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화
#18 인간임을 포기한 (3)
우리는 불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복도의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대충 지하 3층 정도의 높이를 내려왔을까.
하나의 자그마한 문이 눈앞에 나타났다.
약에 취해 잠이 든 아이들만 있었던 위층과는 달리 이곳에는 수많은 기척이 느껴졌다.
확실히 이곳이 놈들의 근거지.
나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새하얀 조명이 눈을 찔렀다. 조금의 빛도 들지 않았던 비밀 통로와 달리 이곳은 너무 빛이 강해서 문제였다.
이 내리쬐는 듯한 조명 아래서 김재호는 거칠게 호흡했다. 그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마치 과거의 추억을 더듬듯이.
아니, 추억이라는 단어보다는 악몽이라는 단어가 더 알맞으려나. 문을 연 김재호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저놈을 그냥 보내도 되는 것이냐?
“괜찮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을 해칠 놈은 아니니, 아마 김재호가 누군가를 해친대도…….”
그건 해칠 만한 사람일 거다.
“음, 그렇고말고요.”
그렇게 내가 말한 지 채 오 초도 지나지 않은 그때.
“으아악!”
멀리에서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네 친구가 아주 화가 많이 났나 보구나.
“그럴 만도 하지요. 여기서 얼마나 끔찍한 일을 겪었겠습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을 때였다.
“?!”
내 몸이 비틀거렸다.
“허어.”
나는 눈을 찌푸렸다. 다시 한번, 앞으로 한 걸음. 착각이 아니다. 불과 한 걸음 차이인데도 무언가가 내 몸을 억눌렀다.
나는 눈에 마나를 둘러 1획 투시를 활성화했다.
이곳은 독특한 공간이었다. 과연, 왜 김재호 같은 괴물조차 이곳을 ‘스스로’ 탈출하지 못했는지 알겠다.
눈으로 보이는 이곳의 공간은 평면적이지만, 마력으로 보면 이 공간은 중앙으로 갈수록 휘어져 있는 형태였다.
벽에 설치된 마나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공적인 마력이 공간조차 구부릴 거대한 압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괴상한 공간이로다.
“하아. 아주 낯설지는 않네요. 미래에 각성자들을 가두는 감옥을 이런 식으로 설계했다고 들었습니다.”
왜 이런 공간을 만들었느냐. 이유는 뻔하지.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제어하기 위해서다.
확실히, 이 장치라면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무리일 테니까. 압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부분만 거니는데도 몸이 휘청거릴 정도니.
“안쪽으로 진입하려면 제어장치를 먼저 부숴야겠습니다.”
괴물 같은 김재호야 아무렇지도 않게 이곳을 돌아다닐 수 있을지 몰라도 내 육체로는 버틸 수가 없는 공간이었다.
━흠, 그건 어렵겠어.
“왜죠?”
━이 모든 현상을 제어하는 장치는 이 공간의 중앙에 있다. 가장 중력이 강한 곳. 지금 네가 갔다간 뼈마디가 으스러져 버릴 거다. 아니, 애초에 거기까지 닿을 수도 없겠지.
“끄응.”
하지만 김재호를 이대로 혼자 보낼 순 없다. 중력 장치를 파괴하지 못하면 제아무리 김재호라고 한들 중앙까지 닿을 수 없을 테니까.
생각을 마친 나는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뭘 하는 짓이냐?
“아까 비명을 듣지 않았습니까? 근처에 관리자가 죽어 있을 겁니다. 그놈이 차고 있던 아티팩트를 제가 사용하면 됩니다.”
━허어. 한 걸음도 제대로 내딛기 힘들어하는 놈이 뭐가 어째?
나는 말없이 팔찌에 깃든 마력을 끌어 올렸다. 치이익, 살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고통은 없었으니.
온몸의 마력을 둘러 내 몸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무식한 놈.
레이는 그렇게 나를 욕했으나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다. 나는 천천히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흐으.”
쉽지 않았다. 마력으로 몸을 강화했다고 한들, 내 몸을 억누르는 압력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다. 다만 버틸 뿐이다. 몸의 내구도를 올려 버티고, 버텨도 폐가 찌부러지는 이 고통만큼은 내가 그대로 감내해야만 한다.
그렇게 겨우 한 걸음, 한 걸음. 어느새 내 등은 내가 흘린 땀으로 흠뻑 젖었다.
선혈이 낭자한 사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꽤나 화려하게 해 놨구나.
머리가 그대로 날아간 시체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아티팩트가 저기에 있구나!
나는 엉금엉금 기듯이 네발로 움직였다. 여기까지 오며 압력이 더더욱 강해져 이제는 이족 보행이 불가능해진 탓이다. 그렇게 겨우 거북이처럼 기어 가, 나는 시체의 허리춤에 매달린 아티팩트를 잡아챘다.
아티팩트를 내 허리에 매고 작동시키자 몸을 짓누르던 압력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허어.”
나는 그제야 제대로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것 참, 신기하네. 중력을 이겨 낸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야 나는 김재호가 헤쳐 갔을 길을 제대로 따라갈 수 있었다. 나는 시체를 넘어 움직였다.
몇 걸음 걷지 않아 나는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사방이 온통 붉었다.
본래는 희었을 이 공간에 이제는 붉은색밖에 남은 게 없었다.
가장 바깥쪽에 있던 남자는 혼자였지만, 사무실에는 몇 명씩 짝을 지어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은 모두 살아남지 못했다.
━참으로 무식한 방식이로다. 그 어떤 기교도 없이 제 신체의 힘만으로 이 모든 짓을 했다니.
이게 김재호다. 내가 알고 있던 병기.
머리가 날아간 시체가 둘을 지나치자 다음 복도에는 갈비뼈가 그대로 내려앉은 시체가 나를 반겼다. 의자에 앉은 채인 걸 봐서 제대로 반응할 시간도 없었던 모양이다.
━제어장치는 저쪽이다.
나는 레이가 가리키는 대로 발을 옮겼다. 당장은 김재호를 따라가는 것보다 제어장치부터 해제해야 했다.
제어장치가 들어가 있는 방은 잠겨 있었지만, 이런 잠금장치 따위야 간단하지.
손에 전기를 둘러 간단하게 잠금장치를 해제한 나는 제어장치를 부쉈다. 척 보기에도 정교하고 복잡해 보이는 기계였지만, 마력을 두른 주먹 몇 대를 이기지 못하더라.
자고로 기계에는 매가 약이다.
흠. 제어장치를 무력화시킨 다음, 나는 김재호가 남긴 흔적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아주 끔찍한 버전의 헨젤과 그레텔 같았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살점과 핏자국의 끝에는 시체가 존재했고 그 시체의 근처에는 또 다른 핏자국이 떨어져 있었으니.
그렇게 시체들을 따라 걷던 중에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으흑.”
분명 누군가의 신음이었다.
━살아 있는 놈이 있는 모양이구나.
나는 그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또각, 또각.
내 발소리에 신음은 순간적으로 사라졌으나, 끊기지 않았다. 남자에게는 불행한 소식이었으나, 이런 조용한 공간에서 레이와 나의 감지력을 벗어날 수 있는 생명체는…….
없다.
나는 사무실의 캐비닛을 활짝 열었다.
“안녕하신가.”
“으아악!”
그 안에 숨어 있던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나를 밀치고 뛰쳐나갔다.
도망이라도 가려면 잘 가지.
그러다가 시체에 발에 걸려서 넘어졌지만. 그 꼴엔 웃음도 나지 않았다.
시체를 본 남자가 또 한 번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흐어어억.”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남자를 살펴보았다.
눈앞의 남자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운이 좋게 김재호의 눈에 띄지 않은 모양이었다.
‘음, 결국 나에게 들켰으니 운이 좋았다고는 못 하려나.’
그러게 왜 신음을 흘려서는.
뭐, 이것 또한 네 운명이겠지.
“제, 제발 살려 주세요.”
남자는 나를 향해 빌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남자를 봤다.
남자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이곳에서 사람을 죽였는지 아닌지. 그런 건 관심이 없다.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저놈을 죽일 이유로는 충분한 까닭이다.
“내가 왜 널 살려 줘야 하지?”
나는 놈에게 물었다.
그건 이 세상에 살아가는 악인을 향한 내 질문과도 같다.
악인을 살려 줘야 할 이유가 있는가.
내 질문에 남자는 덜덜 떨며 입을 열었다.
“사, 살려만 주신다면! 다시는 이런 짓 같은 거 하지 않고, 앞으로는 평생, 평생 후회하면서 속죄하면서 살겠습니다.”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살아 있으면 속죄하면서 살겠다고?
그걸 왜 믿고 기다려 줘야 하지?
“넌 한 명이라도 네 손으로 살린 적이 있나?”
나는 천천히 남자를 향해 걸음을 걸었다.
“살고 싶다고 하는 아이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살려 본 적이 있냔 말이다. 단 한 번이라도 네가 네 손으로 찢고, 합쳐서 멋대로 괴물로 만들어 낸 아이들을 구해 보려고 한 적이 있냐고.”
내 말에 남자는 입을 벙긋거렸다. 그 표정에서 이미 난 답을 읽어 냈다.
나는 주변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너희는 말이다. 조금의 용서도 받지 못할 오물들이다. 이 세상을 망치고 더럽히는 오물. 살아 있어 봤자 이 세상을 좀먹고, 부패하게 할 그런 존재들이란 말이다.”
왜 가해자들에게만 반성할 시간을 주냔 말이다.
피해자들에게는 그 어떤 시간도 허락되지 않는데.
“그러니 죽어.”
내 말에 무어라 떠들어 대려는 남자의 목을, 나는 그대로 쳐 버렸다. 남자의 머리가 데구루루 바닥을 굴렀다.
사실 이건 위선이다.
내가 말한 기준으로는 나 또한 충분히 죽어서 없어지는 게 나은 편인 인간이었으니.
그래도 어쩌랴. 나는 어찌 되었든 두 번째 기회를 이 세상으로부터 빌린 죄인이고 너는 아닌데.
━가차 없구나.
단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 낸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살려 둬 봤자 해악만 될 놈들입니다. 여기서 새는 바가지 다른 데 가서도 안 새겠습니까?”
━어딜 가나 이런 짓을 할 놈들이긴 하지.
“음, 그럼 이제 김재호를 찾으러 가 봅시다.”
김재호가 흘린 부스러기를 처리하느라 시간이 더욱 늦어졌다. 나는 천천히 길을 따라 걸었다. 피와 살점으로 젖어 있는 길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할 수 있었다.
구석에 처박혀 신음하는 김재호를.
“허억, 허억…….”
김재호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하긴, 이렇게 됐을 거라 짐작했다. 오는 동안 본 시체의 상태가 점차 지저분해졌으니까.
김재호라고 해서 이 압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탓이다.
내가 건넨 흡혈왕의 반지가 아니었더라면 여기에서 정말 크게 다쳤을지도 모르겠는데.
━참으로 어리석은 놈이로다.
레이는 내 머릿속에서 쯧쯧 혀를 찼다. 이번만큼은 나도 레이의 의견에 동의한다.
이 안쪽으로 오면서 김재호의 몸에는 몇백 kg의 압력이 쏟아졌을 거다.
이 중앙부에 이르러서는 그 압력이 톤 단위가 됐겠지. 김재호가 발을 디딘 곳마다 바닥에 금이 가 있어서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김재호는 멈추지 않고 꾸역꾸역 이곳까지 왔다.
이유는 모르겠다. 김재호의 기억에 있는 이곳에 꼭 죽여 버리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든가. 아니면 분노가 그를 이곳까지 이끌었든가.
어쨌거나 김재호는 기어코 여기까지 와서, 한 사람의 머리를 부숴 버렸다. 김재호의 앞에 있는 이 여자가 어떤 이름을 가지고 어떤 얼굴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남은 건 몸통뿐이니까.
하지만 김재호가 이 사람을 이렇게 만든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겠지.
이 사람을 시체로 만드는 데에는 김재호도 꽤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시체의 두 손에는 샷건이 꽉 쥐어진 채였다.
나는 무릎을 꿇고 김재호를 살폈다.
쿨럭, 나를 보며 김재호는 피를 내뱉어 냈다. 나는 가만히 김재호의 몸에 손을 얹었다. 근거리에서 샷건을 두어 방 맞았지만…….
━죽진 않겠구나.
레이의 말대로 치명상은 아니었다.
근거리에서 샷건 두 대를 맞고도 견딜 수 있다니. 나는 김재호에게 미리 챙겨 온 포션을 먹였다. 반지가 있긴 해도 포션을 써서 나쁠 건 없으니까.
재생하며 총알은 알아서 밀어낼 거다. 으음, 아니려나.
━치명적인 곳에 남아 있는 총알은 없다. 네 뜻대로 될 거다.
나는 김재호를 눕혀 놓았다. 꼭 눈을 감은 김재호가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그래, 행복하냐.”
여기까지 오면서 수십 명을 죽였대도, 뭐.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