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6 건방진 아티팩트 (3)
하지만 당황도 잠시. 곧 녀석은 분노했다.
━감히 내게 거짓말을! 이런 돼먹지 못한 놈이! 눈도 쫙 찢어진 게!
쉴 새 없이 욕설이 쏟아졌다. 차마 입에 담기도 싫은 말들이 한참이나 이어졌다. 와중에 내 눈매 얘기는 왜 들어간 건데. 이쪽도 나름 눈매가 콤플렉스라 민감하단 말이다.
여기에 처박혀 있는 동안 욕만 갈고닦았나. 아주 베리에이션도 광활하다. 나한테 속았다는 것에 단단히 열받은 모양인데.
“하하, 어쩔 수 없었다고. 내가 널 속이지 않았다면, 넌 날 죽였을 거잖아?”
침묵도 잠시, 녀석이 물었다.
━그래서 내게 거짓말을 했다는 거냐?
“나 같은 놈은 살 자격도 없다고 말할 셈이라면 그만둬. 어쨌거나 나는 살아남았잖아. 그거면 됐지.”
형체도 없는 녀석인데 왠지 질린다는 표정의 놈이 떠오르는 건 내 망상일까. 큭큭,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난 살아남았다.
거짓말이든 뭐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정직하게 사실을 말했다면 난 그 자리에서 죽었겠지. 그게 선이고 정의인가? 내가 한때 죽어라 미워하던 내 능력은 이번에도 내 목숨을 붙여 놓았다. 그거면 됐다.
“그나저나 이렇게 계속 네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거냐?”
능력만 얻고 이 녀석하고 손절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건가. 머릿속에서 웅웅 울리는 목소리가 상당히 거슬렸다.
━하! 나도 네놈이 싫긴 마찬가지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네놈이 나를 집어 들었으니.
“뮤트나 진동 기능 같은 게 없다는 뜻이지?”
━내게는 그런 기능 따위는 없다.
그러니까 계속 이놈의 헛소리를 견뎌야 한다는 거지.
박세운 그놈은 어떻게 버틴 거지. 하긴 박세운이라면 이 녀석이랑 죽이 잘 맞았을지도. 취향이 퍽 이상한 놈이었으니 말이다.
“자아가 있는 아티팩트라.”
내 몸과 완전히 동기화가 된 주제에 아직도 자아를 가지고 있다니. 이런 건 처음 듣는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아까 부러진 갈비뼈가 지끈지끈 아팠지만, 눈앞에 뜬 창을 보니 그런 고통은 순식간에 날아갔다.
━ 「마나 회로 확장」 ━
잠재력 : S급
형태 : 패시브
마나 회로를 활용해 자신의 마력을 어떠한 형태로든 변환한다.
박세운은 자신의 재능을 천변만화라는 이름으로 소개했는데, 내 시스템 창에 떠오른 이름은 달랐다.
여전히 이 세상의 다른 재능들이 그러하듯이 설명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설명이 부실하다는 게 이 스킬이 부실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엄청나네, 이거.”
잠재력이 무려 S급인 건 그렇다 치고, 마력을 ‘어떠한 형태로든’ 변환할 수 있다는 부분이 사기였다.
아까 아티팩트를 흡수하고 종속시키며 내 몸에는 수백 수천 개의 마나 회로가 깔렸다.
각성이라는 건 평범한 인간의 몸에 마나 회로가 새겨지는 과정을 말한다. 각자의 재능이 정해져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각성할 때 몸에 새겨지는 마나 회로가 재능을 결정하니까.
예컨대 내 몸에는 ‘거짓말을 잘하는’ 회로가 깔린 셈이었다.
그리고 그 마나 회로는 무슨 짓을 해도 바꿀 수 없다……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이 아티팩트만 있다면 난 수천 개의 재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거다.
문제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지적한 것처럼 내 몸에는 마나량이 그리 많지 않은 터라 그 출력에는 한계가 있을 거라는 점이려나.
생각보다 엄청난 걸 얻어 버렸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올랐지만,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난 돼지가 아니다. 응, 아니고말고. 이걸 잘 써먹기만 하면 될 거 아닌가.
문제는 그 아티팩트가 깔아놓은 이 수많은 마나 회로가 구분이 안 된다는 거였다.
그냥 마나를 움직이면 자연스레 ‘거짓말’이 됐던 아까와는 달리 마나를 끌어올려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달까.
아까 응축과 방출을 썼을 때는 목소리가 보조를 해 줬었지.
나는 슬쩍 공중을 보며 입을 열었다.
“큼, 큼. 일단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까 무례하게 굴었던 건 사과드리죠.”
내 사과에도 목소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람도 아닌 주제에 비싸게 굴기는.
나는 놈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까 위대한 임무가 있다고 말했죠. 위대한 임무를 갖고 이 차원으로 흘러들어 왔다고.”
━그래. 그나저나 답지 않게 웬 존대냐. 원래 하던 대로 해라.
“그래도 저를 살려 주신 생명의 은인인데 어떻게 함부로 말을 놓겠습니까?”
━하, 이제 와서 알랑방귀를 뀌기는.
쳇, 기분은 좋으면서 괜히 그런다. 나는 놈을 방방 띄워 주며 슬쩍 물었다.
“그 위대한 임무가 뭡니까?”
단순히 놈의 환심을 사기 위한 질문은 아니다. 이 아티팩트가 정말로 다른 세계에서 온 거라면, 그것도 임무로 온 거라면 뭔가 위험하지 않을까 싶어서.
━난 이 세계를 다른 차원의 침략으로부터 구해 낼 거다.
어라라.
그 말을 들은 나는 눈을 깜빡였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거라서. 내 놀란 표정을 보기라도 한 듯이 놈이 비아냥거리듯 입을 열었다.
━그래. 네까짓 놈이 이해할 만한 일이 아니지! 하지만 난 네놈의 사리사욕에 휘둘릴 생각이 전혀 없다.
“아뇨, 제가 놀란 건 그쪽 임무랑 제 목표가 대충 엇비슷해서인데요.”
━뭐?
“저도 이 세상을 구할 작정이거든요.”
내 말에 목소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호들갑을 떨었다.
━너, 너 같은 놈이 그런 성스러운 목적으로 움직일 리가! 거짓말이지! 또 내게 거짓말을 하려는 게 아니냐!
“너무하네요, 이쪽도 나름 진지하게 말한 건데.”
내가 생각한 구원과 이 녀석이 말하는 구원의 무게감이 많이 다르긴 했어도 나 또한 진심이었다.
“뭐, 나야 이 나라를 좀먹을 개자식들이나 치워 놓자는 생각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러면 알아서 이 세상이 구원될 줄 알았지만, 그건 오판이었다.
다른 차원의 침략이라.
“게이트라는 게 다른 차원의 침략이라는 말입니까?”
━네 세계에 차원 문이 열린 게, 그리고 그 차원 문을 막을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생긴 게 모두 우연 같으냐?
자아가 있는 것부터가 심상치 않은 아티팩트긴 했지만, 게이트에 대해 알고 있는 건 확실히 이상했다. 아무리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존재라고 하더라도.
“이 모든 일을 계획한 존재가 있단 말입니까?”
━그래, 이 모든 건 타 차원의 침략을 위해 벌어진 일. 두 차원의 간극을 좁히다가 어느 순간 세계를 겹치기 시작하겠지. 그럼 너희의 세계는 끝이다. 내 세계가 그러했듯.
그 말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뭐야,
이거. 한국만 어떻게든 구해 내면 되는 줄 알았더니 이 말대로라면 전 세계가 위험에 빠진다는 소리잖아.
적당히 한국의 부패한 우두머리들을 잘라 내고 해외에 가서 꿀을 빨려던 내 계획이 어그러지는 순간이었다.
세상이 멸망하기 전까지 알 수 없었던 게이트의 존재 이유를 여기에서 알게 되다니.
“타 차원의 침략을 막을 길이 있습니까?”
━차원 문을 나타나지 않게 하는 방법? 그런 건 없다.
“그러면 어떻게 그놈들을 막을 수 있단 말입니까?”
━언젠가 그놈들 또한 이 세계로 넘어올 거다. 그 본대를 치는 수밖엔 없어.
방법을 듣긴 들었는데 너무 현실성이 없어서 입만 벙긋거리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 차원을 노리고 넘어온 그놈들의 본대를 친다고?
간을 보기 위해 보낸 게이트에도 허덕이는 대한민국이, 그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본대를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네놈의 능력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나를 순순히 포기하는 게 나았을 것을.
그 말에 퍽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왜냐면 전생에서 이놈의 주인이었던 박세운은 이 세상을 구하는 데에 조금의 도움도 안 되는 놈이었으니까!
자신의 능력을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쓰면 썼지, 다른 헌터들이 으레 하는 게이트 무료 공략 같은 것도 안 했단 말이다.
사람 보는 눈이 옹이구멍인 놈이 나를 보며 한탄하고 있으니 비웃음만 났다.
하지만 나만 알고 있는 미래의 일을 말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랴.
“포기 안 합니다. 말했잖아요, 내 목표도 어떻게든 이 세상을 살려 보는 거라고.”
그렇게 말한 나는 놈에게 말을 던졌다.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거, 우리는 같은 배를 탄 거 아닙니까? 싫어도 우리는 한 몸이라고요, 이제.”
내 말에 목소리는 침묵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녀석은 이미 내게 종속된 상태.
[이름] : 강이신(姜怡神)
[성별] : 남(男)
[나이] : 21세
[재능] : 불굴의 신념(S), 진실한 거짓말(B), 마나회로확장(S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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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이 종속된 상태
그건 이 세상의 진리나 다름없는 상태 창이 증명하고 있다.
막말로 내가 놈을 협박한다면 놈은 내 말대로 따를 수밖에 없을 터.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채찍을 휘둘렀으면 곧바로 당근을 하나 꺼내 흔들어야지.
“물론 저는 영 허접한 각성자죠. 그래도 당신이 도와주면 제법 괜찮을지도 몰라요. 아까도 제 마나를 마나 회로로 이끌어서 저를 구해 줬듯이요.”
━크흠! 주제에 그건 눈치챘나 보군.
콧대 높은 척하지만 결국 이 녀석은 사람이 아닌 아티팩트. 주인이 존재하지 않는 한 가치가 없는 놈이었다. 그만큼 누군가의 인정이 고플 수밖에 없겠지.
“모자란 저라도 최선을 다할 테니 저를 좀 도와주시죠.”
━뻔뻔한 녀석.
그렇게 말하면서도 목소리는 전처럼 미쳐 날뛰지 않았다. 놈에게도 내가 최선이라는 걸 받아들인 모양. 그래, 더럽고 치사해도 나는 놈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럼,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나름 자아를 가진 존재라면 이름이 있지 않을까. 통성명은 관계의 첫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했다. 이미 첫 단추를 단단히 잘못 끼우긴 했지만,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세상이 망하란 법은 없다. 그까짓 단추 다시 끼우면 그만 아니야!
━네놈 따위에게 알려 줄 이름은 없다.
하지만 놈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거, 참 나. 어렵게 굴기는. 아니다, 이런 놈의 마음을 열어야 더 재미있는 법 아니겠나.
“그러지 말고 우리는 한배를 탄 사이 아닙니까? 예? 이름 한 번만 딱 알려 주십쇼.”
하지만 한참이나 어르고 달래도 놈은 말이 없었다. 결국 열이 뻗친 내가 소리를 빽 질렀다.
“아, 됐어! 안 가르쳐 줘도 됩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부를 테니까. 예? 개똥 씨?”
그렇게 내가 X랄을 하고 나서야 놈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생각이 안 난단 말이다.
“기억이 날아가기라도 한 겁니까?”
━그래. 이 세상에 전송되며 쓸데없는 것들은 전부 소거해야만 했으니까. 내 기억의 일부도 그에 속하는 모양이지.
목소리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것참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걸 기억하고 있으니 됐다.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퍽 쓸쓸하게 들렸다. 여태까지 들었던 이 목소리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목소리는 오로지 다른 차원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포기하고 이곳에 날아온 셈이니까.
이거야, 원. 아무렇게나 욕도 못 하겠네.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면 제가 지어 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슨 거지 같은 이름을 붙여 주려고……. 아까처럼 나를 개똥이라고 부를 거라면 그만둬라! 나에게도 자존심이 있으니!
“스트레이.”
떠돌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스트레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고 차원 여기저기를 떠돌았던 목소리의 이름으로 이보다 더 적당한 게 어디에 있을까.
이름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놈은 가만히 입을 닫았다.
━스트레이는 너무 기니, 레이로 하지.
동시에 상태 창에서 놈의 이름이 변화했다.
[이름] : 강이신(姜怡神)
[성별] : 남(男)
[나이] : 21세
[재능] : 불굴의 신념(S), 진실한 거짓말(B), 마나회로확장(S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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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급이 종속된 상태
여전히 등급은 ??급으로 표시가 되었지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아니었다. 자신의 기억도 모두 잃은 상황이니, 자신의 능력도 잊었을 수 있다. 기억을 찾아 줄 수 있는 길이 열리면 좋을 텐데 말이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레이.”
나는 레이에게 말했다.
내 인사가 부끄러운 듯 레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하.
“사람이 인사를 했으면, 대답을 해야죠?”
참 사람을 못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놈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