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12화 (12/352)

제12화

#6 건방진 아티팩트 (2)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박세운 그놈한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듣는 건데.

누가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겠냐고!

“젠장, 그냥 운이 좋게 능력을 얻었다더니.”

그 말만 듣고 여기를 온 게 실수인가.

그래도 무려 재능을 얻을 수 있게 해 주는 아티팩트를 놓칠 순 없었단 말이다.

“크윽.”

몸속에 파고든 아티팩트는 내 몸을 태울 듯이 사나운 기운을 내뿜고 있지, 함정은 나를 익사시키려는 듯 물을 내뱉고 있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정신을 놓으면 그대로 끝장이다.

나는 내 몸의 마나를 전부 끌어올렸다.

내 몸 전부를 태워 버릴 것처럼 공격적인 이 기운을 다스려 내 것으로만 만들 수 있다면,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티팩트는 내 마력에 대항해 한 곳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재능이 허접해서 그렇지, 내 각성 등급은 B. 몸에 흐르는 마나가 아주 적지는 않았다.

“가만! 히, 좀.”

마력을 끌어올리자마자 몸의 고통은 사라졌다. 내가 마나로 자신을 억누르려는 것을 깨닫기라도 한 듯 아티팩트의 기운은 내 몸을 태우던 것을 멈추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내 마나로 그놈의 꼬리를 잡으려 할 때마다, 그놈은 마치 도마뱀처럼 제 기운을 버리고 도망갔다.

놈의 기운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기는 해도 놈의 본체는 요리조리 내 마나를 용케 피해 갔다.

이러는 사이 물은 내 허벅지까지 차올랐다.

시간이 없다.

내 몸을 헤집고 있는 이 기운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공격하는 대신 시간을 질질 끌며 나에게서 도망치고 다니니 말이다.

이렇게 꼬리를 따라가서야 아무것도 안 되겠다.

나는 마나를 섬세하게 나누었다.

내 마나 컨트롤은 무척이나 뛰어난 편이었다.

재능을 시각화할 수 있다는 것만 봐도 이미 A급에 이르러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란 말이다.

어떻게든 내 재능을 공격용으로 써 보려고 애를 쓰다가 이렇게 된 거지만, 이런 상황에는 나쁠 게 없었다.

숨바꼭질을 원한다면 해 주면 그만이야.

아카데미에 다닐 당시의 나는 독종 중의 독종이었다.

겨우 이런 놈과 드잡이질하다가 죽기 위해서 그 고생을 했던 게 아니라고.

나는 쪼갠 마나를 몸 여기저기에 흩어놓았다. 놈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놈의 뒤를 쫓으면서.

아티팩트의 기운을 그 흩어놓은 마나로 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티팩트의 기운에 내 마나가 달라붙자마자 내 눈앞에 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뭐야.”

내 눈앞에 떠오른 건 투명한 모양의…… 자물쇠였다.

마치 내가 ‘거짓말’을 할 때와 같은, 시각화된 자물쇠 모양에 나는 눈을 찌푸렸다.

이건 사람한테만 통하는 게 아니었나?

어쨌거나 자물쇠가 떴다면 이제부터는 내 전공이다. 내가 그동안 딴 자물쇠가 몇 갠 줄이나 아냐고!

나는 날카롭게 벼려 낸 마나를 그 자물쇠에 때려 부었다.

왼쪽, 오른쪽. 딸깍딸깍, 내 마나로 만들어 낸 락픽이 자물쇠의 구멍을 헤집었다.

시간이 없다. 벌써 가슴팍까지 물이 차올랐다.

“젠장, 젠장.”

대체 어떻게 그놈은 이걸 종속시킨 거지? 나는 마구잡이로 마나로 만든 락픽을 흔들었다. 자물쇠의 열쇠 구멍이 흔들렸다.

아무리 마나 컨트롤에 자신이 있다고는 해도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너무 방치해서 그런가. 과한 마나의 움직임에 몸이 삐거덕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소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푸, 풀렸다!”

달깍─ 하는 소리와 함께 꼼짝도 하지 않았던 자물쇠가 풀렸다.

그럼 이제 끝난 건가.

막 그렇게 생각하며 안심할 때였다.

━감히 네까짓 놈이!

머릿속의 누군가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불타, 불타 죽어라!

그리고 여태까지 잠잠하던 놈의 기운이 내 몸을 또다시 들쑤시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게 뭔 X랄인데!

“그만, 그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둬! 대화로 해결하자고.”

내 말에 고통은 다시 잠잠해졌다.

━대화로 해결하자고? 하하! 웃기는 소리군.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발을 디딘 무지렁이가 이제 와서 세 치 혀를 좀 굴려 보겠다?

처음에는 헛걸 들었나 했는데,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히 이 아티팩트는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에고 아티팩트?”

그냥 재능을 부여하고 사라지는 일회용 아티팩트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자아를 가지고 있었던 건가?

━감히 그딴 것으로 나를 일컫지 말라!

아티팩트 주제에 놈은 대단히 비대한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자물쇠를 풀었음에도 여전히 이 아티팩트는 내게 복종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 저주나 쏟아 내고 있는 판이었다.

━네놈은 내 주인으로 턱없이 부족해! 겨우 그따위 재능으로 뭘 하겠다고. 잠자코 여기에서 죽어라. 네 몸으로 다시 세계를 만들 테니.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놈이 나를 거부하는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이곳을 처음 발견한 등산객, 박세운은 무려 S급의 운을 타고난 사람이었으니까. 나처럼 전투 능력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릇 자체가 달랐겠지.

하지만 난 겨우 B급.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비죽 올라간다.

“등급이 낮은 놈은 안 된다?”

그러니까 기회도 주지 않고 죽여 버리겠다고?

나도 잠재력이 높은 각성자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잘 알고 있었다. 설록진의 가까이에서 그들이 세상을 뒤엎을 힘을 가진 강자로 성장하는 걸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잠재력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그건 절대적인 잣대나 다름없다. 잠재력이 높은 각성자는 금세 성장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뼈를 깎는 노력으로도 별 볼 일 없는 헌터가 되기 일쑤다.

나는 분명 후자에 속한다.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꿈틀거릴 자격은 있는 거잖아.

나만 좋자고 하는 짓도 아니고 나름 이 세상을 구해 보겠다고 그러는 건데.

“기회는 한 번쯤 줘도 되잖아?”

내 말에도 목소리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기회를 줄 필요도 없어! 네놈은 부족해!

좋아,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기회를 주지 않겠다고 해도 상관없어. 어떻게든 너는 내게 기회를 줄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 통하는 상대라면 오히려 더 쉽다. 내 눈앞에 다시 한번 자물쇠가 떠올랐다.

조금 전의 투박한 모양과는 달리 제법 고풍스러운 문양까지 달린 열쇠였다.

역시 통한다.

말이 통하게 됐으니 무턱대고 마나로 놈의 닫힌 자물쇠를 들쑤실 필요도 없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 내가 네 유일한 기회야.”

━개소리. 순순히 죽어라.

“이거 안됐네. 난 여기에서 순순히 죽을 생각이 전혀 없거든. 그리고 너한테도 안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 내가 오면서 앞에 있던 동굴을 무너뜨렸어. 날 주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너를 찾아올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다.”

━무어라?

내 말에 목소리는 당황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역시 이 녀석은 나보다 더 뛰어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회를 내가 완전히 앗아 갔다고 말하는 거다.

“동굴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으니 산을 밀어 버리지 않는 한 이 게이트를 찾아올 사람은 없겠지.”

내 말에 목소리는 발작하듯 외쳤다.

━그건 안 돼! 나에게는 위대한 임무가 있단 말이다! 여기에 이대로 처박혀 있을 순 없어! 너 같은 주인을 모시려고 이 차원까지 흘러들어 온 게 아니란 말이다!

“하하, 어쩌지? 이미 그렇게 됐는데?”

어느새 물은 내 목 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날 선택해. 네게는 유일한 기회니까.”

내 능력은 거짓말을 그 어떤 말도 진실로 느껴지게 만드는 것. 지금 나는 그 누구보다 믿음직스러워 보일 거다.

내가 끔찍이 싫더라도 내가 하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

━너처럼 아무런 능력도 없고! 형편없는 몸을 가진 놈을 주인으로 모시는 일은 결코 없을 거다, 결코!

“응, 그래. 그리고 평생 여기서 홀로 썩도록 해.”

━빌어먹을!

아티팩트는 그 더러운 성질머리를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나에게 욕을 쏟아냈다.

물이 내 턱 끝에 닿기 직전.

━좋아, 젠장!

마침내 목소리가 내가 기다리고 있던 말을 꺼냈다.

━이딴 놈을 모셔야 한다니! 정말 최악이군, 최악이야.

내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내 눈앞에 떠오른 창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이 종속을 청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쉬이 나오지 않는, 시스템의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선택받은 각성자에게만 뜬다는, 이른바 신의 목소리. 전생의 나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창이었다.

“받아들이고말고.”

그 녀석과의 계약이 끝나자마자 내 손등에는 종속의 인이 새겨졌다.

흔히들 뫼비우스의 띠라고 부르는 누운 8자형의 문신이 붉게 빛났다.

하지만 문양이 붉게 빛났던 것도 잠시, 문양은 곧바로 살갗에서 자취를 감췄다.

드디어 빌어먹을 이 아티팩트를 내 아래에 뒀다는 기쁨도 잠시. 샴페인을 터트리기엔 이르다.

곧바로 내 얼굴은 밑에서부터 차오른 물에 잠겼다.

큽!

어떻게든 하라고!

속으로 내뱉은 내 말을 듣기라도 했던 걸까. 곧바로 엄청난 양의 마나가 내 몸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운들은 이내 새로운 길이 되어 몸에 깔렸다. 아무것도 없던 황무지에 길이 놓이고 철도가 놓이듯이, 순식간에 내 몸에는 수천, 수백 개의 마나 회로가 깔리기 시작했다.

나무에서 새로운 가지가 자라듯이 내 몸에 있던 마나 회로가 확장되고 또 다른 길을 만들어 냈다.

수십, 수백 갈래로 이어진 마나 회로는 내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순식간에 새겨진 지식에 머리가 터져 나갈 것 같았다.

‘으윽!’

치밀어 오르는 두통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바보 같으니!

그때 목소리가 내게 길을 보여 주었다.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길 중에 한 부분이 빛났다.

나는 선명하게 빛나는 마나 회로를 따라 내 몸의 마나를 움직였다.

손끝이 단단해지고 무엇이든 깨부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내 몸에 깃들었다.

‘이거다!’

나는 그대로 물속을 가르고 밑으로 내려갔다. 나는 내가 들어왔던 문에 손을 뻗었다.

마나를 손끝에 모으는 응축.

그리고 방출.

여태까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두 재능의 사용법이 완전히 머릿속에 새겨져 있었다.

몸 안에서만 흐르던 마나를 바깥으로 꺼낼 수 있는 길이 열린 이상 두려울 건 없다.

쿵.

내 몸에 있던 마나가 빠져나가며 벽에 금이 생겼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이런 허접한 마나라니! 턱도 없다, 턱도 없어!

가뜩이나 힘이 달려 죽겠는데 힘 빠지는 소리나 하고 있네.

이를 악문 나는 두 번째로 마나를 방출했다. 쩌적, 문짝에 금이 갔지만 아직도 벽을 부수기에는 부족했다.

숨이 달려서 그런가. 시야가 점차 좁아졌다. 마음 같아서는 숨을 다시 쉬러 올라가고 싶었으나, 어느새 이 안은 물이 꽉 차 버렸다.

마지막, 한 번.

제발 깨져라.

쿵.

내 손에서 마나가 뻗어 나가자마자 문이 부서지며 물이 빠르게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문 앞에 있던 내 몸도 마치 수챗구멍에 빨려 들어가는 물처럼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젠장, 이건 예상 못 했는데.

물살에 끌려가느라 숨이 턱턱 막혔다. 가뜩이나 마지막 숨을 쥐어짜서 힘을 냈던 터라 점차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바보 같은 놈! 마나를 숨통에 모아라! 숨을 쉬어.

‘그게 어떻게 가능한데!’

━이딴 놈을 살려야 하다니!

귓가에 투덜거리는 놈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을 뻔했지만, 짜릿한 전기 찜질이 나를 깨웠다.

‘무슨 짓이야!’

의식을 잃을 뻔한 나를 구한 건 이 녀석이었다.

━네 목숨을 살린 거다.

아,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숨이 막히지 않았다. 여전히 물살에 쓸려 가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숨이 막혀 죽는 것보다는 낫지.

물살은 나를 여기저기 거칠게 이끌었다. 쿵, 쿵. 좁은 복도 벽에 온몸이 짓이겨지듯 부딪쳤다.

그때마다 내 몸은 엉망진창이 됐다.

‘갈비뼈가 나갔나.’

나는 그 고통을 참으며 입을 악물었다. 그렇게 얼마나 끌려갔을까. 마침내 물살이 나를 바닥으로 내뱉어 냈다.

“웨에엑.”

나는 바닥을 구르며 여태까지 먹었던 물을 게워 냈다. 아주 한참이나.

우웨에엑.

겨우 정신을 차린 내게 놈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제 어쩔 생각이냐? 바깥이 다 막혔다면서! 네놈의 이 허접한 마나로 벽을 뚫고 나가려면 몇십 년이 걸릴 거다!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맞다, 그렇게 말해 두었지.

“걱정하지 마. 출구는 뚫려 있으니까.”

━뚜, 뚫려 있다니? 네놈이 입구를 다 막아 뒀다며.

“아, 그거? 거짓말인데?”

━뭐?

아, 속이 다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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