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화
#21 적사회의 괴물 (5)
한서현이 찾아 준 공간은 완벽했다. 잔뜩 녹이 슬고 먼지가 달라붙은 건축 자재가 이리저리 널린 폐창고라니.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을씨년스러웠다. 납치된 다음에 이런 곳에서 눈을 뜨면 평범한 사람이라면 오줌을 지려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녹이 슨 천장 사이로 흘러들어 오는 빛은 마치 취조실의 조명처럼 핀포인트로 내 앞을 비추고 있었다.
그 폐창고 한가운데에 밧줄로 꽁꽁 묶인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나는 천천히 의자를 들고 걸어가 남자 앞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다.
“흐음.”
나는 눈앞의 남자, 쑤어모시앤을 바라보았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그는 그저 볼품없는 50대 중반의 남자일 뿐이었다. 잔뜩 마른 몸에, 반쯤 새하얗게 센 머리를 한, 볼품없는 남자.
잔뜩 주름이 지고 마디마디가 굵은 손가락은 그가 그동안 해 온 고생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아무리 값비싼 것들을 둘러도 과거의 그가 겪었던 고행을 모두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남자는 그 모든 시절을 부정하며, 자신의 꿈을 이뤄 줄 성을 세우려 했다. 쑤어하오주라는 막강한 무기를 이용해서.
그가 간과한 게 있다.
그가 휘두르고 있는 무기는, 진짜 무기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거다.
나는 정신을 잃고 있는 그의 뺨을 때렸다. 몇 번인가 때리고 나니, 드디어 쑤어모시앤이 눈을 떴다.
눈을 뜬 쑤어모시앤의 멍한 시선이 나를 좇아 움직였다.
짜악!
이미 든 손이니 마저 마무리하는 느낌으로 나는 놈의 뺨을 때렸다. 정신을 차리라는 의미를 가득 담아서.
불시에 뺨을 얻어맞은 쑤어모시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허나, 그것도 잠시 놈은 나를 향해 분노를 터트렸다.
“네놈!”
하지만 그 당당했던 외침도 잠시.
쑤어모시앤은 떨리는 눈동자로 주변을 살폈다. 정신을 잃은 다음 눈을 뜨니, 아예 모르는 곳이다? 게다가 자신의 몸은 꽁꽁 묶여 있는 데다가 얻어맞은 뺨은 욱신거리고.
아무리 정신력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넋을 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쑤어모시앤은 애초에 정신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패닉.
“도,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겨우 저런 말이나 중얼거리는 걸 보니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뇌가 아예 파업해 버린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도와줄밖에.
“뭐가 어떻게 된 일이긴요. 납치당하셨습니다, 쑤어모시앤 씨.”
내 친절한 상황 설명에도 쑤어모시앤은 고마워하는 기색 하나 없이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나를 납치했다?”
“그럼요.”
“도대체 왜? 아니, 그 전에. 당신은 누구지? 은월회가 보냈나?”
오, 그래도 짧은 사이 제법 머리를 굴렸다.
“은월회라, 그 친구들이랑 제가 계약을 하나 맺기는 했죠. 그래도 여기까지 댁을 모신 건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무슨 이유 때문이지?”
“쑤어하오주.”
내가 내뱉은 이름에 쑤어모시앤의 얼굴이 굳었다. 천천히 내 얼굴을 살핀 그가 입을 열었다.
“네놈, 그러고 보니 낯이 익어. 최근 하오주의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던 놈이 너군.”
순식간에 기세가 바뀌었다. 그래도 몇 년 동안 암흑가 조직을 운영한 경험이 어디로 가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래, 차라리 이게 낫다.
나 또한 무력한 촌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쑤어하오주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나를 죽이려 했던 개자식이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니.
“여기에 날 끌고 와서 어쩔 셈이냐.”
물론, 긴장과 두려움으로 몸이 굳어지는 것까지는 어떻게 하진 못했지만 말이다. 쑤어하오주라는 희대의 천재를 운 좋게 거둬서 그렇지 쑤어모시앤은 각성자도, 능력자도 아니다.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겁을 집어먹는 것도 당연하다는 거다.
그래서 더 괘씸했다.
침묵하는 내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쑤어모시앤이 대뜸 외쳤다.
“날 여기에서 해치우고 그 애를 네가 갖기라도 하고 싶은 거냐?”
“그 애가 무슨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네.”
“그렇지, 걔는 최고의 무기니까. 너 또한 그 애를 이용할 생각으로 접근한 게 아니냐?”
그렇게 말하는 쑤어모시앤의 얼굴에는 조금의 의심도 없다. 정말로 내가 쑤어하오주에게 접근한 게 그녀를 이용하기 위해서라고 믿는 듯했다.
음, 나 또한 깨끗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접근한 건 아니라지만 저런 놈하고 같이 엮이는 건 좀.
“아닌데.”
그래서 나답지 않게 단답으로 질러 버리고 말았다.
“난 누구처럼 약해 빠지지 않아서 말이야.”
“뭐?”
“물론 하오주가 대~단한 힘을 가졌다는 걸 알지만 말이야. 그 힘은 그녀의 인생 전부를 갈아서 만들어진 거잖냐. 남의 인생을 겨우 그 힘을 얻자고 포기하는 것도 좀.”
단순 물리력으로 그런 파괴력을 보인다는 게 경악스러워서 그렇지, 사실 따지고 보면 쑤어하오주만큼이나 강한, 강해질 헌터들은 몇 명이나 있었다.
당장 미국에서 최고로 꼽히는 헌터 테이카 쿠퍼는 ‘중력’이라는 재능으로 쑤어하오주와 같은 짓을 할 수 있고, 뇌속성 능력자인 유선제는 더 넓은 범위에 있는 사람을 한 번에 ‘소거’시킬 수 있을 거다.
쑤어하오주는 무척이나 강하지만, 이 세계에서 제일 강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렇게 걔의 인생을 몽땅 가져다 바쳐야 하는 이유가 세계 평화 같은 이유도 아니고 고작해야 땅따먹기잖아.”
내 말에 쑤어모시앤의 얼굴이 벌게졌다. 사람은 너무 정곡을 찔리면 저렇게 달아오르기 마련이다. 그러고서는 자신의 속을 찌른 놈을 눈앞에서 치워 버리고 싶어 하지.
“닥쳐! 네놈이 뭘 안다고!”
거봐라.
너무 뻔한 반응에 한숨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내 말은 진심이다.
나는 세계의 멸망을 봤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도망칠 수 없이 닥쳐드는 ‘마지막’이라는 놈을 봤다.
그 정도는 되어야 누군가의 인생을 전부 걸 이유가 되지 않나. 기껏해야 내가 누리고 있는 삶이 조금 더 윤택해졌으면 해서, 세계가 멸망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을 권력이라는 놈을 더 쥐어 보겠다고, 누군가의 인생을 팔아먹는 건 좀…….
“너무 허접한 이유잖아, 그거.”
내 말에 쑤어모시앤의 얼굴은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다.
“네놈이 뭘 아나. 너같이, 너같이 다 누리고 있는 놈이!”
“그래, 나도 다 살 만해서 이렇게 말하는 걸지도 모르지. 등 따시고 배불러서 말이야. 하지만 당신도 충분히 등 따시고 배부르게 살 수 있었잖아.”
처음부터 쑤어모시앤이 쑤어하오주를 데리고 중국을 일통하네, 마네 하는 헛된 꿈을 꾸게 된 건 아닐 거다.
어쩌면 처음 쑤어하오주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동정이나 연민이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쑤어모시앤은 변했다. 욕심이 날 수도 있지. 그래, 쑤어하오주의 능력이라면 확실히 그가 원하던 권력이든 부든 얻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말이다. 그냥 적당히 잘살기를 바랐다면, 이렇게까지 쑤어하오주를 ‘강하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모든 것을 희생시킬 필요가 없었다는 거다.
결국 그녀를 옭아맨 건 그의 욕심이다. 지나친 욕심.
무어라 변명해도 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쑤어하오주는 당신이 하자는 대로 전부 다 했을 거야. 거래에 대해서도 말해 줬겠지. 당신이 만족했다면, 적당한 곳에서 멈췄다면. 쑤어하오주가 그 거래를 계속해야 할 이유도 없었어.”
“그 애는 자신의 힘을 몰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한테 나는 사는 법을 가르쳐 줬다고. 내가 아니었으면 그 애는 그 마을에서 죽었어!”
“정말 당신 말이 맞으려면, 그녀의 기억마저 팔아넘기지는 말았어야지.”
내 말에 쑤어모시앤은 입을 다물었다.
“지금 그녀가 정말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해?”
“그 애는 날 사랑한다. 나와 함께하면 즐겁다고 했어.”
“그걸 기억은 하고?”
“과거의 기억으로도 충분히…….”
“당신이 얼마나 개소리를 하고 있는지는,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 않아?”
나는 부디 쑤어모시앤이 내 말에 깨닫기를 바랐다.
자신이 여태까지 저질러 온 과오를 깨닫고 반성까지는 아니더라도 후회까지는 했으면 했다.
“쑤어하오주를 괴물로 만든 건 당신이야. 사실, 당신이야말로 적사회의 괴물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지.”
자신의 욕심으로 분에 넘치는 힘을 쥐려고 했으니. 그로 인해 파멸하게 되는 운명까지. 너무나도 그 말에 잘 맞지 않나?
“하하! 그냥 솔직하게 말해. 날 여기서 죽이고 그 애를 네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쑤어모시앤은 미친 사람처럼 내게 소리를 쳐 댔다. 새빨개진 얼굴로 계속해서 같은 소리를 내뱉는 그를 보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끝까지 자신이 저지른 일을 들여다보는 것을 거부했다.
몇 번을 말해도 소용없다.
사실 이곳으로 그를 데리고 왔을 때부터 이렇게 될 미래를 반쯤은 짐작하고 있었다.
쑤어모시앤은 원래 이런 인간이니까.
“하지만 네 뜻대로는 안 될 거다. 날 죽이면, 그 애는 절대 널 용서하지 못할 테니까. 하하, 바보 같은 녀석. 날, 날 죽이고 그 애를 데리고 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야.”
쑤어모시앤은 이제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떠들어 대고 있었다. 쑤어하오주를 잃을 거라는 확신과 죽음의 두려움으로 그는 반쯤 미쳐 가고 있었다.
“걘 내가 있어야 행복해……. 이 세상에서 걜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미친 사람의 헛소리라지만, 이 말을 듣고서는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한번 시도는 해 보고 싶었다. 쑤어하오주가 이 남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니까.
지금부터라도 그녀에게 좋은 아버지까지는 아니어도, 조금은 괜찮은 아버지 노릇을 할 생각이 있다면 여기에서 놓아주고 적사회와 합의안을 쓸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쑤어모시앤은 그 정도 그릇도 안 되는 인간이었다.
“흐흐, 날 죽이면 안 돼. 날 죽이면 걘 폭주할 거다. 그 녀석은 날 꽤나 아끼거든. 날 죽이면 안 돼…….”
조금 전까지는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내뱉은 것을 잊은 것처럼 쑤어모시앤은 나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간절한 모습을 보며, 나는 오히려 이놈을 죽여야겠다는 확신을 더할 뿐이다.
쑤어모시앤은 살 가치가 없는 인간이다.
염치도 없고, 신념도 없는 데다가, 자존심도 없다.
그런 주제에 욕심만 많고, 이 삶에 대한 집착만 가득한 사람이다.
“당신이 조금만 괜찮은 사람이었다면 나도 여기서 당신을 살려 줬을지도 몰라.”
“잠깐, 잠깐만!”
“다행이야. 당신이 진짜 뼛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쓰레기라서.”
쑤어모시앤의 존재는 분명 쑤어하오주에게는 기생충, 그 자체다. 그녀가 자랄 양분을 모두 빼앗아 자신의 배를 불린 기생충.
쑤어하오주는 쑤어모시앤이라는 사람이 있는 이상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쑤어모시앤이라는 사람에게 양분을 모두 빼앗겨 말라비틀어지기만 할 뿐이다.
그걸 쑤어하오주도 모르진 않을 거다.
잘라 내야 하지만, 스스로 잘라 낼 수는 없다.
왜냐?
사랑하니까.
이런 인간이라도 자신의 아버지, 파파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쑤어하오주는 죽었다.
쑤어모시앤의 욕심으로 계속했던 거래에, 자신을 모두 넘겨 버린 날, 그래서 자기 자신조차 잊은 날. 한순간의 사고였다지만, 자신의 손으로 파파를 죽인 걸 용서할 수 없어서.
그래서 죽지 못해 살다가.
스스로를 죽여 버렸다.
그 일을 막기 위해서, 쑤어모시앤은 이 자리에서 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