.”
“기억하지 않을 거야. 여기서 너 따위 죽여 버리면, 여기에서 죽여 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때 어깨를 으쓱인 남자가 자신의 머플러를 끌어 올렸다. 머플러로 입을 틀어막은 남자를 보며 쑤어하오주는 입을 벌렸다. 불길한 예감이 그녀의 머리를 스쳤다.
“뭐…….”
무어라고 말하기 전에 시야가 흐려졌다.
독.
무릎이 절로 꺾였다.
가물가물해지는 이성으로 쑤어하오주는 생각했다. 여기에서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다고. 쑤어하오주는 필사적으로 마력을 끌어 올렸다.
“주, 죽여…….”
하지만 그녀의 몸은 그녀의 의지를 배반했다.
“파……파.”
정신을 잃은 그녀의 눈동자에서 흐르지 못한 눈물이 뒤늦게 볼을 타고 흘렀다.
* * *
쑤어하오주의 몸이 허물어지는 걸 확인한 나는 손을 휘저어 독을 흩어 냈다. 독이 흩어지는 걸 확인한 나는 머플러를 내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머플러 사이에 숨겨 둔 마스크를 내렸다.
수면 독에 당한 쑤어하오주는 깊은 잠에 빠졌다. 적어도 십 분은 깨어나지 못할 거다. 나는 그녀의 작은 주먹에 미리 준비해 놨던 걸 끼워 넣었다. 이걸 읽을지, 버릴지, 무시할지, 따를지는 모두 그녀의 선택이다.
쑤어하오주를 확인한 나는 천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걸로 적사회는 더는 당신들의 위협이 되지 않을 겁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천상에서 사람이 뚝 떨어져 내렸다. 치앤츠리앤이었다.
“내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
“모를 수가 없겠더군요.”
존재감이 확실해서 모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언제든 내 목을 따고 싶다는 듯이 살기를 보내기도 했고.
그녀를 해치지 말라고 한서현과 김재호에게 미리 언질을 두지 않았다면, 쑤어하오주가 오기도 전 그녀와 대판 싸웠을지도 모르겠다.
쑤어하오주를 바라본 치앤츠리앤이 말했다.
“저런 것이 ‘적사회의 괴물’이었단 말인가.”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진짜 괴물은 저 남자죠.”
내 말에 치앤츠리앤은 침묵했다. 그녀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쑤어하오주가 저지른 일들을 아는 사람들은 쉽게 인정할 수 없겠지. 그 모든 일을 저지른 게 이렇게 작은 아이일 것이라고는.
하지만 한 번이라도 그녀가 저지른 일을 본 사람은, 쑤어하오주가 어떤 사람이든지 두려움을 갖게 돼 버린다.
치앤츠리앤도 다르지 않았다.
“죽여야 한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살려 둘 만큼 만만한 적이 아닐 텐데.”
“압니다. 그래도 그쪽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이 아이가 노리는 건 그쪽이 아니라 벨츠머츠의 션일 테니까.”
내 말에 치앤츠리앤의 눈이 가늘어졌다.
“왜? 왜 저 여자애를 살려 두려는 거지?”
“뭐, 어쭙잖은 동정이라고 해 두죠.”
쑤어하오주에게 갖는 내 복잡한 심경을 치앤츠리앤에게 모두 털어놓을 생각은 없다.
지금은 동정, 연민. 뭐, 대충 그런 감정으로 설명해 두면 될 것이다. 실제로 그와 크게 다른 감정도 아니다.
그녀가 제대로 살았으면 한다. 이런 방법으로라도.
“은인의 말이니 따르지 않을 수가 없군.”
그렇게 말한 치앤츠리앤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은월회가 대단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 극진한 인사에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고 말았다.
“보스가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아니요, 바쁘실 텐데 굳이 얼굴을 볼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다음에 상황이 나아졌을 때 초대해 주시길 부탁드리죠.”
우리를 초대하고도 중간에 내뺐던 거, 안 잊었다고.
내 말에 치앤츠리앤은 한 방 먹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속이 다 시원했다.
* * *
“정말 저대로 두고 갈 거예요?”
“그래.”
“보스를 노리고 올 거라면서요!”
한서현의 눈을 보면서 나는 멋쩍게 웃었다. 내 웃음에 속이 터진다는 듯 가슴을 두드린 한서현이 잔뜩 화를 내며 말을 이었다.
“까마귀까지 불러서 데리고 오라기에, 나는 후환을 없애 버리려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뭐예요, 이거. ‘내가 범인이다!’ 그렇게 다 알려 주고, 그리고 살려 두면. 나라도 복수하겠다고 미쳐서 보스 찾아오겠네.”
한서현의 불만에 나는 쓰게 웃었다. 한서현은 이런 불만을 가질 법했다. 그래, 어리석어 보이겠지. 사실 어리석은 일이 맞았다.
하지만 내가 이런 짓을 벌인 데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범인을 찾지 못하면, 하오주는 스스로를 탓할 거야.”
파파를 구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똑같이 자기 파괴의 길로 접어들었겠지.
하지만 범인을 알면?
적어도 복수를 위해서라도 힘을 내서 살지 않을까.
어떻게든 살고 살아서, 나를 죽이고자 할 테니까.
“그러니까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요.”
“간단해. 살았으면 하니까.”
내 말에 한서현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으아아, 왜 이래야만 했냐고요. 그럴 거면 그냥 잘해 주면 안 되는 거예요? 보스가 그 남자를 죽인 걸 비밀로 하고 잘해 줬으면…….”
“그랬다면 내가 또 다른 파파가 될 뿐이겠지.”
쑤어하오주에게는 커다란 성장통이 필요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게 아니라 혼자 살아남는 방법을 깨달아야 했다.
“정말 이런 방법이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음.”
나는 쑤어하오주가 누워 있을 창고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기억해야 하니, 대가로 더는 기억을 걸 수 없을 테고. 어린 몸으로 나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니 성장을 대가로 하는 것도 그만둬야겠지. 그 정도면 돼.”
그렇게 세상에 부딪치고 부딪치다 보면 이 세상이라는 놈을 알게 되겠지.
“그리고 나도 순순히 당해 줄 생각은 없거든.”
이래 봬도 이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잔뜩 애를 쓰고 있는 입장이다.
절대로 살아남아 줄 거다.
“아이고오.”
내 말에 한서현은 또 한 번 머리를 쥐어뜯었다.
“애초에 각을 안 주면 안 되는 거냐고요!”
앞으로 며칠은 저 말에 시달려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