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50화 (50/352)

제50화

#18 인간임을 포기한 (4)

김재호를 눕혀 둔 나는 단검을 든 채 사방을 훑었다. 하지만 여기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김재호의 손에 죽은 모양이었다. 사방이 고요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말이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잠긴 방이 많았다. 나는 잠긴 방의 문을 하나씩 열었다.

혹시 모를 생존자를 찾기 위해서기도 했지만, 이곳에 남아 있을 자료를 찾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나는 ‘실험실’과 ‘재료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실험실에서는 지독한 피 냄새가 났다. 아무리 소독제로 닦아 내도 지울 수 없을 정도로 짙게 남은 그 냄새에 내 미간이 절로 좁혀졌다.

자그마한 의자와 수술대,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끔찍한 수술 기구들까지.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너무나도 뻔하다.

차라리 실험실은 나았다.

재료실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재료실은, 글쎄. 실험실에서 추출한 부품들을 늘어놓은 일종의 재료 창고라고 해야 하나. 이곳에 그런 명칭을 붙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놈들이 붙여 놓은 설명에 의하면 그런 공간이었다.

그들이 선별하듯 늘어놓은 이른바 ‘부품’들을 보는 순간, 내 이성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 부품들의 사이즈가 작고 또 작아서. 겨우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의 것처럼 작아서 나는 차마 어떤 말도 쉬이 이을 수 없었다.

━너무 편하게 죽었구나.

“그러게나 말입니다.”

겨우 머리가 터져 죽기엔 지나치게 못된 놈들인데.

나는 그곳에 있는 부품들을 모두 불태웠다. 마력으로 불러낸 불은 재 하나 남기지 않고 모든 걸 깔끔하게 불태웠다.

부디 이 부품을 만드는 데 쓰인 아이들이 좋은 곳으로 갔길 바랄 뿐이다.

그다음으로 발견한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다음 방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로 닿은 방에서 나는 내가 찾던 곳에 닿을 수 있었다.

‘자료실’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곳은 매우 깔끔했다. 역겨운 것들이 늘어서 있던 다른 방과는 달리 이곳에 있는 건 오직 종이로 된 자료들뿐이었다.

모든 걸 수기로 작성한 데에서 이들의 집념이 느껴진달까.

하긴 이 세상에는 전자적으로 기록된 모든 정보를 볼 수 있는 각성자도 있으니.

나는 아무 종이나 꺼내 살폈다.

━이건…….

“그 개자식들이 수십 년간 축적한 정보입니다. 그야말로 인간의 피와 살점으로 써 내려간 기록들이죠.”

레이는 순식간에 모든 정보를 외울 수 있다. 나는 이곳에 있는 모든 자료를 레이를 통해 옮겨 갈 생각이었다.

혹시나 실험을 당한 아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지도 모르고…….

━주인, 여기 이 자료를 봐라.

레이의 부름에 기계적으로 종이를 넘기고 있던 나는 고개를 들었다.

━아이들의 등록 정보다.

종이에는 이곳을 스쳐 지나갔던 아이들의 신상 정보가 적혀 있었다. 이름, 나이, 출생. 그리고 어떤 아이의 정보에는 무려 등록 정보가 적혀 있었다.

이 정보들이라면 가족을 찾아 줄 수 있어.

하지만 그 밑에 적힌 정보를 확인하는 순간 나는 이를 짓씹었다.

“팔아넘겼네요, 이 사람은.”

개중에는 자신의 가족인 아이를 돈을 받고 팔아넘긴 금수만도 못한 자식들도 있었으니까.

“이 녀석의 부모는 특별히 직접 찾아가 주도록 하죠.”

나는 레이에게 아이들의 정보를 저장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또 한참 자료를 뒤적이는 그때.

━이 아이.

레이의 말에 내 손은 또 멈췄다. 레이가 말을 잇지 않아도 알겠다.

5년 전 자료. 거기에서 나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지금보다 훨씬 어린 얼굴이지만 한눈에 알아봤다.

“세상에.”

이건 김재호의 것이었다. 이름을 적는 곳은 비어 있었지만, 이 뚱한 얼굴을 보니 확실했다. 녀석의 정보는 대부분 불명이었다. 다만 탄생 연도만이 뚜렷하게 기록돼 있었다.

그리고 그 탄생 연도가 충격이었다.

“열여섯?”

김재호가 한서현보다 한 살이 어리다니. 충격적인 사실에 굳어 버린 나에게 레이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그동안 네 녀석 한서현에게 이놈한테 형 대접을 해 주라고 윽박질러 대지 않았던가.

“당연히 김재호가 형인 줄 알았죠! 그런 몸을 하고서 열여섯이라니.”

매일 구부정하게 있어서 그렇지 김재호 그놈은 185cm도 넘는 거구란 말이다. 거기에 인상은 얼마나 험악해! 당연히 열일곱보다는 많이 먹었을 줄 알았지.

이런, 큰일이다. 족보가 개같이 꼬여 버리다니.

━그 꼬맹이가 알면 난리가 나겠구나.

“이건 묻어 두도록 하죠.”

━묻어 두다니!

“아, 아무튼 묻어 두는 겁니다.”

그렇게 레이와 투닥거리며 자료를 정리할 때였다.

바깥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순식간에 웃음을 갈무리했다. 레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곳을 돌아다니는 인간은 ‘우리의 적’일 게 분명하니.

나는 단검을 쥔 채로 일어났다.

생존자가 있었나.

단검을 든 나는 그대로 문을 박찼다. 문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인간에게 곧바로 단검을 박아 넣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인기척의 주인공을 발견한 순간 나는 온몸의 힘을 뺄 수밖에 없었다. 내 눈에 들어온 건 잔뜩 겁을 집어먹은 어린애들뿐이었으니.

“뭐야.”

내가 그렇게 몸에 힘을 뺀 순간.

아이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잠깐! 잠깐만!”

나는 아이들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아이들은 멈추지 않고 나를 공격했다. 자그마한 주먹이지만 그 주먹에 담긴 마력이 꽤나 매섭다. 아니, 어떤 애는 아예 주먹이 망치만큼 단단하다.

“크윽.”

어린애들이라고 얕볼 게 아니다. 이 아이들은 모두 신체 개조를 받고, 이른 나이에 재능을 싹틔운 각성자들.

아이들이 내뿜는 마력이 사정없이 내 몸으로 쏟아졌다. 아이들이라 어떻게 할 수도 없어 나는 몸을 웅크린 채 아이들에게 한참이나 두들겨 맞았다. 살갗이 터져 나가고 온몸의 뼈가 삐그덕거렸다.

━무식하긴! 마력을 뿜어 아이들을 떨쳐 내라.

‘다치면 어떻게 합니까.’

평생을 이곳에 갇혀 고통받은 아이들이었다. 조금의 상처라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맞아 죽을 참이냐!

나는 어떻게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밀어내는 방법이 없을까 고심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둬.”

손으로 배를 틀어막은 김재호가 눈에 들어왔다. 피투성이에 거구. 보기만 해도 위협적인 모습에 아이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터엉.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웬 망치가 바닥에 떨어진 게 보였다.

주먹이 망치 같던 게 아니라 그냥 망치로 나를 두들겨 팬 거로군. 어쩐지 너무 매섭다 했다.

김재호는 천천히 아이들과 나를 향해 걸어왔다. 아이들은 김재호와 나 사이를 곁눈질하며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그 사람은 때리지 마.”

“왜요.”

“착한 사람이야.”

김재호의 그 허접한 말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퍽이나 믿음이 가는 말이네.

그래도 김재호가 나를 ‘착한 사람’이라고 말해 준 건 꽤나 감동이었다. 내가 김재호와 보냈던 몇 개월간의 뻘짓이 아주 의미 없진 않았다는 뜻이니.

나는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아이들은 자석에 밀려나는 철가루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저 꼴이 꽤 귀엽기는 해도, 나에게 저렇게 겁을 먹고 있다는 게 그리 기쁘지는 않다.

“그래. 이 아저씨가, 큼, 착한 사람까진 아니어도 너희를 해칠 생각은 없어. 오히려 너희를 구하러 온 입장이지.”

아이들은 내 말에 멈췄다. 그리고는 저들끼리 눈으로 소통했다.

“믿기 어려울 테지만 말이야. 내가 바라는 건 너희를 이 지옥에서 꺼내 주는 거란다.”

나는 아이의 수를 셌다. 무려 열. 평균 나이는 일고, 여덟 살쯤 되었을까. 가장 큰 아이가 열 살은 겨우 될까 싶게 작은 아이들뿐이었다.

“너희가 전부냐?”

내 질문에 아이들은 대답하는 대신 서로 눈치만 봤다. 그렇게 눈치만 보는 아이들 틈으로 한 아이가 내게 물었다.

“우리를 구하러 왔다고요?”

“그래.”

“왜요?”

“왜?”

“우리를 또 다른 데로 데려가려고 그러죠?”

그 말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뭐, 여기에 있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다만.”

나는 사방을 둘러보며 과장된 태도로 어깨를 으쓱였다.

“정말 여기에 있고 싶은 건 아니겠지? 너희가 나가고 싶다면 나가는 걸 도우마.”

“내가 물어본 건 그게 아니잖아요! 우릴, 우리를 또 어디 끔찍한 곳으로 데리고 갈 거냐고 물어본 거잖아요.”

그렇게 묻는 아이의 얼굴은 절박해 보였다. 이 아이가 이곳에서 얼마나 끔찍한 시간을 보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앞으로도 알지 못할 거다.

그러니 이해는 가당찮지만.

그래도 나 또한 끔찍한 보육원에 있어 본 경험이 있어서, 그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적이 있어서.

대충은 알겠다.

이 지옥이 싫지만, 지옥에서 벗어나도 또 다른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두려움.

“아니, 나는 너희를 우리 집으로 데리고 갈 거다. 그리고 말이다, 우리 집은 제법 끝내준단다?”

━벽지도 안 발라서 우중충한 폐가 꼴인 너희 집 말이냐?

‘그래도 제법 운치 있지 않습니까?’

━멋대로 홀려서 들어온 사람에게 끔찍한 악몽을 선사하는 그 집이?

‘그러니 더 멋지지요.’

나는 손을 흔들었다.

“우리 집 갈래?”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굴려 봤자 녀석들은 어린아이. 아이들에게는 자신을 돌봐 줄 어른이 필요하다.

그러니 이곳에 있는 인간들이 오물만도 못한 존재들이라는 거다.

이 아이들의 필요를, 간절함을 최악의 방법으로 이용하였으므로.

생각보다 아이들의 수는 많았고, 생각보다 아이들의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내가 내민 손을 아이들이 잡았다.

그것만으로 내가 이 아이들을 데리고 갈 이유는 충분했다.

* * *

한 보육원이 습격당했다.

그 소식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그 보육원에서 돌보던 아이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시체도 남기지 않고 증발하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 사실은 모두에게 알려졌지만, 대외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사실도 있었다.

이 모든 건 누군가의 ‘신고’로 알려졌다는 것.

그 보육원이 사실은 아이들을 납치해 개조하고 각성자로 만드는 실험을 하고 있었던 끔찍한 곳이었다는 것.

도채희는 현장에 남은 흔적들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시체의 길이요, 산이었다.

“이곳에서 끔찍한 인체 실험이 일어나고 있었다고는 해도, 이건 학살이다.”

박철완의 말에 도채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대한민국에 이런 끔찍한 시설이 있었다는 걸, 그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린애들을 데려다가 인체 개조를 해 각성자로 억지로 각성시키다니. 이런 범죄가 자신도 모르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니.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 도채희가 박철완에게 물었다.

“신고한 게 누구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대요?”

“어, 대포 폰이든 뭐든 아예 잡히지 않는 통신 수단이래. 근데 내 생각에는 그 전화를 한 놈이 누구든 아무래도 이 일의 범인인 것 같다.”

그 말에는 도채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짓을 저지른 범인이 정말 벨츠머츠가 맞을까요?”

“글쎄,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놈이라면 쇼맨십이 대단하다는 말밖엔 안 나오네. 이런 짓을 저지르고 자기들이 신고를 한 데다가, 시그니처 사인까지 남겨 두다니.”

시체들의 핏자국으로 적힌 Weltschmerz라는 단어는 분명 도채희가 옥션 현장에서 본 표식과 동일했다.

“하지만 그 인간이 도대체 왜 이런 짓을 저지르는데요?”

옥션이야 범행 동기를 추측하기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돈.

하지만 이 경우는?

뉴스에서 나온 것 중엔 사실도 있었다. 이곳 보육원에 ‘아이들’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아이들’이 흔적도 없이 실종되었다는 것.

“여기에 있던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도대체 어떻게 할 셈이지?”

도채희의 말에 담배를 만지작거리던 박철완이 말했다.

“정말이지 최악의 가정이라 입에 담고 싶지 않았지만 말이다.”

“뭔데요.”

“여기에서 납치한 아이들을 다시 어딘가로 팔아넘길 생각이 아니라면, 세뇌해서 자기가 써먹으려는 거 아닐까.”

그 가정이 너무나 그럴싸해서, 도채희는 주먹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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