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12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3)
한서현은 형의 영혼을 몸에서 끄집어냈다. 형의 비명이 귀를 울렸다. 몸이 덜덜 떨려 옴에도 한서현은 그의 몸을 일으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타르처럼 검게 물든 한서현의 마나가 한조희의 몸을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한조희의 마지막 기억이 한서현의 머릿속에 새겨지듯 펼쳐졌다.
「아파…… 아파! 아파요, 제발 그만두세요.
괴로워…… 죽고 싶어! 아니, 죽기 싫어.
내 동생은, 내, 내 동생은…….
서현이는, 서현이를 어떻게, 서현아, 서현아!
미안해, 서현아. 형이 미안해. 이렇게밖에 못해서, 형이, 형이 잘못했어.
서현아…… 서현아…….」
마지막에 남은 것은 자신의 이름뿐이었다.
비명이 잠잠해지자, 한조희의 영혼이 눈앞에 떠올랐다. 죽은 것들을 많이 봐 온 한서현이었지만 누군가의 영혼과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소환의 대가일까. 한조희의 영혼은 바스러지듯이 갈라지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한조희는 한참이나 한서현을 그냥 바라보았다.
“형.”
한서현은 눈물을 쏟으며 한조희에게 말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더 미안해.”
한서현의 실력이 부족했던 탓인지, 아니면 한조희가 죽은 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인지 둘 사이의 대화는 불가능했다.
두려움, 분노. 슬픔. 체념과 자신을 향한 걱정.
걱정, 그게 한서현을 무너트렸다.
한조희의 시체는 바스러졌다. 피멍과 상처로 가득했던 살결은 마치 먼지처럼 흩어지고 뽀얀 뼈만이 남았다.
“내가, 내가…….”
그제야 한서현은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형을 언데드로 만들어 버렸다. 스켈레톤은 달그닥거리며 한서현의 앞에 섰다.
“형은 끝까지 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무엇이든 내 뜻대로 따르겠다고,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말라고. 꼭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둘은 ‘계약’하게 되었다고 했다.
“계약을 해제하는 것도 제 의지지만, 도저히, 도저히 형을 다시 돌려보낼 수가 없었어요.”
한서현의 말에 나는 그 녀석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어떻게든 그 개자식들한테 복수하고 싶어요.”
새삼 분노가 다시 떠오른 모양인지 한서현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려면 네 능력을 제대로 알아내야지.”
지금은 부딪쳐 봤자 우리만 깨질 뿐이다. 나는 한서현에게 말했다.
“지금은 그냥 소환만 겨우 할 수 있잖아. 어디까지 가능한지, 뭐가 가능한지 알아내야지.”
이번이 스켈레톤과 처음 계약한 거라면 더더욱 자신의 능력을 잘 알아 두어야 했다.
컵라면 봉지를 잘 정리한 내가 한서현에게 물었다.
“절대 소멸하지 않는다고 했지?”
“네.”
“일단 나하고 붙어 보자.”
“그쪽하고요?”
“그래.”
가볍게 몸을 푸는 나를 보며 한서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재능이 ‘거짓말’이라고 들었던 거 같은데.”
아, 맞다. 이제 전 국민이 내 비밀을 알게 됐다. 빌어먹게도, 전국적으로 수배가 돼 버려서 말이지.
“그거 아니더라도 잡다한 거 있어.”
━잡다하다니!
레이가 화내는 걸 귓등으로 넘기며 나는 한서현에게 말했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네 전력을 보여 봐라.”
우리는 적당한 공터에 자리를 잡았다.
한서현은 긴장한 얼굴로 스켈레톤을 꺼냈다. 이미 한조희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뭐, 불편함도 순간이었지만.
나는 허벅지에 매고 있던 단검을 꺼냈다.
“봐주지 않을 테니까 너도 최선을 다해서 덤벼.”
스켈레톤은 어정쩡하게 몸을 구부렸다. 자세가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혹시나 뭔가 있나 싶어서 주변을 천천히 걸어 보았지만, 여전히 빈틈투성이였다. 나는 놈에게 다가가 빈틈을 파고들어 팔꿈치로 스켈레톤의 목을 날려 버렸다.
순식간에 스켈레톤의 목뼈가 부러지고 해골이 바닥에 떨어졌다.
“생각보다 형편없네.”
마력을 끌어 올릴 필요도 없었다. 그냥 육탄전으로도 간단히 부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스켈레톤은 약해 빠졌다.
단순히 내구도만 구린 게 아니라 전투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움직임이 허술했다.
목뼈가 부러진 스켈레톤은 덜그럭대면서 자신의 머리를 찾았다. 넓적다리뼈를 부숴 버리면 어떻게 되지?
천천히 스켈레톤에게 다가간 나는 스켈레톤의 넓적다리뼈를 발로 찼다. 퉁, 하고 넓적다리뼈가 바깥쪽으로 날아갔다.
넓적다리뼈를 잃은 스켈레톤은 그대로 허물어졌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 바닥에서 꿈틀거리기는 했지만,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멍한 얼굴로 그걸 바라보던 한서현은 입술을 깨물고 스켈레톤을 소환 해제했다.
“다시 소환하는 데에 얼마나 걸려?”
“2, 2시간이요.”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고 말했다.
“그럼 그 전까지 일이나 하자고.”
내 말에 한서현은 내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아까와 달리 아주 순순히 대답한다.
━그래도 네 녀석을 이제는 덜 우습게 여기게 된 것 같은데.
레이의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 * *
2시간 후 스켈레톤은 완벽히 복구된 채로 내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나는 30초 만에 스켈레톤을 부숴 버렸다.
한서현은 말을 잃어버렸다.
“너 연습 많이 해야겠다.”
내 말에 한서현은 얼굴을 붉혔다.
이런 실력을 가진 주제에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했던 게 새삼 부끄러워진 모양이었다.
하긴 진짜 심각하긴 하지. 나는 한서현에게 물었다.
“아카데미에서 전투 훈련 같은 거 하지 않았어?”
“저는 마법사 반이었어서 주로 마나를 다루는 훈련만 했어요.”
“전투 훈련을 아예 안 했다고?”
허. 마나를 사용하는 게 중요한 재능이라고 해도 게이트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법이다. 그래서 바벨에서는 마법사고 뭐고 개같이 굴렸는데. 내 중얼거림에 한서현의 얼굴이 파래졌다.
“바, 바벨이요? 바벨 아카데미 출신이에요?”
“엉, 거기 졸업생인데.”
“거기 졸업생이 왜…….”
“많은 사연이 있다.”
나는 사연이 많은 척 먼 곳을 아련하게 바라보았다. 무슨 오해를 했는지 한서현이 말끝을 흐렸다.
“보, 보스.”
“엉?”
그 호칭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야, 내가 보스라고 부르라고 하긴 했어도 진짜 보스라고 부를 줄은 몰랐으니까.
“제가 부족한 점이 많아요. 그동안 건방지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그러니 부디 가르쳐 주세요. 어떻게 하면 강해질 수 있는지를.”
그 말에 나는 허,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나는 한서현의 더벅머리를 손으로 훑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가르쳐 줄 생각이었거든? 우리는 목적이 같잖냐, 안 그래?”
“네, 네.”
한서현의 말에 나는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신 내가 뭘 시켜도 묵묵히 하기, 알겠어?”
“네.”
일단 난 한서현에게 바벨식 교육을 해 줄 생각이었다. 아무리 네크로맨서라 후방에 빠진다고 해도 지금은 너무 약하니까.
그리고 추가로 확인할 정보들이 있었다.
“스켈레톤은 소환할 때마다 재구성되는 거야? 아니면 네 아공간에 들어가 있다가 튀어나오는 거야? 아공간에 들어가는 개념이라면, 다른 물건도 가지고 갈 수 있나?”
내 질문에 한서현은 눈을 깜빡였다.
“어, 잘 모르겠는데요.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해요?”
“물론이지.”
어떻게든 내 재능으로도 몬스터에게 타격을 입힐 방법을 찾기 위해, 나는 온갖 방법을 다 시도해 보았다.
이건 되나, 저건 안 되나. 남들이 보면 미련하다고 혀를 찰 짓까지 모조리 해 댔다.
비록 아카데미 졸업 전까지 내 재능을 제대로 써먹는 방법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덕분에 얻은 것들도 많다.
“네 재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정확히 아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어.”
나는 한서현과 함께 몇 가지 테스트를 해 보기로 했다.
나는 스켈레톤의 몸에 마카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한서현에게 소환 해제와 재소환을 부탁했다.
다행히 파괴되지 않은 스켈레톤을 재소환하는 데에는 5분밖에 필요하지 않아 금방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재소환된 스켈레톤에는 내가 그렸던 그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재구성되는 게 아니라 조금 전에 소환 해제했던 그 개체가 그대로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재구성이 아니라 어딘가에 보관되었다가 나오는 거라면.”
어쩌면 저 스켈레톤과 함께 다른 무언가를 보관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다음으로 내가 한 건 스켈레톤의 몸에 리본을 둘러 주는 거였다.
“이, 이게 무슨.”
“실험용이잖아, 실험용.”
뭐만 해도 미묘하게 고인 능욕이 되는 것 같다는 죄책감을 애써 무시한 채 나는 한서현에게 재소환을 부탁했다.
놀랍게도 소환된 스켈레톤의 머리에는 리본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그 밖에도 이것저것 스켈레톤에게 주워 보냈고 몇 가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실험 결과 5kg 미만의 질량, 30㎠ 이하의 부피를 가진 물건만이 남는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용량은 아마도 소환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늘어나겠지.”
얼굴이 잔뜩 핼쑥해진 한서현이 주저앉았다. 이것저것을 실험하느라 재소환만 수십 번을 했으니 저럴 만한가.
“토, 토할 것 같아요.”
“그래도 도움이 됐잖아?”
내 말에 한서현은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까지 무언가를 소환해 본 적은 처음이에요.”
“처음이라고? 하긴, 전에는 실습 재료가 없었다고 했나.”
“그것도 그건데……. 그냥, 꺼려져서요.”
한서현은 여태까지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써 본 적이 없었다.
“다들 제 재능이 재수 없다고 말했어요. 꺼림칙하다고. 아카데미에서도 절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죠.”
왜지. 키도 크고 얼굴도 저만하면 잘생겼는데. 물론 자세가 나빠서 키가 큰지도 모르겠는 데다가 그 잘생긴 얼굴은 더벅머리로 죄다 가려서 음침해 보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왕따시키고 그러면 안 되지!
━묘하게 네 평가가 더 나쁜 것 같다만.
‘무슨 소립니까. 사실만 말한 겁니다!’
━며칠 동안 쌓인 게 많았구만.
솔직히 한서현은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나도 마찬가지고.
그래도 왕따의 심정을 가장 잘 아는 건 같은 왕따지.
“그런 놈들 말 신경 쓸 거 없어. 그리고 재능이 뭐가 문제냐? 잘 써먹기만 하면 되지.”
내 말에 한서현이 물었다.
“이상하지 않아요? 나 죽은 형을 스켈레톤으로 만들었는데.”
“뭐, 그거야 좀 소름 돋는 부분이 없다고 말하기에는 좀 그렇긴 하지만 꼭 그런 편도 아니랄까.”
에라이, 이중부정에 말이 다 꼬일 지경이었다.
이제 같은 배를 탄 한서현에게 안 좋은 말을 하긴 싫었지만, 영 이상한 일이 맞긴 했다. 누군가는 소름이 끼친다고 말할 거고 나도 약간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말이다.
“내가 본 네 형이라면 말이다. 너를 지키기 위해서는 뭐든 할 것 같거든.”
나는 한조희라는 사람을 깊게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내가 본 그 녀석이라면 이 녀석을 끔찍하게 아꼈겠지.
“분명 저 스켈레톤은 네 형이 아니야. 하지만 말이야. 만약 저 안에 네 형의 무언가가 남아 있다면 말이지. 그건 무조건 네 편일 거다. 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네 편.”
한서현이 한조희를 스켈레톤으로 만든 건,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 형의 복수를 위해 그 배후를 캐내기 위해서 저 녀석은 형의 끝을, 제멋대로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그에 손가락질할 사람이 나는 아니다.
“네 형이면 차라리 나를 탓하겠지. 어딜 내 소중한 동생을 이런 산중턱에서 고생시키냐고. 아카데미를 다니게 하지는 못할망정 범죄자 집단의 꿈나무로 키울 생각이냐고.”
한조희의 원망이 한서현에게 향할 일은 없을 거다.
“네 형이라면 그렇게 말했을 거야.”
내 말에 한서현은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는 한서현의 발치를 보면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