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화
#20 은월회 (2)
모레. 나는 봉고차에 애들을 가득 태운 채로 달렸다. 봉고차는 유치원 통학 버스로 위장해 둔 상태고 아이들에게는 모두 유치원생 옷을 입혀 놨다.
“나 이런 거 처음 입어 봐.”
아이들은 노란색 단체복을 입은 채 병아리처럼 짹짹거렸다.
“정말 귀엽지 않아요?”
한서현은 답지 않게 헤실헤실 풀어져 있었다. 하긴 내가 보기에도 노란색 모자까지 야무지게 챙겨 쓴 애들은 꽤나 귀여웠다.
헤실헤실 웃었던 게 거짓말처럼 한서현의 얼굴은 순식간에 축 처졌다.
“정말 보내야 해요?”
“응.”
내 생각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며칠 사이 저 애들과 정이 꽤 들었다.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애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밝았다.
정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나에게도 어떻게든 달라붙어 애교를 부리고, 고마움과 애정을 쏟아주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결국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정말 좋은 애들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놓아주어야 하는 거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차를 몰았다. 차가 멈춰 선 곳은 인천 월미도.
백도산과 그의 부하들이 우리를 맞았다. 슈트를 챙겨 입은 덩치들에 자동차에서 내린 아이들이 얼어붙었다.
“이 아이들인가?”
“예. 그나저나 꼭 그렇게 서 있어야 됐습니까? 우리 애들 놀랐잖아요.”
“그거 미안하군. 나름 차려입는다고 차려입은 건데.”
나는 백도산의 말에 혀를 찼다.
중국 출장을 다녀오는 동안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맡겨 놓기로 했다. 백도산의 눈짓에 그의 부하 한 명이 나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웬 까까머리 덩치가 자신들에게 다가오자 아이들이 기겁했다.
“아저씨!”
나를 부르는 눈에 두려움이 가득하다.
“걱정하지 마. 우리가 중국에서 일을 볼 때까지 여기에 있는 아저씨들이 너희를 돌봐 줄 거야.”
“으으.”
그 질색하는 반응에 까까머리가 똑같이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우리 애도 상처받거든?”
백도산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이들에게 손을 대면…….”
“알겠어, 우리가 깡패긴 하지만 그 정도로 깡패는 아니야.”
그래, 나도 저 말은 믿었다. 백도산은 분명 악인이지만, 설록진에 의해 타락하기 전의 백도산은 절대로 ‘아이들’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다.
“무슨 일 생기면 얘한테 말하고.”
한서현은 일호의 손에 쥐돌이를 넘겼다. 그걸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전쟁이고 뭐고 다시 이곳으로 올 생각이었다.
“잘 있어라.”
“다, 다녀오세요!”
아이들이 일제히 외치는 말에 나는 미소를 지은 채 백도산에게로 발을 옮겼다.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던 한서현도 나를 따라왔다.
우리 셋을 본 백도산이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너희가 전부인가?”
“일단 여기에 온 건 그렇지.”
정보를 알려 주되, 전부를 알려 줄 생각은 없었다.
“둘 다 처음 보는데…….”
“능력은 확실하니, 의심하지 말지.”
내 질문에 백도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까지는 배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나야, 예전에 금 박사를 통해 만들어 놓은 신분이 있지만, 김재호와 한서현의 신분이 확실하지 않아 비행기를 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배에 올라타기 전 나는 가면을 뒤집어썼다. 30대 아무개의 얼굴로 위장한 나와는 달리 한서현과 김재호는 맨얼굴이었다. 변장이라도 시키려고 했는데 상관없다며 거절하더라.
그리하여 타게 된 배는 어땠냐면…….
“으윽.”
감각이 예민한 김재호는 괴로워하는 것 같았지만, 특유의 적응력으로 금세 극복했다.
나야 원래 멀미를 모르는 몸이었다. 문제는 한서현이었다.
“우욱!”
벌써 저걸로 12번째 토였다.
“누가 날 때려서 기절시켜 줬으면 좋겠어요.”
“해 줄까?”
“아, 아니요! 재호 형!”
김재호를 피해 구석에 처박힌 한서현은 그대로 기절하듯이 잠을 잤다. 배에서 내린 한서현의 얼굴은 곧 죽을 사람처럼 창백해 보였다.
중국에 도착한 우리는 곧바로 숙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숙소에서부터 낯선 기척들이 우리의 곁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 기척을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닌지 김재호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창틀에 걸터앉은 김재호가 바깥이 신경 쓰이는지 계속 고개를 바깥으로 내뺐다.
“너무 멀리 가지는 마라. 저 사람들도 가만히 내버려 두고.”
김재호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훅 하고 사라졌다.
━네가 보낸 거냐?
‘아니요, 워낙 답답한 걸 싫어하는 놈이기에 이쯤 되면 바깥으로 나돌 거로 생각한 겁니다.’
“죽겠어요.”
쓰러지듯 침대에 누운 한서현의 주머니에서 그동안 ‘죽은 듯’ 가만히 있었던 쥐돌이 네 마리가 기어 나왔다.
“그냥 쉬지 그러냐.”
“어차피 얘네들을 움직일 때는 별 힘을 안 들여도 되는데요, 뭘.”
혹시 몰라 한국에 남아 있을 일호에게 건넨 쥐돌이 하나를 제외하고, 한서현은 나머지 쥐돌이를 모두 이곳까지 챙겨 왔다.
그렇게 챙겨 온 쥐돌이는 한서현의 손짓에 따라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무리는 하지 말고…….”
나는 한서현에게 그렇게 말을 건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미 잠들어 버린 것 같았다.
나 또한 이 사이에 할 게 있었다.
나는 시스템 창을 노려보았다.
━ 「마나 회로 확장」 ━
잠재력 : S급
형태 : 패시브
마나 회로를 활용해 자신의 마력을 어떠한 형태로든 변환한다.
시스템 창은 아주 간단한 개념만을 알려 줄 뿐이다. 이 개념을 어떻게 ‘응용’해서 ‘활용’하느냐는 모두 각성자의 몫이다.
내가 ‘마나 회로 확장’이라는 스킬을 얻게 된 것은 레이를 받아들이며 내 몸 안에 엄청나게 많은 마나 회로가 깔려 버렸기 때문이다.
그중에 내가 활용할 수 있는 마나 회로의 수는 일부뿐이다. 사실 내 몸에 어떤 마나 회로가 깔려 있는지도 아직 다 파악하지 못했다.
당장 자주 사용하는 것만 외우고 있을 뿐, 아직 제대로 탐구하지도 못했다는 거다.
레이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마나 회로가 2획까지라고 했다.
때문에 3획 이상이 필요한 재능은 아예 활성화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지.
예를 들어 손상된 조직 세포까지 완전히 재생할 수 있는 ‘초재생’이 그러하다.
이것도 4획부터는 아예 떨어져 나간 사지도 복구할 수 있을 정도라는데, 최소 3획부터 사용이 가능하단다.
어쨌거나 내 몸에 깔린 마나 회로를 전부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그 ‘획수’라는 걸 늘려야 했다.
그리고 그 획수를 결정짓는 건 내 머리, 정확하게 말하면 연산력과 정신력.
“크윽.”
나는 한 번에 활성화할 수 있는 획수를 늘려 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2획까지가 한계다.
‘역시 쉽지 않네.’
━그게 네 녀석의 한계다.
날 기죽이려고 한 말이 아니다. 실제로 이게 내 한계다. 두 획. 이 수많은 마나 회로를 깔아 놓고도 겨우 두 획짜리의 재능만 사용할 수 있는 거다.
내 몸에 깔린 마나 회로가 B급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패시브는 S급이었는데.’
━그건 종류가 달라서 말이지.
‘쳇.’
만약 김재호나 한서현의 손에 들어갔더라면, 어땠을까.
입 안이 썼다.
━하지만 타고난 놈들은 네놈만큼 파고들지 않았을 수도 있는 거 아니냐.
답지 않게 레이가 내 칭찬을 했다.
‘뭐, 그야 맞는 말이긴 하죠. 나만큼 재능을 집착적으로 파고드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실제로 이 재능을 가졌던 박세운 또한 한 번에 하나의 재능밖에는 사용하지 않았었고.
그놈도 무의식적으로 여러 가지 재능을 사용했을지도 모르지만, 의식적으로 능력을 사용한 적은 없으니까.
이건 고정관념 때문이다.
복합 재능을 가진 이는 잘 없으니까. 재능을 섞을 생각도 못 한 거지.
하지만 나는 다르다.
활성화할 수 있는 재능이 단 2획 분량뿐이라도, 내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재능의 수는 총 둘.
둘만으로도 엄청난 조합식을 만들 수 있다.
물과 번개를 섞어서 쓴다면?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하겠지.
바람과 불은 또 어때.
━아주 머리가 핑핑 도는구나.
화력이 약하면 시너지로 극복하면 그만이다.
만약 재능을 하나만 더 동시에 사용하는 게 가능해진다면 저 모든 걸 마나 팔찌의 화력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내가 훈련에 매달리지 않을 수가 없지.
‘어떻게든 3획까지만 사용할 수 있게 되면…….’
내 생각은 중간에 멈췄다.
침대에 누워 있던 한서현에게서 들려온 자그마한 신음 때문이다.
“미안…… 형, 미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녀석은 끔찍하게 죽은 형의 모습을 직접 봤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뒤를 캐내겠다는 일념으로 그 소중한 형을 자신의 소환물로 삼기까지 했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 보인다고 해서 진짜로 멀쩡한 건 아닐 테지.
하지만 저 짐을 짊어지는 건 한서현의 몫이다.
나 또한 다른 이의 목숨값을 짊어지고 살았기에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녀석이 쓰러질 것 같으면 그때 부축해 주는 것뿐.
한서현의 눈물 섞인 잠꼬대를 들으며, 날이 밝도록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마나를 다듬고 또 다듬었다.
* * *
김재호는 해가 뜨기 직전 돌아왔다. 뭘 했는지 놈에게서는 바람 냄새가 가득 났다. 대체 어딜 쏘다니고 있는 것인지.
“너무 멀리 돌아다니지는 마. 이 근처는 우리 구역이 아니니까.”
내 말에 김재호가 말했다.
“위험한 거 없다.”
“널 해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마는, 그래도 여긴 우리 땅이 아니잖냐.”
영 납득한 얼굴은 아니지만, 뭐.
“배고파.”
“그래, 슬슬 아침 먹을 때가 되긴 했지.”
“으으. 재호 형 왔어요?”
우리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에 한서현도 겨우 정신을 차렸다. 여전히 얼굴은 안 좋았지만, 그래도 어제보다는 나았다. 자신이 무슨 잠꼬대를 했는지도 모르는 얼굴이다.
굳이 그런 잠꼬대를 했다는 걸 알려 줄 필요는 없겠지.
우리는 호텔 조식으로 배를 채웠다. 그사이 한서현은 쥐돌이를 챙겼다.
한서현은 내게 목소리를 맞춰 속삭였다.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사람은 열 명이에요. 각성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날랜 게 아니에요. 게다가 거의 밤을 새우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더라고요.”
“음, 우리에 대한 기대가 큰 것 같은데.”
━아니면 반대거나. 영 믿음직스럽지 못한 놈들이라 지켜보고 있는 걸 수도 있지. 지금의 경우에는 후자일 가능성이 크지 않겠나?
섣부른 판단은 나쁘지만, 저쪽이 우리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백도산과 함께 또 차를 타고 한참을 이동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하늘과 거의 맞닿아 있는 것처럼 높이 솟은 호텔이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자동차 문이 열렸다. 우리가 자동차 문을 열기도 전에 누군가의 손에 의해 문이 열렸다.
정장을 빼입은 여자가 우리의 앞에 서 있었다. 빈틈 하나 없이 묶은 머리와 날카로운 눈빛이 인상적인 여자였다.
“안녕하세요?”
한서현이 인사를 건넸음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한서현은 입술을 삐쭉이며 내 등 뒤에 섰다.
여자를 따라 우리가 안내된 곳은 상층부에 있는 호텔 식당이었다. 전세라도 낸 건지 우리를 제외한 손님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안내된 테이블에는 이미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감탄이 나올 만큼 고급스러운 자수가 수놓인 푸른색 계열의 치파오를 입고 긴 장발을 뒤로 묶은 남자였다. 저 사람이 이 은월회의 회주인 장류원이겠지. 이쪽 호칭으로 하자면 장리우위앤.
바짝 마른 고목처럼 날카로운 턱선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이 대단한 남자였다. 치파오 안의 몸은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하게 단련되어 있겠지. 과연, 한 폭력 조직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카리스마가 있는 남자였다.
장리우위앤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는 이미 맛있는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내 옆에 선 김재호가 침을 꼴깍거렸다.
여기까지 우리를 안내한 여자는 바로 장리우위앤의 뒤에 서서 그에게 속삭였다.
[모셔 왔습니다.]
저 여자는 각성자다.
그것도 무척이나 강한.
━개인 호위 같은데.
자리에 앉기 전 백도산이 장리우위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그러는 자네는?]
[저야, 뭘 잘 지냈죠.]
[그 친구들과 함께 편히 앉지. 어쨌거나 좋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여기까지 오신 손님들 아닌가.]
짧은 인사를 나눈 백도산은 이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편히 앉으시랍니다.”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은 나는 장리우위앤에게로 시선을 건넸다.
[이 친구가 제가 말했던 사람입니다. 벨츠머츠라고. 실력은 꽤 괜찮습니다. 저 또한 구명의 은혜를 입었죠.]
[평범해 보이는데 의외로구만. 어쨌거나 자네 소개니 일단은 믿겠어.]
“자, 소개하죠. 이쪽이 은월회 회장인 장리우위앤. 그리고 이쪽은…….”
나는 백도산의 말을 끊고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희는 벨츠머츠, 그렇게 불러 주시면 되겠습니다.]
아, 나는 중국어를 할 수 있다. 설록진이 나에게 중국을 맡겼었거든.
적사회 담당이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