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화
#15 옥션 (1)
다시는 여기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듯이 사라져 놓고는, 김재호는 이틀 만에 돌아왔다. 그러고서 한다는 소리가 ‘밥 줘’다.
하, 나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밥을 내줬다.
“말, 말할 수 있었냐고요!”
뒤늦게 한서현이 김재호를 바라보며 외쳤다. 하긴, 한서현은 김재호가 말을 못한다고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건넨 밥그릇을 꼭 움켜쥔 김재호의 주변을 돌며 한서현이 말을 쏟아 냈다.
“그동안 다 알아들으면서 모르는 척한 거예요? 돌아온 거예요, 아니면 밥만 얻어먹으러 온 거예요? 다시 갈 겁니까?”
하지만 김재호는 그 말들에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한서현이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말이다.
“참 나! 진짜 너무하네.”
“내버려 둬.”
내 태연한 말에 한서현이 외쳤다.
“보스는 화도 안 나요? 그렇게 멋대로 나가 놓고, 이제는 막 멋대로 들어오고. 얼씨구! 저거 봐요. 철창에 다시 들어가잖아요.”
이틀간 무슨 짓을 했는지 흙투성이가 된 김재호는 곰 인형을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말했잖아, 저 녀석이 하고 싶은 대로 두겠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서현은 김재호의 등을 눈으로 흘기며 혀를 찼다. 한서현이 김재호를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자신이 매일같이 바닥을 구르며 죽어라 훈련할 때, 김재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김재호는 안하무인이었다. 철창에 누워서 자다가 다시 사방을 쏘다니다가 식사 때가 되면 귀신같이 집에 들어왔다.
나는 며칠을 아무런 말 없이 김재호에게 밥을 내주었다.
그리고 오늘.
“김재호.”
나는 김재호를 불렀다. 물론 김재호는 내 말을 듣는 체도 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제대로 끝장을 볼 생각이다.
“그렇게 가 버리면 밥 안 준다.”
그 말에 김재호는 영 못마땅한 얼굴로 내 앞으로 왔다. 털썩 자리에 주저앉은 김재호가 영 불손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역시 이 녀석, 다 알아듣고 있잖아.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순 없어.”
밥 하나 내어 주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언제까지 김재호를 이 상태로 둘 수만은 없었다.
“가라는 거야?”
“아니. 가고 말고는 네 자유지. 하지만 네가 여기에 남고 싶다면, 선택을 해야 해. 여태까지처럼 아무것도 안 할 순 없어.”
“자유롭고 싶은데.”
“자유와 방종은 다르지.”
“그건 또 뭔데.”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멋대로 구는 건 방종이야, 자유가 아니라. 자신을 책임져야만 제대로 된 자유지.”
나는 그렇게 말을 풀어 설명했지만, 김재호는 여전히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뭐, 국어 교실을 열자고 녀석을 여기에 부른 건 아니니. 하지만 앞으로 김재호의 인생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가르쳐 줘야 했다.
“여기에 있고 싶으면, 일을 해야 해.”
“무슨 일?”
“여러 가지 일. 아, 그리고 그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넌 우리를 떠나도 돼.”
내 말에 김재호는 눈을 끔뻑거렸다.
“언제든지?”
“그래. 일단 해 보고 별로면, 가 버리면 돼. 난 널 잡지 않을 거야.”
김재호는 눈을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김재호에게 몇 번이나 다시 물었다. 정말로 우리와 함께해도 좋은지. 내가 시키는 일을 해도 좋은지. 그리고 그때마다 대답은 같았다.
과연 정확히 이해하고 대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대답은 받아 냈다.
“언제든지 떠나도 좋아. 하지만 떠나지 않는다면 넌 내가 책임지지.”
이 아무것도 모르는 벌거숭이 같은 놈에게 이 세상에서 혼자 살아갈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게 내 목표다.
그럼 이제 그동안 꾹 참고 있는 일부터 해치울까.
“일단 샤워부터 하자.”
“샤워?”
“그래. 씻자고.”
지난 몇 주간, 김재호는 전혀 씻지 않았다. 철창 안에 갇혀 있으니 씻길 방법도 없었고 본인조차 씻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꼬질함을 넘어서 쿰쿰한 구린내가 날 정도로 꼴이 엉망이었다. 자르지 않은 머리는 김재호의 얼굴을 몽땅 가려 버릴 정도로 치렁치렁 길었고 손톱과 발톱도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마녀 꼴이었다.
이 산중에서도 하루에 몇 번이나 샤워할 정도로 깔끔을 떠는 나에게 몇 개월간 한 번도 씻지 않은 김재호의 꼬질꼬질함은 사실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내 말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김재호가 난리를 피웠다.
“싫어!”
그러더니 냉큼 나를 피해 도망가는 거 아닌가.
아니, 내가 뭐 못된 짓 하자는 것도 아니고 씻으라고 한 것뿐인데.
“말했잖아! 해야 한다고.”
나는 몇 주간 미뤄 온 샤워를 더 미룰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온몸에 마나를 끌어 올린 나는 김재호를 향해 물을 발사했다.
무려 2획짜리 물줄기는 1획짜리의 허접한 것들과는 달랐다. 팔찌의 마력까지 끌어 올려 맘껏 뿌려 댔다.
“으하하! 속이 다 시원하구만!”
━샤워라기보다는 그거, 좀, 그런데…….
“흑흑흑.”
샤워를 끝마친 김재호가 왠지 서럽게 우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다면 착각이다.
씻는 게 얼마나 기분이 좋은데!
김재호를 씻긴 나는 한서현을 불렀다.
“너도 그 앞머리 좀 어떻게 하자.”
“앞머리요?”
“그래.”
슬쩍슬쩍 바람이 불 때마다 보인 한서현의 얼굴은 제법 잘생겼다. 우울하고 음침한 인상이라서 그렇지 한조희와는 다르게 미소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제법 이목구비가 진했다.
하지만 한서현은 그 잘생긴 얼굴을 언제나 앞머리로 가리고 있었다.
“정체를 숨길 생각으로 앞머리를 내린 거라면 존중해 줄 수도 있지만, 아니, 그런 거라도 앞머리는 너무 부실하지. 차라리 나처럼 가면을 쓰는 게…….”
한서현한테도 가면을 주고 김재호한테도 줄까? 단체로 가면을 쓰면 꽤 멋질 것 같은데.
꽤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이야기를 들은 한서현은 기겁했다.
“가면은 좀. 애초에 그러려고 앞머리를 기른 건 아니에요.”
쩝, 가면이 어디가 어떻다고 그러지? 상처받을 뻔했다.
“그럼 아예 이번 기회에 앞머리를 정리하는 건 어때? 잘생긴 얼굴을 가리는 것도 아깝고 하니.”
“……알겠어요.”
미용실까지 찾아가기도 좀 그러니, 내가 직접 한서현의 앞머리를 잘라 주기로 했다.
“진짜 잘 자를 수 있는 거 맞죠?”
“겨우 앞머리를 자르는 거잖아. 너는 보스를 그렇게나 못 믿니.”
내 말에 한서현은 영 불안한 얼굴을 하고서 의자에 앉았다. 흠흠, 나는 침착하게 가위를 들어 올렸다. 앞머리를 자르는 것쯤이야. 간단하겠지.
싹둑. 한서현의 앞머리가 잘렸다.
잠깐만.
“음.”
이거 날이 기울어진 가위여서 그런지 대각선으로 잘렸다. 왼쪽이 좀 더 길잖아.
하지만 아직 수습 기회는 남았다.
싹둑.
젠장. 이번에는 오른쪽이 조금 더 길었다.
하지만 아직 수습할 수 있어!
싹둑.
젠장.
싹둑.
젠장.
나는 떨리는 손으로 가위를 내려놓았다.
“……서현아.”
내 말에 한서현은 말없이 거울을 꺼내 들었다.
“이게 뭐예요!”
망했다. 망해 버렸다.
한서현의 머리는 엉망진창이 돼 있었다. 아니, 분명 난 길이만 맞추려고 했는데 말이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앞머리라는 것이 완전히 사라져 있더라.
울먹거리는 한서현을 달래며 내가 말했다.
“그, 옥션에 가기 전에 그 미용실 가자.”
“이 꼴로 어떻게 다녀요!”
“미용실에 가면 된다니까. 요새 미용실이 아주 기깔 나요. 무슨 재생 입자를 써서 말이야. 막 없는 머리도 만들어서 붙여 준다니까.”
“미용실까지는 순간 이동해서 가냐구요! 망했어! 망해 버렸어!”
한서현이 울부짖는 꼴을 본 김재호는 내가 가위를 들고 있기만 해도 도망쳤다.
‘젠장.’
김재호 머리부터 자르고 자를걸.
뒤늦은 후회가 머리를 때렸다.
* * *
“이번에 열리는 옥션, 그날 전후로 해서 경비 임무가 떨어졌다.”
박철완의 말에 도채희는 얼굴을 구겼다.
“지금 살인 사건 조사로 바쁘다고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요.”
“진전 하나 없는 조사 말이냐?”
박철완의 말에 도채희는 분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강이신은 마치 이 세상에서 완전히 증발한 듯이 사라졌다. 이제는 더 그놈의 뒤를 쫓을 작은 단서조차 없었다.
아, 하나 있긴 했는데 그 단서를 조사하는 걸 모두가 막은 게 문제다.
“암시장을 조사하게 해 달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요?”
“내가 말했잖냐. 암시장은 우리의 편의를 위해서도 유지되어야 한다고. 각범 팀 경위가 뒤져 댈 곳이 아니라니까.”
“젠장.”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암시장은 필요악이라고 규정한 상태였다. 그곳을 닫아 버리면, 반발이 거셀 거라는 게 첫 번째 문제였고. 두 번째 문제는 그렇게 닫으면 정말로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숨어들 거라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더러운 돈을 받고 그러는 거잖아요.”
“그게 어른들의 사정이라잖냐.”
“저도 어른인데.”
“철딱서니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박철완의 말에 도채희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제가 그곳의 경비를 서게 된 것도 그 어른들의 사정입니까?”
“더는 세금 축내지 말라는 거지.”
“세금을 축내다니요! 여태까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열심히 하면 뭘 하냐. 한 달 동안 전혀 소득이 없는데. 윗분들은 네가 뭘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관심이 전혀 없으셔요. 그냥 결과를 들고 오길 바라지.”
도채희는 주먹을 꽉 쥐었다.
“찾을 겁니다, 무슨 짓을 해서든.”
강이신은 이상했다. 그날 전까지 바벨 아카데미를 졸업했다는 걸 제외하고서는 전혀 특이할 게 없는 인간이, 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사라졌다. 초보 범죄자들이 으레 저지르곤 하는 조금의 실수도 없었다.
범죄에 천부적인 재능이라도 있거나, 동업자가 있거나. 도채희는 후자에 무게를 싣고 수사했지만 수사할수록 동업자의 정체는 흐려졌다.
마음에 걸리는 건 또 있었다. 바로 한조희의 동생 한서현이 실종된 거다. 박철완한테도 그 사실을 알렸지만,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동생한테까지 손을 댄 건 아니겠지?’
병원에서 본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꽤나 돈독한 형제 같아 보였는데.
‘나하고 우리 오빠도…….’
도채희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흩어 냈다.
어쨌거나 강이신을 찾으면 이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겠지. 하지만 이 세상은 도채희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거절은 거절한다.”
도채희는 인상을 구겼다.
“아씨, 가면 될 거 아닙니까!”
“너는 상사한데 아씨가, 뭐냐!”
박철완은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대한민국에서 잘나간다고 하는 사람들은 전부 그쪽에 오니까 몸가짐 조심하고. 아무한테나 시비 걸지 말고.”
“제가 무슨 아무나 들이박는 미친 사람인 줄 압니까?”
들이박잖아.
박철완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에 도채희는 신경질을 내며 뒤돌아섰다.
“됐어요, 갑니다!”
“쯧, 저놈의 성질머리.”
* * *
한서현이 내게 속삭였다.
“이번 옥션에 나올 물건 중에 제일 큰 건 홍염의 마정석과 흡혈왕의 반지예요.”
그 말에 나는 눈을 번뜩였다. 원래 이런 옥션에 큰 거라고 나오는 건 보통 하나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 개나 됐다.
둘 중 하나만 건져도 대박이다.
“아, 그리고 경비는요.”
한서현은 줄줄 정보를 읊었다.
아주 복덩이가 따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