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15 옥션 (2)
나는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암시장에서 대리로 구매한 대포차는 겉으로 보기만큼 내부도 구렸다. 어차피 이번 한 번만 쓰고 버릴 거라지만, 좀 그렇네.
나는 달그락거리는 자동차에 짐을 싣고 한서현과 김재호를 태웠다.
조수석에 올라탄 한서현은 뒷좌석을 보며 내게 속삭였다.
“정말 쟤랑 같이 가도 되겠어요?”
“형이라고 부르라니까.”
“저 꼴을 보고 형이라고 부르기는 좀.”
유리창에 얼굴을 처박고 입을 헤벌레 벌리고 있는 김재호를 본 한서현이 고개를 저었다.
심지어 머리를 자른 한서현과 달리 타잔처럼 머리를 늘어트리고 있는 김재호는 오늘따라 더 모자라 보였다. 그래도 겨우 옷은 입혀 놔서 사람 꼴은 만들어 놨다만. 여전히 저 치렁치렁한 머리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거기에 아직 목걸이까지 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저 목걸이라도 떼주고 싶은데 가까이만 가면 으르렁거리니 답도 없었다.
김재호를 상대할 때마다 모 양육 프로그램에 나오는 오X영 박사님이라도 된 기분이다.
소리 지르는 게 끝났니? 자, 이제 옷을 입자.
자, 몸부림이 끝났니? 이제 양치를 하자.
김재호 사람 만들기 프로젝트는 웬만한 게이트를 공략하는 것보다 힘들 것 같았다.
뭐, 그래도 일단은.
일단은 내 말을 듣고는 있으니.
“그나저나 그 가면은 꼭 써야 하는 거예요?”
“나름 전국 수배가 된 사람이라서 말이지.”
나는 아까부터 가면을 쓰고 있었다. 홀로그램은 기존에 등록돼 있던 40대 남자의 것을 사용했는데 그 때문에 한서현은 내 얼굴을 볼 때마다 흠칫흠칫 놀랐다.
그래도 강이신의 신분으로는 서울 땅도 밟지 못하게 된 신세니 어쩌랴.
서울에 오자마자 우리는 미용실에 들렀다. 그제야 한서현의 주둥이는 오리에서 사람으로 돌아왔다.
외모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한서현도 쥐 파먹은 머리만큼은 견디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김재호의 머리도 어떻게든 잘라 주려고 했는데 눈치가 빠른 놈은 어디론가 사라져 머리가 끝날 때야 오더라.
쳇, 재빠른 녀석.
그다음 우리는 근처 호텔에 체크인했다.
“두 명 부탁합니다.”
프런트에 있는 직원을 향해 나는 지체 없이 마나를 끌어 올렸다. 거짓말로 신분증과 기타 사항을 적당히 속여 넘긴 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섰다.
“그나저나 그 사람, 아니, 재호 형은 어디로 갔대요?”
우리가 체크인하는 동안 김재호는 또다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글쎄, 알아서 찾아올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이대로 도망간 거면 어떡해요?”
“으음. 그럼 곤란하겠지?”
내 맥 빠진 말에 한서현이 그게 뭐냐고 나에게 타박했다. 하지만 이건 진심이다.
━도망가면 잡지 않을 생각이냐?
‘네, 저번에도 말한 것 같은데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난 설록진처럼 김재호를 세뇌할 생각은 없으니까. 모든 건 김재호의 선택이었다.
“아씨! 깜짝이야!”
문을 연 한서현이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김재호는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허, 도대체 우리가 이 방에 올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경악하는 우리 두 사람을 보며 김재호가 말했다.
“배고파.”
그래, 안 그래도 저 말을 할 때가 됐지.
나는 잔뜩 굳어 있는 한서현의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룸서비스 시킬 테니까 먹고 싶은 거 말해라.”
그렇게 룸서비스를 잔뜩 시켜 테이블에 늘어놓은 뒤, 내가 입을 열었다.
“이번 작전에 재호는 빠진다.”
미래의 김재호라면 빠삭하지만 현재의 김재호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으니까. 내 말에 한서현이 물었다.
“그럼 왜 데리고 왔어요?”
“밥 줄 사람이 없잖냐.”
겨우 그런 이유로? 한서현은 그렇게 묻는 듯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진지했다.
“이 작전에 필요한 인원은 너와 나 둘이다.”
“정말 우리 둘만으로도 될까요?”
전에도 물었던 말이었다. 정말 우리 둘만으로도 되냐고.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 조직의, 아니, 조직이라고도 할 수 없는 우리 팀의 전력은 조악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 옥션에서라면 가능하다.
다름 아닌 수많은 헌터가 가득한 옥션이라서 가능한 작전이다.
옥션은 앞으로 3일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3일이나 남았지만, 근처에는 이미 경호 인력이 가득했다.
옥션에 나오는 아이템이 아이템인 만큼 주변의 감시가 아주 대단했다. 그리고 저 경호 인력 체계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서현 군에 의해 모두 파악되고 있었다.
한서현은 말했다.
“외부 인력은 오십 명쯤, 내부에도 그만큼의 사람이 있어요. 특히 지하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데 여긴 아티팩트가 보호하고 있어서 쥐라고 해도 접근이 어려워요.”
한서현은 미소를 씩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그 근처에 쥐돌이를 세워 놨더니 재밌는 이야기가 들리더라고요.”
이번 경호 인력에는 무려 각범 팀도 포함돼 있었다. 특히 ‘도채희’가 사흘 전부터 이 근처에서 경계 중이란다.
“도채희인가, 그 사람. 병원에 한번 찾아왔었어요.”
한서현의 말에 나는 귀를 기울였다.
“보스에 대해서 아는 게 없냐고 물어봤었죠. 쉽게 포기할 것 같진 않던데.”
“흠.”
내 사건에 도채희가 붙었나. 젠장, 그 여자 꽤나 까다로운데.
“그리고 고위급 국회의원들도 온대요.”
밑에서 각성자들 관련 회담을 한다는 모양이었다. 내가 놀란 건 이번에 오는 국회의원 목록에 설록진, 그 인간이 있다는 거였다.
하긴, 이런 일에 설록진이 빠지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건가.
설록진은 정치적으로는 반각성자 노선을 타고 있지만, 고위 헌터들 사이에서의 그의 평판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왜냐면 겉으로만 욕을 하지 뒤로는 그들하고 붙어먹는 사이였으니까.
‘웃기군.’
두 달 전 뉴스에서만 하더라도 대놓고 시리우스 길드를 욕했는데 말이다. 시리우스 길드의 임원진과 밀회를 하러 오다니 참 낯짝도 두껍지, 두꺼워.
한서현의 말이 길어질수록 내 표정도 가라앉았다.
당연하지만 이번 행사에는 붉은개 길드의 사람들도 왔다. 김명철 마스터는 물론이고, 내 친구인 정호산도.
여러모로 ‘강이신’에게는 지뢰밭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지뢰밭 한가운데에 보물이 있다는 거지.
무척이나 탐이 나는 보물이.
<흡혈왕의 반지>.
이 아티팩트는 주변의 혈액을 흡수해서, 무려 착용자의 치유력을 올려 주는 놈이란다.
게이트의 종류에 따라서는 아예 쓸모가 없는 아티팩트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몬스터들 대부분이 피를 흘린다는 걸 생각해 보면 엄청난 기물이었다.
저거 하나만 있어도 전투 지속 시간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셈이니까.
특히 전위를 맡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아이템이 없었다.
‘정호산에게 딱일 텐데.’
하지만 내가 노리는 건 이 흡혈왕의 반지가 아니다.
<홍염의 마정석>.
마나석이 자연적으로 게이트 안의 마나가 뭉쳐서 생기는 거라면 마정석은 몬스터의 몸에서 발견되는 일종의 내단이었다.
당연히 마나석보다 가치가 높았다. 특히 고위급 몬스터의 몸에서 나온 마정석이라면 그 자체로 이미 훌륭한 아티팩트였다.
가공해서 스태프에 박으면 전설의 스태프가 만들어질 것이고, 검에 박으면 전설의 검이 만들어지겠지.
<흡혈왕의 반지>가 전위에 서는 헌터들에게나 유효한 옵션이라면 이쪽은 원하는 대로 가공할 수 있으니 그 가치가 훨씬 더 높았다. 나 또한 이 마정석을 꼭 써먹어야 할 곳이 있었고.
나머지에 물품에 대해서도 들었지만 다른 데서도 충분히 구할 수 있는 물품들이었다.
결국 중요한 건 저 두 물건의 경매 순서.
이 옥션의 클라이맥스를 앞에 배치하지는 않을 테니, 경매 후반부에 등장하겠지.
우리가 나서야 할 건 그때다.
준비 시간은 단 3일.
“마음의 준비는 됐어?”
한서현은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게걸스럽게 남은 음식을 몽땅 입으로 털어 넣고 있는 김재호를 힐끗 봤다.
너는 사고나 치지 말아 주렴.
옥션 3일 전.
나는 데뷔탕트를 앞둔 귀족 영애처럼 설렜다.
* * *
커피 잔을 산처럼 쌓아 둔 커피 테이블, 그 옆에 있는 소파에 누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여자의 꼴은 폐인 그 자체였다. 잔머리가 이리저리 튀어나오게 올려 묶은 머리,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고 닳아 있는 회색 트레이닝복.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폐인 같아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옆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슈트를 차려 입은 사람이 셋이나 대기 중이었다.
이 언밸런스한 상황 한가운데에 놓인 여자, 진연화는 코끝까지 내려간 안경을 다시 손가락으로 치켜세우며 말했다.
“으으음, 그러니까는. 아무리 해도 이번 옥션은 우리가 먹기 어렵겠네요오.”
말끝을 늘리는 버릇이 있는 그녀의 말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답답함을 유발할 정도로 느렸다.
“이거 원하는 물건도 척척 살 수가 없다니. 시리우스라는 이름이 울어요, 울어.”
그렇게 말한 진연화는 벌러덩 소파에 몸을 묻었다.
“아이 참, 이번만큼은 우리한테 양보를 해도 좋을 텐데. 다들 욕심이 너무 많으시다니까요. 유선제 씨 스태프 하나 해 줘야 우리 길드 면이 서는데.”
최근에 시리우스 길드에 들여놓은 S급의 잠재력을 가진 헌터 유선제는 시리우스의 새로운 얼굴이었다.
이미 S급 헌터를 4명이나 확보했지만, 유선제는 특별했다. 무려 번개를 마음껏 다루는 재능. 잘생긴 얼굴. 좋은 성격.
어쩌면 최연소 7성을 넘어서 8성을 넘볼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의 각성자였으니까.
엔터테인먼트적으로도 굴리기 이보다 더 좋은 보석은 없었다. 그 보석을 제대로 세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게 필요했다.
“홍염의 마정석만큼은 꼭 얻고 싶은데. 내가 입찰해 버리면 뒤로 욕을 엄청나게 먹겠죠오?”
이번에 나오는 홍염의 마정석을 입찰하는 데에는 잘 쟁여 놓은 총알뿐 아니라 주변의 이권까지 신경을 써야 했다.
문제는 시리우스가 저번 옥션에서 소위 너무 ‘해 처먹었다’는 거다. 그래서인지 마스터도 이번에는 주변 눈치를 보라는 언질을 주었다.
“지들은 S급 유망주도 없으면서 아주 유세는 유세예요.”
소파에 늘어진 진연화는 누워서 눈을 깜빡였다. 돈으로 마정석을 차지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질 정치질을 생각하면 머리가 다 아팠다.
“아주 엿 같다 이거예요.”
그렇게 누운 진연화가 슬쩍 옆에 여자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냥 훔쳐 버리면 안 될까나?”
“안 됩니다.”
진연화의 비서인 이혜원은 누가 들어도 상식적인 대답을 내뱉었다.
언제나 기발한 생각을 꺼내는 진연화는 시리우스의 핵심 임원이었지만, 그만큼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말을 꺼내기도 했다. 그걸 적당히 막아서는 게 그녀의 역할이었지만…….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정석은 다른 사람들한테 넘겨줘야 하는걸요오. 그건 싫은데.”
이혜원의 충고를 곧이곧대로 듣는다면 그건 진연화라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혜원은 진연화의 말에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옥션이 이제 3일 남았습니다.”
“3일이면 충분하지 않아요?”
그렇게 말한 진연화는 몸을 번쩍 일으켰다.
“그래! 나쁘지 않아요오. 그래요, 그러면 되는 거예요. 다들 우리라고 생각해도 말만 못 하게 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진연화의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진작 왜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싶었다.
정정당당하게 입찰하지 못한다면 그냥 뒤로 훔쳐 버리면 그만 아닌가. 시리우스에는 더러운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사람들을 시키면 된다.
“절대로 들키지 않게, 그러면 되지, 암암.”
그렇게 말하며 히죽 웃는 진연화를 바라보며 이혜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상사가 또 한 번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이려고 한다는 건 알았지만. 그녀를 막아설 수 있는 권한 같은 건 그녀에게 없었다.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네네, 좋아요.”
부디 진연화의 계획이라는 게 완벽하길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