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화
#18 인간임을 포기한 (1)
집을 완성했지만, 문제가 있다.
“우린 거지다.”
“예에?”
한서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우리 얼마 전에 옥션을 털었잖아요.”
그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옥션 탈취 사건의 범인이 우리다. 거기에서 우리는 억 소리가 나는 물건을 무려 두 개나 훔치는 데에 성공했다. 그런 우리가 거지라니 믿기 힘들겠지.
“2주밖에 안 됐는데!”
“그 물건을 팔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집을 짓고 내부를 꾸미느라 내가 남겨 뒀던 돈을 다 썼다. 네가 누워 있는 소파를 사면서 다 떨어졌다고.”
내 말에 한서현은 입을 쩍 벌렸다.
“다, 다 썼다고요?”
“응.”
애초에 나는 자금이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백도산 쪽으로 투자한 게 있으나, 투자금을 받는 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지금 우리는 거지다.
흡혈왕의 반지를 팔까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다.
“그럼 어떻게 해요? 뭐, 일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그 다크웹 같은 데서 의뢰 같은 거라도 받아서 하면 안 됩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다크웹에서 벨츠머츠의 이름을 퍼트린 지도 2주째. 벨츠머츠라는 이름은 이제 제법 실체감을 갖게 되었다. 아무래도 그 수많은 헌터를 제치고 두 개의 아티팩트를 훔쳐 낸 건 제법 괜찮은 업적이니까.
게다가 그 일 이후, 2주간 그 누구도 벨츠머츠가 누구인지를 캐내지 못했다는 게 벨츠머츠의 신비주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 일조하고 있었다.
이때, 우리 이름으로 허접한 의뢰라도 하나 받았다간?
내가 애써 2주간 만들어 놓은 이미지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거다. 그 꼴은 절대로 볼 수 없지.
“그럼 어쩌자는 거예요?”
“털어야지, 나쁜 놈을. 그 와중에 돈도 벌 수 있으면 좋고.”
“저번처럼 불법 게이트를 털 건가요?”
불법 게이트를 터는 건 확실히 돈이 된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벨츠머츠’가 아니라 ‘강이신’의 짓으로 보일 수도 있어.”
“그야, 벨츠머츠가 강이신, 그러니까 보스잖아요?”
“정확히 말하자면 벨츠머츠는 우리 조직 이름이지, 내 이름이 아니야. 게다가 내가 이 조직의 일부라는 건 되도록 오랫동안 숨겨 두고 싶다고.”
“들키지 않으면 그만 아니에요?”
“으음, 그야 그렇지만. 한 치의 위험도 남겨 두고 싶지 않달까.”
두 사건을 쫓는 건 무려 집념의 악귀라고 불리는 도채희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도채희라면 조각조각을 기워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중이라면 모르되, 아직은 강이신=벨츠머츠라는 걸 들킬 수 없다.
“그러면 어딜 털자는 거예요?”
“마침 신경 쓰이는 곳이 하나 있긴 했지.”
돈은 별로 안 될 테지만, 아니, 오히려 더 털릴 수도 있지만, 미래를 위해서라면 방치해서는 안 되는 곳.
나는 한서현에게 말했다.
“재호가 어떤 상황인지 저번에 말해 줬지?”
“으음, 네.”
나는 한서현에게 김재호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말해 준 적이 있었다. 어릴 적에 납치되어 나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인체 실험을 당하고 개조된 뒤 노예로 팔렸다고.
그러니 행동이 어색하고 서툴러도 봐주라고.
“재호를 저렇게 만든 곳에 가 볼 생각이다.”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꼭 가야 할 곳.
“허어억.”
내 말에 한서현은 입을 벌렸다.
“거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대충은.”
나는 아닌 척 우리 얘기를 듣고 있는 녀석이 다 듣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말인데, 거기 가고 싶냐?”
김재호의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잔뜩 가라앉는 녀석의 눈은 검게만 보였다.
“나는 거기를 아주 박살 내 놓을 생각이다. 다시는 이런 끔찍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깨끗하게 청소할 거야.”
한서현은 내 말을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누굴 위해 이렇게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지 깨달은 탓이다.
“거기에 만약 불쌍한 애들이 있다면,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을 당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구하고.”
“구해서요?”
“자신의 인생을 살게 도와줘야지.”
“어떻게?”
지금 내게 질문한 건 한서현이 아니었다. 가만히 구석에서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김재호가 어느새 내 눈앞에 있었다.
“어떻게 도와준다는 건데.”
“넌 어떻게 도와줬으면 했는데?”
내 질문에 김재호는 얼굴을 구겼다.
“난 거길 잘 몰라. 보고 들은 것만 있을 뿐 겪진 않았으니까. 그러니 그 인간들을, 인간임을 포기한 그 짐승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모르겠단 뜻이지.”
김재호가 복수라는 개념을 알지, 모를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녀석에게는 그들을 향한 증오가 있다는 거다.
그게 아니고서야 나를 향해 저런 표정을 지을 리가 없으니까.
“네가 같이 가면 나한테 알려 줄 수 있겠지. 뭘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김재호는 내 말을 자신의 입 속으로 곱씹었다.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래.”
김재호는 이 세상을 사는 방법을 모른다. 늘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서만 움직였으니,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놈이다. 이 세상의 대의를 위해서라고 녀석에게 속삭여도 의미가 없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이건, 김재호 자신의 일이었으니.
어쩌면 그곳에 가면 알 수 있겠지.
김재호가 앞으로 뭘 하며 살고 싶은지를.
“난 아마도…….”
고개를 갸웃거린 김재호가 말했다.
“죽여 버리고 싶은 것 같아.”
김재호는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전생에서 김재호는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이 원해서 사람을 죽인 적은 없을 거다.
어쩌면 이것부터 시작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한서현이 말했다.
“이, 이거 괜찮은 거예요?”
“괜찮아.”
“사람을 죽인단 이야기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해도……. 물론 그게 개자식들이긴 한데.”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세계를 멸망에서 구해 내겠다, 이렇게 말해도 나는 모두를 살리며 가는 상생의 길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엔 이 세상에 악인이 너무나도 많다.
“원치 않으면 가지 않아도 좋아.”
내 말에 한서현은 펄쩍 뛰었다.
“나도 가요! 나도 무조건 가는데…….”
“아니,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넌 가지 않아도 돼.”
떠보는 게 아니다. 진심으로 나는 한서현의 의도를 묻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한서현이 가지 않길 바라기도 했다.
“거긴 끔찍한 인체 실험이 일어나던 곳이다. 네가 보기엔 끔찍한 것들이 많을 거야.”
내 말에 한서현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저 네크로맨선데.”
“으음.”
확실히 죽음에는 익숙하겠지만. 그곳의 문제는 죽음이 아니다. 오히려 살아 있는 것들이 문제일 수도 있다. 신체를 개조했다, 그 말에서 알 수 있듯 거긴 인간이 아닌 괴물들도 즐비할 테니.
“게다가 전 어렸을 때부터 좀 특이했어요. 아무리 잔인하고 징그러운 걸 봐도 아무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저기 뒤에 큭큭, 같은 웃음소리만 더하면 완벽한 중2병 완성일 것 같은데. 하지만 저렇게 말하는 한서현의 얼굴은 덤덤하기 그지없었다.
때늦은 병의 발현이 아니라 정말 사실이라는 뜻이다.
하긴 재능이 네크로맨서인데 시체를 볼 때마다 꺅꺅거리면 그것만으로도 문제가 되겠지. 그러니 담담한 성정을 타고 태어났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만, 그곳은 정말로 비인륜적인 놈들이 많은 곳이었다.
나도 나중에 사진 자료를 볼 때 몇 번이나 토악질을 하기도 했고.
한서현은 미성년자다.
아무리 나를 따라 빌런의 길에 발을 디뎠다고는 해도 지켜 주고 싶은 게 있었다.
“실험실 안으로 들어오는 건 안 돼. 넌 후방 지원이다.”
“으! 이번에도요?”
“그래, 이번에도.”
그렇게 말한 내가 진지하게 한서현에게 경고했다.
“내가 들어오지 말라는 곳엔 들어오지 마. 쥐돌이를 붙이는 것도 금지다.”
“체엣.”
옥션 때는 스켈레톤이 마정석을 탈취하기 위해 마정석의 시야가 닿는 곳에 있을 필요가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초반에 잠입할 때만 도움을 받은 다음에는 완전 후방으로 뺄 생각이었다.
한서현은 아직 약했다. 내가 근래 굴리기는 했다지만, 그래 봤자 훈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그 지하에 한서현을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불만이 많아 보이는 한서현에게 내가 말했다.
“네가 얼마나 약한지는 알지?”
자존심이 상한 얼굴이었지만, 한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공격을 다섯 번 이상 버틴 적이 없으니까.
“대신 후방에서 네가 해 줄 건 많아. 애초에 네가 없었다면 이 작전은 짤 수도 없었을 테니까.”
기를 눌러 놨다면 칭찬 타임이다.
한서현은 자존감이 바닥에 닿아 있었다. 평생 자신의 재능을 싫어했던 데다가, 유일한 버팀목인 형도 잃었으니까. 애써 밝은 척, 분위기를 띄워 대도 속으로는 얼마나 곪아 있을지.
김재호나 나나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젬병이라 혼자서만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할 뿐이다.
설록진 옆에 붙어 있으면서 배워 두었던 혓바닥 기술을 좀 쓸 때다.
“넌 대단한 재능을 가졌어. 저번 옥션 때도 네가 아니었다면 해낼 수 없었겠지. 앉은 자리에서 너는 수천 리를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기가 죽었다는 게 언제라는 듯 눈을 반짝이는 한서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나는 덧붙였다.
“명심해. 네 재능은 근접 전투가 아님을. 네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훈련은 너를 보호하기 위해서일 뿐, 네가 제대로 재능을 개화하면 나는 물론이고 저 김재호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기게 될 수 있게 된다는 걸.”
“물론이죠!”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한서현을 다독인 나는 마침내 머릿속에 떠오른 계획을 이야기했다.
내 작전을 들은 한서현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저, 절대 안 해요!”
하지만 그 거부가 받아들여지는 일은 없었다.
* * *
봄날 보육원.
그 이름을 본 나는 혀를 찼다. 봄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분홍색으로 칠해져 있는 간판은 화사하기 짝이 없었다.
벽에는 귀여운 벽화가 그려져 있었고 눈에 보이는 마당에는 알록달록한 타일과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놀이터가 보였다.
아무리 게이트를 잘 통제한다고 해도 게이트의 등장은 재난이었다. 가족을 잃은 사람은 많았다. 나와 정호산이 보육원으로 흘러 들어왔듯이 이곳에도 수많은 아이가 들어 왔겠지.
겉으로 봐서는 멀쩡한 보육원처럼 보이는 곳이니까.
해외 입양으로의 길도 막힌 지금, 국내의 보육원은 언제나 미어터졌다.
어려운 살림 형편에 아이를 포기하든, 아니면 맡아 기를 상황이 되지 않든. 몇몇 가족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듯이 아이들을 잘라 내곤 했으니까.
내가 오늘 연기하는 사람 또한 그 도마뱀 중 한 명이다. 40대의 얼굴 가죽을 뒤집어쓴 나는 보육원 담당자를 직접 만났다.
아이를 맡기고 싶다는 내 말에 담당자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내가 말한 ‘애’라는 건 올해 열일곱 살인 한서현이었고…….
“키만 컸지 아직 열두 살인데, 안 되겠습니까?”
나는 170cm도 넘는 그 애를 열두 살이라고 박박 우기고 있었으니까.
━뻔뻔하기 짝이 없구나.
레이의 말에도 나는 뻔뻔하게 고개를 쳐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