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11 억울합니다 (1)
훅, 훅. 정호산은 자신에게 날아드는 쇠공을 받아쳤다.
몸에 깃든 마나를 쓰지 않고 근력만을 이용해서 거대한 쇠공을 받아치는 이 훈련은 김명철이 직접 정호산에게 전수해 준 것이었다.
‘마나에만 의존하면 결국 언젠가 한계가 오기 마련이다. 뿌리가 깊지 못한 나무가 태풍에 뽑혀 나가듯이, 뿌리를 든든하게 만드는 게 언제나 가장 중요하다.’
김명철이 제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정호산은 자신에게 날아드는 거대한 쇠공에 집중했다.
부우웅, 공중에 떠올랐던 쇠공이 지구의 중력에 이끌려 추락하기 시작했다. 위치에너지는 그대로 운동에너지가 되어 엄청난 속도로 정호산에게 쇄도하기 시작했다.
온몸의 근섬유를 쥐어짜 내서 한 점에 그 모든 힘을 집중시킨다.
퍼어엉, 정호산의 주먹에 맞은 쇠공이 다시 공중으로 떠올랐다. 정호산은 숨을 쉴 새도 없이 이 과정을 반복했다.
온몸의 근섬유와 근골에 과부하를 걸어 손상시키고 다시 만드는 것. 온몸의 뼈와 근육을 잘게 부쉈다가 다시 재조립하는,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견디지 못할 가혹한 훈련이었다.
하지만 근육이 찢겨도, 온몸의 뼈가 으스러져도 금세 회복할 수 있는 정호산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훈련법이 없었다.
오늘 정호산이 이곳을 찾은 건 단지 몸을 단련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온몸을 짓누를 듯 짓쳐 드는 쇠공을 주먹으로 쳐 내며 정호산은 생각에 빠졌다.
정말 강이신이 그 모든 일을 저지른 걸까?
그 자리에서 자신의 눈으로 직접 강이신을 목격했음에도 정호산은 아직까지도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알던 강이신은 그런 짓을 저지를 놈이 아니었으니까.
그냥 불법 게이트 채굴 일에 얽힌 거라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하지만 살인이라니. 사람을 죽였다니.
아카데미를 다니며 유난히 손속이 매섭다는 평가를 받았던 강이신이지만, 실제 살인을 저지른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날 정호산 앞에 나타난 강이신은 덤덤해 보였다. 살인 같은 큰일을 저지른 사람 같지가 않았다.
‘전부 착각이 아닐까.’
그 안에 시체가 있었다고 하지만, 강이신이 죽였다는 명백한 증거는 없지 않은가.
다른 누군가가 살인을 저질렀고, 강이신은 그곳에서 사람들을 구조해 데리고 나오기만 한 거 아닐까?
김명철 마스터는 강이신에게 빚이 있었다고 했다. 아주 막대한 빚. 실제로 확인해 보니 제3금융권에서 1억 3천만 원을 빌린 기록도 확인되었다.
잘못 걸리면 인생을 종칠 수도 있는 업체라 웬만큼 생각이 박힌 인간이라면 가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1억 3천만 원이나 빌렸다니.
대체 무슨 이유로?
돈이 급한 거라면 자신에게 오지.
물론 정호산도 아직까지 그런 큰돈을 턱턱 융통할 만큼 상황이 좋진 않았다. 5성 헌터라고는 해도 아직 수습 기간을 채우고 있는 데다가 길드에 들어오며 구매했던 아티팩트의 대금을 아직 갚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정호산은 5성 헌터. 1억 3천 정도는 마련할 방법이 있었다. 정말 급한 돈이었다면, 자신에게 왔다면 어떻게든 융통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자신에겐 한마디 언급도 없이 사채나 땡겨 쓰고.
눈앞에 강이신이 있다면 머리를 쥐어박아 주고 싶을 정도였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그렇게 머리를 쥐어박고 그 녀석을 다시 데리고 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내 친구와 마주 볼 수 있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정호산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내질렀다.
터어엉.
쇠공이 다시 허공으로 솟구쳤다.
아카데미의 졸업을 앞두었을 때였다.
“야, 축하한다. 붉은개 길드가 널 지명했다며. 네 1지망이었잖아?”
그렇게 말하는 강이신의 얼굴을 정호산은 차마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야, 왜 그러냐. 꼭 죄인같이 구네.”
졸업 때까지 강이신을 헌터로 지명한 길드는 없었다. 당연했다. 그는 끝끝내 어떤 몬스터도 사살하지 못했으니까. 짐꾼이라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헌터로서 그를 고용할 길드는 없었다.
졸업하기도 전 그를 데리고 가고자 하는 길드가 줄을 섰던 정호산과는 달리.
“가지 말까?”
정호산의 말에 강이식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날 얼마나 못난 놈으로 만들 생각이야?”
“미안하다.”
여전히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는 정호산을 바라보며 강이신이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 더 만들지 않겠다며. 다시는 게이트 브레이크 같은 거, 일어나지 않게 막겠다며.”
재능을 각성했을 때, 그리고 그 재능이 무려 A급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정호산이 말했던 목표였다.
“뭐냐, 그 후진 꿈은. 그렇게 영웅 노릇 하면 누가 알아줄 것 같아? 알잖아. 다들 유선제나 빙마리 같은 멋진 사람들만 좋아하는 거. 번개술사에 빙결술사라니, 얼마나 멋져. 보기만 해도 번쩍번쩍하고 반짝반짝하잖냐. CF도 몇 개나 계약하고 말이지.”
슬쩍 정호산을 흘겨본 강이신이 한심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넌? 너는 뭐 개뿔도 없지. 육체 강화라니. 잠재력이 A급이어도 멋대가리라고는 하나도 없고 말이야. 아무도 눈여겨보지도 않는 궂은일이나 하려고 들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강이신의 말에는 악의가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러움까지 엿보였다.
“그러니 나라도 널 응원할 수밖에 없잖냐.”
“이신아.”
“정말 나한테 미안하면 계약금이나 잔뜩 받아서 나 주지 그랬어. 그 길드 마스터가 엄청나게 부르지 않았냐? 그걸 다 마다하다니.”
“나한테는 너무 큰 돈이었어.”
“그래, 네놈이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에휴, 떠먹여 줘도 못 먹는 놈.”
강이신은 툭 정호산의 등을 치며 말했다.
“이왕 가는 거 잘해라. 바보 같고 등X 같긴 한데, 그래도 네 선택이니까 언제 어디서든 응원할 거야, 난.”
그렇게 말해 놓고는. 언제 어디서든 내 꿈을 응원하겠다며. 그랬던 네가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건데.
정호산의 앞에 있던 쇠공이 그대로 우그러졌다.
“아.”
자신도 모르게 재능을 써 버리고 말았다. 정호산은 당황한 얼굴로 손을 뒤로 물렸다. 정호산을 혼낼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괜히 눈치가 보였다.
이것 또한 자신의 잘못 같아서.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정호산은 땀에 젖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런 정호산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정호산은 바로 고개를 돌렸다.
경찰 제복을 입은 20대 초중반의 여성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경찰이 자신은 왜 찾아온 걸까.
정호산 앞에 멈춰 선 그녀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정호산 씨. 각성자 범죄 전담 팀 소속 도채희 경위라고 합니다.”
그 인사에 정호산의 눈동자에는 경계심이 떠올랐다. 각성자 범죄 전담 팀이라. 그녀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번 게이트 사건 때문이라면 이미 관련 자료는 전부 길드 측에서 제출한 걸로 압니다만.”
정호산의 말에 도채희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하지만 정호산 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 도움이요?”
“네, 상황이 바뀌었거든요.”
상황이 바뀌다니. 그게 무슨 소리일까.
도채희의 표정을 살핀 정호산은 그것이 좋은 의미가 아닐 거라는 걸 짐작했다.
“게이트 불법 채굴 현장에서 구조되었던 한조희 씨가 오늘 아침 병원에서 사망한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한조희라면 정호산도 안다. 그 현장에서 유일하게 강이신과 안면이 있던 사이라서 특별 조사도 받았다고 들었으니까.
그 사람이 죽었다고? 잠시 놀랐지만, 곧 그러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나 중독 현상 때문에 시한부라고 듣긴 했습니다만…….”
정호산의 말에 도채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마나 중독 현상 때문에 사망한 게 아닙니다. 그는 살해당했어요. 온몸에는 고문에 대한 흔적이 있었습니다. 배에는 ‘입을 함부로 놀린 죄’라고 새겨져 있었죠.”
도채희의 말이 길어질수록 정호산의 눈동자는 떨리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죽기 직전 피해자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이런 짓을 저지른 건 강이신 씨라는.”
그 말에 정호산은 입을 벌렸다.
말도 안 돼. 절로 그런 소리가 나왔지만, 차마 경찰관 앞에서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강이신 씨는 지금 전국에 수배가 된 상태입니다. 이미 범죄자로 낙인이 찍혔다는 뜻이죠. 아시겠지만 수배가 뜬 각성자가 체포에 불응할 경우…….”
“즉시 사살이죠.”
정호산은 도채희의 말을 끊었다. 자신보다 머리 두 개는 큰 정호산이 자신을 무시무시한 눈동자로 노려보는 중이었지만, 도채희는 조금도 긴장하지 않은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예. 그리고 이미 쫓기고 있는 와중에 이런 범죄를 저지른 강이신 씨의 경우에는 저희도 조금 더 강경 대응할 수밖에 없겠죠.”
그 말에 정호산은 얼굴을 구겼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제가 여기에 온 건 당신의 친구를 살릴 기회를 주기 위해섭니다.”
그 말에 정호산은 주먹을 꽉 쥐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이신아.
도채희가 말했다.
“강이신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더군요. 하지만 강이신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가장 친한 친구였다고요?”
“네.”
입 안이 썼다. 가장 친한 친구였음에도 이번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전혀 몰랐으니까.
“같은 보육원을 나왔고, 같은 아카데미를 나왔다고요. 그리고 그 아카데미가 무려 바벨……. 놀랐어요, 솔직히 바벨까지 나왔을 줄은 몰랐으니까.”
바벨의 수치, 강이신을 언급할 때 늘 따라붙던 말이었다. 악착같이 버텨 유급이나 낙오는 면했지만, 강이신을 좋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학창 시절부터 유난히 폭력적인 성향을 가졌었다, 그렇게들 말하더라고요.”
“아니요,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강이신 씨와 전투 수업 중에 양호실로 실려 간 학생이 다섯이 넘는데도요?”
입 속에 몇 마디 변명이 떠오르다가 사라졌다. 말을 잃은 정호산을 위로하듯 도채희가 말을 이었다.
“저는요, 그렇게 생각합니다. 강이신 씨는 당신을 철저하게 속인 거예요. 좋은 친구인 척 남고 뒤에서는 그런 짓을 해 온 거죠.”
“왜요?”
“당신과의 관계가 도움이 되니까.”
도채희는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
“당신은 A급의 잠재력을 지닌 헌터예요, 정호산 씨. 지금은 5성에 불과하지만 곧 6성, 어쩌면 7성급까지 닿을 수 있겠죠. 알고 지내는 것만으로도 이득이 된다고요. 실제로 바벨에서 다들 꺼리는 그와 몇 번이나 같이 팀업을 했다고 들었어요. 덕분에 강이신 씨는 낙제를 번번이 면했고요.”
“제 도움이 아니었더라도 이신이는 잘해 냈을 겁니다. 그런 이유로 저와 친구로 지낸 건 아닐 겁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네.”
정호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채희는 그런 정호산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혀를 찼다.
“좋아요, 어떻게 생각하든. 하지만 전 강이신 씨가 초범일 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몇 번이든 당신 친구는 이런 짓을, 적어도 살인을 해 봤을 거라는 거예요.”
강이신과 연락이 끊겼던 적은 꽤 많았다. 애초에 게이트 공략은 짧게는 2~3일, 길게는 달 단위로 진행되었으니 그동안 강이신이 무얼 하고 다녔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동안 정말 그런 짓을 하고 다녔나.
그럼에도 자신과 만나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던 걸까.
“제가 여기에 온 건 그동안 강이신 씨를 만나며 혹시라도 수상하게 생각한 점이 없냐고 묻고 싶어서예요. 진짜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까.”
도채희의 말에 정호산은 주먹을 꽉 쥐었다. 친구를 보호해 주기 위해서 입을 닫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조금도 아는 게 없었다.
정호산의 얼굴을 살핀 도채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다 알면서 그를 숨겨 주는 게 아닐까 했지만, 정말로 아는 게 없었군요. 차라리 다행이에요. 그 사람은 친구가 아니었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간단히 털어 낼 수가 있을까. 코흘리개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신과 가장 친했던 친구를 그저 이 말 몇 마디로 털어 낼 수가 있을까.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수사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정호산의 말에 도채희는 눈을 좁혔다. 원래 수사에 대한 건 알려 줄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걸 잃은 것처럼 무너진 얼굴을 보니, 저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아직 오리무중이에요. 알다시피 여긴 늘 인력 부족이기도 하고, 정보가 너무 적어서요. 당신 친구, 꽤나 신출귀몰해요.”
“제가 도울 수 있습니까?”
“예?”
정호산의 말에 도채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인력이 부족하다면 제가 돕겠습니다.”
그 말에 말도 안 된다며 도채희가 고개를 저으려 할 때였다. 정호산이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희생자가 나온 상황에서 내 친구가 그럴 리 없다는 말은 통하지 않겠죠. 다만 들어야겠습니다. 언제서부터 이런 생각을 해 온 건지. 정말로 우리가 친구가 맞았는지.”
정호산은 입술을 깨물었다.
“언제 어디든 달려가겠습니다.”
자신의 친구를 빼돌리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잠깐 들긴 했지만 그래도 무려 A급 헌터의 제안이다.
도채희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좋아요.”
두 사람은 손을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