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15화 (15/352)

제15화

#7 불법 게이트 (1)

“흐.”

“으으으.”

주변에서 앓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고통에도 몸을 멈출 수는 없었다.

멈추는 순간 뒤에 선 남자들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한조희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박지헌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이미 입술은 물론 손톱까지 파랗게 물든 상태였다. 마나가 이미 골수까지 치밀었다는 뜻이었다.

저 정도가 되면 웬만한 치료약으로는 마나 중독 증상을 치료할 수 없다. 평생 후유증을 앓으며 살아가겠지. 그것도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 치료를 받는다는 가정하에서다. 계속 이렇게 마나가 짙은 곳에 방치된다면…….

지금 이곳에 있는 모두가 시한부를 선고받은 셈이었다.

몸을 생각해서라면 모두 이곳을 뛰쳐나가야 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살 것 아닌가.

아무리 돈이 중요해도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하지는 않은 법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들어온 순간 그 소중한 목숨은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털썩.

옆에서 쓰러지는 박지헌을 보며 한조희는 움찔 몸을 떨었다.

“뭐야, 또 뒈졌네.”

뒤에서 그들을 감시하던 감시자는 짧게 혀를 차고는 시체 옆으로 다가왔다.

저벅저벅 뒷머리에서 울리는 발걸음 소리에 한조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안은 빠져나갈 길이 없는 무저갱(無低坑)이었다. 이곳을 탈출하는 방법은 오로지 박지헌처럼 죽어 나자빠지는 것. 하지만 시체로도 가족들의 손에 돌아갈 수 없을 테지.

남자는 시체를 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저렇게 끌려 나간 사람이 일주일 사이 벌써 셋.

한조희는 자신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이미 푸른 기가 올라온 것이 자신 또한 오래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실제로 오래 남지 않았겠지.

뒤에서 느껴지던 따가운 시선은 사라졌지만, 한조희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며칠간 새겨진 무력감이 그의 몸을 꽉 죄고 있었다.

‘임현수, 그 사람 너무 믿지 마요.’

그 말을 조금 더 새겨들어야 했는데.

후회는 언제나 늦다지만, 이번의 후회는 정말 늦어도 한참 늦었다.

강이신의 경고에도 한조희는 임현수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했다. 열흘 전 제게 왔던 임현수의 제안은 마치 한조희에게 구명줄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동생, 한서현의 실습 용구를 구입하는 데 필요한 돈이 무려 천만 원.

며칠 동안 몸이 좋지 않아 제대로 할당량을 채우지도 못한 한조희에게는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거금이었다.

하지만 내어 주지 않을 수도 없다.

이미 버린 놈이 된 자신과는 달리 동생의 장래는 밝았으니까. 지금만 버티면 언젠가 빛을 볼 아이였으니까.

그래서 욕심을 냈고 그 욕심의 결과가 이렇다.

그 거금을 가불해 줄 수 있다는 말에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 왔건만.

‘그 돈이 내 목숨값일 줄은 몰랐지.’

한조희는 쓰게 웃었다.

자신은 여기에서 스러질 것이다.

그의 옆에서 일하던 박지헌이 그랬듯이.

“어이, 움직이라고.”

어느새 박지헌의 시체를 치우고 돌아온 남자가 한조희에게 외쳤다. 한조희는 떨리는 손으로 곡괭이를 움직였다.

여태까지 그랬듯이.

* * *

━그래서 나쁜 놈들을 잡겠다고?

“난세에 영웅이 등장한다는 건 다 동화 속 이야기죠. 실제로는 나쁜 놈들이 자신의 곳간을 채우려고 이 난세를 더 이용할 뿐.”

당장 설록진만 보더라도 사람들의 불안감을 흔들어 자신의 잇속을 채우지 않았던가.

그런 도둑놈들이 이 대한민국에는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 도둑놈들을 네놈이 잡겠다?

“그렇죠. 겸사겸사 내 주머니도 채우고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족치러 가는 인간의 이름이 뭐라고?

“임현수.”

내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트린 놈의 이름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임현수에게 아주 볼일이 많았다. 임현수만 만나지 않았더라도, 아니, 그의 말에 넘어가지만 않았더라도 내가 설록진을 만날 일도 정호산을 그렇게 만들 일도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번에 내가 움직이는 건 사감 때문이 아니다.

임현수가 나를 끌고 간 그 불법 게이트는 설록진의 불법 자금의 근원이 되는 곳이었다.

게이트 몇 군데를 턴다고 설록진을 완벽히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시간을 벌 수는 있겠지.

그런 의미로 나는 그곳을 완전히 박살 낼 생각이었다.

잠시 집에 들른 나는 옷장 안에 처박아 뒀던 후줄근한 옷을 꺼내 입었다.

━아니, 그 꼴은 다 뭐냐.

“임현수를 낚을 미끼 같은 거죠.”

━그런 폐인 같은 모습에 낚이는 놈이 있다고?

“그렇죠, 그놈은 이런 모습을 한 사람한테 환장하거든요.”

━그, 그런 변태 같은.

레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상관없다. 내가 한 말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으니까.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며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누가 봐도 집도 잃고 절도 잃고, 모든 걸 잃은 폐인의 꼬락서니였다.

지난 몇 주간의 부재를 설명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모습은 없으리라.

준비를 마친 나는 곧바로 인력 사무소로 향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임현수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운이 좋네. 나는 망설임 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현수 형, 잠깐 얘기 가능할까요?”

“와, 이게 누구야.”

임현수는 나를 보며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꼴을 보며 경악하는 체를 했지만 동시에 임현수의 눈이 번들거리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대체 그 꼴이 다 뭐야.”

“사정이 있었어요.”

힘이 빠진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임현수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맨정신으로는 버티기 힘들 정도로 전 내가 날 텐데도 임현수는 조금의 구김 없이 여전히 친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참으로 감탄이 날 만큼 대단한 놈이었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여기서는 못 하고요. 어디 조용한 데 없을까요?”

망설이는 임현수에게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남들 다 있는 데서 하기는 좀 그런 얘기라.”

망설이는 체를 하는 임현수에게 나는 한 방을 던졌다.

“형은 저한테 그동안 잘해 주셨으니까…….”

저번에 보였던 자신만만한 태도는 하나도 없이 힘이 빠진 모습. 의심을 할 법도 했지만, 임현수가 알고 있던 나라는 인간은 지금 이 모습에 더 가깝겠지.

임현수는 내 말에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안 그래도 네가 어디 갔는지 궁금했어. 사람 걱정되게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지고 말이야.”

그렇게 말한 임현수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사람들이 다들 너 어디 불법 게이트에 간 건 아니냐고 걱정하더라.”

참 나, 불법 게이트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건 본인이면서. 참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저런 거짓말을 한다.

네놈이 끌어들인 사람들이 어떤 꼴로 죽어 가는지 뻔히 알면서. 나를 떠보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하다니.

나는 땅바닥으로 시선을 내렸다. 지금 임현수를 봤다가는 내 속을 다 들킬 것 같았다.

“좋아, 얘기하러 가자.”

다행히 임현수는 미끼를 물었다.

지금 임현수는 내가 자신의 미끼를 물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글쎄, 두고 보자고.

“잠깐 얘랑 얘기 좀 하고 올게요.”

목격자를 남기는 건 좋지 않은 일이겠지만, 글쎄. 어차피 지금 내 신분은 그대로 버릴 예정이니까 상관없다.

“여름인데 왜 그렇게 덥게 입었어?”

그야, 사라진 인식표를 감추기 위해서지. 나는 멋쩍게 웃었다.

“그게, 사람들한테 보일 꼴이 아니라서요.”

그러면서 슬픈 미소를 지어 주니 임현수는 곧장 납득했다.

저번에 한조희를 두고 조금 신경전을 벌였다지만, 임현수의 눈에 나는 속이기 쉬운 찐따였다. 나에 대한 경계심이 없는 만큼 능력을 쓸 필요도 없었다.

“빚을 많이 졌어요. 당장 갚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하더라고요.”

“……빚이 많아?”

“예, 여기에서 일하는 걸로는 턱도 없을 정도로.”

그 말에 임현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표정 관리가 되지 않을 만큼 기분이 좋다는 뜻이다. 하긴 임현수 입장에서는 호박이 넝쿨째로 들어온 거 같겠지. 기대도 하지 않은 내가 자신의 손아귀에 떨어진 셈이었으니 말이다.

“음, 솔직히 이건 웬만큼 돈이 급하지 않은 이상 비추천이긴 한데. 네 사정이 그렇다면 말이야. 영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거든?”

역시 임현수는 내가 기대했던 대로 불법 게이트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미 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데 내 앞에서 어떻게든 괜찮은 놈으로 보이겠다고 연기를 하는 임현수를 보니 어이가 없어 코웃음이 다 날 지경이었다.

“어디로 가면 되는데요?”

“칠성군 쪽에 있어.”

칠성군이라. 내가 전생에 갔던 곳이다. 전생에 내가 저 게이트에 들어갔던 건 지금으로부터 육 개월 뒤인데. 하긴, 내가 갔을 때는 이미 꽤나 채굴이 진행된 뒤였지.

하필이면 그곳이라니.

임현수에 대한 살의가 다시 끓어올랐다. 정말 나를 담가 버릴 생각이잖아, 이 녀석.

“네 사정은 안됐지만, 일주일은 일해야 가불도 받을 수 있을 거야.”

거짓말. 저 일주일 만에 난 시체가 될 거다. 물론 가불로 받기로 한 돈을 받을 일도 없을 거고.

‘그래, 네놈이 내가 기억하던 쓰레기 그대로라 다행이야.’

━저런 쓰레기를 왜 지금 치워 버리지 않는 거냐.

내 생각에 레이가 질문을 날렸다.

며칠 동안 그 동굴에서 레이와 있으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레이는 내 의식을 일부분 읽을 수 있었다. 깊은 곳의 심상까지는 읽지 못해도 대충 의식적으로 떠올린 생각은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덕분에 이런 식으로 눈앞에 타인을 두고도 레이와 대화하는 게 가능했다.

‘본인은 모르고 있지만, 저놈 몸속에는 저주가 새겨져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위치와 상태를 전송해 주죠. 저놈을 여기서 치면…….’

━적들이 그 상황을 바로 알게 된다는 거로군.

그랬다.

나라고 임현수가 예뻐서 살려 두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놈을 치는 건 나중으로 미뤄 두기로 하고 나는 임현수에게 정보를 캐냈다.

나를 아무리 만만하게 보고 있다고 하더라도 임현수는 바보가 아니었기에 캐낼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불법 게이트의 접선책은 확실히 알게 됐다.

이놈들은 주제에 셔틀 택시를 운영하고 있었다. 특이할 거 하나 없는 승용차를 이용했기에 미리 언질을 받지 않은 이상 이 ‘택시’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때맞춰 부평역 앞으로 가면 나를 태우고 갈 차가 올 거다.

전생에 그랬던 것처럼.

“내가 진짜 웬만하면 소개 안 해 주는 일인데, 네 사정이 정말 딱해 보여서 말해 주는 거야. 법에 걸리는 일이라 다른 데에 말하고 다니면 큰일 난다는 거 알지?”

“고맙습니다, 형.”

나는 속마음을 꾹 감춘 채 녀석에게 고개까지 푹 숙여 가며 감사함을 전했다.

“꼭 빚을 갚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예, 갚아야죠.”

이자까지 두둑이 쳐서 갚을 예정이었다.

전생의 내 인생을 망쳐 버린 빚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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