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29화 (29/352)

제29화

#11 억울합니다 (3)

푸쉬 앤 캐시에 성실하게 근무하고 있는 직원 김두식은 점심 식사를 위해 바깥으로 나왔다. 까칠한 상사에게 같이 먹겠냐고 물어봤지만, ‘네 얼굴을 보면 밥맛이 떨어진다.’라는 이유로 기각당했다.

그렇게 못난 얼굴은 아닌데. 우리 엄마는 잘생겼다고 했단 말이야.

김두식은 어딘가 처량한 모양새로 국밥집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다.

패스트푸드나 사 먹을까 했지만, 그럴 바에야 든든하게 국밥을 먹는 게 낫지.

얼굴만 반반하지 성질은 더러운 상사를 모시기 시작한 지 육 개월 차. 인생은 험했지만, 뜨끈한 뚝배기에 담겨 나온 뽀얀 순댓국에 빨간 양념을 풀어 넣어 한술을 뜨니 속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뉴스에서는 웬 잔악무도한 살인마에 대한 공개 수배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쯧쯧, 요새 시대가 어느 땐데 저런 범죄나 저지르고 말이야.”

자신처럼 성실하게 회사에 근무하면서 돈을 벌면 안 되는 것인지. 각성자라는 것들은 영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정정당당한 주먹 세계에 저런 더러운 것들이 들어오다니.

근데 어째서인지 저 뉴스에 나온 놈이 아주 낯설지가 않았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정말이지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머리는 나빠도 직업 특성상 한번 본 얼굴은 잘 잊어버리지 않는 김두식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내가 저놈을 어디서 봤더라.

그리고 그 얼굴이 떠올랐을 때, 김두식은 반쯤 남은 순댓국을 두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놈이다! 1억 3천!”

그리고 달려간 푸쉬 앤 캐시 사무실.

“시, 실장님 보셨습니까?”

부들부들 떨면서 뉴스를 보고 있는 최인혁의 얼굴이 들어왔다.

X 됐다.

김두식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 * *

동굴 바닥에는 도톰하게 박쥐의 분변이 깔려 있었다. 내가 그곳에 발을 디디자마자 분변에 꼬인 벌레들이 스스슥 하고 흩어졌다.

━끼야아악!

“뭡니까, 그 정중하지 못한 비명은.”

━난, 나는 이 세계에서 벌레가 제일 싫단 말이다! 설마 이런 불결하고 칙칙한 곳에서 머물 생각은 아니겠지?

생각보다 엄청나게 도련님이라니까.

“이곳에 인기척이 계속 느껴지면, 박쥐들은 떠날 겁니다. 박쥐가 없어지면 분변이 쌓일 리도 없으니 벌레들도 사라질 거고요.”

박쥐란 생명체는 예민하다. 몬스터라면 모르겠지만, 일반 야생 박쥐는 인간들의 기척을 이겨 내지 못하고 이곳을 곧 떠날…….

그때 내 머리 위에 뜨끈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으아악! 이게 뭐야!”

박쥐의 분변이었다. 천장에 붙은 박쥐들은 마치 나를 비웃는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놈들아, 나가라!”

내가 소리를 지르건, 팔을 휘젓건 마찬가지였다.

이런 짓까진 하지 않으려 했는데.

나는 마나로 만든 불덩어리를 사방으로 쏘아 댔다. 활활 불타는 불덩이가 자신들에게 날아들자 박쥐 떼는 그제야 동굴 바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집을 빼앗는 불의한 침입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을까. 녀석들은 떠나기 전 내 몸에 선물을 하나씩 남기는 걸 잊지 않았다.

“저 빌어먹을 놈들이!”

순식간에 똥투성이가 된 나는 욕을 겨우 삼켰다.

━하하! 네 꼴을 봐라! 완전히 똥투성이로구나! 저 짐승들도 제 보금자리를 빼앗는 놈이 누군지를 아는 것이지.

나는 레이의 말을 귓등으로 넘겼다.

박쥐를 쫓아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박쥐가 남긴 분변을 치우는 것도 일이었다.

“이럴 때는 물청소가 최곤데.”

나는 손에서 물을 내뿜었다.

푸슈슉.

내 발밑에 떨어진 물줄기를 보며 나는 입을 닫았다.

“젠장.”

━푸하하! 네놈의 능력으로 여길 깨끗하게 청소하려면 10년도 더 걸리겠다.

얄밉지만 레이의 말이 맞았다. 근처 하천에서 물을 길어올까도 생각했지만, 동굴의 규모를 본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음, 그건 무리다.”

나는 물을 길어 온다는 작전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나중에 상수도 장치를 설치해서 청소하면 되지, 뭐. 마나석만 공급하면 퐁퐁 물을 뿜어 대는 아티팩트가 있는데 그 고생을 할 필요는 없지.

금 박사에게 부탁해야 할 물품이 늘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필요한 물품을 하나씩 꼽았다.

“일단 기본적인 장치는 해 둬야지.”

적어도 전기, 수도 시설만큼은 확실하게 갖춰 두어야겠지. 필요한 방을 생각하는 것도 간단했다. 자고 먹고 싸고. 침실, 주방, 화장실은 필수였다.

동굴은 그 모든 설비가 들어갈 정도로 거대했지만, 일단은 무얼 들여놓기 전에 이 안을 확실하게 청소해 두어야 했다.

동굴 안에 가득 차 있는 분변을 본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야말로 한숨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막막한 작업량이었다.

나는 일단 동굴 바깥에 텐트를 쳤다. 게이트 공략 때도 사용하는 것으로 아티팩트까지 장착되어 임시로 살기에는 문제가 없을 만큼 시설이 좋았다.

하루에 물을 15L까지 생산하는 수도 시설도 붙어 있는 데다가 정화 시설도 붙어 있어 유사시에는 내 몸에서 나간 물을 재활용할 수도 있었다.

영 찝찝하니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내 텐트를 본 레이가 감탄을 내뱉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허접하더니, 시설이 꽤나 괜찮구나.

“그만큼 세상이 발전했으니까요.”

━기지로는 몇 명이나 데리고 올 생각이냐.

레이의 말에 나는 천천히 눈을 굴렸다.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들을 천천히 훑은 내가 입을 열었다.

“흠, 다섯 명에서 일곱 명 정도? 일이 잘 풀린다면 말입니다.”

내 바벨 아카데미 동기이자, 시리우스에 졸업과 동시에 지명된 S급 헌터 유선제라든가, 빙마리 같은 괴물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 없겠지만, 갈 곳 없이 버려지는 놈들도 많으니 그런 사람들을 끌어들이면 꽤 괜찮은 전력이 되겠지.

“일단은 여기에서 제 일을 도울 인부 하나 정도라도 빨리 데리고 올 생각입니다.”

농담이 아니고 혼자서 여기 일을 하다가는 진짜 뼈가 삭아 죽을 것 같아 그렇다.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금방 구할 수 없을 텐데.

“돈만 있으면 안 될 거 없더라고요.”

* * *

“환불은 삼 일 내로만 가능하고, 삼 일 이후에는 매입만 가능합니다. 매입의 경우에는 가격을 다 드릴 수 없고요.”

워낙 개성적인 사람이 많은 곳이니만큼, 주인장은 까만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나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가게 주인의 걱정은 다른 쪽이었다.

“정말 저놈을 사실 생각입니까?”

“네. 그러니까 빨리 주시죠.”

나는 토큰을 주인의 손에 얼른 들려주었다.

쿨거래였다. 5억을 들고 왔는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사이 3억 5천까지 떨어졌더라. 덕분에 돈을 아꼈다.

흠, 이렇게 말하니까 정말 인신매매범이 된 것 같은데.

━된 것 같은 게 아니라 그냥 그거 아니냐.

‘뭐, 그도 그렇네요.’

내 토큰을 확인한 가게 주인은 ‘물건’을 가지고 오겠다고 말하며 뒤로 사라졌다.

비인간적인 행위가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진다고는 하지만, 이곳에만 오면 내 인간성이 시험을 받는 기분이었다.

잘 닦인 케이지 속에 진열된 ‘물건’들에게서 나는 필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에 있습니다.”

가게 주인은 거대한 케이지를 끌고 내 앞으로 왔다.

━근데 정말 저 녀석을 살 생각이냐? 상태가 영 안 좋아 보이는데.

레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이상한 말은 아니었다. 철창 안에 갇힌 김재호는 전보다 훨씬 더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으니까.

온몸은 상처투성이였고 재갈이 물린 입에서는 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 와중에서도 반항심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눈동자는 정말이지 무시무시했다.

제대로 밥도 먹지 못해 갈비뼈가 다 드러날 정도로 말랐는데도 아직까지도 반항할 힘이 남아 있다니.

‘그래도 예전에는 꽤 우리 사이가 괜찮았거든요.’

설록진이 머리를 휘저어 바보로 만들어 둔 다음이라고 해도 김재호는 여전히 사람을 가렸다. 그런 김재호가 가장 잘 따랐던 게 나였다. 그야, 놈을 인간적으로 취급하는 것도 나밖에 없었지마는.

덕분에 나는 김재호 담당이 되었다. 김재호가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이른바 ‘자살 명령’을 맡기 전까지는 나도 녀석의 담당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지.

그때만큼은 내 명령이라면 뭐든 하는 놈이 미웠다. 차라리 도망가라고 속으로 몇 번이나 빌었는데도 놈은 끝끝내 내 명령을 따라 사지로 걸어갔다.

자기가 죽을 거라는 걸 뻔히 알았으면서도, 놈은 내 명령을 지킨 거다.

그리고 돌아오지 못했지.

‘참 다시 생각해도 설록진은 개자식이 맞다니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나는 쓰게 웃었다.

김재호가 철창 사이로 으르렁거리는 걸 본 레이가 말했다.

━저거, 저거! 풀어주면 당장 네놈을 물어뜯을 것 같은데. 정말 괜찮은 거냐?

‘으음, 천천히 정을 주면 괜찮지 않을까요?’

하지만 레이의 말대로 확실히 분위기가 살벌하긴 했다.

“그으으.”

콰아앙!

당장에라도 철창을 뚫고 나올 것 같은 녀석을 본 나는 재빨리 주인에게 물었다.

“그, 아까 전기 충격 목걸이는 서비스로 주신댔죠?”

* * *

나는 김재호를 진정시킬 수 있다는 진정제를 잔뜩 받았다. 코끼리 가죽도 뚫어 버릴 것 같은 주사기를 보며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내 표정을 살핀 가게 주인은 계속해서 환불은 안 된다며 으름장을 놨다.

나중에 기운이 다 빠졌을 때 살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슬쩍 머릿속에 들었다.

이 녀석을 사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동굴까지 끌고 가는 것도 문제였다.

가게 주인은 원하는 곳까지 배송해 주겠다고 말했지만, 기껏 산중턱에 비밀 기지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그곳까지 배송을 시키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다행히 나에게는 든든한 호구, 아니, 지원자가 있었다.

[산중턱까지 옮겨 달라고, 그걸?]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하는 금 박사에게 내가 재빨리 덧붙였다.

“그리고 필요한 게 있는데요.”

내가 말해 주는 목록에 금 박사는 질렸다는 듯 신음을 흘렸다.

[필요한 게 생기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다만, 정말 단단히 벗겨 먹으려고 작정을 했구만. 어디 셸터라도 지을 생각이냐?]

“뭐, 당분간 바깥을 돌아다닐 수는 없게 됐잖습니까?”

다행히 금 박사는 내가 이런 물건을 사는 이유가 수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당분간은 몸을 사려야 할 테니까. 어디 벙커라도 짓고 안 나오려는 선택, 아주 좋아! 나 같으면 그냥 업체한테 맡겨 버렸을 테지만.]

그러게, 그냥 어디 업체한테 벙커나 지어 달라 그럴 걸 그랬나. 뒤늦은 후회가 머리를 스쳤다.

그래도 뭐냐, 기지를 직접 짓는 건 로망 같은 거니까.

금 박사는 최대한 빨리 내게 짐을 보내 주었다. 다음 날, 나는 금 박사가 보낸 배달부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을 만난 나는 그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금 박사를 믿지 않는 건 아니지만, 완전히 믿는 것도 아니라서.

“절벽 끝까지 짐을 옮겨 주시기 힘들었을 텐데, 감사드립니다.”

여기는 절벽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지만, 내 거짓말에 속은 남자들은 고개까지 끄덕였다.

내가 인부들을 속여 넘긴 걸 본 레이가 말했다.

━네놈은 네 재능이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아무래도 이건 꽤나 괜찮은 능력 같단 말이지.

“그래 봤자 이런 데에밖에 못 써먹지 않습니까. 전투에는 조금의 도움도 안 되고요.”

내 말에 레이가 무어라 꿍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상자로 다가갔다. 저 거대한 나무 상자 안에는 김재호가 갇혀 있는 철창이 있었다. 기껏해야 가로세로 2㎡가 조금 안 되는 작은 공간.

나는 타카로 박혀 있는 나무 상자를 부수듯이 열었다.

부서진 나무 상자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었다.

처음, 김재호는 마치 짐승처럼 해를 피해 구석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마침내 모든 장애물이 제거되고 철창을 가리던 그림자도 모두 사라졌다. 김재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햇빛이 익숙지 않다는 듯 가만히 굳어 눈만 껌뻑였다.

햇빛을 꺼리는 김재호를 위해 천이라도 둘러 줄까 생각할 때였다.

김재호의 시선이 천천히 하늘로 향했다.

푸르고 맑은 하늘로.

모든 것을 증오하듯 날뛰던 그는 한참 동안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이 우리 사이로 쏟아졌다.

━그래도 햇볕 좋은 거는 아는구나.

레이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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