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16 벨츠머츠(Weltschmerz) (1)
한서현이 발견했다던 그 장치. 나는 직접 환풍구를 기어 그 장치를 확인했다.
환풍구에 있던 장치의 역할은 간단하다.
폭발.
그리고 연막.
레이가 확인해 준 것이니 틀림없겠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 이 옥션을 털려던 사람이 우리 말고 또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 장치를 해체하는 대신 이용해 주기로 했다.
내 예상대로 폭발은 경매장을 혼란스럽게만 할 뿐, 치명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혼란한 분위기야말로 경매장에는 치명적이었다.
이곳에는 무려 육백 명, 민간인과 헌터들이 뒤섞인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함부로 힘을 쓰지 못할 테니.
“홍염의 마정석! 그걸 지켜야 하오!”
누군가의 중후한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경매장 단 위를 향했다. 사람들은 깨달았다. 이 폭발을 터트린 사람이 무엇을 노렸는지.
이들은 초인. 먼지 같은 것은 간단하게 꿰뚫고 옥션 현장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폭발로 퍼진 것은 그냥 먼지가 아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퍼트려 놓은 연기에는 마력이 함유되어 있었다. 의도적으로 각성자들의 눈을 가리기 위한 연막탄을 터트린 거다.
“앞이, 안 보여!”
“젠장! 다들 조심하시오!”
한 치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한 연기가 사방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러면 확실히 헌터들도 함부로 나설 수가 없지.
‘헌터니까 오히려 나설 수가 없는 거야. 순식간에 인명 피해가 커질 테니까.’
이곳에는 헌터뿐만 아니라 웨이터, 참관객 등의 민간인들도 상당수 있었다. 누군가의 눈먼 마탄에 맞고 그대로 절명할 연약한 사람들이 많다는 거지.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한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 물론 나는 예외다.
내 눈에는 마나가 집중되어 있었다. 1획짜리 재능 ‘투시’. 이 뿌연 연막을 뚫고 내가 세상을 밝게 볼 수 있는 이유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다.
누군가 나를 위해 맛있게 죽을 쒀 놨다면 그 죽을 맛있게 먹어 주는 것도 손님의 매너 아니겠는가.
나는 가면의 버튼을 눌렀다. 누가 봐도 평범해 보이던 20대 청년의 얼굴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한 건 낙서처럼 그려 놓은 웃는 얼굴이었다.
* * *
“다들 침착하세요!”
폭발을 느낀 뒤, 도채희는 바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리저리 얽혀 있는 사람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중에 누가 범인인지도 특정할 수 없으니!
“옥션 참관객들께서는 당황하지 마시고 침착하게 자리를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이동을 삼가시기를 바랍니다!”
도채희가 그렇게 말했지만, 이미 패닉에 빠진 앞줄은 뒤로 도망치기 위해 발악하고 있었다.
그나마 헌터들은 괜찮았지만, 옥션이 열린다는 말에 이곳까지 놀러 온 호사가들이 문제였다.
“살려 줘!”
“여기서 나갈래!”
마구잡이로 뛰쳐나가는 사람들은 곧바로 다른 누군가와 얽혀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가만히 있으라니까!”
도채희의 눈이 빛났다. 이 마력 연막탄 사이에서도 ‘독수리의 눈’을 가진 그녀는 똑똑히 상황을 판단할 수 있었다. 이리저리 얽혀 서로 나뒹굴고 있는 사람들에서부터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경호 팀까지.
모든 혼란이 그녀의 시야에 한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저질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상쩍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서 자신을 밀치고 이곳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시야 확보도 어려웠다.
“여기에 사람 있다고요!”
이럴 때만은 자그마한 체구가 엄청나게 원망스러웠다. 젠장, 이 망할 인간들이! 입 속으로 욕을 내뱉은 도채희가 허리춤에 매 놓은 권총을 허공에 쏴 버릴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박철완의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채희야, 무슨 일이냐!]
“습격이에요!”
그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콰아앙!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났다.
“꺄아아악!”
이미 패닉에 빠졌던 사람들은 물론, 나름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했던 이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폭발이 추가로 더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거 좋지 않은데.”
이미 상황은 도채희와 경호원 몇몇의 제지로 괜찮아질 순간을 넘어섰다. 애초에 ‘눈’에 관련된 재능이 없는 한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이곳에서 수없이 많은 이들을 지킨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경매품이라도 지킨다.
도채희의 시선이 마정석으로 향했다. 다행히 아직까지 홍염의 마정석은 멀쩡했다.
홍염의 마정석은 보호막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다. 두 번의 폭발에도 보호막은 여전히 굳건했다.
‘좋아, 다행이야.’
도채희가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보호막 근처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이 그녀의 눈에 잡혔다.
‘뭐지?’
사격의 재능을 가진 그녀에게 붙은 패시브. 독수리의 눈. 그 어떤 상황에서도 목표물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스킬이 상황을 바라보았다.
하얀색 뼈.
눈이 부실 만큼 새하얀 뼈를 가진 해골이 홍염의 마정석이 보관된 통 안에 나타났다. 자욱한 연막이 가려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도채희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그 새하얀 해골의 손이 마정석을 붙잡는 것을.
“마정석이!”
그리고 순식간에 해골은 물론 그 마정석까지.
사라졌다.
눈앞에서 수백억을 호가하는 마정석이 그대로 사라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도채희는 자신을 밀치는 사람을 피해 다시 고개를 빼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시야에 한 소년이,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한 소년이 잡혔다.
“한서현.”
네가 왜 여기?
“아니, X발, 잠깐만!”
하지만 곧 도채희는 사람들의 틈에 밀려 그 소년을 놓치고야 말았다.
“아니, 진짜 가만히 좀 있으라니까!”
그녀의 성질이 점차 드러나고 있을 때, 연막이 점차 짙어졌다. 게다가 이 연막, 그냥 평범한 연막이 아니다.
“몸이 점점…….”
보통의 연막은 시간이 지나면 흩어져야 정상이다. 하지만 이 연막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진해지고 있었다.
“저길 봐요! 환기구를 통해서 계속해서 연기가 들어오고 있어요.”
그랬다. 처음의 폭발과 함께 퍼졌다고 생각한 연기의 근원지는 사실 환기구였다. 지금도 계속해서 환기구를 통해 연기가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다.
“호산아, 알아차렸냐?”
김명철의 말에 정호산 또한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연막 속에 무언가 섞여 있네요.”
그리고 그 연막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연막에 떠돌아다니는 마나 입자를 본 헌터들은 일제히 마나를 끌어 올려 몸을 보호했다.
저 악당이 누구든지, 목표는 옥션의 물건일 터. 자신의 목숨을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헌터들은 마나를 끌어 올린 채로 숨을 죽였다.
이 연막 속에 있는 게 무엇일지 감도 오지 않는 한, 함부로 나서지 않을 거다.
‘머리를 잘 썼어.’
도채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낭패였다.
이런 같잖은 연막으로 모두를 전방에서 빼다니. 하긴, 그게 아니었더라도 이리저리 얽힌 민간인들 때문에 능력을 쓰기도 애매했다.
“다들 몸만 사리는 꼴이라니! 다 저리로 가 보시오! 내가 처리할 테니까.”
그렇게 외친 김명철이 앞으로 나섰을 때였다.
“역시 불같은 성정을 지녔다는 김명철 마스터답네요.”
연기 속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채희는 곧장 눈을 돌려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김명철이 으르렁거리듯 사나운 목소리로 답했다.
“네놈이냐?”
“이 모든 일을 저지른 거? 글쎄?”
남자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장난스러웠다. 이 모든 일이 그에게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김명철이 마나를 끌어 올렸을 때였다. 남자가 말했다.
“워우, 워우. 이 연막 안에 뭐가 있을 줄 알고? 당신의 불로 뻐엉 터져 버린다면 나만 좋은 일을 해 주는 건데?”
그 말엔 제아무리 불의를 두고 못 본다는 김명철이라고 하더라도 나서기 어려웠다.
그의 능력은 다름 아닌 ‘불’.
만약 이 연막 속에 가연성 물질이라도 포함되어 있다간 남자의 말대로 작은 불꽃 하나가 이곳을 전부 터트려 버릴 수도 있었다.
같은 이유로 도채희 또한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린 권총을 쏠 수 없었다.
“젠장할.”
김명철은 결국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연막 속에서 보이는 것은 남자의 웃는 얼굴이 그려진 가면뿐이었다. 마치 안개 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유령처럼, 기괴한 빛을 내뿜는 가면이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웃는 얼굴이 낙서처럼 그려진 가면을 쓴 남자가 말했다.
“다들 그렇게 가만히만 계신다면 아무도 다치지 않을 겁니다.”
퍽 다정한 목소리였지만, 그 다정이 기만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남자의 목소리에는 무시할 수 없을 만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하지만 누구라도 하나, 조금의 마나라도 끌어 올린다면 퍼엉. 여기에 있는 모두는 죽습니다.”
수상쩍은 남자지만, 저 말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남자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를 휘어잡았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협조는, 빌어먹을.”
김명철은 연막 속에 숨은 남자를 향해 이를 갈았다.
“홍염의 마정석은 이 세상을 위해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홍염의 마정석이 탈취당한 걸 알아차린 도채희와는 달리, 사람들은 남자의 말에 그제야 홍염의 마정석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놈!”
누군가의 목소리가 이 경매장 안을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점차 거세질 때.
“너는 도대체 누구지?”
도채희는 사람들의 앞에 나서 그 녀석에게 물었다.
연막조차 꿰뚫을 수 있는 그녀의 눈동자는 그 가면 속에 숨어 있을 놈의 얼굴을 정확히 바라보았다.
이 수많은 헌터 중에 그녀만이, 그 가면 속의 남자와 정확하게 눈을 맞댔다.
“제 이름은 곧 여러분 모두가 알게 되실 겁니다. 그럼 오늘은 안녕히!”
놈이 손가락을 튕김과 동시에 녀석이 있었던 곳에서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으아악!”
사람들은 물에 휩쓸려 붕 떴다. 경매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물의 양은 많았다. 물살에 유리창이 깨지고 모든 것이 뒤로 밀려났다.
모두가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됐다. 그러나 놀랍게도 다친 사람은 없었다.
놈이 헤집고 간 경매장 단상에는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없었던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벨츠머츠(Weltschmerz).
“개자식.”
그의 말대로 그 녀석의 이름은 여기에 있는 모두가 알게 되었다.
* * *
“염세적인 세상을 뜻한답니다. 세상 비관적인 중2병들이나 자기 이름으로 삼을 법한 단어 아닙니까?”
간단한 인터넷 검색으로도 알아낸 그 단어는 놈의 행색만큼이나 비틀어진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 녀석이 보는 세상이나 비관적이겠지. 어? 내 세상은 꽃밭인데? 막 무지갯빛이고 그런데? 행복해 죽겠는데, 나는?
도채희는 속으로 그렇게 비꼬았지만, 상황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그놈이 털어 간 건 홍염의 마정석뿐만이 아닙니다. 흡혈왕의 반지까지 털렸어요.”
현장에 있었던 헌터가 몇인데! 도채희는 아파 오는 머리를 붙잡았다. 으아아, 속에서 열불이 터졌다.
완전히 놀아났다.
놀아났다는 말로밖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벨츠머츠인지, 뭔지. 그놈이 아무리 대단하대도 겨우 물을 다루는 재능으로는 그곳에 있는 헌터들을 상대할 수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모든 상황이 모두가 그 녀석에게 놀아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요.”
“우리가 나섰다면, 더 큰 피해가 발생했을 테니.”
“애초에 경호원 팀이 허술했던 거 아닙니까. 여기까지 접근하게 만들다니 말이지요.”
헌터들은 저마다 그렇게 서로의 얼굴에 금칠을 해 주고 있었다. 그들의 상처 난 자존심은 그렇다 치고.
엉망진창으로 부서진 무대가 보인다.
이리저리 엉켜서 신음을 지르고 있는 피해자들도 보였다.
망할.
정시 퇴근은 무슨. 야근 확정이다.
치밀어 오르는 두통에 도채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