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12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2)
설록진 의원이 이 모든 일의 배후라는 말에 한서현은 놀라지 않았다.
“그렇군요.”
다만 담담히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그 사람이 모든 일의 배후라고요.”
그러고는 몇 번이고 입속으로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마치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듯이.
“나는 어떻게 찾은 거야?”
“원래부터도 그쪽을 찾고 있었어요.”
그쪽이라는 명칭이 좀 거슬리지만, 그건 넘긴다 치고. 그 전부터 나를 찾았다니.
“왜?”
“돈을 벌 방법을 묻고 싶었어요.”
“돈?”
“형을, 고쳐 주고 싶었으니까.”
그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한조희를 치료해 줄 생각이었다니. 나조차도 한조희는 이미 가망이 없다고, 죽은 목숨일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정말 이 두 형제는 서로를 끔찍하게 아꼈구나.
나는 한서현을 보며 다짐했다.
“나는 설록진 의원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썩은 놈들을 싹 잘라 낼 생각이야. 그럼 너 같은 피해자도 더는 발생하지 않겠지.”
내 말에 한서현은 눈만 깜빡거렸다.
“왜 그런 표정이냐?”
“새, 생각보다 너무 목표가 대단해서.”
뭐, 그야 그렇지. 지금으로서는 가능할까 의문이 들 정도로 말이 안 되는 목표다.
나는 한서현에게 말했다.
“설록진은 지금 이미지가 너무 좋아. 그놈이 범인이라는 걸 밝혀도 아무도 우리 말을 믿어 줄 사람이 없다는 거지.”
“하긴 세상 사람들은 그쪽을 지금 범인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그쪽이라니. 형이라고 불러.”
내 말에 한서현은 입을 꾹 닫았다.
아, 형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상황에 그 호칭은 좀 그런가. 나는 황급히 머리를 뒤졌다. 아저씨? 정신적인 나이 차이를 생각하면 적당한 호칭이겠지만, 지금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으니 애매하고. 마스터? 내가 뭔 주인도 아니고. 흠, 적당한 거 없나.
겨우 고민을 끝낸 내가 말했다.
“보스라든가.”
“보스요?”
“큼큼, 어쨌거나 우리는 타도 설록진이라는 기치 아래에 모이지 않았니? 같은 팀이고 말이야. 그럼 내가 이 팀의 리더니까, 당연히 보스라는 말이…….”
“팀 이름이 뭔데요. 설마하니 그 타도 설록진이라는 구린 이름이진 않겠죠.”
“글쎄.”
나는 그다지 작명 센스가 좋지 못했다.
당장 (나와 대화가 가능한) 팀원이 생길 거라는 생각도 못 해서 딱히 팀 이름 생각도 안 해 뒀고 말이다.
“나중에 부를 생각이 들면 불러 드릴게요.”
거절당했다.
━보스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긴 했으니까.
이게 다 제대로 된 기지가 없어서다.
“그럼 전 뭐부터 하면 되는데요?”
뚱한 얼굴로 내게 그렇게 묻는 한서현에게 내가 말했다.
“삽질 잘하냐?”
* * *
내 말에 기겁했던 한서현은 기지를 만드는 중이었다는 내 말에 혀를 차면서도 직접 몸을 움직여 나를 돕기 시작했다.
━사령술사라면서, 아무것도 소환하지 않는군.
‘자기 형을 스켈레톤으로 만들었다지 않았습니까. 자기도 형을 부르기엔 좀 그런 모양이죠.’
죽은 형을 부려 먹는 것도 좀. 아무리 스켈레톤이 된 지금은 한조희의 자아가 남아 있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지, 좀 그래.
나는 손도끼로 주변의 나무를 하나씩 해체하기 시작했다.
퍽, 퍽. 손도끼에 힘을 실어 나무를 패자 점차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체력 단련을 하긴 할 생각이었지만, 이렇게까지 개고생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쓱, 나는 티셔츠를 들어 올려 땀을 닦았다. 티셔츠 밑에 보이는 복근이 제법 선명해졌다.
그동안 그 개고생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무는 왜 이렇게 많이 해 두는 거냐? 아직 여름인데.
“이걸로 가구도 만들고, 장작으로도 쓰고요.”
필수적인 아티팩트들이야 금 박사의 도움으로 들여놨다지만, 가구 같은 것까지 배송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여기서 만들어 쓸 수밖에.
나는 주변에서 흙을 퍼와 시멘트도 만들었다. 모래의 질이 영 별로지만, 동굴의 바닥을 고르게 만들 용도니까 괜찮겠지.
나무들은 잘 패서 한쪽에 쌓아 두었다. 장작으로 만들기 위해서든 가구를 만들기 위해서든 잘 말려 두어야 했으니까.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질 무렵이었다. 나는 한서현을 불러다 밥을 먹였다.
오늘도 즉석식품이었다. 으으, 질린다. 소가 여물을 질겅거리듯이 불어 터진 면발을 입에 집어넣고 있을 때였다.
“언제까지 여기에서 땅이나 파댈 거예요?”
“기지를 완성할 때까지?”
게다가 김재호를 저 상태로 두고 나다닐 수도 없고. 다행히 김재호는 슬슬 나에 대한 경계심을 낮추고 있었다. 여전히 나를 싫어하긴 해도 내 그림자한테까지 달려들려고 했던 전을 생각해 보자면 엄청난 발전이었다.
음, 아무래도 몇 달은 이대로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막 그렇게 생각하는 내게 한서현이 물었다.
“정말 여기에서 집만 지을 거예요?”
며칠째 기지를 짓는 일에만 진심인 나를 보며 한서현은 답답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단순히 기지만을 짓기 위해 여기에 처박혀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은 여기에 있는 게 최선이기도 해. 알잖아, 지금 내가 네 형의 살인으로 누명을 쓰고 있다는 걸 말이다.”
내가 그렇게 말해 두었지만, 한서현은 전혀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저렇게 속이 뻔히 보여서야. 아직 어리기 때문일까.
“상황이 이러니 계속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요?”
“나가서 뭘 할 수 있는데?”
“그거야…….”
할 말이 없겠지. 답답하기는 해도 당장 뭘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어린애였으니까.
“그래도 전 수배는 당하지 않은 상황이니까. 저라도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뭘 할 생각인데.”
“뭐라도요.”
나는 볼을 긁적거렸다. 철이 없다고 무시하기에는 한서현이 무슨 생각인지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어서였다.
하긴 한서현을 이대로 가만히 방치하는 것도 좀 그렇긴 하지.
“그럴 시간에 네 훈련을 하는 건 어떻냐?”
“훈련이요?”
“그래. 솔직히 널 내보낼 수 없는 데에는 네 실력을 모른다는 이유도 있으니까.”
나는 일부러 나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원래 어린애일수록 자기 나이에 예민하니까 말이지.
“언데드는 얼마나 소환할 수 있냐?”
“……지금 당장은 쥐 다섯 마리, 스켈……레톤 하나를 운용하는 게 한계예요.”
“마나가 모자라서?”
“마나는 충분하지만, 그 정도밖에 정신력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머리가 쪼개질 듯이 아프거든요.”
흠, 턱을 쓰다듬은 내가 물었다.
“모든 개체를 네가 일일이 조종해야 하나?”
“개체의 크기가 작으면 상관이 없는데, 스켈레톤은 제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조종하는 느낌이에요. 정신력이 온통 거기로 쏠린달까.”
그러니까 작은 동물은 간단한 의지만으로도 조종할 수 있지만, 스켈레톤은 불가하다는 건가.
네크로맨서라면 물량전으로 밀어붙여야 하는데, 한 번에 조종할 수 있는 개체가 그렇게 적다는 건 문제였다. 작은 동물은 전력으로 칠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럼 전투에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건…… 네 형뿐이냐?”
“네.”
“혹시 다른 스켈레톤은…….”
“없어요.”
이거야, 참. 그 밖에도 나는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한서현은 지나칠 정도로 자신의 재능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아무래도 재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체가 필요하다는 점 때문인 것 같았다. 하긴 한서현이 무리를 해서 돈을 벌려고 했던 것도 첫 번째 실습 재료를 구해 주기 위해서였다고 했지.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거야, 원. 한서현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알겠다.
그건 제대로 된 교육이었다.
“흠, 네 재능을 잘 알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어?”
나는 한서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서현이 지금 소환한 스켈레톤은 무려 한조희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한서현의 능력을 정확히 알아내기 위해 나는 몇 가지 실험을 할 생각이었고, 그중에는 ‘과격한’ 종류의 것도 있었다.
잘못하다가는 고인 능욕이 될 수도 있고, 실험 도중에 스켈레톤이 훼손돼 버릴 수도 있기에 중요한 문제였다.
내 질문에 한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첫 번째로 계약한 스켈레톤은 특별해요. 다른 애들과 달리 소멸되지 않는다고 적혀 있거든요.”
“그런 능력이 있다고?”
“네.”
한서현은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창의 메시지를 적어서 내게 보여 주었다.
━ 소환·계약 ━
죽은 자와 계약하여 자신의 소환물로 삼을 수 있다.
첫 번째로 계약한 소환물은 각성자와 함께 성장하며, 절대로 소멸하지 않는다. 훼손된 뒤에는 시간에 따라 회복된다. 마나를 투입할 시 회복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여전히 불친절한 설명이지만, 필요한 정보를 얻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니까 한서현의 첫 번째 스켈레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소멸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혹여 손상되어도 시간과 마나만 있으면 재생된다는 뜻.
그나저나 ‘계약’이라니.
“계약이라면, 아무거나 언데드로 만들 순 없는 거야?”
내 말에 한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지가 없는 소동물은 괜찮지만 개 정도 사이즈만 돼도 계약할 때 의지가 필요해요.”
그래서 쥐가 아니라 첫 번째 스켈레톤이 첫 계약의 대상자가 된 거구나. 이해와 동시에 새로운 질문이 떠올랐다.
“그럼 네 형은…….”
한조희는 한서현의 스켈레톤이 되는 데에 동의해 준 건가.
내 시선에 한서현은 얼굴을 구겼다. 꽉 쥔 주먹을 보니 영 안쓰러웠다. 아픈 기억일 것 같아서 일부러 묻지 않았는데, 저런 표정을 하는 걸 보니 아예 모르는 척을 하기도 뭐하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데?”
내 말에 한서현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씀드렸던 대로 그날 전 그쪽 뒤를 밟고 있었어요. 쥐와 새를 불러서 정보를 캐고 있었죠.”
그 누구도 내 뒤를 쫓지 못할 때, 한서현은 나를 찾는 데에 거의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막 나에 대한 정보를 얻고 나에 대해서 찾으려고 할 때.
휴대폰이 울렸다.
병원에서 온 전화였다.
연락을 받은 한서현이 미친 듯이 병원으로 갔을 때는 이미 한조희가 그렇게 된 다음이라고 했다.
“병원에서 실종된 것도 아무도 몰랐다고 말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죠. 형은 하루에 세 번 투석을 받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대요. 아무도 몰랐대요. 돌아왔을 때는 이렇게 돼 있었다고.”
그때가 떠오르는지 주먹을 꽉 쥔 한서현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다들 그러더라고요. 형이 죽기 전에 그쪽 이름을 말했다고. 그러니까 그쪽이 범인이라고.”
“넌 안 믿었구나.”
“그쪽은 형 근처에 오지도 않았으니까.”
나를 쫓고 있었던 한서현은 내가 범인이 아님을 알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두가 내가 범인이라고 말했다. 진짜 범인이 따로 있는데, 아무도 진범을 찾을 생각조차 안 했다.
“그래서 전 형을 봐야 했어요. 다들 말렸죠.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충격이 클 테니, 보지 않는 게 나을 거다. 하지만 그렇게 넘기면 전 평생 진범을 알 수 없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형을 보러 갔어요.”
한조희를 앞에 둔 한서현은 무너질 것 같은 몸을 가까스로 일으켰다. 형의 몸은 참혹했다. 온몸에 성한 구석이 없었다. 이미 죽어 가고 있던 사람이었다. 이미 자신을 위해 모든 걸 불태우고 재밖에 남지 않은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그 재를, 짓밟고 또 짓밟았다. 침을 뱉고 모욕했다.
그래서 한서현은 형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것이 둘의 마지막 재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